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항 어부들의 출항 시간은 대략 새벽 두 세시다. 어부가 집을 나서면 어김없이 기르던 개가 앞서 나간다.
그리고, 바다로 향하는 주인의 배 뒤에서 하염없이 지켜보다가, 다른 어부의 개들과 하루종일 어판장 부근을 지킨다.
매일 만나는 동네 개들끼리는 무척이나 친하다. 하루 종일 장난을 치면서 어판장 바닥을 뒹군다.
그러다가, 개들은 무엇인가에 놀란 듯, 고개를 지켜들고 귀를 쫑긋거리다가 주인의 배가 떠났던 자리로 나간다.
주인의 배는 보이지도 않는데, 개들은 놀라운 청각력으로 주인의 뱃소리를 알아맞친다.
인간들은 도저히 구분이 쉽지 않는 비슷한 뱃소리에서 주인의 뱃소리를 정확히 알아낸다.
이윽고, 주인의 배가 돌아오면, 배 앞에서 날뛰듯이 풀적거리며 좋아하다가, 다시 어부의 앞에서 신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부가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개들은 어부의 냄새를 기억하면서 하루 종일 항구를 지키는 것이다.
어쩌면, 금진항 항구를 지키는 것은, 어부가 아니라 개들일 지도 모르겠다.
2000 년 겨울 밤, 강릉 사천항 바닷가, 차를 몰고 가는데, 뭔가 작은 물체가 뛰어들었다.
아무 소리가 들리 않았다. 이상하여 차에서 내려 차 바퀴쪽을 내려다 보았다.
무엇인가 떨고 있으면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을 안고 왔을 때, 아이들은 환호를 질렀다. 그 동안 반대해 왔던 아내와 나는 무색해졌다.
그리고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절대 침대에는 올라오지 못하도록, 똥 오줌 함부로 싸게 하지 말 것.
두 가지 약속 마저 물거품이 되었다.
녀석의 인기는 약속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물어 보았더니, 순종 요크셔테리아 라고 했다. 영국에서 토끼 사냥을 했다나.
토끼 사냥을 했던 놈이 왜 우리집에 왔는지, 추운 겨울 바닷가에서는 왜 떨고 있었는지.
몸집은 같은 종들에 비해서도 작았다. 큰 병아리 정도. 작을수록 순종에 가깝다나.
순종이던 잡종이던, 영국개건 미국개건 그런 것 보다, 녀석은 우리 가족 깊숙이 자리 잡았다. 서열은 맨 마지막이었지만.
서열에는 굉장히 민감한 녀석이었다. 서열 1 위 나에게는 감히 까불지 않았지만, 막내와는 서열 싸움이 제법이었다.
집안 식구들 중에 입으로 무는 인간은 막내뿐이었다.
어쩌면 이미 막내의 서열을 앞섰는지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녀석은 우리집 옥상을 뛰어 놀았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애견센터에서는 대충 서너 살 정도는 되었다고 했다.
컴퓨터로 일을 하다가 술이 먹고 싶어지면 집안 식구 아무도 모르게 나갔다 오면, 제일 반기는 것은 녀석이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작업 하는 뒤에서 얌전히 나를 지켜 보았다.
이상한 것이 있었다. 내가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귀찮듯이 관심도 없다가, 내가 글을 쓸 때는 내 무릎에 앉아 애교를 부렸다.
녀석은 그 차이를 정확히 아는 것이 분명했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본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즐거워 하는 모습이 녀석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미 내 마음에 들어와 나와 함께 환상 속을 날아다닌 다는 것이다.
녀석은 과거로 훨훨 날아 고향 영국의 들판에서 토끼 사냥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어느 날, 타조 농장에 가족과 놀러갔다가,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농장 안으로 뛰어들더니 타조를 쫒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몇 백배나 큰 녀석을 마치 토끼를 쫒듯이 사냥감을 잡으려는 듯 미친 듯이 놀라운 속도로 따라갔다.
주위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녀석의 조상이 사냥개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와 함께 동문산에도 많이 올라갔다.
동문산은 맷돼지 고라니 부엉이 너구리 등 야생 동물들이 많았다.
녀석이 내 앞을 가다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면 틀림없이 야생동물들이 주위에 있었다. 녀석이 그러면 고라니가 뛰어 도망가거나 맷돼지가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녀석은 나의 보디가드였다.
녀석이 죽어갈 때, 치매도 같이 왔다. 호흡을 헐떡이며 뱅뱅 돌기만 했다.
나중에는 호흡마저 힘들어져, 하루에 8 만원 하는 산소호흡기까지 빌렸다.
녀석은 괴로워 하다가도 막내가 안으면 편안해 했다. 그것은 녀석의 표정에서 알수 있었다.
막내와의 서열 관계를 의심한 것은 기우였다.
녀석이 죽고 자주 가던 동문산 자락에 나의 등산로 바로 옆에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산을 오를 때마다 녀석의 무덤에 들러 주변을 청소했다.
동문산에 불이 나고 아직 녀석의 무덤에 가보지 못했다.
무덤 주변을 다시 정리해줘야 하는데,
어쩌면 녀석은 뜨거운 불을 피해 고향 영국의 들판에서 놀고 있을지도.
꿈 속에서 나의 글쓰기 여행을 함께 하는지도.
녀석이 데니가 된 것은, 녀석이 집에 왔을 때, GOD 가 최고 인기였을 때고, 그 중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것이 데니였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초겨울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다로부터 높은 파도와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데, 횟집 앞 시내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개 한마리가 얼씬거리는 거였다. 어제부터다.
아내에게 물어 본 즉, 주인이 버리고 간 거 같다는 거였다. 호기심에 살펴보니 꽤 늙은 개였다.
불과 하루만에 털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가끔 도시인들이 키우기 힘든 개를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신들은 놀러왔다가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버리듯 내팽개치고 가는 것이다.
귀여워 할 때는 호들갑을 떨다가 미워지면 냉정해지는 것이 요즘 사람들인 것이다.
늙은 개는 이빨이 다빠져서 한 개 밖에 남지 않았고, 입도 돌아가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나 보다.”
개는 도망간 주인이 그리운 지, 사람만 지나가면 따라다녔다. 해경 파출소 해경이 데리고 놀아주다가, 박스 하나를 두었더니 거기서 가끔 자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곳도 개가 안주할 곳은 되지 못했다. 해경은 키우고 싶어도 상관이라는 사람이 개를 너무나 싫어한다는 거였다.
횟집에서 키우자고 해도 아내와 고모가 펄펄 뛰었다. 애초에 거두지 못할 일은 하지 말자는 거였다.
어제 오후에 보니 해경 초소 앞의 박스가 없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개가 어디로 갔는 지 물을 용기가 없었다.
“다행히 누군가가 데리고 갔다면 좋으련만, 그것이 아니고 시청에서 가져갔다면 틀림없이 한 달 후면 안락사 당할 것인데.....누가 눍은 개를 입양해 간다는 말인가.”
해경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까봐서 모른 척 하고 말았다.
날씨는 더 추워졌다. 찬 바람이 가슴 속 깊숙히 밀려왔다. 늙은 개는 어디로 갔을까?
가슴은 더욱 시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