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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식탁혁명] <1> 제 땅의 제철 음식- 우리 식단의 푸드 마일리지 | ||||||||||||||||||||||||||||||||||||||||||||
'농민 - 소비자 거리' 가까울수록 안전한 먹을거리 | ||||||||||||||||||||||||||||||||||||||||||||
식단 국제화로 수입산 재료 '급증' | ||||||||||||||||||||||||||||||||||||||||||||
부산일보 2008/09/10일자 038면 | ||||||||||||||||||||||||||||||||||||||||||||
식탁 위에 노란 바나나가 놓여 있다. 바나나 하나를 떼먹다 옛날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에는 바나나가 귀해서 구경하기도 힘들었는데, 세상 좋아졌어…." 먹을거리가 예전에는 생각도 못할 만큼 다양화되고 세계화되고 있다. 무심코 먹는 이 다양한 먹을거리는 어디에서 나오며,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치는지 살펴보았다.
·중국산 당근부터 호주산 쇠고기
장을 보는 주부 박민숙(32)씨와 동행했다. 박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할인점에 쇼핑하러 간다. 고기, 생선, 야채, 과일 등으로 카트는 가득해졌다. 이날 장을 본 가격은 총 7만8천850원. 박씨가 이날 쇼핑한 물건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를 계산해 보았다. 푸드 마일리지는 수출국의 수도와 서울을 연결하는 직선거리로 계산하는 방식을 취했다.
농산물 중에는 가격이 싼 중국산이 많았다. 중국산 마늘, 양파, 당근, 생강, 브로콜리가 907㎞를 날아왔다. 단호박은 뉴질랜드에서 한국까지 8천830㎞를 날아와 식탁 한쪽을 차지했다. 수산물 가운데는 노르웨이산 연어와 고등어가 8천180㎞의 바다를 건너왔다. 아시아 각국산도 적지 않아 일본산 명태가 1천214㎞, 태국산 새우와 해파리가 3천649㎞, 인도네시아산 꽃게가 한국까지 5천244㎞를 이동했다.
과일의 경우 필리핀산 파인애플과 바나나가 2천598㎞, 뉴질랜드산 키위는 8천830㎞, 미국산 오렌지는 9천548㎞를 날아왔다. 칠레산 포도는 와인과 함께 이날 박씨가 구매한 상품 가운데 가장 먼 2만361㎞를 날아왔다. 호주산 쇠고기는 8천283㎞를 이동해 식탁에 올랐다. 이날 장바구니의 총 마일리지는 11만6천60㎞였다. 19개 품목으로 나눠 본 평균 마일리지는 6천108㎞. 이날 식탁에 오른 농수산물은 평균 6천108㎞를 날아왔다. 한반도 남북 총 연장 1천㎞의 6배가 넘는 먼거리에서 날아온 것들이다.
·가격차에 푸드 마일리지 급증
모든 식재료를 수입산으로만 채우는 경우는 드물지만 수입산의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주부 류미영(37·부산 사하구 하단동)씨는 "가능하면 국산을 먹으려고 노력하지만 국산과 수입산의 가격 차이를 보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모임이 있어 10명 정도가 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호주나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사 먹는다"고 말했다.
주부들도 멀리서 날아온 수입산에 점차 둔감해지고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산 오렌지, 필리핀산 바나나, 호주산 쇠고기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재래시장도 예외는 아니지만 갈수록 소비자들에게 영향력이 커지는 할인점에 특히 수입산이 많이 늘고 있었다. 한 할인점 관계자는 "국산과 수입산은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가격을 중시하는 할인점이 값싼 수입산을 외면하기는 힘들다. 또 식단이 국제화되며 재료 자체가 우리 것이 아닌 것들이 많다"고 해명했다.
세계화로 인해 전 세계에서는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시카코의 한 도매시장 통계는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이동거리가 농산물 ㎏당 2천400㎞로 1980년대보다 25% 이상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영국에서 소비되는 먹을거리도 20년 전보다 평균 50% 더 멀리 이동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가격만 싸다면 모든 것이 용서될까? 여기에 대해 건국대 경제학과 윤병선 교수는 "재래시장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갖춘 할인점이 먼거리의 값싼 상품을 가져오지만 결국 부산지역 경제를 몰락시키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반면 직거래를 통해 로컬푸드 운동을 펼치면 중간 유통과정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점차로 확보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음식물
할인점에서 판매하는 한 회사의 해물샤브샤브 제품을 열어보았다. 밀은 미국, 팽이버섯은 국산, 관자는 북한, 주꾸미 갑오징어 피조개 꽃게는 베트남, 새우는 태국산이었다. 이 제품의 원산지를 어디로 봐야 할까?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저렴한 재료만 끌어모아 판매하는 다국적 상품도 늘고 있었다.
이 결과 예전에 비해 싼 가격으로 지구촌의 다양한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했는지 잘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먹을거리가 많다.
이와 반대로 지난 2007년 부산의 ㈔생태유아공동체 물류팀에서 자체적으로 공급하는 농수산물의 푸드 마일리지를 조사한 결과를 살펴 보았다. 경남 합천에서 생산된 양파와 마늘 딸기 토마토가 126㎞, 거창에서 생산된 포도가 206㎞, 거제산 멸치와 새우가 207㎞였다. 조사한 53개 품목 가운데 기장군 철마면에서 지은 쌀이 14㎞로 가장 가까왔고, 다시마가 강원도 강릉에서 생산돼 444㎞로 가장 멀었다. 생태유아공동체 김영현 사무국장은 "로컬푸드 운동은 도시인들이 도시 인근에서 누가,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들을 먹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과의 거리를 좁혀야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까? 장거리 운송과 장기간 저장을 하는 농산물은 방부제와 첨가제에 의존, 생산지에서 식탁에 이르는 여정에서 온갖 종류의 감염 위험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천주교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김현정 사무국장은 "성장 과정에서 농약은 어느 정도 씻기기도 하지만 긴 운송기간에 살포하는 농약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배 안의 컨테이너 상자 속에서 썩지 않게 하기 위해 뿌리는 농약과 방부제의 위해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기농 빵집을 운영하는 박경란씨는 "장마철에 넣어둔 뒤 깜빡 잊었던 유기농 밀에서는 곰팡이가 피었는데 수입 밀은 뽀얀 채 곰팡이 하나 없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절대로 수입 밀가루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협 관계자들은 "거리가 멀수록 식품안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일수록 소비자들의 검역과 통제가 보다 용이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신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현 사무국장은 "농산물은 가까운 곳에서 가져다 먹어야 한다. 우리는 먹을거리를 주로 경상도, 멀어야 충청도에서 가져온다"고 말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얻기 위한 방법은 농민과 사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것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ilbo.com
수입산 구매품목 마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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