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명수필( 수필문학 10월호)
어설픈 외도
박종성
엊그제, 봄비가 내리는 아침나절 이었다.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대기실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뜻 밖에도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늘 포근한 미소를 간직한 문우였다. 그녀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대답에 앞서 피식 웃음이 먼저 나왔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웬 주책이냐는 조서를 받을까 싶어서였다. 발병이 다름 아닌 노래 부르기에서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증상은 목젖이 화끈거리며 밭은기침과 열이 나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이었다. 진단 결과, 성대에 손상을 입은 탓이라 한다.
그런 증세가 나타난 지 열흘이 지났고 개인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나을 기색이 보이지 않아 종합병원을 찾은 것이다.
새 해를 맞이하면서, 금년을 ‘음악의 해’로 내심 정한 바 있다. 의도는 단조로운 생활에서 활기찬 인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보자는 일념에서였다.
수소문한 끝에 노래강습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어느 중년 가수가 지도하는 노래교실 이었다.
정월 초, 노래교실을 처음 찾았을 때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 강습 장에는 50여 명의 여성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었으며 남자라고는
고작 한 명 뿐이었다. 여성들의 뭇 시선을 받으며 신규 회원등록 절차를 거쳤다. 강습이 시작되자 장내는 온통 노래 열기에 휩싸였다.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어색한 목청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제 1부 노래교실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났다.
잠시 휴식 시간이 있고 나서, 제 2부 클리닉 강습이 1시까지 이어졌다. 클리닉 과정은 정예의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심도 있게 지도하는 강습이다.
클리닉 회원들은 무언가 원숙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나도 내친 김에 클리닉 반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클리닉 반 회원들은 20명에
못 미치는 인원이었고 연령대는 40~ 50대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대열에 들어가 장단을 맞추려다보니 여간 고달픈 게 아니었다.
억지로, 따라가려다 보니 목청을 돋우어 안간 힘을 쓰기에 급급했다.
목청에 손상을 일으킨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발병하기 바로 전 날 이었다. 클리닉 회원 중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분의 소개로 어는 동사무소 노래교실에 안내를 받았다. 그 곳은 장소부터가 한적한 데다 수강 인원이 10여 명 내외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음향 시설도 나무랄 데 없다. 노래방 기기는 물론, 피아노까지 갖추어져 있다. 더욱이, 강사가 지도하는 노래 곡목에 마음이 끌렸다.
클리닉 교실의 노래가 주로 사랑과 이별을 테마로 한 통속적인 가요라 한다면, 그곳의 노래는 가사의 내용이 심오하고 순박한 서정적인 가요라 할 수 있다.
양쪽 노래교실의 정취를 비교해보면, 나름대로 장. 단점이 있겠지만 오히려 동사무소 쪽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당초에 마음을 정한 클리닉
교실을 저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너무 얄팍하고 속 보이는 처신이 아니겠는가? 결국, 두 곳을 모두 섭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보니 애꿎은 성대만 혹사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평생 공직에 몸담아 온 터에, 동사무소 정문을 통하여 노래교실을 드나들다보니 여간 어색한 기분이 아니었다. 아니, 어색하다기
보다는 미안하고 쑥스럽고 죄책감마저 들기도 했다. 한 낮에 관공서 건물에서 쿵 짝 거리며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이 선뜻 믿기지 않는다.
마치, 이는 먼 이국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일을 해야 할 시간에 노래를 하며 즐길 수 있다는 현실에 어줍기 짝이 없다. 한편,
생각을 바꾸어 보면 축복받은 삶을 누리고 있다는 자족감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복지 사회의 한가운데 서있다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어설픈 외도지만 신바람 나게 인생의 찬가를 불러본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 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