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의 무자비한 폭력에 힘없이 노출된 분들께도 이 글을 바칩니다.
[구타교실] -3- 지옥의 체력단련
* 변형태 (똥행패)가 머리에 붕대를 감거나 다리에 기브스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병국이가 똥행패의 충직한 개가 되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똥행패와 더불어 조병국의 감시와 폭력에도 시달려야 했다.
똥행패가 없을때는 조병국이 반분위기를 장악했으며
중학때는 그리 많던 잠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날카로운 눈을 희번득이며 우리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다
종례시간에 앞서 교무실에 집에서 기르는 '쫑'보다도 더 빨리
쪼르르 달려가 동태를 보고했다.
이것은 공개된 학원사찰이었으며 똥행패의 지능적이고도 교활한
지휘방법이었다.
역시 똥개는 똥개를 알아보는법
조병국은 똥행패의 아주 잘 조련된 애완견이었다.
그동안 몇몇의 학우들이 여러 종류의 시범케이스로 피흘리며 쓰러져갔고
나 역시 며칠전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며 손때가 묻어 기름이 번들번들한
박달나무 몽둥이 (그의 말에 의하면 정신단련봉 제 5 호.
호수가 낮아질수록 그 강도와 고통은 더해갔다.)로 히프 20대를 맞고
작은형의 애환이 서린 작은 대야에 내 피묻은 팬티를
남몰래 빨아야 했다.
부모에게 그 사실을 들켜 부모가 항의라도 하러 오는 날이면
똥행패는 부모님들에게 대놓고
'이런 자식 부모가 대체 어떤가 궁금했는데 마침 잘 만났다'며
삿대질을 해대고 게거품을 물어
하는 수 없이 질린채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날은 좀체 보기 힘든 똥행패의 흥분한 모습을 보며
수업이 끝난후 세시간 가량은 삼청교육대 순화교육을 무색케하는
혹독한 기합을 각오해야만 했다.
"너희들이 입학한지도 이제 2주일이 지났다. 우리 학교는 설립자이신
김학렬 이사장님의 건강한 체력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학교 설립 방침에 따라 등교시에는 교실로 직접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학교 뒷산으로 난 오솔길 1킬로를 뛴 후 입실하기 바란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말하겠는데 다른 반은 8시까지 등교하지만
우리반은 내일부터는 7시까지 등교해라
질문 사항 있나?"
항상 행패의 종례 끝은 질문사항 있나 였지만 단 한번도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똥행패의 종례가 끝나자 절반은 하교를 하고 절반은 남아 청소를 했다.
다른 반은 분단별로 청소를 하지만 우리반은 절반씩이 하루 걸러가며
매일 대청소를 해야했다.
그것도 한시간씩 매일 물청소를 해야했으며 유리창도 파리가
너무 투명해서 머리를 부딪고 죽을 정도로 깨끗이 닦아야만 했다.
청소가 끝나면 똥행패의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언제나 하얀 목장갑을 끼고 검사를 했다.
세번중의 두번은 재청소였으며 똥행패의 흰장갑에 검은 먼지가
묻어나는 날에는 곡소리가 났다.
드디어 그 악명 높은 조조체력 단련 시작의 날이었다.
김학렬 이사장은 똥행패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 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사장이 무슨 조화였는지 어느날 학교 뒷산을 뛰게 되었다.
그것이 20년 전 이었다.
그다음날부터 학생은 물론 선생, 급사, 수위까지 아침에는
뒷산을 뛰어어야만 했다.
이제 70이 넘은 이사장은 더이상 뒷산을 뛰지않지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1학년은 입학후 2주일 가량이 지난 후부터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나는 해도 뜨기전인 어스름한 새벽녘에 중국 인민복을 주섬 주섬 챙겨입고
'킹덤'병원 보다 더 끔찍한 M고로 향했다.
교문을 들어서자 고3 선도부가 사복경찰이 시위지역에서 보초를 서듯
쭈욱 늘어서 있었다.
물론 그들은 이미 새벽 6시에 등교하여 산길을 뛴 후 였다.
나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야트막한 산길이 이어지는 듯 하더니 곧 급경사가 나타났다.
50여미터를 달리다 숨이 깔딱 깔딱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자 어디선가
"야, 거기 1학년놈 이리 튀어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 3 선도부였다.
그쪽에는 이미 열댓명의 아이들이 깍지를 끼고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었다.
나는 5분여간을 깍지를 끼고 엎드려 있다가
숨이 넘어가든 말든 선도부들의 감시아래 산길 한바퀴를 뛰었다.
평지 1킬로를 뛰어도 녹초가 될 판에 산길 1킬로는
태릉선수촌 국가대표들도 올림픽이나 다가와야 할 운동량이었다.
콧물을 입으로 한컵은 받아마시며 들어선 교실
조병국이 내게로 다가왔다.
"야, 최동혁"
"으 응"
병국은 고등학교에 오자 급우들에게 더이상 형이라 부르라고
강요는 안했지만 상대하기 싫은 독사같은 존재였다.
"너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찾아오랜다"
으허어어어어어어억~~~~~~~~~~~~~
내가 무슨 죄를 졌길래 그가 나를 부르는 것일까?
차라리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으라고 할 것이지
아~ 내 인생 최대의 위기여......
- WRITTEN by YIYAP -
* 고교 시절 우리 학교에도 전교조의 바람이 몰아쳤다.
우리가 감자라고 부르며 우습게 알던 선생님, 아이들이 떠들든 말든
조용히 수업만 하시다가 가끔씩 '조용히들 하거라' 라 말씀하셨다.
학교에서 본격적인 전교조 탄압이 있자 대부분의 선생이 중도하차했지만
그분은 의외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셔서 끝내 해직당하셨다.
