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발해는 백두산 화산폭발의 최대 희생국이 되었고, 거란은 화산의 피해로 국력이 쇠약해진 발해의
수도 상경에 큰 저항 없이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소원주)
이제 그 드라마틱한 역사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0세기에 백두산이 폭발한 정확한 연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백두산 폭발이 발해 멸망에 직접 관련이 있는지, 또는 발해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거란의 정사인 <요사>에 기록된 발해의 수도 상경(上京) 홀한성(忽汗城)이 거란의 침공에 의해
함락된 시기(926)를 전후해 백두산이 폭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목할 점은, 고구려인, 발해인이 살다간 옛 땅의 한복판에서 실제로 일어난 그 화산폭발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규모였다는 사실이고, 인류가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지구상에서
일어난 화산 분화 중 백두산의 규모가 최대였다는 것입니다.
그 화산재는 가차 없이 인류의 기록과 구조물을 뒤엎고 역사에 공백을 만들고 문명을 정체시키고
문화를 소멸시켰습니다.
그것은 역사라는 퍼즐에서 발해 멸망이라는 한 조각을 우리 곁에서 없애 버렸습니다.백두산은 과거와 현제에 그곳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정신 세계와 물질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따라서 10세기에 일어난 백두산 폭발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백두산 폭발에 대한 연구는 일본을 포함한 외국 연구자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10세기 백두산 화산폭발의 박사학위는 미국과 독일에서 나왔습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할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민족의 정신을 지배해 온 백두산은 우리의 혼을 담고 있는 화산입니다.
일본에서는 백두산 화산이 10세기에 폭발하여 형성된 천지 칼데라에 관한 3D영상이 방영되기도
하고, 그것은 1만년 전 이전 마지막 빙하시대의 산물인 ‘카르’라는 침식 지형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위에 10세기 ‘테프라’가 모두 덮고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우리 연구는 백두산 천지 북동쪽 약 12km 떨어진 협곡 부석림에서 채취한 탄화목 최외피의 위글 매칭에
의한 방사성 탄소 연대가 AD860±100년 즉 서기 760년과 960년 사이의 폭발 가능성이 95.4%입니다.
오늘을 통해 과거를 알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안다는 것이 근대 지질학의 선구자 ‘찰스 라이엘’이
제창한 “현제는 과거의 열쇠”라는 지질학적 대명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유구한 역사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역사도 아니다. 진실의 역사인 것이다.”
이 책이 출간 된 후 우리나라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음 번 백두산 화산폭발에 관한 얘기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짝 유행하듯 만들어진 조사위원회나 연구소는 양질의 분석과 정보를 모으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백두산 화산폭발에 대한 많은 연구로 발해와 관련된 역사는 물론, 백두산에 관한 많은 정보와
이야기로, 우리 역사와 함께한 백두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