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천 올레 7코스에서
글/김덕길
‘오늘은 어디서 자지?’
밤마다 열대야에 시달리는 날이 벌써 40일이 넘었다.
밤마다 나는 불나비처럼 불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찾아 떠난다.
가게의 텐트에서 자기엔 바람이 통하지 않아 한증막이다.
어제는 서귀포 현충원 묘지 주차장에서 잤다. 세상 안의 사람대신 세상 밖의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세상 안의 사람이 잔다는 것이 어쩐지 두려웠다. 세상은 넓어서 세상의 안과 밖을 나누지 않아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든 무덤은 존재한다. 왜 세상 안 사람이 세상 밖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나는 모른다. 샤워실을 찾았으나 없다. 화장실 불이 켜져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수도꼭지가 있고 호스가 연결되어있다.
문제는 모기였다. 산중 모기의 총 집결지가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가로등조차 없는 까만 어둠의 묘지, 비어있는 주차장, 나는 호스를 꺼내 물을 틀었다. 그리고 밖에서 샤워를 했다. 물을 뿌리자 모기가 몰리지 않았다. 충혼 묘지의 나부끼는 깃발이 꼭 세상 밖의 사람들이 걷는 발자국 소리 같았다.
나는 겨우 잠들었고 중간에 깨고 다시 잠들었다. 잠이 든 지금 나는 세상 밖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한라산 둘레길을 걸었다.
아름다움의 정의는 무엇일까? 이 역시 자기만족일까? 행복은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름다움 또한 자기만족이라면 세상은 이름 붙이기 나름이 아닐까?
나는 한라산 둘레에서 아름다움의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가도 가도 반복되는 숲, 그리고 돌, 그리고 길이다. 길은 길을 물어 길을 내지만 하늘이 막힌 길은 답답하다. 숲이 깊어 하늘을 모르고 물은 없었다. 둘레길 에서 만나는 계곡은 많지만 제주에서 계곡은 마른 계곡이다. 두 시간을 걷고 한 시간을 뛰어 내려왔다. 숲은 육지의 숲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가끔씩 솔가루가 밟히고 가끔씩 터진 하늘의 빛이 반기는 곳, 그리고 만나는 계곡의 물소리, 나는 누구인가?
‘오늘은 또, 어디서 자지?’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어느 깊은 산에 올라 산 정상에 누워 별을 보고 자란다.
별을 보고 자라는 그 친구의 말을 나는 따르지 못했다. 밤 열시에 일이 끝나서 산 정상까지 오르기엔 무리였다.
나는 지도를 보았다. 시건도, 바다에 썰물이 되면 바다를 밟고 섬으로 갈 수 있는데 그 섬을 ‘시건도’라고 했고 ‘썩은 섬’이라고도 했다. 그곳은 강정마을 근처에 있었다.
서귀포 법환 포구 넘어 강정마을 가는 길, 상상 없이 갔으니 상상하지 않았다. 그곳은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뒤편의 바다였다. 바다에 도착하고서 나는 깜짝 놀랐다.
상상하지 않았던 밤바다의 비경이 감탄스러웠기 때문이다.
멀리 바다 가운데 범섬이 보였고 섬에서 바닷가까지 물비늘이 달빛에 흔들렸다. 물결은 수만 갈래로 산란했고 산란되는 곳마다 달빛이 튀겼다. 은결이다. 햇빛에 부서지는 은결은 뚜렷하고 섬세하다면 달빛에 부서지는 은결은 고혹스럽고 매혹스럽다. 그리고 자작자작 밀려오는 파도, 나는 그 풍경에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아무리 카메라를 들이 밀어도 찍혀지지 않는 풍경이다. 가슴에 담아야 하고 눈에 담아야 하고 글에 담아서 읽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내 글의 짧은 언어의 조탁솜씨에 부끄럽기만 하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바라보는 풍경이기에 더 경이롭다.
나는 바닷가를 걸었다. 올레길 7코스다. 한참 걸으니 해녀의 집이 보인다. 조금 더 가니 바닷가에 유원지가 있다. 그리고 바닷가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있는 할머니 네 분이 계신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다. 열대야다.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주무시겠지, 바다처럼 엎드려 멍석처럼 누울 것이다.
바다에 바람이 이렇게 없는 때를 본 적이 없는데 이곳은 바람이 없다. 방파제옆 포장길이 길게 바다 속으로 드리워져있다. 나는 그 길을 걸었다. 시멘트 포장 길 즉, 신작로다. 바다로 가는 신작로다. 신작로위로 밤의 밀물이 넘실거린다. 파도가 친다. 어둠 속에서 달빛을 의지해 밀려오고 밀려가는 물결, 가만 보니 바닷물이 서 있는 것 같다. 서있는 바다가 무너지지 않고 버틴다. 버티고 버티다가 끝내 평행을 이루려 다시 바다가 밀려온다. 바다는 끊임없이 수평을 이루고자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인가? 그래서 수평선은 수평한가?
