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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이전(吏典) 부 감사고공지법(附監司考功之法)
1. 감사가 고공하는 법도 따라서 의논하겠다. 이미 그 고공의 법이 소략하므로 책임지워 실효를 거두게 할 수 없으니 상주(上奏)해서 그 방식을 고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적의(考績議)》에 이렇게 말했다.
“국가의 안위는 인심의 향배에 달렸고, 인심의 향배는 백성의 잘 살고 못 사는 데에 달렸으며, 백성의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수령이 잘하고 잘못하는 데에 달렸고, 수령의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감사의 포폄(褒貶)에 달려 있으니, 감사가 고과하는 법은 바로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향배하는 기틀이요, 나라의 안위를 판가름하는 바이다.
그 관계되는 바가 이처럼 중요한데 그 법이 소루하고 부실함이 오늘날과 같은 때가 없으니 저으기 우려하는 바이다.
한(漢)나라의 법에 자사(刺史)는 6조(條)로써 이천석(二千石)을 살펴서 연말에 일을 보고할 때 전최(殿最)를 들어 상주해서 상벌(賞罰)을 실시했으니 그 법이 일찍이 엄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원제(元帝) 때에 와서 경방(京房)이 또 고공과리법(考功課吏法)을 아뢰어 천하의 이목을 새롭게 하려 하였으니, 필시 그 옛 법이 소루한 결점이 꼭 없지 않았던 때문에 경방의 주장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진 무제(晉武帝) 때에 두예(杜預)는 경방의 유법(遺法)이 세밀해서 통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당요(唐堯)의 구법을 펴서 세밀한 것을 버리고 간략한 것을 취하자고 하였는데, 이는 두예가 당요의 법이 후세보다 엄했던 것을 알지 못하고 간이(簡易)했다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전대의 제도를 두루 상고해 보니, 무릇 고과하는 법은 모두 9등으로 구분해서 연말에 한 번 고과했을 뿐이었다. 오직 후위(後魏)의 문제(文帝)만이 ‘상과 하의 두 등은 3품(品)으로 나누고 중등은 1품으로만 한다. 이렇게 한 까닭은 상등ㆍ하등은 올리고 내쫓고 하는 과급(科級)이기 때문에 오직 선악(善惡)을 세세하게 구분하는 것이요, 중등급은 본래 제 할 일을 지키면 크게 통할 뿐이다.’ 하였으니, 그 의도는 또한 좋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고과법은 오직 세 등급으로만 나누어 그 추솔 간략함이 이와 같은데, 1년에 두 번씩이나 고과하고 있으니 또 어찌 이처럼 잦을까?
요순(堯舜) 시대의 사람은 현능(賢能)과 재지(才智)가 오늘날 사람과 같지 않았는데도 3년 이후에야 그 공적을 따졌는데, 오늘날 사람이 반년 이내에 고과하는 것은 불가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건대, 수령의 고과는 마땅히 9등으로 나누고 연말에 한 번만 고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고적의》에 또 이렇게 말했다. “고공하는 제목의 글을 여덟 글자만 쓰고 있으니, 너무 소략하다. 옛날 노승경(盧承慶)은 고과의 제목을 ‘운송 감시에 양곡 축나는 것〔監運損糧〕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다〔非力所及〕’라고 썼고, 양성(陽城)은 자신의 고과 제목을 ‘백성 사랑하는 마음은 훌륭하나〔撫字心勞〕 세곡 독촉하는 정사는 부진하다〔催科政拙〕’라고 썼다. 모두 네 글자 두 글귀를 사용하였으니 아마 당나라 때부터 그 법이 이미 그러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周)나라 때에는 총재(冢宰)가 회계를 받았는데 회계하는 글은 반드시 여덟 글자만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나라 때에는 군국(郡國)에서 모두 계부(計簿)를 올렸는데 계부의 글도 반드시 여덟 글자만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어사의 서계(書啓)에 수령의 잘잘못을 논하는 데에 글자가 많은 경우는 수백 자에 이르러 자수에 구애하지 않는데, 감사의 고과만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또 생각하건대, 상고 시대에는 상하가 서로 권면하여 사공(事功)을 일으켜서 왕의 덕업을 확장했건만 후세에는 이런 의의가 밝혀지지 않는다.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이 대체만을 유지해 나가기에 힘쓰고 옛 법도를 그대로 따르면서 명분을 내세우기를, ‘요란을 피우지 아니해도 저절로 다스려진다.’ 하는데, 온갖 법도가 해이해지고 많은 폐단의 구멍이 번갈아 뚫려서 백성들이 그 해독을 입어 고혈이 점차 말라가는데도 안찰(按察)하는 신하는 이런 수령들을 고과할 때 고과의 제목을 ‘간략함으로 다스리니〔簡約爲治〕가만히 앉아서 진정시키는데 여유가 있다〔坐鎭有裕〕’라고 쓰거나 ‘습속을 따라 다스리고〔順俗而治〕 빛나는 명예를 구하지 않는다.〔不求赫譽〕’라고 쓰고, 심한 경우에는 ‘산수 좋은 고장에서〔山水之鄕〕 필묵으로 소요한다〔消搖翰墨〕’라고도 쓴다. 이런 따위는 모두 일을 제대로 보지 않고 녹봉을 축내고 자리를 병들게 하는 자의 제목인 것이다.”
《고적의》에 또 이렇게 말했다. “고적의 조례(條例)에는 대체로 9강(綱)이 있으니, 첫째는 율기(律己), 둘째는 봉공(奉公), 셋째는 애민(愛民), 그 다음은 6전(典)이 포함된다.
