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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선진 편 마지막 章인 25章 연재를 앞두고 제가 중부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나서 몸이 불편한 관계로 연재가 중단 되었었습니다. (다행히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논어 선진 편 25章은 논어 20편 중 에서 가장 긴 문장으로서, A4용지 10쪽 분량입니다. 하여서 3회 정도로 나눠서 소개할까도 생각했으나 연속성이 떨어지면 이해하는데 다소 혼란이 있을 것 같아서 지루하지만 全 章을 다 연재하였습니다.
지루하시더라도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소망하여 봅니다. -碧 松(智 㒤)-
비를 머금은 꽃잎이 아름답습니다. (2016. 04. 03 비오는 날 아침에) 1),子路(자로)·曾晳(증석)·冉有(염유)·公西華侍坐(공서화시좌)러니, 자로와 증석과 염유와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았었는데, 子曰(자왈).“以吾一日長乎爾(이오일일장호이)나 毋吾以也(무오이야)하라. 居則曰‘不吾知也(거즉왈 불오지야)’라 하나니 如或知爾(여혹지이)면 則何以哉(즉하이재)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나이가 다소 너희들보다 많다 하여 나 때문에 어려워하지 말라.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나를 알아주지 않는다.’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찌 하겠느냐?”
2), 子路率爾而對曰(자로솔이이대왈)“千乘之國(천승지국)이 攝乎大國之間(섭호대국지간)하여 加之以師旅(가지이사려)요. 因之以饑饉(인지이기근)이어든 由也爲之(유야위지)면 比及三年(비급삼년)하여 可使有勇(가사유용)이요 且知方也(차지방야)”케호 夫子哂之(부자신지)하시다. 子路(자로)가“千乘(천승)의 諸侯國(제후국)이 大國(대국)사이에서 속박을 받아 師旅(사려:침공)가 加(가)해지고 잇달아 기근까지 겹쳐도, 제가 다스린다면 삼년 내에 백성들을 용맹하게 하고, 또 의로운 길로 향하게 할 수 있습니다.”하고 경솔히 대답하니, 夫子(부자: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3),“求(구)야 爾(이)는如何(여하)오?”對曰(대왈)“方六七十(대왈 방육칠십)과 如五六十(여오육십)에 求也爲之(구야위지)면 比及三年(비급삼년)하여 可使足民(가사족민)이어니와 如其禮樂(여기예악)엔 以俟君子(이사군자)”호리이다. (공자께서)“求(구)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하시자, <求(구:염유)>가,“사방 육칠십 리 혹은 오육십 리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린다면 삼년 정도에서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으나 그 禮樂(예악)에 있어서는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4),“赤(적)아 爾(이)는何如(하여)오?”對曰(대왈)“非曰能之(비왈 능지)라 願學焉(원학언)하노이다 宗廟之事(종묘지사)와 如會同 (여회동)에 端章甫(단장보)로 願爲小相焉(원위소상언)하노이다.” (공자께서)“赤(적)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하시자. <赤(적:공서화)이>,“제가 잘할 수 잇다는 말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종묘의 제사나 또는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예복(玄端服:현단복)과 에관(章甫冠:장보관)을 갖추고 의식을 돕는 하찮은 司儀(사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5),“點(점)아 爾(이)는何如(하여)오?”鼓瑟希<稀>(고슬희)러니 鏗(갱)爾舍瑟而作(이사슬이작)하여 對曰(대왈)“異乎三子者之撰(이호삼자자지선)호이다”子曰(자왈)“何傷乎(하상호)리오? 亦各言其志也(역각언기지야)니라” 曰(왈)“莫(暮)春者(모춘자)에 春服 (춘복)이 旣成(기성)이어든 冠者五六人(관자오육인)과 童子六七人 (동자육칠인)으로 浴乎沂(욕호기)하여 風乎舞雩(풍호무우)하여 詠而歸(영이귀)호리이다.”夫子喟然嘆曰(부자위연탄왈)“吾與點也(오여점야)하노라.” (공자께서)“점아,‘너는 어떻게 하겠느냐?”하시자, 그는 비파타기를 잠시 쉬더니 띵하고 비파를 놓고 일어나 대답하였다.“세 사람이 하는 것과는 다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기 자신의 뜻(포부)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시자 點(점:증석)이 대답하였다.“늦봄에 봄옷이 이미 되었거든 갓 쓴 자 대여섯 명과 동자 예닐곱 명으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다가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니, 부자(공자)께서‘아!’하고 감탄하시며“나도 點(점)의 뜻에 동의하노라.”라고 하셨다. (鏗 : 금옥소리 갱, 거문고 타는 소리 갱, 撰 : 지을 찬, 품을 찬, 莫 : 여기서는 저물 모(暮), 雩 : 기우제 무, 喟 : 한숨쉴 위)
曰(왈)“爲國以禮(위국이례)어늘 其言(기언)이 不讓(불양)이 是故 (시고)로 哂之(신지)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나라를 다스림은 禮로써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그래서 웃은 것이다.”
