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 묵’도 아니고 ‘다시 영장산’이 뭐야. 2회 연속 같은 산을 간 건
산악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늘 동네 뒷산만 다니다가는
광교레포츠에 M&A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오늘은
본격적으로 영장산 종주를 한번 하자는 데 합의한다. 김회장님이 감기
몸살로, 탈장 수술한 임총장 내외를 포함 林씨 3인방은 모두 불참인데
대신 우리 일가 아저씨 노창송님이 모처럼 날씬한 자태로 나타나셨다.
세균성 급성 간농양으로 두 달이나 입원했다는데, 말 꺼내자마자 “술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이제 완치됐고 의사가 술 마시는 것도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말씀부터 한다. 아니, 누가 뭐래요? 체중이 많이 줄어 보기 좋다
덕담하자 “뱃살은 하나도 안 빠지고 팔다리 근육만 없어졌다”고 불평.
산에 열심히 오시면 금세 근육 생깁니다, 걱정 마세요. 지난번 산행에서
명 가이드로 칭찬받은 황현우님이 오늘도 가이드로 나선다.
오늘 임시 대장에 취임한 황대장은 태재고개까지 가려면 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정상까지 다섯 개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능선을 피하고 우회해서
정상 바로 아래 마지막 봉우리로 올랐다 태재고개로 내려가자는 제안을
한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 심정을 잘 헤아리실까. 우야든동 편안한 길로
갑시다. 오르막도 없이 평평한 오솔길을 장변호사님 내복 얘기를 들으며
느긋하게 걷는다. 사연인즉 이렇다. 김회장이 사다준 내복이 따뜻하기는
한데 영 근지러워서 입을 수가 없더라고. 길이가 맞는 걸 사면 허리가
조이고 허리가 맞는 걸 사면 길이가 너무 길어 고민하던 차에 홈플러스
가면 내복이 싸다는 소리 듣고 쇼핑에 나섰는데 정말 근지럽지도 않고
사이즈도 허리와 길이가 다 맞는 걸 구입하셨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 와서
입어보니 앞에 남대문이 없더란다. 일 보실 때마다 여간 불편하지 않아
할수없이 김회장한테 불하했단다. 김회장이 몇 번 입어보더니 자기도
불편하다고 따님한테 물려줬단다. 결국 홈플러스에서 쇼핑한 내복이 따님
한테까지 갔다는 얘기.
내복 얘기 듣다보니 어느새 영장산 정상 바로 아래 계곡이다. 임시대장이
여기서 영장산에 올랐다 같은 길로 다시 내려와 태재고개로 간다 하니 다시
내려올 걸 뭐 하러 올라가냐 한다. 그래도 정상을 밟아야지 무슨 소리냐,
김영길대장의 꾸지람에 그렇다면 정상까지 몇 분 걸리느냐 묻는다. 임시
대장이 15분이란다.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를 15분 만에 간다하니
모두들, 아니 어떻게 된 게 감투만 하나 쓰면 죄다 ‘구라’를 배우는지 모르
겠다, 감투 쓴지 1시간밖에 안 됐는데 그새 배운 게 구라냐, 눈을 흘긴다.
임시대장이 기가 막혀, 그럼 재보자 한다. 가파른 고개를 헉헉 올라 시계를
보니 14분. 임시대장 말이 구라 아님이 밝혀졌다.
12시 10분, 영장산 정상. 알록달록 색깔도 예쁜 곤줄박이와 동고비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눈이 와 먹이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등산객들이 좁쌀
같은 모이를 가져다 뿌려준 덕분이다. 사람들과 친해져 어깨며 손을 스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하산해야 하는데 다들 짧은 코스로 내려가고 싶은 표정이 역력하다.
이정표에는 태재고개까지 100분이라고 적혀있다. 절대로 100분이 안
걸린다는 김구라와 오랜만에 몸 한번 풀어보자는 기자의 주장에 할수없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따라온다. 언제나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
율동공원을 크게 휘도는 태재고개 코스는 별 경치도 없이 밋밋한 능선의
연속이다. 새마을고개, 봉적고개, 등등 몇 개의 고개를 넘고서야 비로소
태재고개로 내려선다. 배고파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일가 아저씨가
태재고개에 원산생태라는 생태찌개집이 괜찮다고 추천하며 전화로 예약까지
한다.