9강은 각각 6조(條)를 포함하고 있으니, 도합 54조가 된다. 조정에서 이 54조를 열읍(列邑)에 반포하여 성실히 준수하도록 하고, 수령들은 그것을 삼가 봉행하여 효과를 거둔 것이 있으면 27조 - 3×9=27 - 를 갖추어서 감사에게 그 공적을 보고하고, 감사는 그 성적을 고과할 때 그중에서 9조를 골라 9등의 목록을 정해서 조정에 올리도록 한다. 그래서 아홉 가지의 일이 모두 장(臧)일 경우는 상상(上上)을, 그 아홉 가지의 일이 모두 부(否)일 경우는 하하(下下)를 매기며, 그중 한 가지가 부일 경우는 상중(上中)을, 그중 한 가지가 장일 경우는 하중(下中)을 매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매양 장과 부의 많고 적은 것으로써 등급의 고하를 정할 것이다.
이제 고적장계(考績狀啓)를 모두 어사의 서계(書啓) 양식처럼 만들어서 시험 삼아 아래에 제시해 본다.
전라도 고적계본의 양식〔全羅道考績啓本之式〕
옥과 현감(玉果縣監) 이모(李某)
율기(律己) : 이른 아침에 관아에 나앉고 정치를 할 때는 엄숙하여 이민(吏民)들로 하여금 공경할 줄 알게 하였다.〔장(臧)〕
봉공(奉公) : 문루(門樓)에 올라가서 교서(敎書)를 반포하여 만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조정의 덕의(德意)를 알게 하였다.〔장〕
애민(愛民) : 유기한 아이 7명을 유모에게 주어 기르도록 하였고, 늙은 홀아비 4명을 창사(倉舍)에서 보양하였다.〔장〕
이전(吏典) : 간리(奸吏) 이모(李某)ㆍ김모(金某) 등이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자 그 농간을 적발하여 법률에 따라 처단하니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지 못하였다.〔장〕
호전(戶典) : 동쪽 두 면(面)의 누전(漏田) 12결(結)을 조사해 냈고, 또 신기전(新起田) 10결 20부(負)를 밝혀냈다.〔장〕
예전(禮典) : 백성들을 권유하여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제를 행하게 하고, 모두 한결같이 법제를 준수하게 하였다.〔장〕
병전(兵典) : 스스로 숙동(熟銅) 3백 근(斤)을 마련하여 무고(武庫)에 저장해서 불의의 사변에 대비하였다.〔장〕
형전(刑典) : 고을 백성 박모(朴某)가 살인을 하고 뇌물을 써서 사건이 은폐되어 해를 넘겼는데, 자난 7월에 그 간악함을 적발하여 처벌하니 백성들이 그의 밝음을 칭송하였다.〔장〕
공전(工典) : 관비에서 전거(田車) 20대를 제작하여 20개 마을에 나누어 주니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였다.〔장〕
이상은 아홉 가지 일이 모두 〔장〕이니 상상으로 매긴다.
순창 군수(淳昌郡守) 김모(金某)
율기 : 가족들을 데려오지 않고, 자제와 친우들을 모두 내옥(內屋)에 거처하고 정당(政堂)에는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장〕
봉공 : 문보(文報)가 기한을 넘기지 않았고, 기한 전에 지시를 실천한 자에 대해서는 관에서 시상하였다.〔장〕
애민 : 양로연(養老宴)에 참여할 대상을 너무 심하게 고르므로 백성들이 더러 불평을 하였다.〔부(否)〕
이전 : 공사(貢士) 7명이 모두 공론에 맞았고 성시(省試)에 발해(發解) 한 자가 다른 고을에 비해 유독 많았다.〔장〕
호전 : 상평곡(常平穀)의 곡가를 정하는데 강제로 5푼을 감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더러 말이 있었다.〔부〕
예전 : 학궁(學宮)에 출입하는 자들이 명륜당(明倫堂)에서 싸움질을 하였는데 사정에 끌려 다스리지 않아 선비들의 습속이 무너졌다.〔부〕
병전 : 무사(武士)들의 교련이 한결같이 제식을 준수하여 그 무예가 정숙해졌다.〔장〕
형전 : 송사를 처리할 때 백성들로 하여금 원고와 피고가 다 나오게 하고, 판결이 난 다음에는 패소한 자를 다스리니, 수십 년 미결상태의 송사가 많이 해결되었다.〔장〕
공전 : 황폐된 저수지 일곱 곳이 모두 진흙이 메워져 있는데 파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부〕
이상은 〔장〕이 5, 〔부〕가 4이니 중중으로 매긴다.
