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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노이슈반슈타인 성(독일어: Schloß/Schloss Neuschwanstein)은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이다. '신 백조 석성'(新白鳥石城)의 의미이다. 독일 바이에른주 퓌센(Füssen) 근교의 호엔슈방가우(Hohenschwangau)에 위치한다. 루트비히 2세가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지었으며, 필요한 자금은 국고에서 충당하지 않고 대부분 왕실 자금을 털어 지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86년에 루트비히 2세가 죽기 전까지 왕의 궁전으로 쓰일 용도로 지어졌으며,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 매년 13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이 성을 찾아오며, 특히 여름에는 거의 매일 6,000여 명이 이 성을 관람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독일 바이에른 주의 남서쪽 경계에 위치한 산맥 위, 약 고도 800m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오스트리아 국경 내에 소재하는 알프스 산맥이 남쪽에서 뻗어 올라오고, 북쪽에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널찍한 평원이 위치하여 서로 대비되는 광경을 연출한다.
중세 시대에는 이 곳에 총 3개의 성채들이 있어, 산맥 아래의 마을들을 굽어보았다. 그 세 성채들 중 하나의 이름은 슈반슈타인 성이었는데, 1832년 루트비히 2세의 부왕이었던 막시밀리안 2세가 이 폐허에 가까운 성채를 사들여 네오 고딕 양식의 성으로 재건축하였고, 호엔슈방가우 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공사는 1837년에 끝났고, 호엔슈방가우 성은 왕실의 여름용 궁정으로 쓰였다. 어린 나이의 루트비히 2세는 그의 유년기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보내게 된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호수
그의 부왕이었던 막시밀리안 2세는 '백조의 성'이라 불리던 폐성 호엔슈방가우 성을 사들여 고딕 양식으로 개조, 재건축하였고,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이곳에서 자랐다. 때문에 루트비히 2세는 어렸을 적부터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또, 그는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토대로 한 오페라 작품들을 썼고, 이 때문에 루트비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호엔슈방가우 성은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물들을 건설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기획은 1862년 그가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그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설하기 전 뮌헨 왕궁의 통로에 바그너가 쓴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등장하는 장면을 벽화로 그렸다. 그리고 자신의 궁전을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하고, 치엠 호수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딴 궁전을 짓게 하는 등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 때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바그너를 다시 불러 자신에 구상에 가담시켰다. 그러나 바그너로 인해 국고가 낭비되자,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결국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를 축출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일로 루트비히 2세는 의욕상실에 빠졌고, 퇴위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구상을 떠올리면서 다시 생기를 찾았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 바르트부르크 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와 같은 성을 호엔슈방가우 성 맞은 편에 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지역은 지형이 험해, 그의 계획대로 성을 지을 수가 없었다. 이에 성은 당초 계획과 다른 새로운 형태로 수정 계획되었고, 1868년 건설작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루트비히 2세는 교권 강화를 둘러싸고 관료들과 마찰을 빚게 되면서 정치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광적으로 건축에 몰두했다. 그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외에도 다른 여러 곳에 건축물을 짓게 되면서 국고를 낭비하고, 수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결국 1886년 루트비히 2세는 의료진으로부터 정신병자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는 왕위에서 퇴위당했고, 퇴위당한 지 3일 만에 슈타른베르거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사인은 자살로 공식 발표되었으나, 실제로는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92년 완성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는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대포의 발명으로 성이 이미 쓸모가 없어진 시대였으므로 루트비히 2세는 순수히 취미로서 성을 지은 것이다. 이 순수한 취미 때문에 바이에른 경제는 파탄이 났다.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는 성이 관광지 따위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죽으면 성을 부숴버리라고 유언했다. 물론 성은 관광지로 최고였으므로 부서지지 않고 지금도 바이에른의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되어 있으며,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성도 이 성을 본뜬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또한 루트비히 2세와 같은 말을 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성은 부숴지지 않았다
중세에 지어진 성들과는 달리 군사적인 목적은 전혀 없고, 오직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와 그의 오페라인 로엔그린에 푹 빠진 탓에 취미로 지은 성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지어진 시기는 이미 증기선이 발명되고 독일 전역에 철도가 깔린지 수십 년 뒤였다. 18세기경 부터는 많은 수의 성들이 저택으로 개조되어 그 목적이 전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보통의 궁전과 달리 산 속에 이정도 규모의 거대한 건축물을 단지 사치스러운 궁전이나 저택으로서의 가치와 목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수였다. 그나마 이 성을 지을 때 들어간 경비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보불전쟁을 준비할 때 뇌물조로 통째로 넘겨준 하노버 왕실 금고의 금으로 충당했다.
