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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 서품 14장】 백지혈인과 순교정신
원기 사년 팔월 이십일일(음 7월 26일)에 생사를 초월한 구인 단원의 지극한 정성이 드디어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으로 나타남을 보시고,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신명이 이미 감응하였고 음부공사(陰府公事)가 이제 판결이 났으니 우리의 성공은 이로부터 비롯하였도다. 이제,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 세계에 바친 몸이니, 앞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고, 또는 가정 애착과 오욕(五欲)의 경계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 일만 생각한다면 거기에 끌리지 아니 할 것인 즉, 그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 하시고, 법호(法號)와 법명(法名)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전날 이름은 곧 세속의 이름이요 개인의 사사 이름이었던 바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미 죽었고, 이제 세계 공명(公名)인 새 이름을 주어 다시 살리는 바이니 삼가 받들어 가져서 많은 창생을 제도하라.]
핵심주제
백지혈인과 순교정신(류성태)
그대들의 전날 이름은 곧 세속 이름이니(이광정)
다시 살리는 순교(한종만)
혈인 감응과 법호 법명의 의의(신도형)
대의 강령
구인의 지극정성이 백지혈인으로 나타나자 대종사 말하였다.
1) 음부공사가 판결이 났으니 우리 성공이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2) 법호와 법명을 주며, 끌림 없는 순일한 마음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롯이 힘쓰라.
주석 주해
【류성태】음부공사가 이미 판결이 났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음부공사란 무엇인가? 원불교에서는 음부란 허공법계, 법계 또는 음계(陰界)를 의미한다. 음부공사가 판결이 났다는 것은 법계의 진리 인증을 받았다는 뜻이다. 우주 대기와 하나 되어 대종사의 가르침과 회상 창립이 이미 음계의 인증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성으로 허공법계에 기도를 올렸으니, 진리의 감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부공사의 판결이란 무형상의 초월처, 소소영령한 감응처로부터 인증을 얻었다는 뜻이다. 하늘마음이 창립제자들의 마음이요, 대종사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태산 여래의 경륜이 우주를 통하고 신의는 고금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이광정】이 14장은 생령과 세상을 위해서 자결도 불사하겠다는 9인 제자들의 비장한 결의가 백지혈인의 이적으로 나타난 사실에 대해 그 의의를 천명하시고 다시 제자들의 마음을 다지시는 법문이다.
【박길진】이적이 수행 도중에 나타났다고 하여 성자가 다 된 것은 아니다. … 음부공사도 마음이 지극하면 천지기운과 통해져서 다 응하게 된다. … 지극한 마음으로 봉공만 하면 기적의 수확이 있을 것이다.
상황법문 : 백지혈인의 이적
기도를 시작한지 백일이 지나도(음 7.6) 하늘로부터 아무 감응이 없자 8월 11일(음 7.16) 12차 기도일에 단장은 단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지금까지 기도해 온 정성은 심히 장한 바 있으나 나의 징험한 바로는 아직 천의를 움직이는 데는 초원(稍遠)하나니, 이는 그래도 그대들 마음 가운데 어떠한 사념이 남아있는 연고이다. 그대들이 사실로 인류세계를 위한다고 할진대 그대들의 몸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만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 없이 그 일을 실행하겠는가?”
“……”
아홉 단원들은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하지 못하였다.
단장의 외삼촌되는 곤방 단원 유성국이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여 언도 막고 애썼는데 죽어버리면 다 소용이 없는게 아닙니까?”
잠시후 단장이 말하였다.
“그러나 여러분이 음부에 가야만 큰일을 성사시키겠고 또 그 일만 잘되면 다시 살아오는 수가 있지.”
“한 번 죽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되살아난단 말입니까?”
“다 방법이 있어!”
단원들은 단장님이 용한 재주를 가진 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어느 정도 신임할 수밖에 없었다.
단장은 더욱 엄숙한 어조로 말하였다.
“기왕 시방세계 일체중생을 위하여 희생하기로 작정을 하였을진대 서양의 야소씨(예수)가 모든 사람의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감수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최후 생명까지 희생하겠는가?”
