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트럼프 미대통령 당선인이 파나마 운하 통행료를 인하하지 않을 경우 운하반환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주권과 독립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며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왜냐하면 파나마 운하 수입이
파나마 정부 재정의 약 20~25%를 차지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전 미 대선에서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의사당에 까지 난입한
걸로 보면 단지 엄포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발언의 배경을 살펴보면 최근 남미
국가들에 영향력을 확대해 온 중국을 견제하려는 일련의 포석이라고도 보인다.
북아메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은 허리가 잘룩하게 서로 연결 돼 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에는 미동부에서 서부로 가려면 남미대륙 끝에 있는 드레이크 해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남미대륙과 남극 사이, 남위 60도에 있는 이 해협은 엄청난 유속과 악천후로 악명 높아
'절규하는 60도'라 불릴만큼 지구상에서 가장 거친 바다로 알려져 있다. 이 해협 조금 위쪽에는
마젤란이 세계일주시에 처음 통과한 마젤란 해협이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데 육지
속에 숨어 있어 드레이크 해협 보다는 덜 위험한 항로로 여겨지며, 역사적으로 탐험가들이 이용했던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또 다른 하나의 통로였다.
잘 아시다시피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물류교통의 요충지다. 태평양측의 파나마
시티에는 입구에 갑문이 세 개, 대서양쪽인 발보아항에는 네 개가 설치돼 있으며 도중에는 넓은 호수와
좁은 수로가 연결되어 화물을 실은 선박들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고 가고 있다. 운하 양단에 설치돼 있는
갑문식 도크에는 산 위에 있는 호수의 물을 쏟아부어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선박을 위로 올리거나 내리게 한다.
원래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기원전 5~6세기에서부터 있었으나 정작 공사를 성공한 사람은
1869년에 공사를 끝낸 프랑스인 페르디낭드 레셉스였다. 수에즈 운하공사를 성공리에 끝낸 레셉스는 고작
지협의 길이 80 Km에 불과한 파나마 운하건설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공사는 만만찮았다. 덥고 습한 날씨에다
말라리아로 공사 인부들이 2000명이나 죽어 나가자 그도 손을 들고 바톤을 미국에 넘기고 말았다.
당시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빼앗은 필리핀 해군기지에 함대를 신속하게 보내야 했으므로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운하의 건설이 절실했던 것이다. 말라리아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
공사를 진행했지만 10년 새 약 3만 8000명의 인부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하여 1914년에 드디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가 개통된 것이다. 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미국은
파나마의 독립을 지원하면서 파나마 운하를 손에 넣어 100년간 미국이 운영한다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나는 배를 타면서 수에즈 운하는 여러 번 통과하였으나 파나마 운하는 두 세번 밖에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된다. 수에즈 운하는 거의 평지로 이루어진 사막 가운데를 수로로 만들었지만 파나마는 산악지대를
파 내는 난공사였으므로 폭이 좁다. 수에즈 운하도 처음에는 폭이 그리 넓지 못하여 대형 유조선들은 아프리카
대륙 남단을 돌아서 운항하였고 근래 확장공사를 통해 종래 1차항로를 하시라도 왕복이 가능한 2차항로
만들었다. 파나마 운하도 처음엔 폭이 32m였으나 뒤에 40m로 확장되었지만 파나막스선 (폭보다 길이가 약간
길다)이상은 이직도 남미대륙 남단을 돌아야 한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들은 대개 태평양측 입구인 파나마시티에서 수속을 하면서 대기중에 벙커링
을 한다. 벙커링시에는 필요한 선원만 작업에 임하고 나머지 선원들은 상륙하여 쇼핑도 하고 관광도 한다.
두세명씩 상륙했다가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일행과 떨어지면 건물과 건물 사이애 숨어 있던 불량배들이
혼자 떨어진 선원을 나꿔채 호주머니에 지녔던 돈을 빼았았다. 그렇게 당한 선원들이 부지기수다.
미국은 조차기간 100년이 지나도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파나마 정보에 돌려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탄 배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때 편지를 부칠 수 있다고 하기에 우표를 샀는데 미국에서 발행한 우표였다.
과거 반미성향의 군부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가 계속 반환을 요구하자 미국은 미국은 노리에가 정권타도를
목적으로 파나마를 무력 침공하여 노리에가를 체포 마약밀매자 혐의를 둘러씌워 미국 정부 법정에 머그사진
(범죄자 사진, 아래에 일련번호가 적혀있음)을 찍어 올렸다. 나는 그 사진을 미국 어느 항구에 입항한 배에서
TV뉴스를 보고 알았다. 그러던 차에 미국 카터 행정부는 1977년 세계의 여론을 못이겨 양도 조약을 체결하고
1999년 운하운영권을 파나마 정부에 양도하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배는 육상과는 달리 언제 변할 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질 수 있는 해상에 있으므로 일사분란한 명령체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 저기서 이래라 저래라 하듯이
명령체계가 흐트러지면 배가 나아갈 방향으로 진행할 수 없어 엉뚱한 방향인 산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파나마 운하는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태평양쪽에서는 갑문이 3개 반대편 대서양쪽에는 4개가 된다. 그것은
데서양과 태평양이 해면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엔 큰 호수가 있다 그곳에 저장된 물을 갑문에 채워
배가 몇단계를 거쳐 산 위로 올라가게 만든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인가 날이 가물어 호수물이 딸려 선박들이 양쪽
해안에 대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지금 한국의 정국이 파나마 운하가 아닌 마치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형국과 비슷하다. 참으로 노련한 선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파나마 운하를 대체할 목적으로 니카라과 운하 건설 프로젝트가 중국의 HKND그룹이 주도하여 2013년에
시작되었으나 재정적 문제를 포함하여 여러거지 이유로 인해 지연되다가 2016년에는 공식적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HKND 그룹은 운하건설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