나주 목사(羅州牧使) 박모(朴某)
율기 : 애첩(愛妾)이 정사에 관여하고 술자리를 벌이는 일이 너무 많았다.〔부〕
봉공 : 삭망하례(朔望賀禮)를 거행하지 않고, 검관(檢官)의 기피를 꾀하여 그 일이 성실치 못하였다.〔부〕
애민 : 의지할 곳 없는 늙은 홀아비와 과부들을 강제로 마을 백성들에게 맡겨서 심지어는 뇌물을 바치고 모면하려는 자까지 있게 하였다.〔부〕
이전 : 간활한 향임(鄕任)을 신임하여 정사를 모두 맡겨 버리고, 면임(面任)과 이임(里任)도 모두 간활한 사람들로 시켰다.〔부〕
호전 : 면화밭의 재해를 전연 직접 둘러보지 않고 아전의 손에 일임하여 지나치게 재결(災結)을 매기는 것이 31결(結)이나 되었다.〔부〕
예전 : 십삼경(十三經)을 구입해온 뒤에 그 좋은 본은 훔쳐 제가 갖고 몰래 좋지 못한 본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많은 선비들의 비방이 있었다.〔부〕
병전 : 어영청(御營廳) 군사를 11명 첨정(簽丁)하는데 간활한 아전의 부정하는 바 되어 30여 명이나 첨정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그치지 않았다.〔부〕
형전 : 취중에 무고한 자에게 함부로 곤장을 가하고, 조그마한 과오를 범한 자도 몇 달 정도 가두기까지 하였다.〔부〕
공전 : 문루(門樓)가 부서져서 전임자가 그 수리비로 돈 3백 냥을 남겨 두었는데, 모두 사용으로 써버리고 보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부〕
이상은 아홉 가지 일이 모두 〔부〕이니 하하로 매긴다.
모든 도와 모든 고을의 고적에 등급을 나누는 것은 모두 이에 준할 것이다.”
《고적의》에 또 이렇게 말했다. “9등으로 고적할 때에는 마땅히 각 도에 각각 정원을 정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경기도 같이 37고을일 경우에는, 상상과 하하에 각 1명, 상중과 하중에 각 1명, 상하와 하상에 각 2명, 중상과 중하에 각 4명, 중중에 21명을 정하는 것이 좋다. - 이상 등급에 따라 나누는 법은 매 10명에 2명을 취하여 1명은 상등으로, 다른 1명은 하등으로 매기며, 그 나머지는 중등으로 매긴다. -
또, 전라도 같이 53고을일 경우에는 상상과 하하에 각 1명, 상중과 하중에 각 2명, 상하와 하상에 각 2명, 중상과 중하에 각 5명, 중중에 33명을 정하는 것이 좋다. - 역시 10명에 1명을 취하여 상등으로 매기고 10명에 1명을 취하여 하등으로 매긴다. -
또, 강원도 같이 26고을일 경우에는 상의 3등급에 각각 1명, 하의 3등급에 각각 1명, 중상과 중하에 각각 2명, 중중에 16명을 정하는 것이 좋다.
다른 도에도 9등으로 나누는 인원수를 모두 이에 준할 것이다.”
다음과 같이 논한다. “선인과 악인은 본래 정원이 없는 것이다. 한 도에 30고을이 있다고 할 경우, 반드시 상등급이 세 고을이고 하등급이 세 고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그 숫자를 고정해서 가감이 없게 한다면, 만약 어진 수령이 우연히 적을 경우는 반드시 구차하게 채워 넣어 포상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만약 탐학한 수령이 우연히 많은 경우는 요행히 벌을 모면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의론을 제기하는 자가 반드시 분분히 일어나서 모두 그 불편함을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문과(文科) 시험에서 갑과(甲科)에는 매번 세 사람을 뽑는데 어찌 꼭 갑에 맞는 자가 세 사람이겠는가? 그리고 을과(乙科)를 정하는 데는 매번 다섯 사람을 뽑는데 어찌 꼭 을에 맞는 자가 다섯 사람이겠는가? 또한 과거에서 시권(試券)을 채점할 때는 혹 이상(二上)인 자를 장원으로 삼기도 하고, 혹 삼하(三下)인 자를 장원으로 삼기도 하며, 또 장원이 되면 관례적으로 반드시 6품(品)에 올려 곧 예조 좌랑(禮曹佐郞)이나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제수하는데, 시권이 하등에 있다고 해서 장원의 상전(賞典)을 주지 않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 지금 내가 여기 정한 고공법이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시험 삼아 전라도를 들어 말해 보리라. 50명의 수령이 이해 말의 고과에 하등이 5명 정해져 있는 줄 분명히 알면, 그 하등에 떨어질까 염려하여 벌벌 떨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며, 이해 말의 고과에 상등이 5명 정해져 있는 줄 분명히 알면, 그 상등에 오르기를 기대하여 부지런히 힘쓰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니, 어찌 오늘날과 같이 두려울 바도 없고 희망할 바도 없음이 있겠는가? 하물며 54개 조항이 조정에서 내린 명령이고 27개 조목이 수령이 올리는 치적일 경우, 이해 말에 장차 27개 조목을 나열해서 위에 보고할 것임을 분명 안다면, 54개 조항을 항상 안중에 두고서 죄를 면하고 공을 세울 것을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니, 어찌 오늘날과 같이 할일없이 빈둥거림이 있겠는가?”
《다산필담(茶山筆談)》에 이렇게 말했다. “물(物)이 쪽 고르지 않은 것은 물의 이치인 것이다. 한 대열의 사람이 전부 선할 이치는 반드시 없다. 비록 대악(大惡)은 아닐망정 한 대열의 최하인 자가 있을 것이고 비록 지선(至善)은 아닐망정 한 대열의 최상인 자가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마주(馬周)의 말은 훌륭하다. ‘요즈음 고과에서 등급을 매기는 데는 중상(中上) 밖에 없으니, 어찌 우리 황조(皇朝)의 선비에 상등과 하등의 고과에 들 자가 없겠는가?’ 그 뜻은 대개 현재 있는 선비 가운데서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여 상등급에 올리자는 것이다. 또 비록 하하의 등급에 들었더라도 그 결점을 지적한 조목들이 모두 나약하고 소루하고 어두운 잘못이지, 탐학하고 일부러 범한 죄과가 아니라면 관직만을 해면할 뿐, 후환이 없게 해야 한다. 어찌 고의로 낮추어서 혐의지게 매겨서야 되겠는가?”