“唯求則非邦也與(유구칙비방야여)잇가?”“安見方六七十(안견방육칠십)과 如五六十而非邦也者(여오육십이비방야자)리오?” <증석이>“求(구)가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하고 묻자. <孔子께서> 대답하셨다.“사방이 육, 칠십 리, 또는 오육십 리 이면서 나라가 아닌 것을 어디에서 보겠느냐?”라고 하셨다.
“唯赤則非邦也與(유적칙비방야여)잇가?”宗廟會同(종묘회동)이 非諸侯而何(비제후이하)오? 赤也爲之小(적야위지소)면 孰能爲之大(숙능위지대)리오? <증석이>“赤(적)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라고 묻자,<공자>께서 대답하셨다.“종묘의 일과 회동하는 일이 제후의 일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赤(적)의 일이 작다면 누구의 일이 큰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다. -논어 선진 25장-
今釋(茶山의 해석)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 네 사람이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다. 공자가 “내가 자네들보다 나이가 좀 많다고 하여 마음속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어려워하지 말고 말하여라. 자네들은 평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몰라준다.’라고 말하는데, 만일에 어떤 사람이 자네들을 알아준다면 자네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자네들의 재주와 배움을 펴겠는가?”라고 하자, 자로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만일에 兵車(병거) 천 대를 가진 국가가 大國(대국)의 사이에서 협박을 받으며 외국 군대의 침략을 받고, 국내에서는 기근에 허덕인다 하더라도, 나 仲由(중유)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한다면 삼 년이 되기 전까지 이 나라의 백성들을 모두 전투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만들고, 또한 大義(대의)의 방향을 알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경솔하게 대답하니, 공자는 이 말을 듣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또 염유에게 “염구야 너는 어떠냐?”라고 물으니, 염유가 “만일에 사방 육칠십 리나, 혹은 그보다 좀 작은 오륙십 리의 나라를 제게 다스리도록 한다면, 삼 년이 되기 전까지 백성들의 생활를 윤택하게 할 수는 있겠으나, 예악 교화 방면에는 재능이 없으므로 才德(재덕)있는 군자가 부임하여 실시하기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가 또 공서화 에게 “공서적, 너는 어떠냐?”라고 묻자, 공서화가 “제가 해낼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는 없고 오직 배우고자 할 뿐입니다. 종묘에서의 典禮 (전례)나 혹은 列國(열국)의 제후들이 회합을 할 때에 저를 써준다면, 저는 예복과 예관을 갖추어 禮儀(예의)를 돕는 하찮은 司儀(사의)나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가 또 증석 에게 “증점아, 너는 어떠냐?”라고 물으니, 증석이 비파를 뜯고 있다가 공자의 말을 듣고는 비파를 잠시 정지하더니, 마지막 딩 하는 소리로 끝을 맺고, 비파를 땅에 놓은 다음 일어서서 “저의 뜻은 저들 세 사람이 말한 것과는 다릅니다.”라고 대답하니, 공자가 “그게 무슨 걱정이냐? 단지 각자의 뜻을 얘기하는 것뿐인데”라고 하자, 증석이 “늦은봄 날씨가 따뜻한 때 봄옷을 차려입고, 대여섯 명의 어른과 예닐곱의 동자를 데리고 沂水(기수)에 가서 목욕하고 다시 기우제를 드리는 제단 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서늘한 바람을 쏘인 다음, 모두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가 이 말을 듣고 ‘아아’하고 찬탄을 하며 “나도 증점의 그런 뜻에 찬동한다.”라고 했다. 자로. 염유. 공서화 세 사람이 모두 나가고 증석이 혼자 뒤에 처졌다. 증석이 공자에게 “저들 세 사람이 한 말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니, 공자가 “그저 각자 자기의 생각을 말한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증석이 “선생님은 어찌해서 중유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셨습니까?”라고 물으니, 공자가 “국가를 다스리려면 마땅히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가 한 말이 조금도 겸양의 뜻이 없어서 웃었느니라.”라고 했다. 공자는 이어 “염구는 겸허하지만 그도 나라를 다스릴 만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어찌 육칠십 리 혹은 오륙십 리의 면적을 나라라고 할 수 없겠느냐?” 그리고“공서화의 말도 더욱 겸허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종묘의 제사와 열국의 회합이 제후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공서화가 만일에 하찮은 재상이라면 그럼 누가 大相(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공자는 자로 등 네 명의 제자의 뜻을 들은 후에, 경솔하게 발언한 자로는 잘못을 고쳐주고 겸손하게 말한 공서화는 격려해주며 뜻이 높은 증석은 칭찬해주고 있다. 이 장은 《논어》에서 제일 긴 章으로 그 대화가 진실 되고 간절하여 공자의 정신을 잘 전한 글이라고 하겠다.
