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상기온의 징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출발을 위해 호텔을 나서니 비가 왔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로산 모자가 날씨와 맞아 기분은 들떴다.
안달루시아 라만차지역의 꼰수에그라로 출발이다.
세르반테스를 만나는 날!
너무 오래전에 읽어 가물가물한 기억인데
여행안내자인 지나는 세르반테스를 홀연 차 안으로 불러 왔다.
돈키호테, 그의 기발한 착각은 세르반테스의 파란만장 인생과 맞물려
내가 언제 문학도였나 싶을만치 나이가 든 내게 정겹게 다가왔다.
작가론과 문학의 시대적 의미라는 말을 다시 떠올린 시간이 된 꼰수에그라였다.
세르반테스!
출세지향의 인간이었으나 살아 생전엔 하는 일마다 꼬이고 꼬여
자신이 바라던 상황과는 정반대로 얽힌 인생.
독학으로 글을 익힌 천재성을 가진 그는 가난한 이발사겸 외과의사의 칠남매중 넷째.
19세에 세비야로 돈 벌러 가서 그곳 신학교의 무상교육프로그램을 수료했다 한다.
출세를 위해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가 영웅은 커녕 장애인이 되고
전쟁포로로 5년간의 갈리선의 노를 젓는 노예생활까지 ...
가까스로 세금징수원의 삶을 이어가다 투옥되기까지 한다.
그 투옥생활에서 집필된 돈키호테는 대중적으로 성공했으나
그의 판권은 헐값에 넘겨버린 뒤였으니 그의 인생은 달라질 일이 없었다.
그의 이상을 꿈꾸는 삶을 돈키호테로, 현실감각은 산쵸판자로 인간의 양면성을 표현했다고 하는
돈키호테는 어쩌면 자신의 열망과는 거꾸로만 가는 현실에서 미칠 것 같은 자아의 한 모습이었을 것 같다.
라만차 지역은 건조하고 거친 평원, 올리브나무가 드문거리는 광활한 벌판이다.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는 인생에서 그 거친 땅을 걷다보면 미치지 않고야 ....
당시의 기사들은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 그는 기사를 조롱거리 삼아
해학과 풍자 가득한 서민대상의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춘 소설을 썼다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중국문학사에서 노신의 아큐정전이나 한국문학사에서 박지원의 양반전같은 의미.
민중의 우매함을 깨우치면서 정신차리라고 외치는 선구자적 자세.
당시 스페인에는 왕실 곁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소설가 로페드베가가 있었다 한다.
살아 생전엔 꼬이기만 하고 죽은 뒤에야 빛을 본 소설가 세르반테스.
성공하는 인생은 언제나 이 두가지 유형중 하나다.
어디에 속할지는 은총의 활동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노력한다고 다 된다면 못사는 인간이 누구겠는가!
애쓰는 것 이상으로 하는 일마다 축복으로 이어지는 내 인생, 새삼 주님께 감사드린다.
바람이 부는 라만차의 꼰수에그라 언덕은 차로 올랐고 그 언덕위 돌틈새엔 예쁜 들꽃이 피어 있었다.
미친 돈키호테가 싸우던 풍차는 그 지역 특산물인 올리브기름을 짜던 것이었다 한다.
또 다시 귀에 음악을 꽂았고, 차가운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울로 된 멋진 모자와는 시기적으로 잘 맞아 언덕 끝에 서서 카메라 앞에 자신있게 섰다.
제법 문학도 냄새를 풍기는 것 같지 않은가?
세르반테스의 문학적 인간적 향기에 취해 들판 사이를 터벅이며 걷고 싶었지만
단체 여행이란 게 미련을 남기는 게 특색이다.
꼭 한번 다시 와 보고 싶은......
점심엔 스페인식 애저찜이다.
새끼돼지를 통으로 익혀 잘게 잘라 나눠주고 감자에 샐러드 곁들여 나오는 음식이다.
여행중에 먹는 음식에 무조건 내 입맛을 맞추는 유형인 나는
알콜로 불이 붙은 애저찜도 달게 먹었다.
