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그녀의 모바일 문안 인사로 시작된다. 그녀는 어디서 매일 멋진 문구를 담은 예쁜 그림 엽서를 퍼오는 걸까.
인연
서로 나누고 베푸는 인생 품어주는 사람 있어 좋고
사랑하는 마음 알아줘서 행복하고
소리 없이 늘 그 자리에 당신이 있어 좋고
그래서 오늘이좋다 그냥...
경주에 와서 잠시 기거하던 오피스텔을 세 놓으면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사십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소녀처럼 수줍어하며 낯가림을 하는 그녀를 어찌 대할지 몰라 계약서만 쓰고 별말 없이 일어섰다. 그래도 제 날짜에 꼬박꼬박 월세를 보내오고, 무슨 일이든 혼자 알아서 해결하며 집주인을 성가시게 하지 않으니 나로서는 예의 바른 그녀가 싫을 이유가 없었다. 재계약도 하지 않은 채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그녀가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 월세를 내려달라고 하는 거다. 그동안 주위에 풀옵션의 신축 원룸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더니 아마 노후한 우리 오피스텔의 시세가 떨어진 모양이다. 그렇다해도 처음부터 월세를 높이 책정한 게 아닌데 대폭 인하를 해달라니 좀 섭섭했지만, 그녀 성격에 내게 전화하기 전에 몇 날 며칠을 벼르다 겨우 용기를 냈을텐데 싶어 원하는대로 흔쾌히 구두 계약을 했다. 그렇게 마냥 세월을 보내다가 최근에서야 그 동네에 외국인 근로자가 몰려 오면서 월세가 껑충 뛰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어쩌면 그녀도 그런 사정을 알고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집세 인상을 요구할 생각이 없다. 언젠가 그녀가 부잣집 외동딸로 귀하게 자랐다는 얘기를 얼핏 한 적이 있는데, 무슨 사연으로 그런 곳에서 혼자 숨어 지내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저 안쓰러워 인연이 다할 때까지 그녀의 작은 둥지를 지켜주겠다고 마음 먹었다. 십 여년의 긴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서로에게 애틋한 속정이 생겼나 보다. 이제 그녀는 집세를 며칠씩 미루기도 하고 넉살이 늘어 제법 수다도 떤다. 대화 중에 내가 암 수술을 받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녀가 그날 이후 아침마다 하루치 마음의 양식을 배달해 주고 있다. 한동안 우울증으로 아무 의욕도 없고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맥놓고 지냈는데, 뜻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조금씩 힘을 받게 될지 몰랐다. 그녀의 응원에서 나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위로해 주려는 고운 심성이 느껴져 기쁘고, 내가 뭐라고 그런 정성을 쏟는지 생각할수록 놀랍고 고맙기 그지 없다. 그녀가 매일 내게 들려주는 그 인사말을 나도 그녀에게 되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