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성우 안토니오(1795〜1841)
o 회장이요 공소 집 주인. 양반
o 1795년 경기도 구산 출생. 이후 서울 느리골과 마장안에서 거주
o 1841년 포도청에서 교수형으로 순교
서울에서 가까운 한강변의 광주 구산 마을(현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 천주 신앙이 전파된 것은 1830년 무렵으로, 교리를 전한 주인공은 서 당 훈장을 하던 이 서방이란 교우였다. 이때 대대로 그 마을에 거주해 오던 경주 김씨 집안의 맏아들 김성우(金星禹)안토니오와 동생들이 먼저 이를 받아들였으며, 이어 그 집안과 마을 사람들이 천주교에 입교함으로써 신앙 공동체가 형 성되었다. 이후 김씨 집안에서는 1839년 에서 1868년까지 여러 명의 순교자가 탄생하게 된다.
김성우 안토니오의 보명(譜名)은 우집(禹集)으로 나오며, ‘성우’ 는 그의자(字)였다고 한다.79> 본래 성품이 정직하고 아량이 넓었던 그의 형제들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고, 천주교에 입교한 뒤로는 세속 물질에 관심을 두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비록 그들의 모친은 비신자로 사망하였지만,부친은 뒤늦게 입교하여 신앙 생활을 하다가 선종하였다.
고향 구산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안토니오는 1834년에 서울 느리골 (현 종로구 이화동의 느릿골)로 이주했다가 1836년에는 동대문 밖 마장안(현 성동구 마장동)으로 다시 이주하였다. 그런 다음 자신의 집안에 경당을 꾸몄으니,이는 좀 더 용이하게 성사를 받거나 신부를 모시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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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김정태 소장,『경주김씨족보』: 하성래,『김성우 안또니오와 구산의 순교자 들』, 천주교 구산 교회 ,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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