《고적의》에 또 이렇게 말했다. “감사의 고적계(考績啓)와 수령의 주적장(奏績狀)은 아울러 조정에 올리고 아울러 이조(吏曹)에 보내야 한다.
수령의 주적장을 감영(監營)에서 없애는 것은 불가하다. 비록 9등급의 고과가 주적장에 따르지 않았더라도 그 주적장은 마땅히 조정에 올려야 한다. 법이 원래 이 같으면 감사는 필시 그 실적을 감히 은폐하고 사사로이 그 사람을 깎아내리지 못할 것이다.”
《고적의》에 또 이렇게 말했다. “3년 대비(大比)에서 삼고수령(三考守令)은 이미 체직되었든지 아직 체직되지 않았든지 물론하고 모두 상경하여 임금이 불러 보는 자리에서 그 주적장을 직접 아뢰어야 한다. 3년 동안의 주적장 및 3년 동안의 고공계(考功啓)를 수령이 모두 직접 안고 임금 앞에 나가 무릎을 꿇고 읽되, 혹 임금이 묻거든 곧 그 자리에서 부연해서 아뢸 것이다. 이것은 요순(堯舜)이 매일 군목(群牧)을 만나보던 법이다. 이 법은 엄하고 강렬하니 후세의 법이 소활하고 해이하여 백 번이나 조용히 강구해 보아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고적의》에 또 이렇게 말했다. “임금이 지방 수령들을 불러 보는 일을 마치고 나서 암행 어사(暗行御史) 12인을 팔도에 나누어 보내서 - 영남ㆍ호남과 서도(西道)ㆍ북도(北道)는 각각 2인을 보낸다. - 그 공죄 허실을 살필 것이다.
자(子)ㆍ묘(卯)ㆍ오(午)ㆍ유(酉)가 든 해에는 입춘(立春) 날부터 삼고 수령들을 불러 보되 매일 5~6인을 만나 입하(立夏) 열흘 전에 마친다. 주적장 받는 일을 마치면 - 북도의 수령은 체직되어 돌아올 때 볼 것이다. - 입하 날 어사를 파견해서 입동(立冬) 전에 복명(復命)하도록 한다.
어사는 수령의 주적장과 감사의 고적계를 가지고 여러 고을로 몰래 다니며 그 허실을 살펴보아 속여서 공적을 보고하였고, 감사가 그에 부동한 것은 들어서 탄핵하고, 실지 공적을 보고했는데 감사가 억눌러버린 것도 탄핵한다.
가만히 보건대, 조정에서 어사를 파견하는 것이 대략 3~4년 만에 한 번 보내기로 되어 있으나, 혹 5~6년 동안 보내지 않다가 7~8년 만에 보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수령이나 향리(鄕吏)들이 모두 요행심이 생겨 부정을 저지르고 오래되면 그 부정이 드러나지 않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나의 생각에는 일정하게 그 법을 정하여 3년 만에 꼭 한 번씩 파견하였으면 한다.
자(子)ㆍ축(丑)ㆍ인(寅) 3년 동안의 일은 오(午)년에 내려와서 조사하도록 하되 뚜렷하게 항식(恒式)으로 삼아서 당기거나 물리는 일이 없으면 비록 탐관과 간활한 아전들일지라도 모두 후환이 두려워 감히 방심하지 못할 것이다.
비록 고적이 아니더라도 응당 실효를 거둘 것인데, 하물며 조정에서 반포한 54개 조항이 어사의 수중에 있고 수령이 보고한 27개 조항이 어사의 수중에 있으며, 감사가 고적한 9개 조항이 어사의 수중에 있으니 이것들을 가지고 고을로 가서 그 허실을 조사하면 누가 떨고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비록 세가대족(勢家大族)이라 하더라도 3년 뒤에 어사로 내려올 사람이 친소관계가 어떠한지 성품이 유한지 강한지 여부를 미리 알기 어려운데, 장차 무엇을 믿고 의지하려 하겠는가?
감사는 어사와 동시에 재직하고 있으므로 세력으로 흔들 수도 있고 안면과 인정으로 사정할 수도 있겠으나 어사는 감사와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상 두 가지는 다 소용이 없을 것이다. 감사의 고적 또한 나중에 어사의 의논이 있을 줄 알면, 그 고적하는 것을 공정하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행해지는 고적법과 비교할 때 성글고 주밀한 것이 과연 어떠한가?
만약, 수령이 허위로 치적을 보고하고 감사가 속여서 공적을 아뢰었을 경우에는 본 죄 이외에 임금 속인 죄를 또한 장차 용서받지 못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이 법이 만약 행해지면 태평의 치세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요순(堯舜)이 요순의 치세를 이룩한 것은 고적 이 한 가지 일에 있었다. 나는 감히 망언을 하지 않는다.”
고적의 구등(九等)ㆍ삼고(三考)ㆍ상벌(賞罰)ㆍ출척(黜陟)의 법과 거복(車服)ㆍ유방(流放)에 대한 규정은 《고적의》에 상세하니 여기서는 우선 생략한다.
[주-D001] 고공의 법 : 여기서는 다산 당시 실시하던 법을 가리킨다.
