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謁禮
요즘 문중에서는 설차사라하여 무축단배인 차례(茶禮) + 선조의 충효유덕 정신을 다짐하는 정알례(正謁禮) + 위패를 영원히 모시는 불천위제(不遷位祭) + 유사즉고(有事則告)인 고유례(告由禮)의 간소한 예법을 조합하여 정알례로 신년하례식을 하고 있습니다.
2월 19일 정알례에 앞서 부종회장과 전례위원간에 상호 상읍을 한 뒤 오전 11시 진행된 정알례 에서 고양공종회장이 향을 올렸고 부제학공헌관(재균) 영암공 헌관(인백) 도사공 헌관(등열), 축 상걸, 집례 종수, 집사 성영 호섭 인세님이 소임을 맡아 향을 올리고 간단한 종회장단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1. 정알례(正謁禮)
설차사(茶祠)는 후손들이 설날(음 1월 1일) 조상님께 세배드리는 것이며
정알례(正謁禮)는 음력 정월에 조상님의 유학(儒學)을 흠모(欽慕)하여 조상님을 유학자 성현(聖賢)에게 세배를 올리는 예(禮)입니다. 그래서 정알례축문은 후학 ○○○ 감소고우입니다.(조상이지만 충효유학의 후학이기에 향교나 서원 학생 명부처럼 성+이름을 축문에 씀)
① 설차사(茶祠,다례)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 : 설차사 축문은 후손○○감소고우로 쓰는데 설날에 떡국을 차린 세배(歲拜) 개념으로 단배(單拜)를 할 수 없는 故人이기에 再拜를 하고 술잔은 단배(單杯)로 올리는데 문제는 설날 종원들이 모일수 없다는 것.
② 정알례(正謁禮)로 올리는 이유 : 정알례(正謁禮)는 조상의 학자로 보기에 종원중으로 세배를 올리면 되기에 명문가 종중에서는 신년하례식 겸해서 정알례를 올리기에 3헌관이 아니고 헌관이 조상에게 술 한잔(單杯)올리고 재배(再拜)하는 의례입니다. 그래서 이번 정알례에 떡국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 인조(仁祖) 시대 대승공 20세 사교당 휘 준(浚, 영의정 약재공 조부)께서 분비재(憤悱齋)에서 집안 後生을 가르쳤고 돌아가시자 5년후에 학생(弟子) 대표로 현감(휘 彬, 대승공 22세)께서 행장을 지으시고 사우(祠宇)에서 정알례를 모실 때 축문에 “후학 빈 감소고우”입니다. 만약 설차사(茶祠)이었다면 “4종손 빈 감소고우”일 것입니다.(빈 선조의 재종조부임) : 설날에는 자신의 父 祖父를 모셔야 하기에 스승인 사교당에게는 설차사를 올리지 못하고 정알례를 모신 사례입니다.
용인현령 휘 柳彬선조는 광해 신유(1621)년 생이고 영의정 약재공 휘 尙運 선조는 인조병자(1636)년 생으로 휘 빈 선조가 휘 상운 선조의 8촌 형으로 堂內집안으로 喪服을 함께 상례를 하지만 축문에 “後學 彬 敢昭告于”인데 요즘은 제례는 유림예법으로 올리면서 “후손 ○○ 감소고우”를 고집하는 잘 못된 경향이 있습니다..
③ 서울 금천구 독산로(시흥4동)에 고양공종중 모성재(慕省齋)는 문중 부조묘(不祧廟, 큰 공훈이 있는 선조에 대한 특전)로 불천위(不遷位, 공훈을 세워 영구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종중에서 聖賢 조상의 신위位牌)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모시는 齋閣입니다.
