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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부터 재편되기 시작한 여당은 윤석열 정부 '시즌 2'를 예고하며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고, 4월 원내지도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진용을 완성시켰다. '친윤 강경파'로 평가되는 여당 지도부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언론 길들이기와 집회시위 봉쇄다. '정권 반대파'의 말과 행동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걸 가장 시급하게 느낀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경찰은 25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집회 강제 해산과 검거 훈련에 돌입한다. 민주노총이 정부를 상대로 '1월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훈련이 목표하는 건 자명해 보인다. 경찰청은 훈련 계획을 공지하며 "모든 기동대원의 정신 재무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흡사 전쟁을 앞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정부가 불법 시위에 대해서도 법 집행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일갈한 것과 맥이 같다.
나아가 정부 여당은 24일 '불법 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 '공공 안녕 위협이 명백한 경우' 등에는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불법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의 경우는 집회 신고를 받지 않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불법 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를 분류하고 집회 시위 면허증을 박탈하는 일이다. 역시 민주노총은 시험 적용의 모범적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야간 문화제를 빙자한 편법 집회를 규제한다고도 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구상을 소급해 적용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가 법집행 발동을 포기한" 촛불집회는 죄다 불법이 된다.
윤 대통령의 충실한 심복인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것이 다른 동료 시민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경우에까지 보장돼야 하는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지 않느냐"는 말까지 했다.
집회시위 봉쇄와 함께, 언론 길들이기에도 나섰다.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박성중 의원이 총대를 멨다. 그들은 포털에 '윤석열'을 검색한 걸 근거로 포털 언론 환경이 온통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기사'에 점령당했다고 진단했다. 언론이 편파적이니 윤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당의 압박에 네이버는 포털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를 사실상 공중분해했다. 빠른 압박, 빠른 반응이다. 여기에 나아가 방송통신위원장은 수사를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물갈이 해 KBS와 MBC 사장 인사에 정권이 관여하려 한다는 시나리오는 여의도에서 더이상 비밀은 아니다. 방통위원장에 검사 출신이 들어올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 모든 것은 '엄정한 법집행'에 따른 것이며, 한 치의 불법도 없다고 정부 여당은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흔한 착각은 '지금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도 아닌데'라는 말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정부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지만, 유사성을 찾아내는 건 무의미하지 않은 일이다.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건 30년 전 독재 시절에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권위주의 정치는 복합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주로 포퓰리즘과 결합된 형태로 '법'과 '국민'의 이름을 빌려서 자주 나타난다.
최근 <포린폴리시>에 소개된 책 <스핀 독재자들>(Spin dictators, Sergei Guriev and Daniel Treisman)는 '공포 독재'와 구분되는 '스핀 독재' 개념을 제시한다. '스핀 닥터(정치홍보전문가를 일컫는 말)'에서 따온 말인 '스핀 독재'는 과거 무력을 주로 사용하는 권위주의와 달리, 정교한 홍보 전략, 메시지 등을 통해 사람들을 따르게 만들거나 산만하게 만들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반대파를 위축시키는 걸 특징으로 한다. 이 책에는 새로운 형태의 이런 권위주의의 선구자로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낸 싱가포르의 리콴유를 꼽는다. 그는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외피를 유지했지만, 야당 인사들을 체포하는 대신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이런 방식으로 '전과'를 달게 된 반대파들이 공직에 나설 수 있는 길을 차단해 왔다. 이를테면 특정 집단의 집회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면 그 집단은 '불법 집단'이 되고, '불법 집단'이 되면 다양한 방식의 '권리 박탈'이 이어진다. '권위주의'의 고도화다.
한국은 아직 이런 '싱가포르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인 것 같다.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타계한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무리하게 일정을 조정한 것이 주목을 받았었다. 반면 불과 6개월 전 타계했던 전 세계 민주주의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박권일의 말대로 한국은 여전히 '싱가포르 판타지'에 사로잡힌 나라일 수 있다.
<스핀 독재자들>에서 내세우는 개념은 주로 푸틴, 시진핑 등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긴 하지만, 리콴유의 '싱가포르 모델'과 같은 행태가 교묘히 은폐된 '권위주의 독재 체제'라는 점을 폭로하기도 한다. 여기에, 7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2월 튀르키예 대지진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건축물 부실 규제 문제 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대통령 당선을 눈앞에 둔 에르도안 대통령도 전형적인 '스핀 독재자'의 유형으로 꼽을 수 있겠다. 저자들에 따르면 '공포 독재' 유형은 1970년대 전체 독재 지도자 집단의 60%를 차지했다가 2000년 이후 10% 미만으로 감소했으나, 그와 함께 '스핀 독재'의 비율은 13%에서 53%로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을 달성한 나라에서 에르도안이나 푸틴, 시진핑을 윤석열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수법이 놀랄만큼 유사하다는 점이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전 총리나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스핀 독재자'의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된다. 그들은 '음모론'을 들이밀고 '대안적 사실'이란 말을 만들어내 지지자들을 추동하고, 법적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권위주의적 방식의 정책을 편다. 트럼프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을 부추겨놓고 자신은 아무런 불법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스핀 독재'는 교묘해지고 있다.
안타깝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권위주의의 역시 디지털 시대의 외피를 입고, 민주주의의 제도 틀을 해치지 않은 수준에서 '재량'을 극대화 하는 방식을 택한다. '법 기술자' 출신답게 윤 대통령은 여당의 주장처럼 헌법과 현행 법을 단 한글자도 고치지 않고 야간 집회를 '심리적'으로 '사실상' 금지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고안해 낼 것이다. 그들이 가장 잘 하는 게 바로 그런 일이니까.
얀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20일 <포린폴리시> 기고글을 통해 포퓰리스트의 특성을 짚었다.
"포퓰리스트는 자신들만이 '진짜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포퓰리스트들이 끊임없이 암시하듯이, 다른 모든 정치인은 근본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권력의 경쟁자들은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포퓰리스트는 단순히 권력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특정 타자를 배제하려고 한다. 2014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은 당 대회에서 자신과 자신의 당을 향해 '우리가 국민이다'라고 주장한 후 비평가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국민을 대표할 독점권이 있다는 주장.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서도 이런 위험한 모습이 보인다. '진짜 국민'이 아닌 사람들은 국가를 해하려는 자들이고 국익을 저해하는 자들이며, '진짜 국민'의 안락함을 방해하려는 세력이다. 갈라치기다. 윤 대통령은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소기업인 77%가 현 정부의 정책에 만족한다는 여론조사를 접하고 "그게 진짜 지지율"이라고 했고, 동시에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강제동원 해법을 밀어붙이며 "지지율 1%가 나와도 상관 없다"고 했다. 이 두 발언 사이 어디 쯤에 윤석열 대통령 인식의 좌표가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현실과 인식의 간극은 크다. 99%의 반대파를 상정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77%의 지지파가 있다는 말에 힘을 얻는다. 혼란스럽다. 누가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던 정부 여당은 강압적 통치 기제를 작동시키고 '스핀 독재'와 포퓰리스트 전략을 배합해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지독한 형태가 될 것이다. '법 기술자'들의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들이 도출될 것이고, 그러는 와중에 '윤석열의 국민'이 아닌 국민들은 스스로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힘든 여정에 나서게 될 것이다. 권위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진화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그걸 잘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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