[주-D002] 고적의(考績議) : 관리의 성적을 상고하는 일에 대한 의논으로 임금에게 드리는 것이니만큼 신(臣) 자를 살려 경어로 번역해야 하나, 본 번역에서는 편의상 경어를 쓰지 않기 위해 신 자를 했다.
[주-D003] 6조(條) : 찰물(察物) 조 참조.
[주-D004] 이천석(二千石) : 군수(郡守)를 가리킨다. 한대의 제도에서 군수는 2천 석 정도의 녹봉을 받는 품계였다. 경제(景帝) 때에는 군수를 태수(太守)로 고쳤다.
[주-D005] 경방(京房) : 한나라 때 동군(東郡) 돈구(頓丘) 사람으로 자는 군명(君明)이다. 역리(易理)와 음률(音律)에 밝았다. 효렴(孝廉) 출신으로 낭(郞) 벼슬에 있으면서 고공과리법(考功課吏法)을 시행하자고 원제(元帝)에게 주청하니 원제는 그것을 시험코자 하여 경방을 위군 태수(魏郡太守)에 임명하였으나, 석현(石顯)과 오록 충종(五鹿充宗)의 모략으로 시행 도중에 실패하고 말았다. 저서에는 《경씨역전(京氏易傳)》이 있다. 《漢書 卷75》
[주-D006] 고공과리법(考功課吏法) : 《한서》의 주가(注家)인 진작(晉灼)의 설에 의하면, 영(令)ㆍ승(丞)ㆍ위(尉)가 한 현(縣)을 다스리되 교화를 숭상하고 범법자가 없을 경우는 모두 승진시키고, 도적이 있어 3일 안에 발각하지 못할 경우는 위의 책임이므로 영이 그를 파면하고 허물을 지는 식으로 된 법이라 한다.
[주-D007] 두예(杜預) : 진(晉)나라 때 경조(京兆) 두릉(杜陵) 사람으로 자는 원개(元凱)이다. 태시(泰始 진 무제(晉武帝)의 연호) 연간에 하남윤(河南尹)으로 있으면서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관리의 고과(考課)에 대한 의견을 올린 일이 《진서(晉書)》 〈두예열전(杜預列傳)〉에 보인다. 하남윤에 이어 탁지상서(度支尙書)ㆍ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등을 지냈으며, 경전 특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밝아 《춘추좌씨경전집해(春秋左氏經傳集解)》ㆍ《춘추장력(春秋長歷)》 등을 저술했고, 시호는 성(成)이다. 《三國志 卷16》 《晉書 卷34》
[주-D008] 당요(唐堯)의 구법 : 《서경》순전(舜典)에 “3년마다 성적을 고시하고 3고(考), 즉 9년에 어진 자를 올리고 어질지 못한 자를 내친다……〔三載考績 三考 黜陟幽明……〕”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D009] 원제(元帝) 때에 …… 뿐이다 : 이 말들은 《문헌통고》 권39 선거고 벽거(辟擧) 조에도 보인다.
[주-D010] 노승경(盧承慶) : 당나라 때 유주(幽州) 사람으로 자는 자여(子餘)이다. 박학(博學)에 재변(才辯)이 있었고 남의 착한 점 드러내 주기를 좋아했으며, 벼슬은 여주 자사(汝州刺史)ㆍ윤주 자사(潤州刺史)ㆍ탁지상서 동중서문하삼품(度支尙書同中書門下三品)ㆍ형부 상서(刑部尙書) 등을 지냈고 시호는 정(定)이다. 《唐書 卷106》
[주-D011] 운송 …… 일이다 : 《당서》 〈노승경전(盧承慶傳)〉에는 “노승경이 선사(選事)를 맡아 백관(百官)을 고과할 때 조운선(漕運船)을 침몰시킨 죄에 저촉된 한 관리의 고과에서 “실소재 고중하(失所載考中下)”라는 제목을 정하여 본인에게 보였으나 그는 언짢은 기색이 없었다. 다시 “비력소급 고중중(非力所及考中中)”이란 제목을 정해서 보였어도 그는 또한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자 노승경은 그를 가상히 여겨 “총욕불경 고중상(寵辱不驚考中上)”이라고 고과하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D012] 양성(陽城)은 …… 부진하다 : 양성은 당나라 때 북평(北平) 사람으로 자는 항종(亢宗)이다. 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하고, 간의대부(諫議大夫)ㆍ국자사업(國子司業)ㆍ도주 자사(道州刺史) 등을 지냈다. 《唐書 卷194》 ‘최과정졸(催科政拙)’은 백성에게 조세를 거두는 정사가 부진하다는 말이다.
[주-D013] 총재(冢宰) : 백관(百官)의 우두머리로서 나라의 정치를 관장하고 국가의 예산을 집행하였다. 《書 周官》 《禮記 王制》
[주-D014] 계부(計簿) : 회계문서를 뜻한다. 계적(計籍)이라고도 한다. 한나라 제도에서는 지방 고을의 군수들이 연말이면 으레 회계문서를 중앙에 올렸다.
[주-D015] 서계(書啓) : 복명서(復命書)와 같다.
[주-D016] 상하가 …… 확장했건만 : 이 대문은 《서경》 〈순전(舜典)〉에 보이는데, 채전(蔡傳)에 의해 번역하였다.
[주-D017] 안찰(按察)하는 신하 : 여기서는 감사를 가리킨다.
[주-D018] 장(臧) : 잘한 것을 표시한 글자이다.
[주-D019] 부(否) : 잘못한 것을 표시한 글자이다.