高陽公 別廟 모성재(慕省齋)는 문화류문 문중의 불천위중에 가장 먼저 4성현의 충효 유덕을 유지발전하기 위한 충효의 전당(殿堂)인 고양공종중 재각으로 문중 불천위로 사당이 없기에 다른문중 불천위 제사와 향교 석전대제(釋奠大祭) 제사 진행 절차를 절충하여 출주고사(出主告辭)와 봉신주우묘(奉神主于廟)를 생략하니 이런 의례에 대하여 시정을 요구하시려면 문헌근거로 잘 못된 진행 순서를 지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 慕省齋 四聖賢 儒德과 奉安文
① 고양공 충효 유덕(高陽郡守諱順行 行狀)
세종2년(1456) 전제별감(田制別監)을 초임으로, 신천군수 1476(성종7)년 고양군수를 역임하시고 1505(연산11,을축)년 졸하시면서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추증되시다.
하정공의 증손으로 배 증정부인 순흥안씨의 부(父)는 관찰사 숭효(崇孝, 참판, 대사헌, 좌익원종공신)이며 조(祖)는 판중추부사 정숙공 순(靖肅公 純)이며 증조는 흥녕부원군(興寜府院君) 양도공(良度公) 경공(景恭, 조선 개국공신), 외조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이숙묘(李叔畝, 이색 손자)이시며 고양공 장인이신 좌익원종공신께서 딸 순흥안씨에게 상속으로 현 서울 금천구 시흥동 묘역을 증여하시다.
기위인야효제야자시민여자자애기위인지무본립이도생(其爲人也孝弟也者視民如子慈愛其爲仁之務本立而道生)
사람됨이 부모를 모시고 집안 어른을 잘 받들면서 형제자매를 서로 위하고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는 자애로움으로 근본(효와 공경)을 실천하면 근본이 서고 그 근본의 길이 생기다.
② 부제학공 충효 유덕 (中宗大王 賜祭副提學諱希渚文)
오부수신옥당출납은대후설지양(烏府垂紳玉堂出納銀臺喉舌之良)
오부에서 시정(時政, 정책)을 바로 잡고 당상관으로 활약했도다. 은대(銀臺, 승정원 승지)에 나고 들면서 직간(直諫, 바른 말로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말)이 바르도다.
③ 영암공 충효 유덕 (靈巖公諱希汀墓碣銘)
이렴근칭치읍유정성민사지~~~군효부모우형제돈친척행역유족기(以廉謹稱治邑有政聲民思之~~~君孝父母友兄弟敦親戚行亦有足記)
청렴하고 독근함으로써 칭예가 자자하였고 고을을 다스린데 정치의 성적이 대단함으로 백성들이 사모하여 마지 않았다.~~~ 공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친척에게도 또한 돈독히하여 족히 기록할 수 있으나 ~~~
④ 도사공 충효 유덕(都事公諱用儉墓碣文)
중종오년경오이월 이십삼일부친신원소상정~~공지제왈백부재공지사즉저소형제동석상담중기강직지성여차이구전가훈칙충효도근본효후학양성지성진력(中宗五年庚午二月 二十三日父親伸冤疏上呈~~公之弟曰栢府在公之舍卽邸所兄弟同席相談中其剛直之性如此以口傳家訓則忠孝道根本孝後學養成至誠盡力)
1510(중종5)년 경오 2월 23일 아버지의 억울함을 신원소로 임금에 올리었다.~~공은 백부재직중인 동생의 자택에서 동석상담중미화의 강직성 교훈을 가훈 하였다. 충효도를 근본으로 생각하고 후학양성에 지성진력하시다.
※ 본인의 선조(祖上)의 훌륭한 점을 후손들이 광고를 해야합니다. 할아버지는 유학자가 아니다, 묘제(廟祭)와 (祠堂, 齋閣, 齋室, 殿, 祠, 廟, 堂 모두 같은 개념)과 위패(位牌)를 무시하고 묘제(墓祭) 단제(檀祭)를 주장하면 안되는 이유 : 사당이나 재각이 없을 때 묘제나 단제를 모시고 사당이니 재각이 있을 경우에 묘나 단은 성묘 개념으로 묘를 살피고 재각에서 제사를 지내기에 축문에 첨소봉영이라 씁니다.
