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계획했다가 날씨 때문에 포기했던 당사도에 들아갔다.
소안군도에 위치한 당사도는 그 자체로 항일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섬이다.
주변 자연환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풍광이 뛰어난 등대가 있다.
당사공소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강복하신 머릿돌이 있다.
당사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에 딸린 섬이다.
소안도 서쪽 약 3.5km, 완도항에서 20.8m의 해상에 위치한다.
원래 지명은 ‘자지도(者只島)’라 불렀으나 어감이 좋지 않았다.
을사늑약 이후 ‘항구의 문’이라 하여 ‘항문도(港門島)’란 이름을 얻었다.
1980년대 들어와 ‘당사도’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섬의 모양이 마치 강아지가 달려오는 듯한 형상이다.
당사도에 가기 위해서는 소안도로 가는 첫배를 타야 한다.
소안도에서 당사도 가는 배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화흥포항은 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붐볐다.
매표소 앞에 섬사랑1호 선장에게 연락하라는 안내문이 있다.
나는 어제 선장님과 통화했기에 그냥 승선하였다.
화흥포에서 소안도로 06:40 출항하는 만세호에 승선하였다.
소안도에서 내려 카페로 들어가 간편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당사도행 섬사랑1호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 느긋하게 쉬었다.
섬사랑1호는 07시 50분에 당사도를 향해 출항하였다.
승객은 우리 둘과, 관광객 1명, 공사 관계자 1명...총 4명이었다.
여객선은 약 30분 만에 당사도에 도착하였다.
쌀쌀해서 대합실 문을 열었더니 기름통이 가득 차 있었다.
화장실 문짝은 떨어져 나간채 방치되어 있어 크게 실망하였다.
선착장보다 훨씬 높게 자리한 마을길은 해안 절벽만큼이나 경사가 급하다.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가니 가장 먼저 독서하는 소녀상이 나타났다.
학교터도 아닌데 독서상이 이곳에 서 있는 이유가 아리송하였다.
동네 어귀에 당사도의 선각자 김석주를 기리는 비석이 있었다.
한때 당사도는 해남의 천모씨 개인 섬이었다고 한다.
김석주 옹은 7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 차근차근 돈을 모아 섬을 되찾았다.
그 과정에서 후박나무를 베어 팔아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마침내 1941년 8월 15일, 당사도는 완전히 주민들의 소유가 됐다.
당사공소는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페허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옛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흐뭇했다.
당사도에 공소가 생긴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당시 등대에서 근무하던 백남철(시몬)씨가 선구자였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너무 미신에 치우쳐 있어 신앙적 구심점이 필요했다.
매주 일요일 밤 주민들을 등대로 오게 하여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후 완도천주교회 이재홍(힐라리오) 신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2011년 10월 31일 완도본당(주임 정규완 신부)은 당사도공소를 축성하였다.
공소 안에는 조그마한 공간에 양옆으로 긴 의자 10여 개가 있다.
입구에 조그마한 방이 있었는데 아마 고백실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1982년 당시 섬에 거주하던 44세대 217명의 주민 모두가 가톨릭 신자였다고 한다.
현재는 30여명이 살고 있는데, 이중 8명이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교회 본래의 모습에 가장 걸맞는 모습의 공소가 날로 피폐해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축성했다는 머릿돌을 발견하였다.
부산의 기도 공동체인 「성심기도회」를 기억한다는 문장도 보인다.
정성을 모아 남모르는 선행을 펴온 성심기도회는 이곳에 많은 후원을 하였다.
김명려(끌라라) 할머니 등 20여 명의 회원들은 당사도와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성모님이 마을을 내려다 보신다.
성모님의 깊은 사랑과 지극한 미소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주신다.
여태까지 본 성모님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애로운 모습이다.
조상 대대로 치밀하게 쌓은 돌담들이 철옹성 같다.
작은 섬마을에선 그 돌담들이 집을 이루고 밭을 만들었다.
돌담에 감싸인 주황빛, 하늘빛, 파랗고 빨간 지붕들이 살짝 보인다.
옛날에는 이 우물물이 마을의 생명수였으리라.
우물에는 소화시대(昭和時代)에 만들었다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지금은 124m 지하까지 파고 들어가 물을 끌어올려 사용한다.
사슴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밭과 무덤에 그물을 둘러 쳤다.
최근까지도 약 150마리의 사슴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당사도 숲 황폐화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당사도등대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은 길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등산로 오른쪽 숲속에 당집의 흔적이 보였다.
당집으로 접근하니 놀란 사슴 몇 마리가 후다닥 달아난다.
신성한 곳으로 여태껏 나뭇가지 하나 꺾지 않으며 모셔왔다.