“……”
“옛 말에 살신성인이란 말도 있고 또한 그를 실행하여 이적을 나툰 사람도 있었으니, 여러분이 만일 그와 같이 남은 것이 없는 마음으로써 대중을 위한다면 천지신명이 어찌 그 정성에 감동치 않으며 그 소원에 성공이 없으리요. 불원한 장래에 도덕의 정법이 다시 세상에 출현하고 혼란한 인심이 점차 정돈이 되어 창생의 행복이 장차 한이 없을지니, 그리 된다면 여러분은 곧 세상을 구원한 구주(救主)요, 그 음덕은 또한 만세를 통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생사는 인간의 대사(大事)라. 또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단원 중 만일 조금이라도 자신과 가정은 물론하고 미망한 생각이 생명 희생에 남은 힘이 있다면 또한 숨기지 말고 곧 말하라. 그러한 사람에게는 생명을 바치지 아니하고도 다른 도리가 있나니, 이것이 그대들에게 생명 희생을 단행하라는 것은 결코 아닌즉, 모두 각자의 마음에 따라 응답할 것이요, 조금도 나의 말에 끌리거나 동지의 체면에 구속되어 대답하지는 말라. 만일 육신 희생에 대하여 호리라도 불안한 생각이 심중에 끼어 있다면 비록 열 번 죽어서 정성을 바친다 할지라도 천지신명은 이에 감동치 않을지니, 여러분은 이 점을 또한 이해하여 실정으로써 대답하기를 바란다.“
이 말에 단원들은 모두 비장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지체없이 일제히 희생하기로 고백하였다.
단장은 무수히 칭찬하여 마지 않았다.
“그대들의 오늘 이 마음은 천의(天意)라. 천의를 놓고 어찌 그대들의 마음이 따로 있으며 그대들의 마음을 놓고 어찌 천의가 따로 있으리오.”
이에 10일간 치제를 더하고 8월 21일(음 7.26)을 최후의 희생일로 정하였다. 이날 아홉 단원들은 각기 단도 한 자루씩 준비하였다가 각각 기도 장소에서 열시 정각에 일제히 자결하기로 약속하였다.
최후의 날 8월 21일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방조제 공사 때부터 자금 융통 및 외무를 맡은 건방 단원 이재풍은 단장의 명을 받들어 장도(단도) 아홉 자루를 사러 읍내에 나갔다.
이재풍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효자였다. 장도 아홉 자루를 사서 마지막으로 모친과 처자식을 보고자 군서면 학정리 집에 들렀다.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집안 일을 처리하고 홀어머니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야 마지막으로 하는 자식의 인사인지 무엇인지 알 턱이 없었다.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따라 나오며 물었다.
“야아, 무슨 칼을 그리 많이 맞춰 가냐?”
이재풍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차마 홀어머니를 두고 가기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모질게 마음을 추어잡고 길룡리로 돌아왔다.
단장께 말하였다.
“늙으신 모친 봉양할 사람이 없는 것이 걱정됩니다.”
단장이 말하였다.
“아무런 걱정마라. 모친 시봉은 내가 책임지마.”
이후로 이재풍은 다시는 서글픈 마음을 갖지 않고 결의가 굳어졌다.
아홉 단원들은 죽을 것을 각오하고 칼을 짚으로 묶어 고이춤에 차고 다녔다. 틈나는대로 날이 파랗게 서도록 칼을 갈았다. 단장의 부인 양씨가 이들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배코(머리 삭발)치는 칼인 줄만 알고 칼을 갈아대는 것을 보고 조카벌 되는 박세철에게 물었다.
“뭣 할려고 번뜩번뜩하도록 그리 칼을 가요?”
“암 말 마시오. 올 저녁에 쓸라고 그러요.”
유성국은 당시를 회상하길 “우리는 며칠 전부터 죽을 것을 각오하고 칼을 짚으로 묶어 허리에 차고 다녔제.”라고 술회했다.
마침내 최후의 날 8월 21일 저녁이 되었다.
아홉 단원들은 숫돌에 정성스럽게 칼을 갈아 파랗게 날이 선 단도를 짚으로 묶어 고이춤에 찌르고 시간 전에 조합실에 모였다.
조합실 방에는 상을 차려놓고 그 주위를 단원들이 앉았고, 아랫목에는 단장이 좌정하였다.