⑤ 모성재(慕省齋) 奉安文
한양 관악산 시흥곡 영악육기 청락종정(漢陽 冠岳山 始興谷 靈嶽毓氣 淸洛鍾精)
고양공 부제학공 영암공삼부자여 도사공 장손자(高陽公 副提學公 靈巖公三父子與 都事公 長孫子)
사성현내정 질수재명 친효진성 이양성정(四聖賢迺挺 質粹才明 親孝盡誠 頤養性情)
강토이윤 실천궁행 형용심선 추허불경(講討彝倫 實踐躬行 形容甚善 推許不輕)
후학지망 향국지명 시흥지양 사우신성(後學之望 鄉國之名 始興之陽 祠宇新成)
손보준분 조두천형 혜아후손 계발농맹(孫甫駿奔 俎豆薦馨 惠我後孫 啓發聾盲)
금이길진 근구재각 배설여의 용표모성재(今以吉辰 謹具齋閣 排設如儀 用表慕省齋)
관악산 시흥골 신령스런 산이 기운을 기르고, 맑은 낙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양공 부제학공 영암공 3부자와 도사공 장손자인 4분성현께서는 뛰어나게, 자질이 순수하고 재지(才智)가 뛰어 나셨고 부모의 효행에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성품과 심성을 수양하기며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강론하시고,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용모는 무척 선했고, 칭찬하고 인정하는 것을 가볍게 하지 않으셨기에 후학들의 명망을 받았고, 고을과 나라에서 명성이 있어 시흥의 양지(陽地)바른 곳에, 사당을 새로이 건립했습니다.
많은 후손들이 신속히 달려와, 향기로운 제물로 제사를 올리니 우리 후손에게 은혜가 되어, 귀먹고 눈먼 것을 깨우쳐주고 열어 주십시오.
오늘 길한 날에 삼가 재각을 갖추고 예에 맞게 설치하여 모성재라 하였습니다.
- 慕省齋 四聖賢 奉安文, 後學 在均 撰 -
3. 정알례 홀기
正謁笏記(정알홀기)
헌관 : 각 소문중 1명씩(4명), 집사
준비 사항 : 라이터, 향, 퇴주그릇, 모사그릇(향), 생수, 물티슈, 축문 등(적 없음) 떡국4그릇준비.
절하는 방법 : 남자는 오른손이 위, 왼손을 아래로 잡고 절하기(두 손을 벌리고 절하는 일이 없도록)
1. 제자손 서립 : 참석 자손들은 정중한 자세로 묘(廟)전에 바른 자세로 서시오.
2. 행 참신례
축관은 독을 열고 제자리로 가시오..
헌관이하 모두 참신(재배)하시오.
3. 행 분향례
우헌관은 손을 씻고, 신위 앞에 꿇어앉아 삼상향 후 재배 하시오.
4. 행 강신례
우헌관은 술잔을 들고, 집사가 술을 따르면 헌관은 술을 받아 → 묘사 앞에 세 번에 다 지우고→ 좌집사가 빈잔을 받아 올림고 헌관은 재배하고 물러나시오.
5. 행 헌례
네분 헌관은 신위 앞에 꿇어 앉으시오.
집사는 (고양공, 부제학공, 영암공, 도사공) 술잔에 술을 부으고, 헌관은 술을 받아 → 묘사 앞에 조금씩 세 번 지우고 → 좌집사가 받아 올리시오
집사는 집사는 떡국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고,→ 젖가락은 모두 합하여 3번 쿵쿵 소리내고 바르게 제기에 올리시오.
6. 독 축
헌관이하 제자손은 꿇어 앉으시오
축관은 헌관 좌측에서 꿇어 앉아 축을 읽으시오
헌관이하 제자손 일어나고 헌관은 재배하고 물러나시오
7. 유식
집사는 떡국을 내리고 숭늉을 올리시오
참사자는 뒤로 돌아 서시오(1분후 바로)
축은 (초헌관) 동쪽으로 향하여 이성을 아뢰시오.
집사는 수저와 젓가락을 내리시오.
8. 사신례
헌관이하 사신(재베)하시오
축관은 축문을 분축하시오
집사는 제상을 치우시오.
9. 폐독
축관은 다시 들어가 독을 덮으시오.
10. 행 음복례
축은 초헌관에서 술과 고기를 드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