朱註(朱子의 집주) 1, <1)항에서~4)할 까지의 朱註 > 朱子(朱熹) 1)晳은 曾參父니 名은 點이라 晳(석)은 증삼의 아버지이니 이름은 點(점)이다. 言我雖年少長於女(汝)나 然이나 汝勿以我長而難言이라 蓋誘之盡言하여 以觀其志하시니而聖人和氣謙德을 於此에 亦可見矣니라. 言 女平居則言人不知我라 하나니 如或有人知女면 則女將何以爲用也라. (女 : 汝 너 여) 내가 비록 너희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으나 너희들은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말하기를 어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는 말을 다하도록 유도하여서 그 뜻을 관철하려고 하신 것이니, 성인의 온화한 기운과 겸손한 덕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너희들이 장차 어떻게 쓰여 지겠느냐고 말씀한 것이다. 2)率爾는 輕遽之貌라 攝은 管束也라 二千五百人이 爲師요 五百人이 爲旅라 因은 仍也라 穀不熟曰饑요 菜不熟曰饉이라 方은 向也니 謂向義也라 民向義면則能親其上하고 死其長矣라 哂은 微笑也라. 率爾(솔이)는 경솔하고 급한 모양이다. 攝(섭)은 管束(관속:속박)이다. 2천5백 명을 師(사)라 하고, 5백 명을 旅(려)라 한다. 因(인)은 따라서이다. 곡식이 성숙하지 않음(익지 못함)을 일러 饑(기)라 하고, 채소가 성숙하지 못함을 일러 饉(근)이라 한다. 方(방)은 향함이니 의리로 향함을 이fms다. 백성들이 의리로 향하면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이다.(親其上친기상, 死其長사기장 - 맹자양혜왕 하편 12장). 哂(신)은 미소이다. 3) 求爾何如는 孔子問也니 下放此라 方六七十里는 小國也라 如는 猶或也라 五六十里는 則又小矣라 足은 富足也라 俟君子는 言非己所能이라 冉有謙退하고 又以子路見哂이라 故로 其辭益遜하니라. <공자께서>“求(구)야, 求爾何如(구이하여: 구야,너는 어떠한고)는 공자께서 물으신 것이니, 아래도 이와 같다. 方(방) 육칠십 리는 작은 것이다. 如(여)는 或(혹)과 같다. 오륙십 리는 더욱 작은 것이다. 足(족)은 풍족한 것이다. 군자를 기다린다는 것은 자기가 능한 바가 아님을 말한다. 염유는 겸손 하였고, 자로가 비웃음을 당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 말이 더욱 겸손한 것이다. 4) 公西華는 志於禮樂之事하니 嫌以君子自居라 故로 將言己志에而先爲遜辭하여 言未能而願學也라 宗廟之事는 謂祭祀이라 諸侯時見曰會요 衆覜曰同이라 端은 玄端服이오 章甫는 禮冠이라 相은 贊君之禮者라 言小는 亦謙辭라. (覜 : 뵐 조) 공서화는 예와 악의 일에 뜻을 두었는데 군자로 자처함을 혐의하였다. 그러므로 장차 자신의 뜻을 말하려 하면서 먼저 겸손의 말을 하여, 자신이 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다. 종묘의 일은 제사를 이른다. 제후가 때로 (임금을) 알현하는 것을 일러 會(회)라 하고, (제후들이) 무리지어 (임금을) 뵙는 것을 일러 同(동)이라 한다. 端(단)은 옷깃이 검은 색의 옷(玄端服:현담복)이고, 章甫(장보)는 (검은 삼베실의) 예복용 갓이다. 相(상)은 임금의 예식을 돕는 자이다. 小(소)라고 말한 것은 또한 겸손한 말이다.
