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춘향은 이몽룡을 모른다
성춘향과 이몽룡은 가끔 동일인물이다
다른 꿈을 꾸다가 모르는 유원지의 카페에서 만났다
성춘향은 그네를 타다 자주 커피를 엎지른다
바닥에 얼음이 구르다 원두처럼 녹아내린다
그들은 과거에 멈춰 있었고
어떤 품종은 계수나무 아래서만 자라서
공간 속에 품어나가는 것, 그러나 관측되지 않도록 수학적 거세를 이어나가며
머리 없는 뿔로 피카소를 들이받았지
성춘향은 이몽룡을 (더는) 모른다
망각은 피카소가 유명해지는 데 걸린 시간보다 빨리 지나가서
기억을 한 번에 들이켜 버리자 유영의 속도를 줄여나가며
목구멍에 처넣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이몽룡은 고대의 책에서 공룡으로 등장한 바 있다
거울을 이해하지 못하면 화석이 돼야 해
뷰파인더에 잡힌 성춘향은 이족 보행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굴을 매만져도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나
수학자가 계산기를 두드린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탄소 연대를 측정 중입니다 규모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나까요
라이브 카페에서 내가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둘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북채로 가린 얼굴
나의 이명은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한낮의 소음이 유효한 시간 감각에 놓일 때
지속되던 세트는 초인종 소리와 동시에 끝났고
불길한 것은 가끔 심미적이기도 해
개와 고양이가 울거나 짖는 시간
짓이긴 재는 눈금 밖으로 삐져 나가며
상호작용하던 아름다운 벽 안과 벽 속으로
흰 벽지를 발라서 울부짖는 예술가의 울대 사이로
시시비비를 가리자 손에 쥔 촛대를 휘두르며 꼭
강하게 커야 한다 넥타이를 조이며 하는 말
이따금 조명이 켜지면 완연한 나체가 되어
송곳으로 찌르듯 육박하는 초침의 마라톤
총성이 들리면 우리는 다른 탄도를 그리며 날아갔고
수면에 가라앉거나 떠오르지 않을 것
삶은 식은 아이스크림처럼 서서히 파멸하는 것
자객이 숨은 옷장에서 코르셋을 꺼내 입는다
접합된 무릎으로 연료를 흘리고
발생하는 구멍, 눈을 맞추면 꼭 닮은꼴이 되어
사선에서 바라본 너의 표정은 찢어져 있다
그 흠집 없는 웃음으로 날 껴안아 줘
작아진다 흔들리는 심판석 위에서
눅진하게 녹아 눌리는 가늠쇠
그림자와 키스하던 아이들이 옷장으로 들어간다
꿈을 꾼 것 같아
입 밖에 마을버스가 멈춰 섰다
조소
동생은 왜 옷에 깃털을 묻히고 다니냐고 했다
빚더미가 된 집을 쳐다보며
하나둘 깃털이 뽑힐 때마다 나는
명도가 밝아지는 지붕 위를 우러러봤고
게임기를 훔쳐 간 친구가 조금 더 미워졌고
몸속 백혈구의 굴절이 뚜렷해지면
난파선 위에서 축구하던 친구들과
골키퍼를 하기 싫어 조용히 죽어있던 내가 겹쳐 보여서
먼지가 빛처럼 내려앉은 구슬 더미
풀피리 흥얼거리며 퍼덕이는 나방 떼
동네 다방에 마실 나간 엄마와 잃어버린 필름 카메라
나는 가닿지 못한 채 엇나가는 초점을 붙잡으며
잿더미가 된 피사체에 빛을 투영시켜 보지만
여기는 이미 너무 많은 빛이 머물다 간 곳
어떤 형용사도 붙지 않는 서툰 드리블이 펼쳐지는 곳
