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나 닭강정 옮기는 것 좀 도와줄랍니까?”
“닭강정이요?”
“비닐에 담아왔는데 내가 하나씩 옮기려니까 잘 안되네.”
“비닐이요? 알겠습니다.”
읍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이민철 씨가 가장 많이 먹은 음식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국밥과 닭강정이 경쟁하다 닭강정이 꼽힐 것이다.
워낙 자주 사 먹기도 하고 비교적 반찬통에 옮기기 쉬운 반찬이라
지금까지 닭강정을 옮겨달라 부탁한 적은 없었다.
“선생님, 이겁니다.”
이민철 씨가 웬 커다란 김장 봉투를 손에 쥐고 있다.
투명한 봉투 속을 묵직하게 채우고 있는 건 얼핏 보면 김치 몇 포기로 보일 정도로 크고 빨갛다.
점점 가까워지자 그 큰 봉투를 가득 담고 있는 게 전부 닭강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삼만 삼천 원어치입니다.”
저런 식으로 살 수 있는지, 저 가격에 저만큼을 살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어디서 사셨어요?”
“거기 마트 반찬집에서 샀어요.”
“단골이라고 이렇게 해주신 겁니까?”
“그런가? 몰라.”
분명 단골이라 그런 것 같았다. 어디에도 저렇게 파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반찬통 몇 개를 꺼내 닭강정을 나눠 담는다.
세 번째 통을 여는데도 아직 닭강정이 수북하게 남아있다.
줄지 않는 닭강정을 보며 한 단어가 떠오른다.
‘어른이의 플렉스’ 어릴 적 갖지 못했거나, 엄마를 조르고 기다려 절제하며 얻던 것을
어른이 되어 풍족하게 누리는 것을 말한다. 소소한 지출로 큰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어른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게, 좋아했던 게 분명하게 있어야 하고,
그걸 실현할 만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러 방면으로.
이민철 씨에게 어디서 이런 여유가 생겼을까.
자취를 시작하고 반찬 사는 재미를 알게 된 덕일까,
착실히 모은 덕에 생긴 금전적인 여유 덕일까.
아니면 오롯이 내 밥을 챙겨야 하는 자취 생활에서,
차려 먹는 즐거움을 얻은 덕일까.
어떤 이유이든 이민철 씨가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향유하며
풍족하게 누리고 있다는 증거로 보이니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참 즐겁다.
“선생님, 근데 외상으로 했습니다.”
이건 안 즐겁다.
2024년 10월 14일 월요일, 박효진
①박효진 선생님,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제가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마는…. 그러면 글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할게요. 아주 오랜만에 갖고 싶은 기록이네요.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사회사업가 박효진이 쓴 글을 읽고 박효진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합니다. ②2023년에 ‘죽밥과 과자밥’이 있었다면, 2024년에는 ‘어른이의 플렉스’가 있네요. 제가 저자라면 책 제목으로 삼겠습니다. 정말. ③이민철 씨 주거 지원 기록을 읽으면 우리가 주거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고 간결하게 느껴집니다. 여러 고민에서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에요. 이민철 씨 삶이고 그렇게 사시기 때문이지만, 거기에 사회사업가의 뜻과 수고도 분명히 있다는 것 잘 아시죠? ‘사회사업가 박효진’을 생각합니다. ‘생활재활교사’ 말고요. 정진호
닭강정 양에 빵 터졌습니다. 민철 씨가 이렇게 닭강정을 좋아하시는지도 몰랐네요. 민철 시 플렉스 최고입니다. 신아름
아주 유쾌한 에세이 한 편을 읽었습니다. 내용과 문장이 참 좋습니다. ‘기록’이니 문장과 글의 발전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철 씨의 넉넉함을 넉넉하게 바라보며 지키는 박효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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