유럽에 가면 빵을 잘먹고 한국에선 김치에 밥을 고집하는 나는
체온도 기온에 따라 변온동물처럼 찼다 더웠다 하는데
음식도 가는 곳마다 원래 그곳에서 산 사람처럼 잘도 먹는다.
꼬르도바의 메스키타의 제대와 감실 모습이다.
메스키타는 모스크와 같은 뜻으로 엎드려 경배한다는 뜻의 스페인어다.
이슬람은 복종이라는 뜻을 가졌고 무슬림은 복종하는 사람을 뜻한다한다.
성당들이 대체로 과거 이슬람의 모스크였었단다.
전국민을 개종을 시켰으니 얼마만한 탄압이 있었을까!
가장 최후까지 종교재판소가 남아져 있던 곳이고 잔인한 고문기구들이 많이 남겨져 있다 한다.
천년전 이미 백만명이 살았던 이 번성한 도시에는 그에 걸맞은 성당이 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그 지역사람들의 신심의 정도를 자랑하듯 성당을 치장한다.
제대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상상키 힘들만큼 화려하다.
왕이나 황제의 절대권력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교회를 완성할 수 있을까!
교회도 때론 절대 권력이 되니까....
여왕의 각별한 신심이 가톨릭 국가를 만드는 힘이었을 것이다.
꼬르도바 대성당 내부기둥은 이슬람의 영향으로 종려나무를 닮았다.
이슬람의 교리는 어떤 사람이나 동물형상도 만들 수 없어서 식물을 소재로 꾸며졌는데
사막안의 오아시스와 같은 의미로 성당내부엔 나무를 닮은 기둥을 세우고
신자들은 그 오아시스에 머문다는 느낌이 나도록 배려했다 한다.
천장은 이슬람의 특색이 물씬나는 기하학적무늬가 연속되게 꾸며져 있는데
그 규모나 섬세함이 엄청났다.
남자는 성당에서 모자를 벗도록 되어 있고 여자는 쓰고 있어도 된다한다.
둘이 가면 늘 혼자 온 사람처럼 따로 사진을 찍는데 성당안에서는 함께 찍고 싶었다.
사진에 예쁘게 나오려고 옷을 많이 챙겨가는 바람에 무거운 가방을 타박하며 남편이
'돌덩이 같다'고 구박을 했다.
'많이 챙기면 쇼핑을 안한다'는 원칙도 모르고....
여행 안내문에 심지어
"가방은 크게 내용물은 조금 가져오세요."
라고 쓰기까지 했던데......
그게 다 나름의 절약비책인걸.
꽃의 거리라고 불리는 유대인 거리를 걸었다.
저마다 자신의 안뜰에 꽃을 가꾸어 자랑하는 파티오축제가 벌어지는 기간이었다.
잘 가꾼 집은 시상도 하고 집안뜰을 오픈해서 관광객에게 보여준다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다니는 바람에 그만 길 잃은 동료를 찾느라 한동안 다들 안절부절 했다.
허둥대며 찾아다니다보니 우리보다 더 먼저 지름길로 목적지에 와 있어 안도했다.
어쨋든 일행은 여행 떠나는 순간부터 한몸이 된다.
남편이 예쁜 파티오안에 식당을 연 집앞에서 포즈를 취해준다.
그는 어제 산 칠천 오백원 짜리 면모자를 쓰고 여유있게 웃었다.
참 잘 어울렸다.
어느 제품이고 얼마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게 잘 어울리는가가 쇼핑의 가장 첫째조건이다.
여행중의 쇼핑은 즐거운 눈요기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창밖을 내다 보았다.
산정에 하얀 눈모자를 쓴 시에라네바다산이 위용을 자랑한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마을을 품에 안았다.
우리가 그라나다에 도착한 것이다.
첫댓글 회장님의 여행기를 너무너무 기다렸어요.^^두분의 여유로운 여행에 저도 다음에는 동행하고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