2시 태재고개. 4시간 산행이다. 배는 좀 고프지만 정말 후련하다. 오늘 점심은
지난번 밥값 낼 기회를 박탈당한 장변호사님이 내신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기자 눈에 번쩍 띈 메뉴, ‘동해 소라’. 문어와 소라를 섞어 두 접시. 단숨에
비운 소라를 한 접시 더 시키고 나서야 생태찌개를 맛본다.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세계정세에서부터 제9야구단을 창설한 엔씨소프트 김택진사장의 마누라가
전 SK전무 윤송이라는 옐로우페이퍼성 가십, 김영길대장이 주민센터 영어
강좌에서 작업하려고 공들이고 있던 미쓰장이 신년 목표가 ‘백두대간’이라는
경천동지할 발언을 해 가슴이 철렁했다는 얘기(자기가 백두대간 했다고 책까지
주며 자랑한 바 있었기 때문)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슈를 섭렵하고 있는데
김대장이 갑자기 중요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비상을 건다. 산악회의 앞날을
어찌할 것인가 함께 고민하잔다. 신임 김총무도 적립된 회비를 어찌할 것인지,
8백만 원대인 현재의 기금을 1천만 원대로 만들어 투자를 하든지 어디 기부를
하든지 의논하잔다. 갑자기 기부는 무슨 기부? 돈도 있고 산에 갈 날도 몇 년
남지 않았는데 앞으로 '호강' 좀 하자는 김고문 제의에 아무도 이의가 없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장거리 산행을 하고 1년 산행계획을 집행부가 편성,
발표했으면 좋겠다는 여론. 철따라 볼거리 좋은 산을 골라 가자는 의견에도
호응이 좋다.
일단 오늘은 장기 계획을 세우기 위해 집행부가 김고문과 함께 비대위를
구성해 다시 한 번 모이기로 하자는 데 합의한다. 비대위 구성 및 회의일정은
조만간 집행부가 결정, 발표한다. 아니 벌써 다섯 시. 마을 버스타고 서현역
으로. 그런데 수내역에서 갑자기 다 내린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 한방차라도
한잔 하잔다. 한방차냐, 따끈한 사케 한잔이냐로 왈가왈부하다 마침 한방차집이
눈에 띄자 그리로 들어간다. 요즘 한방차집은 구질구질하지 않다. 세련되고
트렌디하다. 갑자기 할아버지 일곱 명과 할머니 한 명이 들이닥치니 미리
와있던 젊은이들 서너 명이 곧 자리를 뜬다. 그러거나 말거나 몸에 좋다는
온갖 한방차를 한잔씩 시켜놓고 찻집 전세낸 것처럼 다시 시끌벅적. 찻집
언니가 젊고 예쁘고 날씬하니 분당-수지 주민은 자주 이용하시기를 추천한다.
50일에 걸친 남미대륙 대장정에 나설 임총장이 쾌차하시기를 기원한다.
감기몸살 걸린 김회장도 얼른 회복하셔서 비대위의 연간 산행 계획이 곧 발표
되기를 기대한다.
참가자(9명): 김영길, 김윤기, 김종남, 노창송, 박정수(노순옥), 장원찬, 한영구,
황현우 (노순옥 기록)
첫댓글 산행기 수정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한방찻집 얘기에서 "할아버지 일곱 명과 할머니 한 명"을 "나이 든 아저씨
일곱 명과 아줌마 한 명"으로 바꿔야합니다.
뒤늦게 1.7산악회에 참여한 저는 오늘 장기계획을 세우기로 한 결정에
고무 되어, 아름다운 명산들을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그려보니 마냥 기쁨이
솟아납니다. 산악회의 깊은 우정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쌓여진 끈끈한 정,
상호간의 깊은 신뢰와,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충만하여 웃음이 끊이지 않는
분위기를 다른 동문들도 참여하여 느껴보세요. 참여만으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한공이 즐거워하는 게 무엇보다 즐겁습니다.
비대위구성은 위기에 몰린 비상사태때 하는 것인데,"험한 산에서 동네산으로" '가급적 편한 길을" 모색하는 건 아주 정상적으로 가는 방향인데 왠 "비대위"? 70 老童들에겐 장기계획 보다 단기계획이 더 절실해요."순천만 갈대" 續編 언제 나오나요?
잘 먹고 잘 살고 그래서 산악회를 좀 더 살찌우자고 붙인 肥大胃입니다. 순천만 갈대 속편? 이번 강남회 안내문에서 최남식회장이 멋지게 인용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란 Shelley의 詩句 처럼, 지긋지긋한 이놈의 겨울이 가고나면 또 다른 '갈대의 순정'을 부를 날이 오지 않겠어요...
노 기자님 산행기 올리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임가 세 사람이 한 꺼번에 빠지노 그것 참.....비대위 구성 할 만 하네
따로 모여서 종친회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