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경기도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였던 안성
인기멤버
hanjy9713
2023.12.30. 20:39조회 0
댓글 0URL 복사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였던 안성
『택리지』에 “수원 동쪽은 양성과 안성이다. 안성은 경기와 호남 바닷가 사이에 위치하여 화물이 모여 쌓이고 공장(工匠)과 장사꾼이 모여들어서 한양 남쪽의 한 도회가 되었다”라고 쓰여 있다. 고려 때 사람인 강호문이 “용성 깊은 지역에 외로운 성이 있는데, 고을 이름은 간의(諫議)의 명(名) 자와 같다”라고 노래한 양성과 “산이 많고 들판이 적다. 삼남 지역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서울을 지키는 요충지다”라고 실려 있는 죽산군은 1914년 군면 통폐합 당시 안성군에 통합되었다.
고구려 때 내혜홀(奈兮忽)이라고 불리던 안성이 군으로 승격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였다.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이 남쪽으로 내려갈 때 양주, 광주 일대의 사람들이 홍건적에 맞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안성 사람들은 항복하는 체하며 연회를 베푼 다음 취한 홍건적 장수 여섯 명을 베어 죽였다. 그 뒤로 홍건적이 남쪽으로 내려올 엄두를 못 냈고 그 공을 높이 산 공민왕이 군으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안성군의 땅을 두고 조선시대의 문인 최부는 “산은 동북쪽을 막아서 저절로 성이 되었고 지역은 서남으로 트였는데 기름진 들판이 질펀하다”라고 읊었다. 그의 말처럼 임꺽정의 스승인 병해대사가 머물렀던 칠장사가 있는 칠장산에 올라서면 가까이에 칠현산, 덕성산이 펼쳐지고 먼발치에 남사당패의 근거지였던 청룡사를 품고 있는 서운산이 보인다. 그리고 비봉산, 도덕산, 청량산을 넘어서면 질펀하게 안성평야가 펼쳐진다.
안성의 국사봉은 안성리 삼죽면 기솔리에 있다. 국사 신앙의 터로 유명한 이곳 국사봉 자락에는 미륵사가 있고, 그 미륵사에는 높이가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쌍미륵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6호)이 기솔리를 굽어보며 서 있다.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지방 양식으로 조성된 거구의 석불들은 안성 일대에 여러 기가 있는데, 이곳에서 국사봉 정상 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국사암이 있고, 대웅전 뒤편에 궁예미륵이라 불리는 아담한 미륵 3기가 모셔져 있다.
미륵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미륵보다는 문인석에 가까운 석인상을 닮은 이 불상은 어디 하나 상처 입은 데 없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정작 어떠한 연유로 궁예미륵이라 불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곳 죽산 지방이 신라 말기에 기훤이 봉기했던 곳이고, 그 후 궁예는 태봉국을 세워 이곳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미륵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궁예의 꿈은 깨졌고, 그가 세웠는지 아니면 그 뒤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세웠는지 알 길이 없는 궁예미륵만 남아 바람 부는 산정에서 세상을 굽어보고 있을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양 남쪽의 큰 도회지였던 안성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4 : 서울·경기도, 2012. 10. 5., 신정일)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
좋아요0
이 글을 '좋아요'한 멤버 리스트
댓글0
블로그/카페 공유수0
공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