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의 영화의 변화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던 과장된 코믹함이 사라진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감독 데뷔작 [식신](1996년)이나 배우로서 주성치표 코미디의 절정을 보여준 [희극지왕](1999년)에서 주성치는 확실히 오직 주성치만의 영화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차별화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엽기적이고 과장된 코미디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림축구](2001년)에 오면 주성치는 진일보한다. 중국의 전통적인 소림무술과 전세계인의 보편적 사랑을 받는 축구를 접목시킨 신선한 아이디어에 유려한 연출감각까지 더해지면서 역대 홍콩영화사상 4위의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쿵푸허슬](2005년)은 역대 홍콩영화 흥행 수익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주성치는 확실하게 흥행감독으로 자리를 잡았다. [쿵푸허슬]은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인 콜럼비아 트라이스타가 제작 및 투자와 배급에 참여하면서 주성치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흥행감각이 아니라, 데뷔작부터 싹을 보이던 주성치만의 세계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장된 슬랩스틱 코미디에 기발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의 소유자로 일부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았던 주성치는 [소림축구]부터 컴퓨터그래픽의 사실적 효과를 자신의 상상력을 뒷바침하는데 절묘하게 사용한다. 기술적 진보는 주제의 착근현상을 가져왔고, 뿌리 뽑힌 상상력처럼 지나치게 과장된 설정으로 현실과 겉돌던 이야기들은 이제 현실공간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며 피와 살을 갖는 생명체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주성치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루저(louser)들이다. 사회에서 낙오되어 밑바닥 인생을 살던 그들이 놀라운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주성치는 좋아한다. 그런데 [CJ7-장강 7호]를 보면 주성치의 주인공들은 단순한 루저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적 체제에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인공들이다. 주성치의 정치색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영화가 [CJ7-장강 7호]이다.
주성치 영화의 웃음이 일반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와 차별화되는 점은, 그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배경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계층적으로 하층민에 속해 있으며 번번한 직업도 없는 하찮은 건달(소림축구, 쿵푸허슬)이거나 엑스트라(희극지왕)에 불과하다.[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을 거쳐 [CJ7-장강 7호](이하 장강 7호)에 오면 주성치 주인공들의 배경이 더욱 뚜렷해진다. [장강 7호]의 아버지(주성치 분)는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 아들 샤오디(서교 분)와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노동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고단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아들만큼은 학비 비싼 사립학교에 보낸다. 자신처럼 못배운 사람이 되어 자신처럼 실패한 인생을 아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좌우명은, 거짓말 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면 가난해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다라는 것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구멍 뚫린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다니며 친구들로부터 왕따당하는 어린 샤오디는 친구들이 갖고 있는 로봇 장난감 장강1호를 갖고 싶어한다.
아들이 원하는 장난감 하나 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 아버지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가 녹색 고무공을 발견한다. 그 고무공은 쓰레기 더미에 자리잡고 있던 UFO가 남기고 간 것이다. 아버지는 고무공이 외계생물의 생명체라는 것도 모르고 장난감으로 생각하며 아들에게 준다. 샤오디에 의해 장강7호라고 명명된 외계의 생명체 녹색 공은,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화하며 샤오디의 수호천사가 된다. 주성치의 영화가 주는 힘은 튼튼한 낙천적 상상력에 기초해 있다. 그의 인물들은 아무리 고된 삶을 살아도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낙관적 인식에서 비롯된다.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주성치의 인물들은 그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놓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는 낡은 집은, 그들이 처한 계층적 위치를 시각적으로 한눈에 보여준다. 도시 외곽의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철거 직전의 버러진 집 한쪽 구석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살고 있다. 구멍난 창문틀을 내리면 아들의 책상이 된다. 무더운 날씨지만 선풍기 하나 없다. 아버지는 힘들게 번 돈으로 낡은 선풍기를 사오지만 제대로 작동도 되지 않는다. 선풍기 사는 것도 속을 정도로 세상 일에 어리숙하기만 한 아버지에 비해 아들은 오히려 씩씩하고 똑똑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그들의 삶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단 한 순간도 삶에 대한 낙천적 인식을 버리지 않는다.
[장강 7호]는 명백하게 중국 사회주의에 협력하는 정치적인 영화이다. 소외된 계층의 아버지와 아들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유산계급들이다. 아들은 사립학교에서 있는 집 자식들인 동급생들로부터 놀림받고 왕따 당한다. 기름이 뻔질나게 칠해진 남자 선생님은 남루한 차림의 샤오디가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한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의 건설현장 보스(임자총 분)는 아버지를 사정없이 야단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노동자들끼리의 연대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장강 7호]는 외계 생명체인 녹색 공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버지와 아들의 계층적 위치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아들은 학교에서 친구와 남자 선생님으로부터 왕따당한다. 그의 곁에는 유도 선수처럼 커다란 덩치에 목소리는 아주 가녀린 여자 동급생 하나만 있을 뿐이다. 담임 선생님 위엔(장우기 분)은 샤오디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며 아버지와의 면담을 신청한다. 위엔 선생님은 언제나 흰 옷을 입고 해맑은 웃음으로 등장해서 마치 천사같은 느낌을 준다. [장강 7호]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은, UFO가 등장하거나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외계 생명체 장강7호가 아니라, 신분 차이가 나는 위엔 선생님과 아버지 사이에 연정이 싹트는 것이다. 사랑에 관한한 비현실적일 정도로 낭만성을 유지하고 있는 주성치의 특징이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주성치의 따뜻한 감성이 잘 드러나고 있는 [장강 7호]는 주성치식 코미디가 단순히 슬랩스틱에 의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컴퓨터그래픽의 놀아운 성과에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는 [소림축구]나 [쿵푸허슬]에서도 드러났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인간적으로 육화해서 삶의 굴곡진 모습을 표현하는 드문 재능을 갖고 있는 감독이 주성치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중국 전역에서 실시된 오디션을 통해 샤오디 역으로 캐스팅 된 서교는 리틀주성치라는 별명이 걸맞을 정도로 깜찍하고 앙증맞으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 주고 있다. 올해 9살난 서교는 영화에서는 주성치의 아들로 등장해서 남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소녀이다. 또 주성치 영화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여자 배우의 계보를 잇는 성치걸 위엔 선생님의 장우기도 국내에서는 짝퉁 송혜교 성형수술로 알려져 있지만 맑은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