이윽고 단장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비록 공사를 위한 정성이 지극하나 누구나 물론하고 희생을 당할 시는 조금이라도 슬픈 마음이 있는 것이어늘 이제 그대들의 기상을 살펴본 즉 모두 희색이 만연하였으니, 이 희생에 있어 이와 같은 즐검(즐거움)까지 있는 것은 어떠한 이유인가?”
이에 한 단원이 대답하였다.
“사람의 생사라는 것은 누구나 물론하고 조만간 다 있는 것이로되 시방세계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은 천만인 중 가장 있기 어려운 바이며, 또한 저희들이 본래 당신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평생에 농촌 농민으로서 그 사상이 항상 한 가정에 벗어나지 못할 것이어늘 이제 저희들 심중에 시방세계를 일가로 보는 너른 생각을 얻게 되었으니 그 사상 발전에 어찌 큰 영광이 아니오며, 또 저희들이 희생한 공덕으로 만약 시방세계 중생이 영원한 행복을 받게 된다면 저희들에 있어서는 얼마나 큰 사업이 되겠습니까? 저희들이 비록 영혼세계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금세에서 하고 온 일을 기억한다면 항상 장쾌한 맘이 없지 않으리라고 추측됩니다. 그리하여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기쁘고 기운이 활발하여 자연 중 희색이 외면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단장은 이 말을 듣고 찬탄하여 마지 아니하였다.
밤은 점점 깊어 갔다. 정각 8시가 되자 단장은 단원들에게 명하였다. 각자 자기 방위에 앉게 한 뒤 청수 한 그릇을 상 중앙에 놓게 하였다. 이어서 회중시계와 단도를 각자의 앞에 내놓으라고 하였다.
단장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가면서 다짐을 받았다.
“사무여한(死無餘限 )의 결의가 되었느냐?”
“예”
이윽고 중앙 단원 송도군이 백지를 한 장 들고 와서 백인(白印)을 받기 시작하였다.
“서로 섞갈리지 않도록 똑똑히 찍어.” 단장이 주의를 내렸다.
아홉 사람이 찍은 사무여한의 최후 증서는 맨 끝으로 단장의 손으로 넘어갔다.
단장은 한동안 그 증서를 살펴보더니
“참 잘 됐다. 혈인이 나왔다.” 기뻐한 얼굴로 일동을 칭찬하였다.
“이것은 그대들의 일심에서 나타난 증거야” 하고 곧 그 증서를 소지하여 하늘에 고하였다.
“음부공사는 이로 판결이 났다. 우리의 일은 이제 성공이다.”
이재풍이 물었다.
“목을 찔러 죽으려면 여기서 할 겁니까? 각자 기도처에서 할 겁니까?”
“이제 일이 판결났는디 뭐하러 죽어.” 유성국이 핀잔주듯 받았다.
단장은 빙긋이 웃을 뿐 다른 말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단장이 엄숙한 어조로 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느냐?”
단원들을 대표하여 중앙 단원 송도군이 말하였다.
“저희들은 이대로 기쁘게 가오나 남으신 사부님께서 혹 저희들의 이 일로 하여 추호라도 괴로우신 일이 없으시기를 비나이다.”
마침내 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바로 행장을 차리어 기도 장소로 가라.”
아홉 단원은 일제히 회중시계와 단도와 기타 일체 도구를 휴대하고 각기 방위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조합실 밖으로 나와 단장은 한참 동안 그들의 가는 뒷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러더니 돌연히 큰소리로 외쳤다.
“돌아오너라. 내가 그대들에게 한 말 더 부탁할 바 있다. 속히 돌아오라.”
단원들이 이상히 여기면서 다시 돌아오니 단장이 말하였다.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신명이 감응하였고, 음부공사가 이미 판결이 났으니 금일에 그대들의 생명을 기어이 희생하지 아니하여도 우리의 성공은 오늘로부터 비롯하였다.” 하고 이어서 말하였다.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세계에 바친 몸이라 앞으로 장차 영원히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할지라도 오직 이 때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고 또는 가정 애착과 오욕의 환경을 당할 때에는 오직 금일에 죽은 셈만 잡는다면 다시는 거기에 끌리지 아니할지니 그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전일하여 길이 중생제도에 노력하라.”
