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저 사위라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의문점을 말해볼까 하는데요..
진훤은 현재 867년생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압니다..
옛날 태조 왕건에서 봤을 때 박영규와 지훤은 진훤이 왕이 된 후 사위가 되었습니다..
근데 저들은 아마 호족세력으로 진훤이 혼인을 청한 것일 것입니다..
그들이 왕인 진훤에게 사위가 되달라고 청을 받을 정도였다면 대호족이었겠죠..
실제 저들은 후백제에서 영향력이 대단했고요..
기록이 부족하여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하겠으나 박영규는 후백제에서 중심인물이고 지훤도 전략적인 요
충지의 성주였을 겁니다..
근데 나이를 생각해보면..
저들이 세력을 지닐 정도의 나이였다면 나이가 꽤 먹었겠죠..
진훤이야 당연히 어린 딸들을 줬겠지만..
박영규와 지훤이 저 나이가 되도록 혼인도 안하고 부인이 없었을까 하는 겁니다..
혼인을 안했을 리는 없고 부인이 일찍 죽었을까?
진훤이 뭐 부인이 없는 사람을 골라서 혼인시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봅니다..ㅋ
근데 박영규에서 또 의문인 것이..
박영규는 훗날 고려로 귀부했고 진훤의 딸 국대부인 사이에서 난 딸 둘을 모두 고려 정종에게 보냈죠..
정종이 923년생이니 그 또래로 보아집니다..
진훤이 867년생이고 국대부인을 20세에 가졌다고 본다면 국대부인은 887년생이고 900년경에 박영규와
혼인시켰다는 셈이 됩니다..
실제 후백제를 선포한 시기와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국가체제를 갖춘 후 호족과 혼인을 실시했다는 거겠죠..
그럼 박영규도 진훤과 또래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박영규가 고려 태조 사후에도 살아있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80세 이상을 살았다는 결과가 나오는데..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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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진훤의 사위인 박영규와 지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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