2, <5)항의 朱註 > 5) 四子侍坐에 以齒爲序면 則點當次對로되 以方鼓瑟이라 故로 孔子先問求赤而後及點也라 希는 間歇也라 作은 起也라 撰은 具也라 莫春은 和照(후)之時요 春服은 單袷(겹)之衣라 浴은 盥濯也니 今上巳祓(불)除 是也라 沂는 水名이니 在魯城南이니 地志以爲有溫泉焉이라하니 理或然也라 風은 乘凉也라 舞雩는 祭天禱雨之處니 有壇墠樹木也라 詠은 歌也라 曾點之學이 蓋有以見夫人欲盡處에 天理流行하여 隨處充滿하여 無少欠闕이라 (歇 : 쉴 헐, 袷 : 겹칠 겹, 盥 : 세수하고 손씻을 관, 濯 : 씻을 탁, 壇 : 단 모을 단, 墠 : 땅을 정결히 손질할 선) 네 사람이모시고 앉음에 나이로써 차례를 삼는다면 曾點(증점)이 마땅히 두 번째로 대답해야 하는데 마침 거문고를 뜯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먼저 염구와 공서화(赤)에게 물으신 뒤에 증석(點)에게 미치신 것이다. 希(희)는 간간히 쉬는 것이다. 作(작)은 일어남이다. 撰(찬)은 갖춤이다. 莫春(모춘=暮春)은 온화하고 따뜻한 시절이요. 春服(춘복:봄옷)은(솜을 두지않은) 홑겹의과 겹옷이다. 浴(욕)은 세수하고 씻는 것이다. 오늘날 상사(삼월 초사흗날, 삼월삼짇날)에 불제(한해의 액운을 털어 내기 위해 드리는 제사)하는 것이 그것이다. 沂(기)는 물 이름이다. 노나라 도성의 남쪽에 있다. 한서 지리지에 온천이 있다고 했으니, 이치상 혹 그럴 듯하다. 風(풍)은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이다. 舞雩(무우)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 비가 오도록 비는 곳이니 제단과 평평하게 다진 곳과 수목이 있다. 詠(영)은 노래하는 것이다. 증점의 학문이 대개 저 사람 욕심이 다한 곳에 둠에 천리가 유행하여 어디를 가든지 충만하여 조금도 빠짐이 없음을 봄이 있었다. 故로 其動靜之際에 從容如此하고 而其言志는 則又不過卽其所居之位하여 樂其日用之常이요 初無舍己爲人之意하여 而其胸次悠然하여 直與天地萬物로 上下同流하여 各得其所之妙가 隱然自見於言外하니 視三子規規於事爲之末者하면 其氣象이 不侔矣라 故로 夫子嘆息而深許之하시고 而門人記其本末에 獨加詳焉하니 蓋亦有以識此矣니라. (規 : 급급할 규, 侔 : 짝 모) 그러므로 그 동정할 때에 從容(종용: 차분하고 자연스러움)함이 이와 같았고, 그 뜻을 말하는 데에는 곧 또한 그 거처하는 바의 자리를 지나쳐 가지 아니하고, 그 날마다 쓰는 떳떳함을 즐거워하여 애초에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는 뜻이 없으며, 그 가슴의 포부가 유연하여 곧바로 천지 만물과 더불어 상하가 함께 흘러, 각각 그 곳에서 얻은 묘함이 은연히 저절로 말 밖으로 나타나니, 세 제자가 일에 급급해하는 말단적인 것과는 그 기상이 짝하지 아니함을 보였다. 그러므로 夫子(부자:공자)가 탄식하시며 깊이 허여하시고 문인이 그 본말을 기록함에 유독 자세히 덧붙였으니 대개 (기록한 자) 또한 이것(의 중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3, <6)항의 朱註 > ① 朱子(朱熹) 點以子路之志 乃所優爲로되 而夫子哂之라 故로 請其說이라. 夫子 蓋許其能이요 特哂其不遜이라. 曾點以冉求亦欲爲國이로되 而不見哂이라 故로 微問之에而夫子之答이無貶詞하시니 蓋亦許之라. 此亦曾晳問而夫子答也라 孰能爲之大는 言無能出其右者니 亦許之之詞라. 증점은 자로의 뜻을 충분히 해낼 능력이 있는데도 부자(=공자)께서 빙긋이 웃으셨으므로 설명을 청한 것이다. 부자(=공자)께서는 대체로 그 (자로의) 능력은 인정하시고 다만 그 겸손하지 아니함을 웃으신 것이다. 증점이 염구 또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것인데도 (공자의) 비웃음을 당하지 않았으므로 은미하게 물었는데 부자(=공자)의 대답이 폄하하는 말씀이 없으셨으니, 이 또한 (염구의 말도) 허여(인정)하신 것이다.