이 말을 듣고 단원들은 여러 가지로 이해를 하였으나 처음에는 흥분된 정신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11시를 지낸 뒤, 단장이 다시 단원들에게 일제히 중앙봉에서 기도를 마치고 조합실로 돌아오자 단장은 각 단원에게 새 이름을 주면서 말하였다.
“그대들의 전날 이름은 곧 세속의 이름이요, 개인의 사명(私名)이었던 바,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미 죽어 매장되었으므로 이제 세계 공명(公名)인 새 이름을 주는 바이니, 삼가이 받들어 가져서 많은 창생을 제도하라.”
백지혈인의 이적이 나타나고도 기도는 계속되었다. 기도는 영산에서 200일째 되는 날에 해재를 하고 대종사 변산으로 입산하여 송규, 오창건과 함께 월명암 옆 산봉우리에서 영광쪽을 응기하여 완전한 해재식을 함으로써 법인기도는 끝을 맺었다.
관련 법문
【원불교 교사 제1편 개벽의 여명 제4장 회상 건설의 정초 5. 백지혈인의 법인 성사】원기 4년(1919·己未) 7월 16일에, 대종사, 단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지금까지 기도해 온 정성은 심히 장한 바 있으나, 나의 증험하는 바로는 아직도 천의(天意)를 움직이는 데는 그 거리가 먼 듯하니, 이는 그대들의 마음 가운데 아직도 어떠한 사념(私念)이 남아 있는 연고라, 그대들이 사실로 인류 세계를 위한다고 할진대, 그대들의 몸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만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 없이 그 일을 실행하겠는가] 하시니, 단원들이 일제히 [그러하겠읍니다]고 대답하였다.
대종사, 더욱 엄숙하신 어조로 [옛 말에 살신성인이란 말도 있고, 또는 그를 실행하여 이적을 나툰 사람도 있었으니, 그대들이 만일 남음 없는 마음으로 대중을 위한다면 천지신명이 어찌 그 정성에 감동치 아니하리요. 멀지 않은 장래에 대도 정법이 다시 세상에 출현되고 혼란한 인심이 점차 정돈되어 창생의 행복이 한없을지니, 그리 된다면, 그대들은 곧 세상의 구주요, 그 음덕은 만세를 통하여 멸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런즉 그대들은 각자의 실정으로 대답해 보라] 하시니, 9인은 잠간 비장한 태도를 보이다가 곧 일제히 희생하기로 고백하였다. 대종사, 크게 칭찬하시며, 이에 10일간 치재를 더하게 하시어, 다음 기도일(7월26일)을 최후 희생일로 정하고, 그 날 기도 장소에 가서 일제히 자결하기로 약속하였다.
7월 26일(음)에, 9인은 모두 만면(滿面)한 희색으로 시간 전에 일제히 도실에 모이는지라, 대종사, 찬탄함을 마지 아니하시었다. 밤 8시가 되매, 대종사, 청수를 도실 중앙에 진설케 하시고, 각자 가지고 온 단도를 청수상 위에 나열케 하신 후, 일제히 [사무여한]이라는 최후 증서를 써서 각각 백지장(白指章)을 찍어 상(床)위에 올리고, 결사(決死)의 뜻으로 엎드려 심고(伏地心告)하게 하시었다. 대종사, 증서를 살펴 보시니, 백지장들이 곧 혈인(血印)으로 변하였는지라, 이를 들어 단원들에게 보이시며 [이것은 그대들의 일심에서 나타난 증거라] 하시고, 곧 불살라 하늘에 고(燒火告天)하신 후 [바로 모든 행장을 차리어 기도 장소로 가라] 하시었다.
대종사, 한참 후에 돌연히 큰 소리로 [내가 한 말 더 부탁할 바가 있으니 속히 도실로 돌아오라]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신명이 이미 감응하였고 음부공사가 이제 판결이 났으니, 우리의 성공은 이로 부터 비롯하였다. 이제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 세계에 바친 몸이니, 앞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고, 또는 가정 애착과 오욕의 경계를 당할 때에도 오직 오늘 일만 생각한다면 거기에 끌리지 아니할 것인즉, 그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 하시었다. 9인은 대종사의 말씀을 듣고 여러 가지 이해는 얻었으나, 흥분된 정신이 쉽게 진정되지 아니하였다.
