한국 교향악단史 80여 년이 넘는현 시점에서 KBS 교향악단(이하 KBS향)은 초기에 많은 변천 과정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국내 최고의 교향악단으로 우뚝 서서 우리나라를대표하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이 되어 있다.이런 KBS 향을 창단(1956년) 초기부터 1989년까지 초반기 약 24년 간의 형성 과정과 연주 활동 면모 등을 간략하게 적어보았다. KBS향은 1956년 육군 교향악단의 제대 단원들을 중심으로 창단(1956년 9월)해 서울방송교향악단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그때당시에 지휘자 임원식이 초대 지휘자가 됐다.같은 해 제 1회 정기 연주회를 시공관에서 했다. 5년 뒤인 1961년 2월에 명칭을 한국교향악단으로 변경했다가 같은 해 9월에 오늘날의 이름인 KBS 교향악단(이하 KBS 향)으로 변경했다. 운영 상 최상의 방법론을 찾기 위한 해결책이었다. 1969년에 KBS 향이 국립 극장으로 운영권이 이전되면서 KBS 향 명칭을 국립교향악단(이하 국향)으로 변경됐고 국립교향악단으로 다시 재창단됐다.창단 지휘자였던 임원식이 이와 함께 사임하고(1970년) 후임에 지휘자 홍연택이 제 2대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다(1972년). 국향을 10여 년간을 지휘한 홍연택은 국향이 다시 KBS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사임(1981년)을 했다.KBS로 운영권이 넘어오면서 국향을 다시 KBS 교향악단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상임 지휘자를 세우기 전에 지휘자 금난세를 전임 지휘자로 세워서 5년 간 지휘를 했다. 그 뒤(1986년)를 이어서 지휘자 원경수를 제 3대 상임 지휘자로 세웠고 3년 후에 그는 사임(1989년)을 했다.상기 세 상임 지휘자들은 KBS 향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끔 견고한 터를 닦아 놓은 훌륭한 지휘자들이었다. 연주 작품들은 주로 고전과 낭만 시대의 음악작품, 즉 공통 관습 시대 음악(Common practice period music)들이었고 간혹 바로크 작품들과 근현대 곡들도 연주됐다. 놀라운점은 그때 당시 연주 작품들이 오늘날 연주회 작품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 점이다. 그리고 지휘자들의 개혁적인 음악 철학이 신선해보였다. 특히 제 2대 지휘자 홍연택은 8번이나 “한국 작곡가의 밤”을 기획해서 지휘했는데 이 점이 돋보였다. 미래지향적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그의 의식을 높이 사고 싶다. 세 명의 상임 지휘자들이 연주한 근현대곡들은 오늘날도 지휘자들이 어려워하는 곡들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삼대 무용조곡 ‘바르톡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인기리에 연주되고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1, 2, 3번 모두 연주했다.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 1, 2, 3번도 연주되었다. 국내 곡들은 주로 현대작품들을 연주했다. 강석희 ‘달하’, 나인용 ‘심포니아 제 2번’, 백병동 ‘관현악을 위한 비’, 이상근 ‘무악 79’, 김용진 ‘관현악을 위한 6번’,박재열, 오숙자, 정회갑, 김정길 등의 곡들도 연주했다. 요즘 시향들도 꺼리는 ‘한국 작곡가의 밤’을 기획과 지휘한 홍연택의 한국 음악 연주 의식을 높이 사고 싶다. 협연자들은 국내 연주계의 최고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장혜원, 이경숙, 신수정, 김영욱, 백건우, 한동일, 정찬우등이 그들이다. 연주회장들은 시공관을 필두로 명동 국립극장과 남산 국립극장, 시민회관,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이르기까지 KBS 향이 발전에 발전을 해간 만큼 연주회장도 바꿔서 연주했다. KBS 향은 정기 연주회 외에 특별 연주회, 기획 연주회,지방 연주회, 방송 연주회 등 쉴 틈 없는 연주를 했다. 그 때 당시 KBS 향 연주 활동을 보면 오늘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극적인 드라마틱한 모습이었다.KBS향은임원식, 홍연택, 원경수 등 세 지휘자들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없는 KBS향의 은인들이다.이런 변천 과정 하에 만들어진 KBS향의 진짜 모습 즉 정체성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최고의 KBS 향 면모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