‘누가 大(대)가 되겠느냐(孰能爲之大숙능위지대)’고 하신 것은 그를 뛰어넘을 자가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니, 이 또한 그를 허여(인정)하신 것이다. ② 程子(伊川) 程子曰 古之學者 優柔厭飫하여 有先後之序하니 如子路 冉有 公西赤이 言志如此한대 夫子許之를 亦以此하시니 自是實事라 後之學者 好高如人游心千里之外라 然이나 自身은 却只在此니라. 정자(이천)가 말씀하셨다.“옛날의 학자들은 넉넉하고 부드러우면서 편안하고 (학문에) 선후의 순서가 있었다. 예컨대 자로, 염유, 공서적이 뜻을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자, 부자(=공자)께서 허여하시기를 또한 이로써 하셨으니, 본래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세의 학자들은 높은 것을 좋아하면서 마음은 천리 밖에서 노닐지만 자신의 몸은 다만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 ③ 程子(明道) 又曰 孔子與點하시니 蓋與聖人之珍이니 便是堯舜氣象也라 誠異三子者之撰이나 特行有不掩焉耳니 此所謂狂也라 子路等은 所見者小니라 子路只爲不達爲國以禮道理라 是以哂之하시니 若達이면 却便是這氣象也니라. 정자(명도)가 또 말씀하셨다.“공자께서 증점을 허여하신 것은 성인의 뜻과 같기 때문이니, 그것이 바로 요순의 기상이다. 진실로 세 제자가 품은 생각과는 달랐으나 다만 행실이 그 말을 가리지(말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점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狂者(광자)이라는 것이다. 자로는 다만 나라를 다스림에 예로써 하는 도리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자께서 웃으신 것이니, 만약 (자로가) 통달했다면 이것도 바로 그러한 기상이다.” ④ 程子(伊川) 又曰 三子는 皆欲得國而治之라 故로 夫子不取하시고 曾點은 狂者也니 未必能爲聖人之事로되 而能知夫子之志라 故로 曰浴乎沂하여 風乎舞雩하고 詠而歸라하니 言樂而得其所也라 孔子之志는 在於老者安之하고 朋友信之하고 少者懷之하여 使萬物莫不遂其性하시니 曾點이 知之라 故로 孔子喟然嘆曰吾與點也라 하시니라. 曾點 漆雕開는 已見大意라. 정자(이천)가 또 말씀하셨다. 세 제자는 모두 나라를 얻어 다스리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취하지 않으신 것이다. 증점은 狂者(광자)이니 반드시 聖人의 일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부자(=공자)의 뜻을 알았다. 그러므로‘沂水(기수)에서 목욕하고 舞雩(무우)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온다.’고 말하였으니, 즐거워하면서 그 곳을 얻었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의 뜻은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 붕우를 믿게 하며, 젊은이를 감싸줌에 있어서(공야장편 25장) 만물로 하여금 그 본성을 이루게 하지 않음이 없는 데에 있으니, 증점이 이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아!’하고 감탄하시며‘나는 증점을 허여(인정)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⑤ 程子(明道) 又曰曾點 漆雕開는 已見大意하니라 정자(명도)가 또 말씀하셨다.“증점과 칠조개(공야장편 5장)는 이미 큰 뜻을 보았다.”라고 했다.
