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말씀 : 렘32:38-39
제목 : 한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로의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언약의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리스도의 권세와 특권과 능력을 나타내시며, 가정과 사회를 통치하시겠다는 그분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특권과 권세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정리하자면, 그것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기체적으로 연합한 교회가 거룩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교회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이런 교리적, 이론적인 말씀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을 넘어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풍성하고 충만한 비밀을 알고 누리는 심령들이 되시기를 소망하면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 언약 아래서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재갈이나 굴레로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집스러운 말이나 노새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다(사65: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렘6: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그들은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불순종하며 우상숭배하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을 때리고, 옥에 가두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장차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를 새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곧 굴레나 재갈을 씌우거나 경고하고 책망할 선생이 필요 없는 새 민족을 세우시고, 성령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켜 그들 안에 거하시며 직접 인도하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부활을 갈망하는 새 마음을 주시며, 긍휼과 섭리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향한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언약의 백성의 또 다른 특징은 ‘한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한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고, 오늘은 ‘한길로 걸어가는 것’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 좁은 길, 지혜와 거룩함과 의로움과 구원의 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35:8-9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사30: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사42: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구약에는 새 언약의 백성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은 길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만들고 열어놓으신 길을 벗어나거나 떠나지 않도록 그분께서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강은 자기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나무는 자기 열매를 먹지 않습니다.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으며, 꽃은 자기를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즉 창조의 법칙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통해 우리의 길을 열어놓으시고 계시와 말씀을 통해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연합은 우리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손은 자기를 위해 수고하지 않으며, 눈은 자기를 위해 보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법칙입니다. 이것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언약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며, 그분의 뜻을 이루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간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사는 삶으로 엮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악한 죄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분의 창조법칙을 자꾸 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는 창조의 법칙과 같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그들 안에 성령을 두어 율례를 지켜 행하도록 이끄실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거룩한 길을 만드시고, 그들의 행보를 방해하거나 그릇 치우치게 만드는 위험 요소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지 않고 방황하며 그분의 율례에서 벗어날 때 우리를 다시 바른길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에서 벗어났을 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분께서 여신 바른길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길에서 벗어난 언약의 백성들에게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와 말씀을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언약의 백성들은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어둠에 광명을 비춰주시고 굽은 길을 곧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잠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예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행하실 선한 일을 예비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 중 하나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입니다.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할 자가 구별되었다는 뜻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정론과 그 결과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 어렵지만, 도움이 될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감은 흑감, 대봉, 단감, 둥시, 수양감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단감도 차량 단감, 시브르크 단감, 부유 단감, 비단 단감 등 여러 종류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어떤 감도 ‘나는 왜 이 종류로 만들었습니까?’라고 따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창조주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예정과 선택에 대한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도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가 예정되고 선택되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감이 부유 단감인지, 비단 단감인지는 심어서 열매를 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한 생명을 복음으로 심고 삶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애써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도록 예비하심’에 대한 해답 또한 찾아야 합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듯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그렇게 살도록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야 할 생명의 길은 정해져 있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확증하심으로써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곧 주님의 권세와 특권과 능력을 함께 소유하며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을 누릴 자격과 특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단지 구원받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아들의 영을 보내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능력을 발휘하도록 성령께서 도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고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나타날 수 있도록 정결함과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비록 다투고, 비틀거리고, 때로는 넘어지지만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는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건드리거나 끊을 수 없는 강력한 사슬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롬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 하리요.’
하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가 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를 사수하느라 ‘기독교는 생명의 도’라는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그것을 ‘주의 도’라고 이야기했고,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2장(2, 21절)에서 그것을 ‘의의 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본받아 우리의 말과 행위와 생각을 그분께 복종시키는 자들입니다. 요일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이 진리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예수 안에서 창조하셨고,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시며 선하게 살도록 강권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즉 우리는 아버지의 목적과 방법과 뜻을 따라 살도록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연단과 훈련을 받으며,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는 징계를 받거나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만 시련을 겪고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2:6)’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셨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성향의 사람으로 만드셨고 그분의 자녀로 입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로서 우리를 훈계하시고 단련하십니다. ‘아버지로서’라는 말 안에 우리 삶의 모든 축복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길만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 이유는 그 길은 생명과 진리의 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목적을 이루어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그 길이 아닌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곳에서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곳은 마치 풀을 먹는 토끼가 고기를 먹어야 하고, 고기를 먹는 사자가 풀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불편합니다. 결국 구원받은 백성들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복을 누리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다음의 7가지를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첫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정확 무오(無誤)한 규칙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르침에 복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오염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성화(聖化)가 없으면 주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거룩해지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셋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넷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다섯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와 맞서 싸우고, 죄지은 것을 슬퍼하며,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섯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일곱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교회의 모든 행정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7가지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한마음과 한길’을 주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마음과 한 길’이라는 새 언약은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좁은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을 정하고 그 길을 걸어갈 때 비로소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어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부자가 되거나, 형통하거나, 치유되거나, 원하는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입술로 ‘응답 받았다’라고 고백하도록 우리를 섭리하십니다. 이 말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응답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감사하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이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우리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응답하십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은 한마음을 품고 한길로 가는 것입니다. 한마음을 품고 한길로 갈 수 있도록 서로 돕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