섬 주민들은 음력 9월 9일 이곳에서 중구제(重九祭)를 지낸다고 한다.
두 번째 이정표를 지나니 등대 가는 길은 더욱 험악해졌다.
숲속에 남아 있는 사슴들이 번식을 계속해 개체 수가 줄지 않고 있다.
봄철이 되면 새끼를 데리고 민가 주변에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껍질을 벗겨 먹어 고사하고 있는 나무의 모습을 보니 매우 심각해 보인다.
세번째 이정표는 화살표가 산 위를 향하고 있다.
누군가가 산 위로 가지말라고 밧줄로 막아놓았다.
인터넷에 오래 전부터 올라있는데 아직도 그대로여서 아쉽다.
언덕을 넘어서니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조금은 평지가 보이고 주위로 돌담들이 보인다.
이곳에도 예전에는 마을이 있었던 흔적이다.
이런 오지에서 궁핍하고 어렵게 살았을 옛 사람들의 삶이 애잔하다.
등대는 당사도 남쪽 끝자락에 있다.
깨끗한 정문을 들어서면 공원화가 된 마당이 보인다.
등대에 도착하니 삼순이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함께 배를 타고 온 광주에서 온 남정네가 먼저 와 있었다.
쉼터 옆에 가면 1997년에 세운 '항일전적비'가 있다.
1909년 2월 24일, 5인의 동학군이 등대를 습격, 일본인 4명을 살해했다.
이른바 '자지도 왜인 등대 습격 사건'의 현장이다.
이 비석은 1997년 11월 '소안 항일운동 기념 사업회'에서 세웠다.
항일전적비 옆에 조난기념비(遭難記念碑)가 있다.
살해된 일본인 4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본이 세운 것이다.
그런데 해방 후 파손된 채 방치되어 왔다.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라고 생각해서 다시 세웠다.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기록한 역사가 아이러니하다.
삼순이는 낯선 방문객을 향해 사납게 짖어댄다.
하필이면 화장실 문 앞에 묶어놔서 볼 일도 보지 못했다.
당사도 등대는 1909년 1월에 불을 밝혔다.
일본 상선의 남해항로를 돕기 위해 등대를 설치하였다.
미군 비행기 공격에 대파되었다가 1948년 새로 지어진 것이다.
옛 등대는 은퇴하고 지금은 새로운 등대가 불을 밝힌다.
등탑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면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등대에는 소장을 비롯하여 모두 3명이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등대와 작별하고 등대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등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인스턴트 미역국밥으로 소박하게 점심 식사를 해결하였다.
마을로 돌아와서 반대쪽 해변으로 내려갔다.
조상대대로 돌을 쌓아 만든 농경지가 눈물겨웠다.
허물어진 집터에선 꽃이 활짝 핀 동백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은 돌아가셨는지, 도회지로 나갔는지 알 수 없다.
이 동백나무는 거친 바람에 맞서며 살았던 주인을 회억하고 있으리라.
신비스런 복생도(卜生島)가 손에 닿을듯이 보인다.
이곳은 풍란 자생지로 유명하였다.
어부들이 길을 잃어 헤맬 때 풍란 향기가 길을 찾게 도와줬다고 한다.
지금은 남획으로 인해 풍란 향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복생도 뒤로 보이는 산은 작년에 올랐던 보길도 보옥산이다.
허공에 진눈깨비 치는 날에도
동백꽃 붉게 피어 아름답구나
눈비 오는 저 하늘에 길이 없어도
길을 내어 돌아오는 새들 있으리니
살아생전 뜻한 일 못다 이루고
그대 앞길 눈보라 가득하여도
동백 한 송이는 가슴에 품어 가시라
다시 올 꽃 한 송이 품어 가시라.........................................................도종환 <동백 피는 날> 전문
마을의 중앙에 세워진 등대교회가 멋지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마을 정자에서 오래오래 쉬었다.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였다.
섬사랑1호는 우리 일행을 싣고 16시 30분에 섬을 떠나왔다.
좁은 섬에서 8시간을 버텨낸 자신에게 감사를 보냈다.
17시에 소안도에서 완도로 떠나는 만세호에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완도에서 쌈돈까스를 먹고 제우스모텔에 피곤한 몸을 뉘였다.
다음날 아침, 「완도 치유 페스타」현장 안내소로 갔다.
완도에 오기 전에 여행 계획서를 제출해서 승인을 받았다.
여행을 마치고 SNS에 글을 올리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상품권을 준다.
23만원 영수증을 제출하고 지역상품권 6만원을 받았다.
이걸로 싱싱하고 통통한 전복을 사서 기분좋게 귀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