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라는데 꽤 춥다.
실은 난 별로 추운줄 모르겠는데 모두들 춥다고 웅크린다.
교육지원청의 출장은 영 찜찜하다.
승진후보자 명부공개 후 그 순위를 보고하며 고맙다고 전화도 안했다.
다행?인지 모두 '출장?'이시다.
교장 발령을 앞둔 동기가 뇌수술을 해야하는데, 기적을 바라며 기도하는 일밖에 없다는 소식을
들으니 영 마음이 찜찜하다.
퇴근시각을 기다려 얼른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거금대교를 건넌다.
송광암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빵모자를 쓴 스님이 걸어오시며
'날 저물고 추운데 어디가세요?' 한다.
'시간 가늠하고 갑니다. 어디 출타중이신가요?'
'마을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요.'
송광암은 조용하다.
댓돌 위에 빨간 고무 슬리퍼가 놓여있다.
사진을 찍어보는데, 며칠 전의 산그림자보다 선명하지 않다.
차가운 바람에 공기는 맑은데 해는 기세가 약한가?
암릉같은 오르막을 건너 오늘은 정상에서 앞으로 조금 더 나가본다.
조망이 좋다.
해는 조약도 위로 지는데 완도의 섬들이 곱다.
장흥반도의 제암 사자 억불 부용 천관의 산들과 그 사이 멀리
월출산의 두 봉우리도 보인다.
저 위쪽으로는 무등과 모후 같기도 한데 또렷하지는 않다.
여수쪽의 섬들도 잘 보인다.
모자를 벗고 카메라를 바위에 놓고 나도 찍어본다.
이건 무슨 병일까?
불빛이 들어오는 거금대교와 녹동 시가지를 보며 돌아오다 초닷새의 달을 본다.
송광암에는 불이 켜진 채 고요하다.
주차장앞에서 승합차를 주차하고 오는 스님을 만난다.
난, 암자에서 살 수 있을까?
어스름 저녁에 마을에 나가 술에 취해 살지는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