11시가 지난 뒤, 대종사, 다시 일제히 중앙봉에 올라가 기도를 마치고 오라 하신 후, 돌아 온 단원들에게 법호(法號)와 법명(法名)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전 날 이름은 곧 세속의 이름이요 개인의 사사 이름이었던 바,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미 죽었고, 이제 세계 공명(世界公名)인 새 이름을 주어 다시 살리는 바이니, 삼가 받들어 가져서 많은 창생을 제도하라] 하시니, 이것이 거룩한 백지혈인(白指血印)의 법인 성사(法認聖事)였다. 9인의 법호 법명은 일산 이재철(一山李載喆)·이산 이순순(二山李旬旬)·삼산 김기천(三山金幾千)·사산 오창건(四山吳昌建)·오산 박세철(五山朴世喆)·육산 박동국(六山朴東局)·칠산 유건(七山劉巾)·팔산 김광선(八山 金光旋)·정산 송규(鼎山宋奎)였다.
그 후로도 단원의 기도는 여전히 계속하여 모든 절차에 조금도 해이함이 없더니, 그 해 10월, 대종사의 명에 의하여 드디어 해재(解齋)하였다. 이 9인 기도와 법인 성사는 곧 무아 봉공의 정신적 기초를 확립하고, 신성·단결·공심을 더욱 굳게 한 새 회상 건설의 일대 정신 작업이었다.
【대종경 선외록 9. 영보도국장 11절】대종사 말씀하시었다. "무슨 일이든지 일심 적공으로 마음만 단심이 되면 조화가 생기는 것이다. 민충신은 충의가 단심이 되매 피가 어려 죽순으로 화하였고, 이차돈은 도심이 단심이 되매 목에 피가 흰 젖으로 화하였으며, 우리 九인은 신성이 단심이 되매 맨손가락으로 혈인을 낸 것이다. 이런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혹 믿지 못하고 부인도 하나, 저 물을 보라. 물같이 부드러운 것이 없지마는 추위가 극하매 은산 철벽같이 부술 수 없는 단단한 물건이 되지 않는가. 과연 마음만 단심이 되면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정산종사법어 제2부 법어 제1 기연편 3장】원기 4년 7월 26일, 최후의 법인 기도 때에 대종사께서 구인에게 마지막 남길 말을 물으시니, 정산 종사 사뢰기를 [저희들은 이대로 기쁘게 가오나 남으신 대종사께서 혹 저희들의 이 일로 하여 추호라도 괴로우실 일이 없으시기를 비나이다] 하시니라.
【정산종사법어 제2부 법어 제5 원리편 30장】말씀하시기를 [정당한 일에 지극한 정성을 들이면 그 정성의 정도와 일의 성질에 따라서 조만은 있을지언정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으며, 그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적으로 그 일이 잘 진행되어 점차로 목적을 달성하는 수도 있고 또는 불가사의한 기운이 응하여 일시에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수도 있나니라. 구인의 혈인이 날 때 우리 회상은 법계의 인증을 받았나니, 현실의 큰 일들은 다 음부의 결정이 먼저 나야 하나니라.]
【한울안 한이치에 제1편 법문과 일화 6. 돌아오는 세상 57절】"9인 선진의 혈인이 날 때 우리 회상의 싹이 텄고 지금은 그 싹이 지상으로 나와서 태양 빛을 받고 있는 격이다."
용어 정의
백지혈인(白指血印) 1919년(원기 4) 8월 21일, 혈인기도 때에 구인제자들이 사무여한이라 쓴 흰 종이 위에 인주(印朱)를 묻히지 않은 맨손가락으로 찍은 것이 붉은 피빛으로 선명하게 나타난 이적(異蹟). 소태산 대종사는 이 백지혈인을 구인제자의 정성이 지극하여 천지신명이 감응하였고, 새 회상 창립을 위한 음부공사가 판결이 났다고 하였다.
