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나가 사는 아들 내외가 둘째 아들을 데리고 집에 왔다. 둘째 손자는 태어난지
10개월로 지금 바닥을 뿔뿔 기어다니고 손으로 잡고 겨우 일어서는 이유식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다. 아들 내외는 2월달에 돐잔치를 하겠다며 부부가 해운대 인근에 있는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러 온 참에 바깥 날씨가 너무 차가워 손자 놈을 아버지한테
맡겨놓고 찾아볼 심산이었다. 안 그래도 손자 놈은 콧물이 흘러 내리는 걸 보니 감기 기운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오후 1시 반부터 두어 시간만 애기를 봐 달라고 하고 나갔다. 애기가 순해서 그런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도 어미 아빠를 찾지 않고 잘 놀았다. 에미가 간식도 미리 챙겨 주어
가방에서 꺼내어 손에 잡혀 주었더니 혼자서도 잘 먹었다. 그러다가 거실 바닥에 앉혀 놓았더니
어디론지 부르르 기어 갔다. 그리고선 의자나 책상을 손으로 잡고 일어서서 그 위에 있는
물건들을 만지기 시작하였다. 어린애는 위험한 줄을 모르니 한시도 눈을 떼어선 안된다는 게
우리 어머니 말씀이셨다.
평소에는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가더니 손자를 본다고 안고 있으니 왜 그렇게 더디게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손자를 보면서 십분은 흘렀겠지 하고 시계를 보면 5분도 채 지나가지 않았다.
애기는 무료한 걸 싫어한다. 그냥 안고 있으니 짜증을 부리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식탁 위에 얹혀
있는 밀감 두 개를 손에 쥐어 주었더니 손으로 만지다가 던졌다가 하는 것이었다. 멀리 던지면 다시
주워 주고 몇번 반복했더니 밀감 껍질이 터지고 말았다.
밀감껍질이 터졌으니 그냥 또 손에 안기면 던져서 터지게 만들 것이 틀림없었다. 그럴바엔 껍질을
까서 밀감 안쪽을 잘라서 먹여주자는 생각이 들어 손으로 아주 작게 잘라서 입에 넣어 주었더니
이내 혀로 밖으로 밀어내어 버렸다. 그런데 이전에 홍시를 작은 티스푼으로 떠서 떠 먹였더니 잘
받아 먹었다. 밀감은 단맛이 있지만 약간 쓴 맛이 받친다. 애기는 단맛보다도 쓴맛이 먼저 느껴지기
때문에 혀로 밀어내는 것이리라. 그래서 다시 한번 더 밀감을 조각 내어 입에 밀어넣어 주었지만
이내 곧 혀로 밀어내 버리는 게 아닌가.
우리 속담에도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다'는 말도 있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가까이 하고 불리할
때는 모른 척 한다는 말로 신의보다는 눈 앞에 나타난 제 이익만 더 따진다는 뜻이다. 가까운 예로
평소 동기회 모임에는 나오지 않다가 자녀들 혼사가 정해진 경우 동기회에 나와서 친한 척 장광설을
늘어 놓고 청첩장을 돌렸다가 혼사가 끝난 다음에는 다시 함흥차사가 되는 친구들이 있다. 또 어떤
친구는 본인이 필요할 때에만 연락을 하고 자신의 이익이 없을 때에는 무관심하게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자로 표현하면 '감탄고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