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복음과 생명 모임에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루 종일 주님 주신 즐거움으로 행복했습니다.
또 생각지도 않은,
그러나 너무도 기대가 되는 만남을 주시니
그저 주님의 행하심에 기뻐할 뿐입니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저마다 나라사랑을 외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를 가장 사랑하는 길임을 알게 하옵소서.
오늘의 예배 위에 넘치는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진리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본문 주해)
오늘 본문은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지배한 지 7년에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사명을 주는 내용이다.
11~13절 :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포도주 틀에서 밀 타작을 하고 있던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다.
밀이나 보리는 바람이 잘 부는 들판에서 검불을 바람에 날려서 알곡을 가려내어야 한다. 그런데 포도주를 밟아 짜는 그런 움막 같은 곳에서 타작을 하는 것은 겨우 걷어 들인 수확물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숨어서 타작하는, 나약한 모습일 수밖에 없는 기드온을 여호와의 천사가 큰 용사라고 부른다.
이에 기드온이 불평을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왜 지금 이런 상태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애굽에서 이적을 통하여 인도하여 내신 이가 왜 지금은 아무 일도 안하시고 오히려 적에게 우리를 넘겼느냐고 항의한다.
이는 우상에 물들어 있는 자신들을 깨닫지 못하고 현재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14~18절 :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미디안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준다.
이에 기드온은 자신이 속한 지파의 약함과 또 자신의 연약함을 말한다.
이런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그 강한 미디안을 한 사람 치듯 능히 이길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런 약속을 믿지 못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말씀하시는데도 이를 믿지 못한 것은 눈앞의 여호와의 사자가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말하는 이가 여호와의 사자됨의 증거를 요구하며, 예물을 준비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이에 여호와의 사자가 기다린다.
19~24절 : 기드온이 염소 새끼를 잡고 무교병과 국을 가지고 여호와의 사자가 시키는 대로 바위 위에 올린다.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서 그 제물을 사르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기에 스스로 이제 죽었다고 한다.
이때 여호와께서 죽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며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자 기드온이 단을 하나 쌓고서 그 이름을 여호와 살롬(샬롬)이라고 한다. 여호와를 만났는데 죽지 않았다는 것이 여호와 살롬이다.
(나의 묵상)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부르며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사명을 주신다.
그런데 ‘큰 용사’라고만 하지 않고,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한다.
이는 기드온 자신이 큰 용사가 될 수 있는 요인이나 조건이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큰 용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주시는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장면과 흡사하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왕자로서 모든 교육을 잘 받아 무슨 일을 맡아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혈기왕성한 40대의 모세를 쓰시지 않고, 살인으로 광야로 도망쳐 나와 40년의 세월을 장인의 양이나 치는 양치기 80세의 노인 모세를 쓰시겠다고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으로 힘이 빠질 대로 다 빠진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낼 큰 용사로 지명하셨다.
오늘, 미디안 사람이 겁이 나서 숨어서 밀 타작이나 하는 기드온, 자신의 말대로 가장 약한 지파의 가장 약한 자신을 말하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부르신다.
물론 모세도 기드온도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결국 확신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찍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40세 애굽 왕자로서 자기 긍정이 충만한 모세를 광야로 쫓아내셔서 80세가 되기까지 완전 낮추신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긍정도 자기 비전도 없는 자가 되었을 때 그를 부르신다.
왜? 모세 자신의 긍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정하시는 자가 되도록,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는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그처럼 보잘것없는 므낫세 지파, 그 중에서도 가장 별 볼 일 없는 자, 그저 미디안 사람의 눈에 띨까 두려워하는 기드온 자신에게 자기 긍정, 자기 비전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이 세상은 자기를 긍정하라고, 자기의 비전을 가지라고 말한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자기 긍정과 자기 비전의 사상이 만연하다.
이는 당연히 하나님과 원수 되는 생각이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여전히 세상 속에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높이 올라가기를 바라니 그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 함께 멸망으로 떨어지자고 끄는 사탄의 원하는 바인 것이다.
십자가에 연합됨은 이 자기 긍정, 자기 비전을 버리게 한다.
내가 나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긍정하셔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그것이 심지어 교회일이라 하더라도)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는 올바른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을 소유하는 것이다.
‘큰 용사’는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자신의 못남을 드러내고, 자신의 유약함을 인정한다.
그래서 자기의 용사됨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심을 나타내는 자들이다.
나는 이것을 복음과 생명 세미나에서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고, ‘모든 것 주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이 진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나는 날마다 순간마다 느끼며,
이것을 알게 하신 큰 용사, 참 용사 되신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묵상 기도)
주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시는 말씀을 저도 듣기를 원합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큰 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정을 받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는 그런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이 생각 자체가
또 다른 탐심이 아닌가 생각하며
주님 앞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순간마다 솟구치는 자기 긍정과 자기의를 보며
또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저임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더욱 더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