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798
■ 3부 일통 천하 (121)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4장 의협(義俠)의 길 (3)
- 맹상군(孟嘗君)이 돌아왔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지난날 일제히 떠나갔던 식객(食客)들이 다시 맹상군의 저택으로 몰려들었다.
다시 제(齊)나라 재상직에 복직한 맹상군(孟嘗君)은 그들에 대해 이만저만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풍환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나는 일찍이 선비들을 대접함에 한 번도 성의를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소. 그런데 그들은 내가 파직당하자 눈 깜짝할 사이 내 곁을 떠나버렸소. 이제 나는 선생의 힘으로 다시 재상직에 올랐소."
"그러자 저들은 언제 내 곁을 떠났냐 싶게 개미 떼처럼 몰려들고 있소. 저들은 정말 뻔뻔스러운 자들이오. 나는 저들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오."
그러자 풍환(馮驩)이 별안간 맹상군 앞으로 와 큰절을 올렸다.
맹상군(孟嘗君)이 영문을 몰라 물었다.
"선생은 선비들을 대신하여 내게 사죄의 절을 올리시는 겁니까?"
풍환(馮驩)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지금 절을 올린 것은 선비들의 죄를 대신 사과하기 위함이 아니고, 군(君)께서 말을 잘못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깨우쳐드리기 위함입니다."
"제가 실언(失言)을 했다니요?"
"무릇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치(理致)라고 합니다. 군(君)께서는 그 이치를 아십니까?"
"나는 어리석어 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아듣지 못하겠소."
"그렇다면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죽게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富裕)하고 귀하면 따르는 사람이 많고, 가난하고 천(賤)하면 따르는 사람이 적은 것 또한 변할 수 없는 세상사의 이치(理致)입니다."
시장을 보라.
날이 밝으면 사람들은 어깨를 밀쳐가면서까지 다투어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어찌 되는가.
아무도 시장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아침에는 기대하는 물건이 잔뜩 쌓여 있고, 저녁이면 바라는 물건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아셨습니까? 군(君)께서 지위를 잃었을 때의 일을 가지고 선비들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계신다면, 그것은 밤중에 시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바라건대 군께서는 저들을 예전처럼 대우해주시기 바랍니다."
풍환(馮驩)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이었다.
맹상군(孟嘗君)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더니 풍환을 향해 절을 크게 두 번 올렸다.
"삼가 선생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진정한 협(俠)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랬다.
풍환(馮驩)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처세와 행동은 단순히 재주로 여기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숙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맹상군(孟嘗君)이 거느린 식객들은 지금까지 거의 '계명구도(鷄鳴狗盜)'와 같은 잔재주를 자랑하는 무리였다.
- 주인을 위해 자신의 재주를 발휘한다.
이것을 의협(義俠)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풍환(馮驩)은 어떠한가.
맹상군(孟嘗君)이 재상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라 있을 때 그는 과감히 후일을 위해 차용 증서를 불태워버렸다.
참된 용기다.
아울러 모든 재산과 권한을 잃었을 때 홀로 남아 그를 보좌했으며, 나아가 예전의 영화(榮華)를 되찾게 해주었다.
참된 의리요, 참된 지혜다.
- 이것이야말로 진짜 의협(義俠)이 아니겠는가.
맹상군(孟嘗君)은 자신을 떠난 식객들에게 침을 뱉음으로써 그들에게 풍환의 참된 의협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풍환(馮驩)은 모든 것을 잊고 예전에 떠나갔던 식객(食客)들을 받아들이라고 충언했다.
- 그것이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맹상군(孟嘗君)은 눈앞으로 하늘이 열리는 것 같은 밝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해온 의협(義俠)이 얼마나 잘못된 의협이었는가를 깨달았던 것이다.
'이치(理致)대로 따르는 것. 아아, 나는 그동안 너무 작았다. 이것이야말로 성인들이 말한 대도(大道)가 아니겠는가.'
두 번에 걸쳐 맹상군을 승상으로 삼으려다 실패한 진소양왕(秦昭襄王)은 그후 맹상군을 완전히 포기했다.
대신 그는 맹상군을 죽이라고 간언한 바 있던 누완을 승상에 임명했다.
그러나 누완(樓緩)은 그다지 유능하지 못했다.
더욱이 조나라 출신이었다.
천하 패업을 노리는 진소양왕과는 뜻이 맞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릇의 크기가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진소양왕은 일 년이 안 되어 그를 해임시키고 위염(魏冉)을 새로이 승상에 임명했다.
위염(魏冉)은 진소양왕의 외숙이다.
진소양왕의 어머니는 초(楚)나라 여인으로 원래 미팔자(芈八子)라 불리었으나 아들 진소양왕이 즉위하면서 선태후(宣太后)라 불리기 시작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즉위 당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선태후가 섭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태후의 친족들이 대거 조정에 진출했다. 선태후의 남동생인 위염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위염(魏冉)은 진소양왕과 배포가 맞았다.
- 강력한 군사력만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
그는 백기(白起)가 유능한 장수임을 알고 그를 중용하라고 진소양왕에게 간했다.
이때부터 진(秦)나라는 백기를 앞세워 매년 주변국을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사기(史記)>의 <진본기>를 보면 위염(魏冉)이 승상으로 임명된 후 진나라의 출병이 얼마나 잦았는가를 알 수 있다.
진소양왕 13년, 향수(向壽)가 한나라를 정벌하여 무시 땅을 빼앗다.
또 좌경(左更) 백기가 신성을 공략하였다.
진소양왕 14년, 좌경 백기(白起)가 이궐에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여 24만 명의 목을 베고 공손희(公孫喜)를 사로잡았으며 5개 성을 점령하였다.
진소양왕 15년, 대량조 백기(白起)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원(垣) 땅을 빼앗았다가 도로 돌려주었다.
진소양왕 16년, 위나라 지(軹) 땅과 등(鄧) 땅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출병할 때마다 승전 소식이 날아들자 진소양왕의 기쁨은 여간 크지 않았다.
그는 장수 백기(白起)에게 큰 상을 내리고 국위(國尉)로 삼았다.
국위는 무관직의 하나로, 후일 태위(太尉)라는 이름으로 변한다.
승상 위염(魏冉)의 공도 적지 않다고 하여 양(穰) 땅을 식읍으로 내리고 후(侯)에 봉했다.
양 땅은 지금의 하남성 등현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양후(穰侯)' 라고 불렀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