감자 선생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구타교실]-4- 이중인격자 교장 난동
* 나는 떨리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교무실로 향했다.
똥행패가 무슨 일로 날 불렀을까.
혹 피묻은 팬티를 몰래 빨던 내모습을 어머니가 보시고 학교에 다녀 가신걸까.
'음~ 그렇다면 난 죽음이다. 현실적으로 법보다 주먹이 가깝지 않은가'
똥행패가 학교에서 짤릴리도 없지만 (그는 김학렬 이사장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었다.)
만약에 국가까지 개입해 똥행패가 짤린다면 그는 나를 반드시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놓고 그만 둘 것이 틀림없다.
사형이냐 무기징역이냐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으로 교무실 그의 자리로
찾아갔다.
그의 자리에는 당구 큐대를 비롯하여 박달나무, 참나무, 나무 야구 배트,
알루미늄 야구배트등 온갖 흉기가 즐비했다.
그래도 소문으로 듣던 베트콩 머리를 짤라 들고서 씨익 웃고 찍었다는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설마 근거없는 소문이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똥행패 앞에 서자
故 박정희 대통령이 무표정으로 혁명과업을 읽어내리듯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최동혁"
나는 양팔을 겨드랑이에 꼬옥 붙이고 두주먹을 불끈 쥔 채
"넷" 하고 대답했다.
"음~ 네 중학교때 생활기록부를 보니 미술반 활동도 했었고 미술에 소질이
있더군. 앞으로 교실 환경미화 심사가 있을테니 네가 주축이 돼서
교실 환경미화에 힘쓰도록 자세한 얘긴 조회 시간에 할테니
그리 알고 교실에 가서 아이들한텐 아침 8시까지 책에 대가리
처박고 열심히 자습하고 있으라고 전해라.
만약 내가 불시에 들러봤을때 한 놈이라도 떠드는 놈이 있으면
너부터 죽이고 차례 차례 죽여주겠다. 질문 있나?"
나는 하마터면 "넷,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뻔 했다.
내가 뒤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똥행패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급사 내 액자 청소하다 치웠어"
급사 누나도 빨딱 일어나 긴장된 목소리로
"아뇨, 그 근처에 있을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급사 누나가 걸레로 똥행패의 책상을 닦다가 액자를 건드려
쓰러뜨렸었나 보다.
똥행패는 건너편 책상으로 넘어간 액자를 발견하고 소중히 챙겼다.
그 액자 속에는 똥행패가 양쪽 귀가 짤린채 두눈을 뜨고 죽은
베트콩의 머리를 들고 죽은 베트콩보다 더 끔찍한 표정으로
씨익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장면은 '토요미스테리 극장', '다큐 이야기 속으로',
'전설의 고향'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귀신이 떼거지로 몰려나와도
감당치 못 할 전율이었다.
'아~ 아~ 내가 이런 자와 앞으로 1년을 보내야 하다니 혹 일년후에는
베트콩의 머리대신 내머리를 짤라 들고 서 있는 사진이 놓이진 않을까'
똥행패의 분부를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조병국의 감시와
똥행패의 공포를 익히 아는 아이들이 떠들리는 전혀없었다.
조회 시간에 행패는 앞으로 일주일후 있을 환경미화 심사에
우리반이 반드시 일등을 차지해야 한다는 말을 이례적으로
두번씩이나 강조했다.
그가 두번 입밖에 냈다는 건 일등 외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이름을 거명하며 최동혁을 환경미화 담당으로 정했으니
내 말을 자신의 말처럼 듣고 따르라 했다.
나에게는 똥행패를 등에 업은 모처럼의 권력의 단맛인 시기임과 동시에
그 과업이 실패했을시엔 그의 철권에 희생당하기 전에 독약 앰플이라도
마셔야 할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나는 골머리를 앓으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음악수업 시간 열여섯명의 선생중 비교적
정상인에 가까운 단 둘 뿐인 여선생중의 한명인 윤미정 선생 시간
아이들은 일주일의 수업중 몇 안돼는 숨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 이었다.
모처럼 옆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노래도 부르던 그때
음악실문이 드르륵~ 열렸다.
우리는 소란한 수업분위기를 목격한 똥행패의 습격인가 아연
긴장했지만 주인공은 대머리가 반쯤 벗겨진 이중인 교장이었다.
우리가 이중인격자라 부르는 이중인 교장
그는 교장이지만 전혀 실권이 없고 김학렬 이사장의 허수아비였다.
평소에 그는 온순하다기 보다 무기력하게 지내는데 이사장실에 불려가
구두발로 조인트라도 찍히는 날이면 전투력 3만의 마인으로 변모하여
무슨 먹이거리가 없나 살피는 하이에나처럼 온 학교를 뒤지고 다녔다.
그 케이스로 오늘은 윤 선생이 걸렸다.
교장이 이런 날엔 제 아무리 똥행패도 슬금 슬금 피해다닐 정돈데 가냘픈
음악선생이 걸려들다니
교장은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야 이년아 니가 선생이야 음악실 팻말이 반쯤 떨어져
덜렁거리는데 그것도 몰라"
하며 음악책을 집어들어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윤미정선생에게
던지고 나가버렸다.
윤미정 선생은 순간 와락 눈물을 쏟으며 피아노 건반에 엎드렸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그녀의 불행이고 내 앞에 닥친 이 험난한 과업은
어쩌란 말인가.
반쯤 망령난 이사장과 이중인격의 교장 인간 백정 똥행패가 다스리는 M고
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첫 관문은 환경미화 심사였다.
내가 환경미화 따위에 목숨을 걸게 되리라곤 1년전엔 상상이나 했더란 말이냐
운명의 환경미화 심사는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 WRITTEN by YIY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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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 교실 3,4
송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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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1.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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