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허 속에서도 기도하는 소년-
그늘진 달-김용균
달은 내가 띄우는
둥근 방패연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눈 속의 얼레에 감긴 투명한 실이 달의 중심에 박혀
달은 나를 위해 떠오르는 내 후광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으로 항상 그늘이 친숙해 지고
밝은 뙤약볕은 왠지 서먹해 지는 것이었다
달은 뿌리가 없어서
구름에게도 밀려가는 것이다
그러던 아버지도
푸석 땅에 뿌리하나 내리지 못하시어
흔들리며 사는 법을 전수 하셨다
바람에 노상 흔들리는 성긴 부표 같은 생.
쳐다보면 같이 일렁이던 달의 틈에서
건조한 적빈의 섬유질이 내게 옮겨왔다
나는 식물성의 키가 커 가면서도
너무 찬란한 것은 너무 찬란해서 싫지만
아주 그늘보다는 조금만 더 밝았으면 싶고
서 있는 모든 것의 아랫도리라도 매달리고 싶고
매달린 것과 공동분해 되어 어느 푸석 땅
잔뿌리라도 몇 오리 꽂아 놓고 싶지만
어둠을 투영하여 또 다른 어둠으로
내 눈의 얼레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달이
질긴 대물림의 연실을 당기며
어룽어룽 그늘을 풀어 두 손을 묶어 놓는다
달이 어느새 내 가슴에
적반하장의 굵은 뿌리하나를 심어 놓은 탓이었다.

아까시나무는 우리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가장 싫어하는 나무가 아까시 나무라고했습니다.
일본사람과 같다는 것이 그 이유 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뽑아내도 없어 지기는 커녕 선산의 묘 자리까지 침범하는
그 집요함과 숲 속의 빈터는 모조리 차지하고 들어 가지도 못하도록 가시를 드러내는
공격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고약한 나무가 밉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대 포기할 줄 모르는 그 질긴 생명력을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아무리 좋은 환경에 풍족한 영양분을 주어도 잎을 떨구고 죽어가는 나무들에 비하면,
어떻게든 살아 가려는 그 모습이 기특합니다.
베어 내고 베어 내도 있은 힘을 다 끌어 모아 새순을 올리고 꽃을 피우는 아까시나무를
그래서 나는 감히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23년 동안 시부모와 남편의 병수발을 든 신달자시인.
자신도 유방암의 진단 속에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 팽겨쳤다면 그녀의 가정은 깨졌을 것이고
그녀의 자식들도 망가 졌을 것입니다.
촌에서 어머니 손을 잡고 교회에 다녔던 어떤 분이 생각납니다.
4자녀를 낳고 잘 살 줄 알았던 그녀는 막내아들이 소아마비 걸렸고,
한 딸은 방황 하더니 기여코 가출 해 이 남자 저 남자와 동거하여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또 장남인 아들은 며느리가 바람 나 어린 두 아이를 버려 둔 채 집을 나가고 말았습니다.
방황하던 아들은 또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지만 결혼생활이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그 집은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끝까지 그들에게서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싫은 내색 한 번 내지 않고 다독거렸습니다.
끊임없이 배풀고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기도만 했습니다.
그러다 그 분은 병을 얻어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그 분이 돌아 가시자 모든 것이 자리잡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다 돌아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물림.
삼대째로 신앙이 대물림 하게 된 것입니다.
김정일이 삼대째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보기 좋은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대재벌들이 모두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이혼한 부모는 이혼하는 자녀를.
술중독인 부모는 술중독의 자녀를.
폭력과 도박하는 부모는 도박과 폭력적인 자녀로 대물림해 줍니다.
모두 보기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말에 <물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리다.
다시 대하기 싫을 만큼 몹시 싫증이 나다 라는 말입니다.
자꾸 자꾸 같은 음식을 먹으면 물립니다.
음식도 그런데 하물며 보기 좋지 않은 대물림이라면 물려도 아마 대단히 물릴 것입니다.
어쩌면 신앙 역시 똑같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려서 내 팽겨져 지고 싶을 것입니다.
두번 다시 먹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제 자식들에게 신앙을 대물림 해주고 싶습니다.
사실 제 아들들에게 고서를 대물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분처럼 신앙을 물려 주고 싶습니다.
아브라함은 노인이었고..
야곱은 불안한 상황에 있었으며..
레아는 예쁘지 않았고..
요셉은 매도되었으며..
모세는 말더듬이였고..
기드온은 가난하였으며..
삼손은 의존적이었고..
라합은 부도덕했으며..
다윗은 간음했을 뿐 아니라 온갖 가정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엘리야는 자살을 생각했었고..
요나는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었으며..
나오미는 과부였고..
세례 요한은 괴팍한 행동의 소유자였으며..
베드로는 즉흥적이고 성격이 급한 불같았으며..
마르다는 늘 걱정이 많았고..
사마리아 여인은 여러 차례 결혼 생활에 실패했으며..
삭개오는 사회에서 따돌림당하였고..
도마는 의심이 많았으며..
바울은 건강의 문제가 있었고..
디모데는 마음이 연약했다...
이렇게....
이들 모두 다 여러 가지 실패와 약점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이지만..
어차피 기독교로 들어 온 이상 (불교나 다른 것이라도 똑같다)
많은 잘못된 것이 있더라도
그들에게 물려주고 싶고 그들이 물려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도하는 아들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