家苑 註(가원 이윤숙 선생의 집주) <家苑 註 1> 선진 편 25장은 논어 20편 중 에서 가장 긴 문장이다. 여기에는 공자의 유가사상과 문답식 교육방법 그리고 공자가 드물게 말씀하신 天道 사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시기적으로는 공자가 철환주유를 하면서까지 끊임없이 현실 정치 참여를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좌절당하던 때로 보인다.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던 이 시기는 이미 패도정치가 횡행하여 공자가 추구하는 덕치와 위민정치는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 문하의 제자들 역시 개별적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유가사상을 실현하기보다는 각자의 재능에 따라 출사하고 있는 정도였다. 한편 출사하지 못한 제자들은 유가사상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상황을 개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공자가 몇몇 제자들과의 모임에서 넌지시 이를 떠보는 질문을 하였다. 자로 염구 공서화는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어받은 수제자급에 속하는 제자들이다. 이들은 직접 옆에서 공자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려는 모습을 지켜본 제자들이기에 현실정치 참여를 당연시 여겼다. 이들은 공자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출사하여 정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포부를 내놓았다. 이들은 공야장편 7장에 나오듯이 공자가 제자들의 뛰어난 점을 맹무백에게 말해주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들이 자신의 현실정치 참여를 잘 인식하고 있음을 보고는 증석을 통해 그들 각자의 포부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었다. 다만 자로의 경우는 의욕이 앞서 앞뒤 재지 않고 성급하게 나서는 바람에 공자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들 세 명과 달리 증석은 공자가 더 이상 굳이 현실 정치에 연연해 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즉 증석은 공자가 후대에 자신의 철학과 사상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사상과 철학이 담긴 天道를 정립하고 있음을 안 것이다. 다시말해 증석은 자공이 ‘선생님으로부터 문장은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으나 性과 天道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들을 수 없었다(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공야장편 12장)’고 말한 天道를 깨달은 제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하기에 공자는 증석에게 찬탄하였다. 다른 제자들이 별다른 질문없이 나가고 증석만 남아 각자의 답변에 대해 하나씩 공자에게 묻자, 공자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것이 정사가 아님이 없음을 강조하였다. 현실정치를 중요시 여겼던 공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후대에 증석의 도가적 답변에 대한 해설을 둘러싸고 僞書라는 비난을 비롯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주자 역시 죽기 직전까지도 이에 대한 해설을 고민했다고 한다. 정자의 해설 또한 세 제자들의 현실정치 참여 문제는 도외시한 채 형이상적인 측면에서 증석을 위주로 한 해설에 치우친 감이 있다. <家苑 註 2> 공자가 증자의 말에 깊숙이 탄식하면서 ‘내 너와 뜻을 같이 하겠노라’라고 말한 것은 증점이 말한 冠者와 童子의 숫자 속에 선후천의 이치를 담은 주역의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冠者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사람으로 이미 장가를 갔다는 뜻이고, 童子는 어린 소년으로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곧 冠者는 先天을, 童子는 後天을 상징하는 말로 해석한다. 또한 여기에서 말한 숫자는 앞서 위정 편 제4장에서도 설명하였듯이 단순히 대여섯 명, 예닐곱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주역의 이치를 數理學으로 풀이한 소강절(邵康節)의 황극경세(皇極經世)의 이치를 빌어 설명한다면, 冠者 五六人(5×6=30)과 童子 六七人(6×7=42)이라는 뜻 속에는 이미 선천인 30會를 마치고 42會 뒤인 72會에는 후천이 된다는 뜻이다. 