사실 루트비히 2세는 이 성 외에도 젊은 시절부터 많은 건축에 매달렸고, 생전에 성을 총 다섯 채 건축하려 했다. 린더호프 성은 완성했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3만 완성했고 헤렌 킴제성은 절반만 완성하는데 그쳤다. 나머지 비잔틴/오리엔탈 양식 성은 계획만 세우고 착공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건축으로 인한 지출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었다. 루트비히 2세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바그너가 오페라를 쓰면 그것을 모티브로 궁전 등을 건축했는데 당연하게도 재정을 낭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바그너가 조정에서 축출 당했을 정도. 이에 상심에 빠져 있던 루트비히가 마지막으로 광적인 취미 혼을 불사른 것이 이 건축물이었고, 개인적으로 절대왕정을 동경하던 루트비히 2세의 바람이 강하게 들어가 있었다.
씁쓸하게도 그렇게 애정을 가진 성이지만 루트비히 2세 생전에는 완공이 되지 않았다. 국왕 본인도 이 성에서 2주 밖에 머물지 못했다. 그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완성되기 전에 정신병자 판정을 받고 강제로 퇴위해야 했으며, 3일 후에 슈타른베르거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루트비히 2세 사후에 건축계획을 축소해서 현재의 성은 본래 계획의 1/3만 완공한 것이다. 덧붙여 루트비히 2세는 이 성이 관광지 따위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사망하면 같이 철거할 것을 명령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트비히가 사망하고 6주 뒤부터 관광지로 개방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왕가가 사라질 때까지 다른 성들과 합쳐 관광수입을 가져오는 짭짤한 수익원이 되었다. 요놈들아! 그 이후 지금까지도 바이에른 주의 회계장부에 은총을 선사하는 중.
한번이라도 이 성 사진을 검색해보면 알지만, 진짜 동화나 오페라에나 나올 법한 그림 같은 성이고, 성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끝내주게 아름답다보니 관광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서 관광자원으로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알프 호수나 옆 절벽의 절경이 일품. 성 내부도 상당히 화려하다.
성 뒤편의 절벽 위에 올라가면 위에서 성을 내려다 볼 수도 있는데, 길모르는 사람이 안전장치 없이 올라갔다가 죽기 딱좋다. 발 잘못 디디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위치다. 가이드 북같은 데에서도 위험하다고 적혀있다. 마리엔 다리를 건너가면 아예 위로 올라가는 코스를 만들어 놨다. 경사가 조금 높은거 빼고는 올라갈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자갈은 주의. 성을 그쪽에서 보고싶다면 뒤쪽 마리엔 다리에서 보자. 그걸로도 충분하다. 위의 사진도 마리엔 다리 방향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실 저 사진처럼 다리 위에 사람이 저 정도 숫자인 경우가 거의 없다. 다리로 진입하는데만 30분을 기다릴 수 있으니 주의할 것. 겨울철이나 눈이 녹지 않은 3월에는 안전상 이 다리로의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마리엔 다리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보고싶다면 이 시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 감시인이 없다고 출입금지선을 넘어가지 말자. 눈이 내린 마리엔 다리는 굉장히 위험하고 미끄러지면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다.