게임기 속 얼마나 많은 마리오가 살해당했을까
곤죽이 된 둥근 절벽 밖으로
끝끝내 망을 흔들지 못하고 엎어진 내가 있다
부서진 게임기를 들고 비웃는 친구가 있다
삽과 망치로 두들길 때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아른거렸다
유실점
어제 실종된 아이가 비눗방울을 부는 걸 봤다
가짜 우상에 열광하는 군중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길항하는 낮과 밤이 양손 가득 모이면
진화를 멈춘 제국의 앞머리가 잘려 나가는 것 같았고
문득 실종을 알리는 전단지에 입을 맞추고 싶었지
저걸 봐 빗속에 가려지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 포유류가 꿈꿔온 페르소나가 우산을 거꾸로 쓰거나 마이크 앞에서 죽은 단어를 지껄여대는 장면 그러나
햇볕에 탄 피부를 건조시키는 건 철학서나 시집이 아니야
레코드판으로 저글링하는 아이들이 암막 속에 숨어들고
오래된 재즈가 습관처럼 흘러나왔지만
살아있는 이들을 전단지에 인쇄해야 할지 헷갈려서
나도 잃어버린 게 많죠 빗물에 축 늘어진 페도라 성격 차이로 이혼한 원앙과 지문처럼 복잡하게 얽힌 핏줄 따위가
유실물 센터에 남아 있어요 빗장을 풀지 못해 영원이 되었지만
어떤 철학자는 비에 맞아 쓰러졌고 사내들은 간밤에 시청 광장을 불태웠고
내일이면 세상이 없었던 것처럼 바뀔 겁니다
아이의 실종사건은 암막 속 오픈릴 테이프에 끝없이 기록되었다
우리는 이를 연쇄 기술 사건이라 불렀는데
무지개의 맨틀이 칼날 끝처럼 불안하게 흔들릴 때
풍기는 불빛과 자욱한 냄새
풍등처럼 떠다니고 있었지 재와 진흙을 넘어
우리가 기르고 낳은 아이들은
계속 밀려나기
붕괴는 도미노를 상상하는 것처럼 쉽게 일어났다
공중제비를 돌던 곡예사가 천막 밖으로 떨어지고
뜨거운 컵 안에서 얼음이 손쉽게 녹아내리듯
단숨에 모습을 드러낸 이미지는 절멸을 뜻하니
나는 텅 빈 방에서 숨도 안 쉬고 부식하는 중
어제 조용했던 지진을 기억하기 위해 안 자는 중
흰 꽃으로 장식한 관을 방부 처리하는 일 나는
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붕괴를 상상했던가
피뢰침 위에 떨어지고 계속 튕겨 나가며
우리는 주춧돌 위의 기왓장처럼 불안하게 흔들리고
오래된 행렬의 끝에 서서 다 끝나기만을 기다려
내가 믿는 종교는 성자의 무덤을 파헤침으로 완성되지
돌이킬 수 없는 숨 하나를 키워 첨탑처럼 쌓아 올린 뒤
파편 하나가 총알처럼 날아가면 그 종적을 삼켜버릴 것
선반 위에 앉아 있던 천사가 빨대의 주름을 천천히 구부린다 면 위로 물방울이 맺힌다 천사가 남긴 스키드 마크
날개를 펄럭이는 걸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 살해된 토막들을 닦는 동안 연쇄를 넘어서
바닥까지 빨아들인 진공관 속
도미노는 경계도 없이 다시 놓이지
표면을 북북 문지르면 고함이 들려오고
깨진 구슬을 움켜쥘 때마다
스위치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낮에도 야행성이 될 수 있습니까
너는 살고 싶은데
살면서 절망하고 싶은데
어디로 도망쳐도 깨끗한 나무도마 위
지진계가 고대의 책을 기록하듯
모든 붕괴는 천장이 시작이었다
흔들린 필체 위로 죽은 숨이 스며들고 그렇게
첫댓글 교보에 책이 없어서 ㅠㅠ 다른 카페에서 보고 필사했네용~~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