[주-D020] 누전(漏田) : 토지대장에서 빠진 전지(田地)이다.
[주-D021] 신기전(新起田) : 새로 일군 전지이다.
[주-D022] 문보(文報) : 공문서로 알리는 일이다.
[주-D023] 공사(貢士) : 여기서는 수령이 중앙에 천거한 선비를 가리킨다.
[주-D024] 발해(發解) : 성시(省試) 즉 향시(鄕試)에 합격하는 일로 향시에 합격하면 회시(會試)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된다.
[주-D025] 삭망하례(朔望賀禮) :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전패(殿牌)에 절하는 예절을 가리킨다.
[주-D026] 검관(檢官) : 시체를 검사하는 임시 벼슬이다. 조선조 때에는 지방에 살인 사건이 생기면 인근 고을의 수령이 검관으로 차출되었다.
[주-D027] 십삼경(十三經) : 《주역(周易)》ㆍ《서경(書經)》ㆍ《시경(詩經)》ㆍ《주례(周禮)》ㆍ《의례(儀禮)》ㆍ《예기(禮記)》ㆍ《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ㆍ《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ㆍ《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ㆍ《효경(孝經)》ㆍ《이아(爾雅)》 등 열세 가지의 경서(經書)이다.
[주-D028] 어영청(御營廳) : 조선조 때 서울에 있었던 군영(軍營)이다. 효종 3년에 설치되었다가 고종 21년에 없어졌다.
[주-D029] 갑과(甲科) : 전시(殿試)의 성적에 따라 나눈 등급의 하나. 과거에서 최종 시험인 전시의 성적에 의하여 갑과(甲科)ㆍ을과(乙科)ㆍ병과(丙科)로 나누고, 갑과에는 3인을 뽑아 첫째는 장원랑(壯元郞)이라 하고, 둘째는 방안(榜眼) 또는 아원(亞元)이라 하고, 셋째는 탐화랑(探花郞)이라 하였으며, 장원랑에게는 종6품의 품계를 주고, 나머지 2인에게는 정7품의 품계를 주었다. 그리고 을과에는 7인을 뽑아 이들에게는 정8품의 품계를 주고, 병과에는 23인을 뽑아 이들에게는 정9품의 품계를 주었다. 《大典會通 吏典 諸科》 《禮典 諸科》
[주-D030] 을과(乙科) : 전시(殿試)의 성적에 따라 나눈 등급의 하나. 과거에서 최종 시험인 전시의 성적에 의하여 갑과(甲科)ㆍ을과(乙科)ㆍ병과(丙科)로 나누고, 갑과에는 3인을 뽑아 첫째는 장원랑(壯元郞)이라 하고, 둘째는 방안(榜眼) 또는 아원(亞元)이라 하고, 셋째는 탐화랑(探花郞)이라 하였으며, 장원랑에게는 종6품의 품계를 주고, 나머지 2인에게는 정7품의 품계를 주었다. 그리고 을과에는 7인을 뽑아 이들에게는 정8품의 품계를 주고, 병과에는 23인을 뽑아 이들에게는 정9품의 품계를 주었다. 《大典會通 吏典 諸科》 《禮典 諸科》
[주-D031] 다섯 사람 : 을과에는 일곱 사람을 뽑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여기 다섯 사람이란 어떤 규정인지 알 수 없다.
[주-D032] 이상(二上) : 과거에서 시문(詩文)을 평하는 12등급 중의 하나이다. 상지상(上之上)ㆍ상지중(上之中)ㆍ상지하(上之下), 이상(二上)ㆍ이중(二中)ㆍ이하(二下), 삼상(三上)ㆍ삼중(三中)ㆍ삼하(三下), 차상(次上)ㆍ차중(次中)ㆍ차하(次下)의 12등급을 4등에 3급(級)으로 나누었다.
[주-D033] 삼하(三下) : 과거에서 시문(詩文)을 평하는 12등급 중의 하나이다. 상지상(上之上)ㆍ상지중(上之中)ㆍ상지하(上之下), 이상(二上)ㆍ이중(二中)ㆍ이하(二下), 삼상(三上)ㆍ삼중(三中)ㆍ삼하(三下), 차상(次上)ㆍ차중(次中)ㆍ차하(次下)의 12등급을 4등에 3급(級)으로 나누었다.
[주-D034] 마주(馬周) : 당나라 때 임평(荏平) 사람으로 자는 빈왕(賓王)이다. 학문을 좋아하여 특히 《시경》과 《춘추》에 조예가 깊었으며, 벼슬은 감찰어사(監察御史)ㆍ중서령(中書令) 등을 지냈다. 《唐書 卷74》
[주-D035] 대비(大比) : 과거 제도에서 향시(鄕試)를 대비라고 한다.
[주-D036] 삼고수령(三考守令) : 세 차례에 걸쳐 고적(考績)을 받은 수령을 가리킨다.
[주-D037] 고공계(考功啓) : 성적을 고과한 데 대한 계문(啓聞)이다.
[주-D038] 요순(堯舜)이 …… 법이다 : 《서경》 〈순전(舜典)〉에 “날마다 사악(四岳 사방의 제후(諸侯)임)과 군목(群牧 구주(九州)의 목백(牧伯)임)을 만나 보았다.”라는 말이 보인다.
[주-D039] 유방(流放) : 유방(流放)은 유배(流配)하고 방치(放置)하는 형벌인데, 그 어원이 《서경》 〈순전〉에 나온다.