성을 외부에서 둘러보는 것은 무료이고, 내부는 유료 가이드 투어만 가능하기에 신청인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각 성 내부를 관광 시 자유롭게 들어가는게 아니라 투어 가이드를 따라 들어간다. 이건 호엔슈방가우 성도 마찬가지. 양쪽 모두 관람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은편. 성 내부를 보지 않을 것이라면 그냥 가면 된다. 참고로 두 성 모두 비텔스바흐 왕가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내부 촬영은 금지된다. 호엔슈방가우 마을에서 표를 끊고, 시간에 맞춰 성으로 들어가면 된다. 모르고 가면 현장에서 표 구하느라 고생할 수 있으니 좀 일찍 가서 표를 사자. 사전예약이 가능하긴 한데 입장시각 1시간 30분 전까지 매표소에서 표를 수령하지 않으면 노쇼처리가 되어 요금을 2배로 물게 되니 주의할 것. 사실 일찍 도착해서 밥먹고 호수보고 버스타고 마리엔다리까지 보면 1시간 30분은 오히려 부족할 수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고지대에 있어서 올라가기 힘드니 미리 올라가 있는 것도 괜찮다. 초행길에 도보로 느긋하게 가면 30분 이상이 소요되며, 편한 복장과 신발로 오는 것을 추천하며, 경사가 있으니 평소 운동을 잘 하지않는 사람이라면 약간 힘들 수 있다. 호엔슈방가우 성은 이에 비하면 둔덕도 안되는 수준이니 걱정 안해도 된다.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갈 수도 있는데,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가는건 거리가 나와서 탈 만 하지만, 호엔슈방가우 성으로 가는건 잠깐 타면 끝이다. 탈 거면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가는걸 타라. 7유로라는 거금을 내면 탈 수 있다. 사실 관광객이 도보로 올라가는 길을 마차가 같이 쓰는 것이다보니 말똥을 그대로 밟고 올라가는 셈이다. 그냥 3유로 내고 왕복으로 버스를 타자. 버스표는 알프 호수와 마차 탑승장 가운데에 있는 정류장에서 구입이 가능하며, 2018년 5월 기준 편도 상행이 2.5유로라 그냥 3유로를 내고 왕복권을 사서 타는게 낫다. 또한 포장도로를 벗어나 마리엔 다리로 가는 산길 비포장도로는 눈이 쌓였을 경우 낙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철문으로 출입통제를 해놓지만 다들 신경 안쓰고 그 옆에 커다란 틈으로 다들 들어간다.
여기를 관광할 경우 대개 뮌헨에서 체류하며 당일치기로 온다. 뮌헨 중앙역에서 바이에른 티켓을 사서. RE를 타고 퓌센 역에 도착한 후 약 10분간 버스를 타고 성이 있는 동네까지 가게된다. 퓌센이 가까워지면 주변 풍경이 텔레토비 동산같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하는데, 착한 기관사가 이쯤에서 자세히 보라고 일부러 서행한다.
퓌센 역에서 탈 수 있는 호엔슈방가우 행 버스는 관광객들로 사람이 항상 바글바글하여 다음 차나 다다음 차를 타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RE가 도착하는 시간에는 일부러 증차하는지 낮 시간대에는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같은 버스가 두세 대씩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이에른 티켓이 있으면 이 버스 또한 무료이며, 그냥 타면 편도로 3유로를 내야한다. 보통은 버스를 타고 성이 있는 동네로 가지만, 퓌센에서 성에 오는 구간의 경치도 볼만하니 여유가 되면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다만 버스로도 10분이나 걸리는만큼 거리가 좀 되니 주의. 다만 밤에는 퓌센 자체가 완전한 시골인지라 인적도 드물고 가로등 수도 적고해서 위험한 구간이 되니 그냥 차타라. 중간의 마을에 가기 전까지 가로등이 없어서 손전등 키고 가야한다. 야간에 걷는 건 문자 그대로 비추.
18년 11월 18일, 성 정문 보수공사가 끝났다.
건너편을 보면 노란색 성이 보이는데, 이 성은 호엔슈방가우 성(Schloss Hohenschwangau)으로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당시 폐성이던 이 성을 사들인 것이다. 이후 이 성을 고쳐서 사용했고, 루트비히 2세는 이 성에서 자랐다. 아쉽지만 이 성에서 보는 경치는 노이슈반슈타인만은 못하다. 다만 성 아랫마을의 이름은 노이슈반슈타인이 아닌 호엔슈방가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