나는 감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경이로운 풍경에 매료되어 나도 경이로운 무엇이 되고 싶었다.
밤이 깊어 결국 바닷길 옆에 텐트를 쳤는데 바람이 없어 찜통이다. 자다 깨다 다시 자기를 반복하는 동안 밤은 깊었고 별을 밝았고 달은 부옇다가 다시 새벽은 오고야 말았다.
나는 7코스를 걸었다. 터벅터벅 걸었다. 새벽 6시 30분의 새벽길은 호젓하다.
간밤 찜통더위에 힘들었을 몸을 아낌없이 바다에 뉘인다.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눕는다.
파도가 몸 위에서 물결친다. 일어나 다시 길을 걷는다. 걷다가 물이 짜서 다시 민물에 몸을뉘인다. 강정천 앞바다의 파도는 높고 깊었다.
파도는 몽돌을 밀고 올라왔다가 밀려가는 것이라서 밀려가는 자리에 몽돌이 아우성쳤다. 파도의 철썩임과 몽돌의 아우성이 공존하는 바다. 나는 오래오래 그곳에서 파도를 느낀다. 중국 관광객도 신기한지 몰려와 떠날 줄 모른다.
강정천으로 향하는 곳에 민물 개울이 있다. 올레 나룻길이 있다. 물이 차다. 바닷물보다 두 배는 더 차가운 한라산의 민물이다. 영혼마저 씻기는 느낌이다.
태풍 볼라덴 때문에 쓰러진 거대한 나무에 돌탑이 놓여있다. 소원낭이란다. 바닷가 근처에 바닷가 우체국이 있다. 엽서를 쓰면 쓰인 주소로 보내준단다. 무료다. 그러나 엽서는 없었다.
드디어 강정천이다. 강전천은 한라산에서 발원한 물로 식수로도 쓰인단다. 식수로 쓰고 남은 물이 강정천으로 흘러 이곳에서 바다와 만나는 것이다. 유속이 얼마나 빠른지 강정천 바닥 암반에서 윤기가 흐른다. 무릉계곡의 축소판 같다.
강정천 물은 약했고 개울마다 암반에 골이 있어 은어가 살고 있다. 물은 백옥 같다.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어서 나는 그곳에 몸을 뉘였다. 바다로 흐르는 물이라 식수가 아니니 괜찮다.
바다의 파도가 밀려와 강정천을 파고들면 일순 민물은 움찔하며 놀란다.
바다의 파도도 아름답고 강정천도 아름다워서 나는 이곳이 혹, 중국 그 유명한 구체구가 이렇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아픈 이야기다.
바로 강정천 건너에 해군 기지가 들어선단다.
철조망을 쳐 놓고 방파제 공사가 한창이다. 방화벽에 ‘강정에 평화 구렁비야 사랑해’라고 쓰여 있다. 깃발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라는 구호가 빗발친다.
이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미군의 군대가 집결했을 때, 이곳은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한국, 일본, 중국, 북한, 미국중 전쟁 발발시 핵심 타격목표 일 순위가 원점 타격지 바로 이곳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과연 제주는 살아남을까? 현대식 무기의 위력으로 볼 때 제주는 다시 초토화가 될 것이다.
제주 4.3 사건 때 정부의 공권력과 서북청년단의 잔인한 살육으로 인해 무려 제주 인구의 10퍼센트인 3만 여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해안가로부터 5킬로미터 밖으로 이동하는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참히 살해했고 불태웠고 여성들의 성을 유린했다.
아직까지도 4.3 사건은 해결이 되지 않았다.
해군 기지가 완성되면 언제 다시 이 같은 불행이 제주에 엄습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4대강 사업이 결국은 대운하 건설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이 아름다운 환경을 파괴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이렇게 수많은 곳을 파괴한단 말인가?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는다고 하지만, 속이지 않는 세상은 정말 요원한 것일까?
강정 마을 앞 파헤쳐진 공사현장을 보면서 다시 가슴이 먹먹하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침묵했다.
무슨 말로 무엇을 위로해야 무엇이 위로가 되는지 나는 나의 정의가 혼란스러워 아무런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첫댓글 글따라 오다보니 제가 제주에 가 있는 기분이네요 눈으로 담는 밤바다 보고 싶네요 강정마을의 슬픈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구...
외로움이 밀려 오는건 왜일까요?? 작가님 외로움을 즐기시는건 아니죠?? 글을 통해서 제주 여행 잘 하고있어요 감사해요 건강하세요
그냥 대충살아요
그런데
그렇게 산다고 쓰면
따뜻해지나봐요
그래서 써요
평화는 평화로울때 지키려고 저렇게 기지도 만들고 하는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잔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