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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성령님이 품으시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창세기 1:2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대부분 두 가지 방법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는 급속한 변화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변화가 너무나 강력하여 누가 봐도 그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확연한 변화입니다. 충격적인 변화입니다.
저는 성령을 받고 급속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제 인생의 분기점은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인 1981년 6월 13일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교회 선배들과 삼각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불같은 성령님을 체험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제 혀가 돌아가면서 방언이 터졌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제 짧은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가면서 회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온 밤을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밤 10시부터 시작 된 회개가 그 다음 날 새벽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기도 중에 설악산보다 큰 바위가 보였습니다. 바위 꼭대기에서부터 무지개빛 십자가자가 내려오더니 제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의 가슴에 불붙은 십자가가 하나씩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날 저는 불같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은 변화 되었습니다. 저의 변화가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그 변화를 가족들도 알았고, 친구들도 알았습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도 저의 변화를 눈치 챘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종래시간에 저를 일으키더니 제가 변화 되었다고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저는 성령체험으로 급속한 변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점진적인 변화입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일생동안 계속해서 조금씩 변화가 진행 됩니다. 물론 급속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도 이런 성화의 과정을 통과합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시며 그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 후에 지속적으로 마음과 생각 그리고 육체와 생활까지 서서히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먼저 재료를 만드셨습니다. 그 때 지구의 상태를 세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혼돈, 공허, 흑암’입니다. 땅이 혼돈했습니다. 무질서했다는 말입니다. 공허했습니다. 텅 비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빛이 없는 어두움이 가득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세상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여기서 수면은 창조된 재료가 액체 상태로 뒤엉켜 있었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이 운행하셨다는 말은 닭이 달걀을 품는 것처럼 성령께서 세상을 품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암탉이 달걀을 21일 동안 품으면 병아리가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옵니다. 본문에서 성령님께서는 암탉이 달걀을 품듯이 세상을 품으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개인이나 공동체를 품으시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설교는 창세기 1장을 중심으로 성령님께서 암탉이 달걀을 품듯이 품으시면 일어나는 변화를 다루려고 합니다. 세 가지 변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혼돈이 질서로 변합니다.
태초에 천지의 재료가 만들어 졌을 때 세상은 혼돈한 상태였습니다. 무질서하게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세상을 성령님께서 암탉이 달걀을 품듯이 품으셨습니다. 그랬더니 혼돈이 질서로 변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품으신 세상은 질서가 있습니다. 자연을 보십시오. 얼마나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뉴욕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과학자 크레시 모리슨은 ‘생명의 신비’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7가지 이유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지구의 자전 속도와 태양과의 거리만 가지고도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작은 팽이도 돌리지 않으면 멈추는데 변함없이 도는 지구를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낍니다.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낮이 옵니다. 낮이 지나면 역시 어김없이 밥이 옵니다. 지구의 자전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우주를 품으셔서 만들어진 질서입니다.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합니다. 지구의 적도에서의 자전 속도는 약 1,670km/h입니다. 자동차를 100km/h로 달려도 엄청 빠른 속도인데 그보다 16배나 빠른 속도로 지구가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멀미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옵니다. 어김없이 4계절이 돌고 돕니다. 기가 막힌 질서입니다. 성령님께서 우주를 품으셔서 만들어진 질서입니다. 지구의 공전 때문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속도는 약 107,000km/h입니다. 초음속 제트기보다 44배 빠릅니다. 그런데도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은 지구 밖으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질서입니다. 성령님께서 품으신 결과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동차의 수는 2019년 7월 기준으로 볼 때 2,344만대입니다. 굉장히 많은 숫자이지만 하늘의 별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는 엄청납니다. 2019년에만 교통사고가 229,600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가 3,349명이었고 부상자가 341,712명이었습니다. 우주 안에는 엄청난 별들이 있습니다. 우라가 사는 은하계의 별들을 세는데만 2천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데 사고 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와 질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품으셨기 때문에 만들어진 질서입니다.
