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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을 지킴(21-23)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몸은 풍요로운 땅에 살았지만, 하지만 그들에게 영적으로 그곳은 더 고통스러운 땅이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는 영적으로 출애굽의 감격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 ‘광야’였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유월절을 지키려고 합니다.
21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21-23)
요시야의 세 번째 개혁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백성들에게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여호와께서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보호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기념 절기입니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질이 가장 중요한 3대 절기인데, 유월절이 여호와의 구원을 가장 잘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22절에서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다고 언급합니다. 이것은 이 시기에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고발이라기보다는, 요시야 18년에 지킨 유월절이 가장 여호와의 말씀대로 지켜진 유월절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역대하 30장에서 히스기야도 유월절을 지켰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와 다른 부분도 있는데, 출애굽기의 유월절은 가족 단위로 이루어진 가족 축제라면, 요시야 시대의 유월절은 왕이 주최하는 축제로 지켰고 예루살렘에서만 행해졌습니다. 요시야가 이렇듯 철저하게 유월절을 지킨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됩니다.
첫째는 유월절 기념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이제라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지켰을 것입니다.
요시야 개혁에 대한 평가(24-25)
참된 믿음은 이해타산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자신에게 올 대가를 계산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러한 순전한 믿음을 함께 사모해야 합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도 유다가 소생할 길이 전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순가까지 할 도리를 다했습니다.
24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5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24-25)
이 단락은 요시야 개혁에 대한 열왕기 저자의 평가입니다. 요시야는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서 신접한 자, 점쟁이, 드라빔, 우상과 모든 혐오스러운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였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닌 이방신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들과 도구들로 이스라엘에서 흔히 이루어지던 종교적 관행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신명기 18:9-12을 따라 이 우상들을 모두 제거한 것입니다. 여기서 요시야가 이런 일을 한 것은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의 말씀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평가합니다. 요시야는 일상생활 속에 뿌리 내린 종교적 관행들도 모두 제거함으로써 하나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25절은 열왕기 저자의 요시야 왕에 대한 평가로 이스라엘 역사상 요시야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자가 없다고 평가합니다. 이전에 열왕기하 18:5에서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의 전과 후의 유다 왕들 중에 그런 자가 없었다고 평가되었습니다. 이제는 요시야처럼 온 맘과 온 영혼을 다해 여호와께로 돌아온 자가 없다고 평가합니다.
여호와께 돌아온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는 것으로 요시야가 우상과 산당과 제단을 파괴하고 이방 제사장들을 제거하여 일상의 모든 이방 관행을 없앤 것이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의 길이었습니다. 회개란 말로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열왕기 저자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
유다의 심판을 확고히 선언함(26-27)
하나님의 사랑은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분의 은혜는 죄를 묵인하는 불의한 은혜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를 북 이스라엘처럼 심판하신다고 선언합니다.
26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7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26-27)
요시야의 철저한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유다를 용서하실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의 기도를 외면한 적이 없으십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도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와 통곡에 귀를 기울이시고 15년 더 살게 해주셨습니다.
심지어 가장 악한 왕이라고 평가받은 아합 왕도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합에게 내리기로 한 벌을 아들 세대로 미뤄주셨습니다(열왕기상 21:29), 요나서에서는 앗수르의 니느웨 왕이 회개하며 금식하고 베옷을 입었을 때 니느웨에 대한 심판 선언을 철회하십니다.
출애굽기의 황금 송아지 사건에서도 모세와 백성들의 회개에 마음을 돌이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요시야의 온전한 회개를 보면 하나님께서 므낫세 왕 때 유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 선언(열왕기하 21:12-15)을 돌이키실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26절은 그런 우리의 기대를 저버립니다.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해서 내린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시야는 완전하게 돌이켰지만 하나님께서는 돌이키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므낫세는 하나님께서 가장 악하다고 평가하시며, 그로 인해 예루살렘과 유다를 그릇을 씻어 엎어놓는 것 같이 모두 제거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언을 돌이키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7절에서 유다도 내 앞에서 제거할 것이고, 선택한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여호와의 성전도 버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동시대에 활동하던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한 말씀에도 유다의 심판이 정해졌기 때문에 모세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간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므낫세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예레미야 15:14). 모세와 사무엘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이미 유다에 대한 심판의 추는 너무 기울어졌기에, 요시야의 개혁으로 유다 전체를 구할 수는 없었고, 다만 요시야 자신만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시야의 죽음(28-30)
하나님께서는 귀하고 선한 사람들 일수록 빨리 데려 가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로운 요시야 왕은 39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의 모습은 왕의 죽음마저 축복이 될 정도로 유다에게 참혹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8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30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더라(28-30)
애굽의 바로 느고는 앗수르 왕을 지기 위해 출정하였고, 이것이 여의치 않자 유다 지역을 점령하려고 방향을 바꿉니다. 요시야는 이를 막기 위해 므깃도로 출정하였다가 애굽과 전쟁하였고, 그 와중에 요시야가 죽습니다.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한 지 13년 만에, 그는 39세의 나이로 전쟁터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장사됩니다. 전쟁터에서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안한 죽음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보지 않았고, 굴욕을 당하지도 포로 끌려가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왕들에 비하면 그는 평안히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사히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조상들의 무덤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시신을 가져와서 그의 무덤에 장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그가 평안히 무덤에 묻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요시아의 죽음 이후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여호아하스는 후에 애굽에서 죽습니다. 요시아를 실패한 개혁자로 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가 존재했기 때문에 유다의 멸망을 31년 동안 유예할 수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과 그의 존재로 유다의 멸망을 29년간 미룰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요시야를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보다는,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심판의 추가 이미 기울었고, 그것을 역전시킬 만한 상황이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시대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하나님만을 올바로 섬겼으며, 그로 인해 그의 치세 동안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을 늦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요시야의 역할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고 회개한 왕이라는 명예를 주셨습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사람들’ 속에서 가끔 요시야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들입니다. 어떤 이익으로 보상받지 못해도 그 길이 옳기에 걷는 사람이 되어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