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킹(packing)이란 공업용 혹은 유통에 관계되는 용어로 우리말로는 제대로 번역된
용어가 없어 그대로 쓰고 있다. 국어 사전에는 1. 관 따위의 이음매 또는 틈새 따위에
물이나 공기가 새지 않도록 끼워 넣음 또는 그런 물건. 고무,가죽,삼실부스러기,석면,
구리,납 따위로 만든다. 2.하물을 운반할 때에접촉하는 두 물건이나 부분이 상하지
않도록 끼움, 또는 그런 물건.하물과 하물 또는 화물과 하물 상자 사이에 끼운다. 3.
식료품을 포장하여 시장에 내는 도매업. 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형 선박의 기관실은 큰 공장이나 다름없이 여러 기관들이 운전되고 있다. 주기관을
비롯하여 3대의 발전기, 각종 펌프및 정유기, 관이음및 밸브 등이 좁은 기관실 안에 총총히
자리잡고 있다. 주기관의 실린더와 실린더 헤드 사이에는 구리패킹이 들어 가고 각종
펌프에는 펌프케이싱과 샤프트 사이에는 물이나 기름이 새지 않도록 글랜드 패킹이나
미캐니컬 실이 들어간다. 실린더와 실린더 라이너 사이에는 냉각수가 들어가는 데 물이
바깥으로 새지 않도록 실리콘 러버론 된 오 링이 상하로 서너개씩 들어간다.
패킹은 두 고정물간에 들어가기도 하고 한쪽은 고정물 다른 한쪽은 동적인 물체 사이에
들어가기도 한다. 비슷한 성격으로 가스켙(gasket)이 있는데 이는 주로 정적인 두 물체
사이에 들어간다. 주기관의 연소실을 이루는 실린더 라이너와 실린더 헤드 사이에는 구리
가스켙이 들어가는데 내부는 1000도C의 연소가스와 약 80Kg/cm2나 되는 고압에 노출돼 있어
구리 가스켙이 아니면 견디기 어렵다. 또 프로펠러 축은 선미관을 통하여 바깥으로 빠져 나가
는데 여기에는 예전에는 글랜드 패킹이 들어가 수밀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근래에는 오일씰로
바뀌었다. 여기에도 실리콘 러버로 된 오일링이 선내.외로 다섯개 정도가 들어간다.
엊그제 집사람이 압력밥솥에 밥을 하는데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추가 돌지 않았다.
한참 기다려도 돌지 않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자 밥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는
밥솥 뚜껑 사이로 김이 솔솔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알고보니 뚜껑에 들어가는 고무 패킹이
오래되어 제대로 기밀을 유지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압력이 올라가지 못하여 추가 돌지
않았던 것이다. 패킹이나 가스켙은 부수적인 부품이나 기밀유지에 없으서는 안되는 중요한
물건이다. 예전 1986년 1월28일 발사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73초만에 폭발하여
승무원7명 전원 사망하였다. 사고 원인은 고체 로켓 부스터에 사용된 고무 재질의 O 링이
추운 날씨에 탄력을 잃어 고온 고압의 가스가 O 링 사이로 누출되어 연료탱크에 불이 붙었던
것이었다.
압력밥솥은 10여년전에 해운대로 이사를 오자마자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풍년밥솥으로
3~4인용을 샀던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거늘 패킹도 오래 쓰면 산화되어
그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헌 패킹을 들고 신세계 백화점으로 갔더니 풍년밥솥
코너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이웃 롯데백화점으로 옮겼나 싶어 찾아 갔더니 롯데백화점엔
아예 키친제품 코너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인터넷에서 서비스센터를 찾아서 새 패킹으로
바꿔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