몇 년 전에 러시아에서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흉악범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유층 사람들은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력한 법을 만들어서 혼돈 된 나라를 다스려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질서가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사형까지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북한이 질서 있는 나라가 됩니까? 안 됩니다. 도둑놈들이 판을 치고 심지어 출산한 엄마가 갓난아이를 잡아먹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신앙을 말살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시킨 나라들의 모습은 정말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성령님께서 암탉을 품듯이 국가를 품으실 때 질서 있는 나라가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보십시오. 혹시 혼돈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까? 가정생활 어떻습니까? 사회생활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이나 생활 그리고 대인관계나 물질관계는 어떻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혼돈 속에 계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러시아나 북한에서 강력한 법을 만들어서 질서를 잡으려고 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고 전보다 더 노력해서 질서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까?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창세기 1장의 원리를 따르십시오. 성령 하나님을 자신의 혼돈 된 인생 속으로 모시십시오. 성령님의 품으심을 믿으시고 성령께서 마음속에 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순종하십시오. 죄를 지적하면 회개하시고, 잘못된 습관을 말씀하시면 고치십시오. 내 힘으로 살지 마시고 그분의 힘으로 살아보세요. 그러면 성령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급속히 역사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천천히 지속적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인생을 혼돈 속에서 보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질서 있는 인생을 살게 된 간증입니다. 오래 전에 한 사람이 장마철에 한강에 물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집도 떠내려가고, 돼지도, 통나무도 온갖 것들이 다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자가 떠내려가면서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 지르는데 손가락마다 금반지들이 반짝 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여자는 다급하니까 금반지만 모조리 챙겼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는 여자에게로 생명을 걸고 수영을 하여 들어갔습니다. 그 여자를 구한 것이 아니라 금반지가 탐나서였습니다. 어떤 손가락의 반지는 잘 뺏는 데 어떤 손가락의 반지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가 여자의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금반지 금 목걸이를 다 빼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일로 그 사람의 인생은 혼돈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날 밤부터 자리에 눕기만 하면 “으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금반지를 하나씩 팔아 술을 마셨습니다. 어느 날은 밤새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그 사람이 자다가 깨어 보니 술집이었습니다. 목마르기에 옆에 있는 그릇의 물을 마시고 보니 재떨이에 있는 물이었습니다. 담배꽁초, 술 찌꺼기, 침 뱉은 것 등의 혼합물을 마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짐승이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혼돈 자체였습니다. 그는 터덜터덜 공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새벽부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나?’ 하고 따라 들어가 보니 교회 새벽기도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앉아서 목사님 설교를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떤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들면 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강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평생 강도짓을 했어도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교였습니다. 그는 설교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날부터 교회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평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추악한 죄인을 성령님께서 품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를 품으시자 그는 자신의 죄를 십자가를 통해서 해결하고 혼돈된 인생, 무질서한 인생이 질서 있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함께 성령의 도움을 구해봅시다. “성령님 이제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성령님이 원하시는 대로 명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오셔서 저를 품으시고 저의 인생에서 혼돈이 물러가고 성령님이 주시는 질서가 임하게 하옵소서” 성령님은 혼돈된 인생을 질서 있게 만들어주십니다.
2. 공허가 충만으로 변합니다.
공허라는 말은 속이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물질의 재료는 있으나 쓸만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액체와 같은 것들이 뒤엉켜 있으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 세상을 성령님이 품으셨습니다. 그랬더니 공허가 충만으로 변했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던 것들 가운데 땅도 바다도 나무도 꽃도 풀도 새도 짐승도 생기고 그 세상을 다스리는 인간도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공허감이 있습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을 텅 비어놓고 삽니다. 공허합니다. 공허감이 가득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에 무엇인가 채워도 잘못된 것들로 자기만족에 빠져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짜 돈을 지갑에 가득 집어넣고 만족해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는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나 실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자신의 두둑한 지갑을 만지며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지만 그를 보시는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요? 아마 주님은 “이 어리석은 사람아! 왜 그렇게 미련하냐, 네가 가진 것이나 그 아이가 가진 것이나 같은 줄 모르느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그는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창고에 곡식이 가득차고 남았습니다. 그는 다른 창고를 하나 더 지으면서 자신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는 물질 때문에 자기만족에 빠졌습니다. 그는 자기인생이 충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야” 주님은 그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자는 다른 것으로 가슴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가슴의 공허감이 충만으로 바뀌는 것은 환경과는 상관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부족함이 없다한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의 내면을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만족했던 것입니다.
가슴에 주님이 오셔서 주인 되셔야 진짜 충만 입니다. 에베소서 1:23에서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온 우주를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에 성령으로 충만하면 만족합니다.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성령으로 느끼는 평안입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어미 품안에 있는 새끼 새가 만족하고 행복한 것처럼 성령충만한 사람의 가슴에는 환경과 상관없는 충만감이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한 자매하고 카톡을 주고받았습니다. 과거에 저희 교회에 나왔었는데 교회를 떠난 후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영적인 방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떤 한 교회를 정하고 정착하려고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교회가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아쉬워하며 제게 연락을 했습니다. 제가 그 자매에게 우리 교회에서 했던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여행 제2차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영상을 보내주었습니다. 그 자매가 그 영상을 보고 자신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탑3라는 답장을 했습니다. 그 후에 자매의 요청에 의해서 제가 다시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여행 제1차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영상을 보내줬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행복했던 추억이라는 답장을 남겼습니다.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답장을 남겼습니다. “은혜 안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해. 사람은 변해도 주님은 언제나 동일하시잖아. 나는 주님이 너를 무척 많이 많이...사랑하신다고 믿어” 제가 이 자매와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이 자매가 우리 교회를 출석하던 지난날을 돌아봤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자매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은 상처들 때문에 아파하던 자매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받은 상처도 많고 자기 마음에 이미 있는 상처 때문에 스스로 받은 상처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자매의 마음에는 슬픔이 있었고 저는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 자매가 주님 안에 있지 못할 때 그 마음은 허전했습니다. 공허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마음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한 동안 저희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때 이 자매는 순간순간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자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탑 3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 자매의 공허한 마음에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를 하시니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가 그때의 믿음으로 돌아가면 다시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마음이 공허가 아닌 충만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성령님은 공허한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충만하여 마음에 공허가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3. 어둠이 빛으로 변합니다.