이적(異蹟) 기이한 행적, 기행 이적의 준 말. 부처님이나 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 인간의 힘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을 부처님이나 하나님의 힘을 입은 특수한 사람이 행하는 일. 신통묘술. 이인(異人)이 행하는 호풍환우나 이산도수 같은 일.
감응(感應) 어떤 느낌을 받아 반응을 일으키거나, 마음이 따라 움직임.
음부(陰府) 눈으로 볼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진리세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 현실세계에 대해서 무형의 진리세계를 말한다.
음부공사(陰府公事) 진리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 현실세계에 나타날 중요한 일(큰 성현의 출세라든가. 그 성현이 출세하여 주재(主宰)하게 될 큰 일)은 미리 음부공사로 결정된 후에야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천신만고(千辛萬苦) 천 가지 어려움과 만 가지 고통.
함지사지(陷地死地) 함지는 지옥, 사지는 죽을 곳이라는 뜻. 아주 위험한 곳에 빠져 들어간다는 말. 도저히 헤어나기 어려운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곳을 말한다. 천신만고(千辛萬苦)와 같은 뜻.
애착(愛着) 사랑·사랑하는 사람·사랑하는 물건에 대한 지나친 집착. 애는 은애(恩愛)·친애, 착은 집착·염착(染着)의 뜻. 매우 끊기 어려운 애욕의 번뇌.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끊고 단념하지 못하는 것. 자기의 소견이나 소유물을 지나치게 아끼고 집착하는 것.
오욕(五慾) (1)중생심을 가진 인간이 갖고 있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욕망. 식욕(食慾)·색욕(色慾)·재물욕·명예욕·수면욕을 말한다. 대개의 인간들은 이 다섯 가지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바쁘게 살아간다. (2)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욕망의 근원이 되는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다섯 가지 경계. 이를 오진(五塵)이라고도 한다.
순일(純一) 순일무잡(純一無雜)의 준 말.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전일(專一)함. 잡된 것이 없는 것을 순(純)이라 하고, 둘이 아닌 것을 일(一)이라 한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고 순수함. 스승의 지도를 받을 때, 또는 도가에서 공부와 사업을 할 때 사심(私心)없이 오롯하게 행하는 것을 순일무사(純一無私)한 신심, 공심이라고 한다.
법호(法號) 원불교에서 재가‧출가 간에 공부와 사업에 큰 실적을 쌓은 숙덕 교도에게 증여하는 별호. 1919년(원기4) 8월 21일 법인기도로 법계 인증을 받은 후 소태산 대종사가 9인 제자에게 법명과 법호를 내린 것이 효시이다. 남자에게는 양계에 올연히 솟은 ‘산(山)’을, 여자에게는 바다 위에 완만하게 언덕을 이룬 섬(普陀海中山)을 뜻하는 ‘타원(陀圓)’이란 법호를 주게 된다. ‘타원’ 법호는 소태산 재세 시 내정하였다가, 정산종사가 1945년(원기30) 2월에 여자수위단 조직 시 공식발표하였다. 소태산은 자신의 법호를 양 성향의 소태산(少太山)과 음 성향의 해중산(海中山)이라 하였다.
사무여한(死無餘恨) 정당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는 죽어도 아무런 한이 없다는 말. 교단 초창기 구인선진들이 보여준 마음으로서, 인류와 세계를 구제하기 위한 일이라면 지금 당장 생명을 희생하더라도 아무런 아쉬움이나 미련 없이 즐겁게 죽을 수 있다는 희생 봉공의 정신이다. 이 말의 유래는 1919년(원기4)에 구인제자가 법인기도를 올릴 때, 8월 21일 저녁에 ‘사무여한’이라는 최후증서를 쓰고 세계의 구원과 교단의 창립을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리라 결심한데서부터 시작된다. 구인제자의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백지혈인의 이적이 나타났고, 원불교는 허공 법계에 인증을 받게 되었다. 이 사무여한의 정신은 원불교의 창립정신으로 확립되었고, 다시 전무출신의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다.
위 내용은 【서문성(1996), 마음을 보는 지혜-대종경 상황법문, 59~66】, 【류성태(2008), 대종경 풀이 上, 75~78】, 【원불교 용어사전】, 【원불교 경전법문집】, 【원불교 대사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