[주-D040] 고적의에 상세하니 : 《여유당전서》 권9에 고적의가 보이기는 하나 본 내용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볼 때 구등ㆍ삼고ㆍ상벌ㆍ출척ㆍ거복ㆍ유방 등의 규정을 논한 고적의가 따로 있었던 듯하다.
監司考功之法。因可議也。疏略旣然。無以責實。奏改其式。抑所宜也。
考績議云。國家安危。係乎人心之向背。人心向背。係乎生民之休戚。生民休戚。係乎守令之臧否。守令臧否。係乎監司之褒貶。則監司考課之法。乃天命人心向背之機。而國家安危之攸判也。其所關係。若是其重。而其法之疎漏不覈。莫今時若。臣竊憂之。漢法刺史。以六條察二千石。歲終奏事。以擧殿最。奏行賞罰。其法未嘗不嚴然。至元帝之時京房又奏考功課吏法。欲以新天下之耳目。必其舊法。不無疎漏之失。故京房之言如是也。晉武帝時。杜預以爲京房遺法。細密難通。請申唐堯之舊典。去密就簡。是杜預不知唐堯之典。嚴於後世。謬謂之簡易也。臣歷考前代之制。凡考課之法。皆分九等。歲終一考而已。唯後魏文帝之言曰。上下二等。可爲三品。中等但爲一品。所以然者。上下是黜陟之科。故旌絲髮之美惡。中等守本事大通而已。其意亦善。國朝考課之法。唯分三等。其率略如此。而一年再考。又何其數數也。唐虞之人。其賢能才智。非如今時之人。然且三載而後。責其績庸。以今之人而課功於半年之內。無乃不可乎。臣謂守令考課。宜分之爲九等。只歲終一考可矣。
考績議云。考功題目之文。止用八字。疏脫甚矣。昔盧承慶特書其考曰。監運損糧。非力所及。陽城自書其考曰。撫字心勞。催科政拙。皆用四言二句。蓋自唐時。其法已然。然周之時冢宰。受其會計。會計之文。必不得止用八字也。漢之時。郡國皆上計簿。計簿之文。必不得止用八字也。今御史書啓。論守令臧否。多者至數百言。不拘字數。監司考課。何獨不然。臣又思之。上古上下相勉。奮庸熙載。後世此義不明。儱侗無能之人。務持大體。因循故常。名之曰不擾而治。百度解弛。衆竇交穿。民受其毒。膏血漸渴。而按察之臣。方且書之曰。簡約爲治。坐鎭有裕。曰順俗而治。不求赫譽。甚則曰山水之鄕。消搖翰墨。此皆全不事事。尸祿癏位者之題目也。
考績議云。考績條例。凡有九綱。一曰律己。二曰奉公。三曰愛民。其次曰六典九綱。各攝六條。通共五十四條。朝廷以五十四條。頒于列邑。使之欽遵。守令奉行唯謹。其有成效者。具二十七條。奏績于監司。三九二十七。 監司考績。就其中選取九條。以定九等之目。獻于朝廷。其九事皆臧者。第上上。其九事皆否者。第下下。偶有一否者。爲上中。偶有一臧者。爲下中。以次挨排。每以贓否多少。第其高下。今擬考績狀啓。皆如御史書啓之式。試著于左。
全羅道考績啓本之式。
玉果縣監李某。
〇其律己則昧爽坐衙。出治嚴肅。令吏民知敬。臧。
〇其奉公則登樓頒敎。俾萬民。咸知朝廷德意。臧。
〇其愛民則遺棄兒七口。授乳母字養。老鰥四口。養之於倉舍。臧。
〇其吏典則奸吏李某金某。蠹國害民。發其奸照律。諸吏斂手。臧。
〇其戶典則東二坊漏田十二結。査出。又得新起田十結二十負。臧。
〇其禮典則勸民行冠婚喪祭之禮。皆令一遵法制。臧。
〇其兵典則自備熟銅三百斤。藏之武庫。以備不虞。臧。
〇其刑典則縣民朴某殺人行賂。掩匿踰年。去七月發其奸成獄。民稱其明。臧。 〇其工典則官造田車二十輛。頒于二十村。民皆樂之。臧。
〇已上九事皆臧。第上上。
淳昌郡守金某。
〇其律己則不絜家眷。凡子弟親友。皆處于內屋。不令到政堂。臧。
〇其奉公則文報不踰期限。其先期者。自官施賞。臧。
〇其愛民則養老宴人口。抄之太甚。民或有言。否
〇其吏典則貢士七人。皆叶公論。省試發解者。獨多於諸邑。臧。
〇其戶典則常平穀決價。勒減五分。民或有言。否
〇其禮典則學宮出入者。鬪歐於明倫之堂。循私不治。士習以壞。否
〇其兵典則武士敎鍊。一遵程式。其武藝精熟。臧。
〇其刑典則聽訟。令民兩造。旣決治其落訟者。數十年未決之訟。多所剖判。臧。
〇其工典則廢堤七處。竝皆淤塞。不思浚治。否。
〇已上五臧四否。第中中。羅州牧使朴某。
〇其律己則房嬖用事。觴政太濫。否。
〇其奉公則朔望賀禮。闕而不行。檢官謀避。其事不誠。否。
〇其愛民則老鰥老寡無依者。勒授里民。至有納賂圖免者。否。
〇其吏典則信任奸鄕。一委其政。坊任里任。皆授奸猾之人。否。
〇其戶典則棉田災傷。全不親檢。一委吏手。其濫災至三十一結。否。