그 당시 세상에는 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캄캄함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품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 빛이 임하고 어둠은 물러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 속에 어둠이 가득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상상하는 것이 어둡습니다. 성령님의 품으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품으시면 그 마음에 빛이 임하여 어둠이 물러갑니다. 어떤 사람은 행동에 빛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두움만 행합니다. 그러면서도 양심에 가책이 없습니다. 어둠의 행동만 하기 때문에 주변인들이 진절머리를 칩니니다. 빛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 마음에 어둠이 가득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성령님께서 품으시면 빛이 임합니다. 어둠이 사라집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는데 박영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마음에 어둠이 가득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빛 가운데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분은 15살 때부터 술을 마셨고, 성격은 아주 난폭했습니다. 어느 날 처갓집 일곱 식구를 다 칼로 찔러 죽이고 휘발유로 불태워 버리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마음에 빛이 없고 어둠이 가득하니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휘발유 한 통을 사가지고 처갓집에 불을 지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님께 인사나 드린다고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잠이 안 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깊은 밤중에 창문에 환한 빛이 비치더니 황금수레가 방안에 나타났습니다. 수레에서 아름답고 건장하게 생긴 천사 둘이 자기를 보고 올라타라고 하더랍니다. 그가 황금수레를 타고 천국을 가는데 좌우에 향내 나는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했습니다. 천국에 가보니 성도들이 들어가 살 찬란한 집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예수님 잘 믿다가 암으로 돌아가신 작은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지만 찬란한 옷을 입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지옥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지옥에 가니 이 세상에서 살 때 예수님 믿는 것을 지독히 핍박하고 괴롭히던 아버지가 계시더랍니다. 아버지는 지옥에서 큰 구렁이 같은 것에 칭칭 감겨서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천국과 지옥을 구경시켜 준 후에 “재림 때가 심히 가깝기 때문에 너 같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증거 하게 하려고 하니 이제는 믿겠느냐?”라고 하더랍니다. 그 후에 그는 다시 본 의식으로 돌아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앙생활은 시작했지만 술이 너무나 먹고 싶었습니다. 본래 술꾼이었기 때문에 술이 당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그는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술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술집에 들어갔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귀신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가 보니 무시무시한 구렁이들이 술 먹는 사람들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놀라서 술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절대로 술을 안 마셨고 완전히 변화된 생활을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곡성 다니엘 수양관의 원장을 지낸 박영문 목사님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그 분의 상태는 창세기 1:2의 상태였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성령으로 품어주셨더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흑암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품으시면 어두움이 빛으로 변화됩니다.
성령님이 품으시면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데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5천 년 역사 동안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한 나라였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는 창세기 1:2의 상태였습니다. 최근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자매 두 명이 얼굴을 드러내고 동영상을 찍어서 sns에 올렸는데 그의 사촌들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두 자매에게 명예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끔직한 일입니다. 빛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어둠이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1945년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우리 나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 우리 국민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강대국의 원조로 하루하루를 살던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75년 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경제만 발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 하는 선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런 대한민국의 발전의 원인을 어떤 사람들은 국민들의 근면함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위대한 지도자의 출현이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영적인 면에 있습니다. 창세기 1:2에서 역사하셨던 성령께서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나라를 품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국민들은 교회로 모여들었고, 삶에 지친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암탉이 달걀을 품듯이 성령으로 이 나라를 품으셨습니다. 성령께서 품으시니 교회는 부흥했고 국가 산업은 발전했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하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는 배금주의에 빠졌고, 목회자들은 혼합주의에 빠졌고, 신자들은 세속주의에 빠졌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성령님이 품어주신 결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잘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먹고 살만하니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다고 교만에 빠져있습니다. 우리가 이 교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빛은 점점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흑암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없던 시대는 어둠이 가득했습니다. 죄를 범하면서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심판 중에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찾으니 하나님은 다시 그들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빛이 임할 때 그들은 평안했고 번영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됩니다. 다시 번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교회가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다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자신의 힘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 속에 들어온 어둠을 자신의 노력으로 없애려고 결심을 하고 전보다 더 노력해 봅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교회를 떠납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캄캄한 방에서 어둠을 몰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손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그 방 안에서 어둠을 물리치는 방법은 빛을 밝히면 됩니다. 성령님을 모셔드리고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오. 신앙생활을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해보십시오. 성령께서 예수님의 빛을 비추어 우리 속에 있는 어둠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창세기 1:2을 통해서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살펴봤습니다. 성령님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세상을 품으시니 혼돈이 질서로, 공허가 충만으로, 어둠이 빛으로 변화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대한민국에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 주일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성령강림절은 성탄절이나 부활절만큼 중요한 절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믿음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으며, 성령의 인도와 도움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기도에 집중합시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셔서 거기 모인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어주셨고,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역사를 위하여 전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이번 주간에 기도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성령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나는 성령님을 사모합니다. 성령님은 나의 혼돈을 질서로 바꿔주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나의 공허를 충만으로 바꿔주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나의 어둠을 빛으로 채우시는 분입니다. 나는 내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