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사가 오랜 협상 끝에 올해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지난 5월3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21차례나 협상을 벌인 끝에 일단 합의 초안을 도출했다. 여름휴가 전 타결이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지만 양측이 조금씩 양보해 극적으로 접점을 찾아낸 것이다. 최종 결과는 오는 26일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가려진다. 이렇게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 타결 가능성을 보인 것은 지난 2010년 이후 8년만이다. 지난해 임단협은 해를 넘겨 올해 1월에 겨우 마무리 지었을 정도다. 이번 잠정 합의안 도출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노사 모두 현실을 직시하고 수용했다는 점이다. 노사는 올해 기본급 인상 폭을 4만 5천원으로 합의 했다. 노조는 당초 11만6천 276원 인상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 1월 확정된 전년 임금인상액(기본급 5만8천원)의 약 2배다.
그러나 노조는 회사 측이 제시한 인상안보다 1만원을 더 요구하는 선에서 협상을 매듭지었다. 노사는 장시간 근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심야근로 단축에도 합의했다. 현대차는 현재 1조 근로자가 오전 6시45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8시간5분, 2조 근로자가 오후 3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2시30분까지 8시간20분 동안 근무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완전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자고 주장했었다. 임금은 그대로 보전한 채 1조 근무자가 5분, 2조 근무자가 20분 더 일해서 발생한 총 25분 연장근무 시간을 없애자는 것이다.
결국 노사는 시간당 생산량을 0.5대 높이고, 1조 5분 연장근무를 유지하는 대신 임금은 보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현대차 노사가 소모적 임답협 자세에서 벗어나 실리추구로 방향을 바꾼 것은 잘한 일이다. 주위 사정을 살펴보면 무엇 하나 현대차에 유리한 게 없다. 무엇보다 현대차의 생명 줄이나 다름없는 해외수출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특히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는 통에 현대차가 불똥을 맞을 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재 수입차에 대해 25%의 고율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수입자동차 관세부과가 현실화 될 경우 현대차도 큰 피해를 입는다.
현대차는 현재 관세율 2.5%에서 연간 약 33만대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만일 한국차가 25%의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면 사실상 수출을 단념해야 한다. 중국시장 쪽도 상황이 좋지 않다. 중국 소비자들이 중저가 자동차를 선호하던 시절이 점차 끝나 가고 있다. 실제 중국 대도시에 가면 외제차로는 미국ㆍ독일ㆍ일본차가 주종을 이룬다. 반면 한국 현대차는 `값싸고 질 좋은 차` 정도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인들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독일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고급차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차가 최근 제네시스 생산공장을 중국에 짓기로 결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제네시스가 경쟁사로 꼽고 있는 독일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등은 이미 중국에 생산기지를 구축해놓은 상태다. 해외 사정이 이렇게 옥죄어 오는 반면 현대차의 기술력이나 생산성은 해외 경쟁업체보다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근로자 임금 수준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현대차 울산공장이 승용차 1대를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8시간이다. 반면 중국에선 18시간 만에 한 대가 생산된다. 그럼에도 중국 충칭 현대차 직원들이 한 달에 받는 금여는 94만원 정도다. 그런데 현대차 생산직 근로자는 평균 연봉 9천 600여만원을 받는다. 지난해 11월 현대차 노조원들은 1차 노사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부결시킨 후 해를 넘겨 2차에서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가결시켰다. 하지만 2차 합의안에서 더 얻어 낸 것은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이 전부다.
결국 사측으로부터 20만원을 더 받아내기 위해 지난해 24차례나 파업을 벌였고 1조 6천억원을 허공에 날렸다는 이야기다. 현대차 강성노조가 이런 식으로 파업해서 지난 7년 간 생산차질 43만대에 9조원 이상의 손실이 났다고 한다.
우리 헌법은 노조가 기업주에 맞서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자 입장에 있는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현대차 노조의 파업이 정당성 시비의 대상이 됐을 때 대체로 이를 인정하고 그에서 비롯된 불편함과 불이익을 감수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그런 합법적 행위도 사회의 공공질서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억제와 통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금처럼 현대차 노조가 `귀족 노조`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자신들의 권익을 확보했다면 이제 더 이상 그 정도를 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는 26일 실시될 예정인 잠정합의안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는 바로 이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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