〇其禮典則十三經貿來之後。竊其佳本。陰以劣本易之。多士有謗。否。
〇其兵典則御營軍簽丁十一名。爲奸吏所賣。侵及三十餘名。民怨不息。否。
〇其刑典則醉後濫杖。多非其罪。小罪就囚。或至數月。否。
〇其工典則門樓毀破。前官留錢三百兩。幷歸私用。不思重建。否。
〇已上九事皆否。第下下。
諸路諸邑考績分等。皆倣此。
考績議云。九等之考。宜於諸路。各有定額。
〇假如京畿三十七官。則上上下下各一員。上中下中各一員。上下下上各二員。中上中下各四員。中中二十一員可也。右分等之法。每十取其二。以其一爲上等。以其一爲下等。以其餘爲中等也。
〇又如湖南五十三官。則上上下下各一員。上中下中各二員。上下下上各二員。中上中下各五員。中中三十三員。亦十取其一爲上等。十取其一爲下等。
〇又如關東二十六官。則上三等各一員。下三等各一員。中上中下各二員。中中十六員。
〇諸路分九等之額。皆倣此。
〇論曰。人之善惡。本無定額。一省三十邑。不必上等者爲三邑。下等者爲三邑。今也樁定其額。令爲加減。若良吏偶稀。則必有苟充之褒。若貪吏偶多。不免有倖逭之罰。議者必紛然以興。共言其不便矣。然臣竊思之。文試甲科。每取三人。何必中甲者爲三人乎。其定乙科。每取五人。何必中乙者爲五人乎。又凡科試考卷。或以二上者爲狀元。或以三下者爲狀元。又其爲狀元也。例必升之於六品。直授禮曹佐郞。成均館典籍。未嘗以試卷之在下等。而施狀元之賞典。今臣所定考功之法。何以異是。試以湖南省言之。五十守令。明知此歲之末。下等者有五人。則未有不惴惴栗栗。或慮其落于此坎。明知此歲之末。上等者有五人。則未有不盻盻孳孳。或冀其登于彼岸。其無所怵而無所希。豈如今日哉。況五十四條者。朝廷之降命也。二十七條者。守令之獻功也。明知此歲之末。將以二十七條。自列而報于上。則未有不以五十四條。朝夕常目。思免其罪。而圖立厥功者。其伈伈泄泄。豈如今日哉。
茶山筆談云。物之不齊。物之理也。一隊皆善。必無是理。雖非大惡。一隊之最下者有之矣。雖非至善。一隊之最上者有之矣。善乎。馬周之言。曰比年等第。不過中上。豈容皇朝之士。遂無上下之考者。其意蓋欲於見在之內。拔其尤者。以爲上第也。且雖下下之等。其所列貶目。皆疲軟踈暗之失。而無貪虐冒犯之罪。則解官而已。宜無後災。豈宜以故屈爲嫌哉。
考績議云。監司考績之啓。守令奏績之狀。竝上于朝廷。幷下于吏曹。
〇守令奏績之狀。不可自監營而滅之。雖九等之考。不循奏狀。而奏狀則宜上于朝廷也。法本如此。則監司必不敢蔽其實績。而私貶其人矣。
考績議云。三年大比。其三考守令。勿論已遞未遞。竝皆上京。以待召接。親奏其狀。
〇三年奏績之狀及三年考功之啓。守令皆親抱其卷。登筵跪讀。或上有問。卽於筵中敷奏以言。此堯舜日覲群牧之法也。此法嚴酷栗烈。不如後世之法疎豁解緩。百回靜究。始可以犂然悟也。
考績議云。召接旣畢。乃遣暗行御史十二人。分往八路。兩南西則各二人。 察其功罪虛實。
〇子午卯酉之年。自立春之日。引見三考守令。日見五六人。立夏前十日畢見之。畢受其奏績。北道守令。須遞歸乃見之。 於是立夏之日。發遣御史。令立冬前復命。
〇御史持守令奏績之狀及祭司考績之啓。潛行列邑。察其虛實。其有奏罔功。而監司敷同者。擧而劾之。其有奏實績。而監司抑壓者。擧而劾之。
〇臣竊伏見朝廷遣御史。大約三四年一遣之。然或五六年不遣。七八年乃遣。故守令鄕吏。皆僥倖行險。而冀其久則不發。臣謂一定其法。必三年一遣。子丑寅三年之事。令卯年來發之。卯辰巳三年之事。令午年來發之。著爲恒式。無有進退。則雖貪官猾吏。皆存後慮。莫敢放心。雖非考績。當有實效。況朝廷所頒五十四條。在御史手中。守令所奏二十七條。在御史手中。監司所考臧否九條。在御史手中。執此行部。覈其虛實。誰有不栗栗危懼者乎。雖勢家大族。三年之後。御史來者。親疏柔剛。旣難逆覩。將何所憑恃乎。監司與之同時。可撓之以勢力。可緩之以顏情。御史與之相違。二者無所施矣。監司考績者。亦知有御史之議其後。則其考績不得不公。其視今日之法。其疏密何如也。守令若報僞績。監司若奏罔功。本罪之外。其欺君之罪。又將罔赦。其有不栗栗危懼者乎。臣愚以爲此法若行。太平之治。可朝暮俟也。堯舜之所以爲堯舜之治。不外乎考績一事。臣不敢爲妄言也。
〇其九等三考。賞罰黜陟之法。車服流放之典。幷詳考績議。今姑略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