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과 까미유
“The eyes which can see well the corner that other eyes cannot see are the ones
of maestros. What maestros do is to pick up the beautiful in what others throw
away, not to make fantastic works with unique ideas."
“다른 사람들이 아직 보지 못한 구석을 잘 보는 것이 거장의 눈이며, 남들이 버린 것 속에 남아 있
는 아름다움을 주워내는 것이 거장의 하는 일이지, 결코 유달리 뽀족한 생각으로 기상천외한 작품
을 내는 것이 아니다."
로댕의 유언이라고 몇 가지가 있어서 두 가지를 소개 합니다. 위의 것은 유언이라기 보다
로댕의 명언 중의 하나 같고 아래의 것은 로댕이 정신병을 앓은 적이 없는데 그럴 듯 하게 꾸민 가짜
유언 같습니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로댕도 말년에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정신 요양소에 입원했 었는데 소
리 쳤습니다. “I, Rodin am God. 나 로댕은 신이다!” 곁에 있던 간호사는 "Yes, you are God, b
ut the God who shits and pisses...그래, 당신은 신이야. 하지만 똥오줌 싸는 신이지." 라고 대
답했고 그는 그 간호사의 대답을 들으면서 별세했다고 합 니다.
로댕(1840-1917)은 프랑스 조각가입니다. 그는 현대 조각의 선구자입니다.
로댕의 작품은 신화와 우화(寓話)를 주제로 한 전통적인 조각과는 다르게 실감나는 인간의 육체를
모델로 했고 개개인의 특성과 육체성을 찬양 했습는다. 로댕은 자기 작품을 둘러싼 잡음에 민감했
지만 개성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자기 작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정부와 미술계에서 점점 인정을 받습
니다. 1875년 이태리 여행 중 여러 작품에 그는 압도당합니다.
그의 명성이 점점 더해 가면서 1900년경에는 프랑스 최대의 조각가로 전 세계의 인정을 받습니다
. 부자들이 그의 작품을 사려고 그를 찾았습니다. 그는 사회의 명사로서 각계의 인사들과 미술가들
과 교제합니다. 그는 재봉사 로즈 뵈뢰와 동거를 하였다가 결혼하는데 두 사람 모두 1917년에 죽습
니다. 그의 사후 그의 작품인기는 예전만 못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작품의 예술성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로댕의 1840년 파리의 하층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습니다.
1857년 로댕은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기 위해 친구를 모델로 만든 찰흙작
품을 제출하지만, 입학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두 작품을 더 제출하였으나 불합격되었습니
다. 그랜드 에콜에 입학하기 위한 요청사항도 그 당시 높지 않았는데도 입학이 거부 되었습니다. 로
댕은 심히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나인 마리아가 수녀원에서 복막염으로 죽자 로댕은 또다시 좌절합니다. 조각을 버리고 잠시 천주
교 신부가 되려고 성당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1864년 재봉사 로즈 뵈뢰와 동거합니다. 아들이 하나
생겼고 보불 전쟁 후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로댕은 벨기에에 가서 직장을 얻었는데 살롱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로즈도 합류하여 돈이 모이자 1875년 이태리 여행을 갑니다. 로댕은 말했습니다,
“아카데미 조각에서 나를 풀어준 것은 미켈란제로이다.”
1877년 이들 부부는 파리로 돌아와서 단간 방을 얻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고 아버지는
눈이 멀고 치매에 걸렸습니다. 로댕의 11살 난 아들은 성장에 문제가 있는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그는 “청동시대” 작품을 제작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위로해줄
여자를 찾습니다. 1881년 자기의 제자이며 18살 난 여자 조각가 까미유 클로델을 만나
열정적인 연애를 합니다. 부인인 로즈와 카미유는 로댕에게 상대방과 헤어지길 요구하였고
둘이서 머리를 잡아 다니며 싸우기도 하였답니다.
로댕은 태연히 두 여자와 계속 살았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던 천재 조각가 까미유는 16년
동거 후 정신 분열증 증세가 나타나면서 로댕과 헤어집니다.
그녀의 남동생과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넣었는데 가벼운 증세여서 치료가 순조롭게 되어
병원에서 퇴원을 권유하면 동생과 어머니가 한사코 반대하여 단 한 번도 병원에서 못
나오고 30년 동안 병원에 갇히어 살다가 죽었습니다. 30년 동안 동생은 7번, 여자 동생은
1번, 그리고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면회 온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고 유령의 집단 같습니다.
까미유는 얼마나 퇴원하고 싶었을까요? 그리고 그녀의 희생을 딛고 저명인사가 된 로댕도
참으로 잔인 한 것 같습니다. 24살 연하의 처녀를 망쳐놓고 자기 혼자 출세의 길을 달려가
면서 불쌍한 까미유 면회 한 번 안 가다니 너무나 비인간적입니다.
어쩌면 로댕은 그의 대표작 “지옥의 문”근처에서 서성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유행가의 가사 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로댕 박물관에는 까미유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고 해외 전시를 나가면 두 사람의 작품이
함께 나간다는 군요. 살아서 헤어진 두 사람 죽어서 작품으로 또다시 한 몸이 되었군요.
세월이란 고약의 약효가 이명래 고약만 합니다.
까미유의 조각만 80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1910년 까지 로댕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칼레의 시민” “빅토르 위고”조각의 주문을
받습니다. 그의 명작으로는 “지옥문” “생각하는 사나이”등이 있습니다.
1917년 1월에 로댕과 로즈는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결혼 후 3주 후에 로즈가 사망하고
그해 11월에 로댕도 죽습니다. 전 세계가 애도하였다고 합니다.
다음은 로댕이 남긴 말입니다.
1. Nothing is a waste of time if you use the experience wisely
경험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어떤 것도 시간낭비가 아니다.
2. The main thing is to be moved, to love, to hope, to tremble, to live. Be a man
before being an artist!
중요한 것은 감동 받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떨고 사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라.
3. Man's naked form belongs to no particular moment in history; it is eternal, and can
be looked upon with joy by the people of all ages.
인간의 나체의 형태는 역사의 어느 특정한 순간에 속하지 않는다; 그 나체는 영원하고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기쁨으로 우러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