또한 60年을 1甲이라 하므로, 冠者 五六人은 30甲×60年=1800年으로 요임금 이후 공자(기원전 551~479) 이전의 지나온 햇수를 말하고, 童子 六七人은 42甲×60年=2520年으로 공자 이후 2520년 만에 후천이 옴을 암시하는 뜻으로 본다. 곧 일 년 360일(周天常數)에 72候가 있듯이 요임금 탄생인 기원전 2372년(己丑年, 堯紀는 등극을 기준으로 함으로 요임금 16세 때인 2357년 甲辰年이다)으로부터 72甲이 되는 4320년이 되는 때에 후천이 시작됨을 말하는 것이다. 서기로는 1948년이다. 단군이 등극한 해인 기원전 2333년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도 1947년에 선천의 시대를 마감하고, 1948년부터 새로운 후천의 시대가 열리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선후천의 비결을 요임금은 가로 세로 19줄의 바둑판을 만들어 아들 丹朱에게 전했고, 단군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사방 7수(七宿)를 윷판에 담아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1, 一日長乎爾(일일장호이) : 너희보다 약간 나이가 많다. ‘長乎爾一日(장호이일일)’의 도치구. ‘長(장)’은 ‘年長(연장)’. ‘乎(호)’는 ‘於(어)’와 같이 ‘비하다’라는 뜻. ‘爾(이)’는 ‘너희’. ‘자네들’로 즉 자로 등 네 사람을 말한다. ‘一日(일일)’은 ‘좀’,‘약간’,이는 제자들 앞에서 공자가 겸소해 한 말이다. 2, 毋吾以(무오이) : 내가 자네들보다 몇 살 많다고 마음속의 말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데 그러지 마라. '毋以吾(무이오)'의 도치구. '毋以吾一日長乎爾(무이오일일장호이)'의 줄임말. 3, 何以(하이) : 어떠한 재능으로써 쓰이고 싶은가? 4, 加之以師旅(가지이사려) : 가까이 있는 大國(대국以)이 군대로 침법하다. '以師旅加之(이사려가지)'의 도치구. '加之(가지)는 '施之(시지)'와 같고, '之(지)'는 '千乘之國(천승지국)'을 가리킨다. '師(사)'와 '旅(려)'는 모두 군대를 가리킨다. 5, 因之以饑饉(인지이기근) : 잇달아 기근에 허덕이다. ‘因(인)’은 ‘잇달아’. ‘之(지)’는 ‘군대’를 가리킨다. 6, 由也爲之(유야위지) : 만일에 나 중유가 가서 이러한 나라를 다스림다면. ‘爲(위)’는 ‘다스리다’라는 뜻의 동사. ‘之(지)’는 앞에서 말한 ‘그런 처지에 있는 천승지국’을 가리킨다. 7, 比及(비급) : 다산은 “比(비)는 이르다의 뜻과 같다(比, 猶至也)”라고 했다. 8, 知方(지방) : 大義(대의)의 향방을 알다. 다산은 “方(방)은 嚮(향)으로, 사람이 향할 바”라고 했다. 9, 方六七十(방육칠십) : 면적이 육칠십 리 되는 지방. 이는 고대의 토지 면적을 계산하는 방식인데, 한 변의 길이가 육칠십 리라는 뜻이다. 10, 鼓瑟希(고슬희) :‘喜(희)’를 ‘稀(희)’로 보아 ‘비파를 타다가 정지하니 소리가 점점 여려지다’라는 뜻으로 새기기도 한다. ‘鼓(고)’는 ‘연주하다’라는 뜻의 동사. 11, 鏗爾(갱이) :‘鏗然(갱연)’과 같이 비파를 타다가 정지할 때 끝의 음향. 12, 與(여) :‘칭찬’,‘찬동하다’. 다산은 ‘인정하다’로 보았다. 13, 唯求則非邦也與(유구즉비방야여) : 다산은 주자와 달리 공자의 말로 보아, “염구도 나라를 다스릴 만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이해했다. 또한 “자로를 비웃은 뜻은 자로가 사양하지 않는 데 있었지, 그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求(구)나 赤(적)도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매한가지이나 사양했가ㅣ 때문에 웃지 않은 것으로 본 것이다. 14, 唯赤則非邦也與(유적즉비방야여) :다산은 주자와 달리 공자의 말로 보아, “공서화도 나라를 다스릴 만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이해했다.(나머지는 앞의 13항과 같다.) 오늘도 고운 날 되시고 행복하십시오.~ _()_나무아미타불_()_ -碧 松(智 㒤)- 행복하십시오! |
첫댓글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다행이 통원치료를 하신다니 크게 안심입니다. 어서 빨리 쾌차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말씀은 일종의 선거공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선거에 나가지도 못하고 등용되지도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지요. 꿈입니다. 그 꿈 들 중에서 증석이나 공자님이 택하신 것을 보면, 이제 공자님도 많은 것을 내려놓은 것같습니다. 굳이 등용에서 참여에서 행복을 구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행복을 구합니다. 저는 이런 공자님이 좋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