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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시청소감문(잃은 양을 구하자)
영화 “밀양”(비밀의 햇볕)은 1985년에 발표된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이야기”를 근간으로 제작되었다. 이 원작은 80년대 광주를 유린한 폭압적 권력과 그들에게 희생당한 민초들의 나약함을 풍자하여 그림으로써, 가해자의 진정한 참회 없이도 또한 피해자가 용서하기도 전에 누가 가해범을 용서할 수 있는가를 묻는 내용이며, 과연 지켜보는 하늘과 내려 비치는 햇볕 아래서 나비로 부화도 되기 전에 처참히 유린되어 짤려나간 머리칼처럼 나뒹구는 애벌레 같은 나약한 인간들의 존엄함과 권리란 도대체 무엇인가의 의미를 묻는 내용이다.
필자는 원 작가와 같은 물음을 갖는 사람들에게 그 원한서린 물음일랑 한 번 내려놓아 보고, “밀양”의 작가가 구상하는 더 큰 의미의 새로운 복된 해답을 얻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위에 계셔서 햇볕을 비추시는 분은 비록 검은 구름 몰아치듯 온갖 횡포와 부조리가 난무하는 세상일지라도 사랑하셔서 정의와 평화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보내셨으니 그 분안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다 같이 참되게 용서받고 용서하며 평화공존하는 하나님나라 은총의 세계로 들어와 죄악에서 해방받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생명의 존중함을 누려보자는 해답을 제안하고 싶다. 한 때 잠시나마 피해주인공은 그 은총을 누릴 수 있었으나 그녀 스스로 시험에 빠져들어 타락하게 된다. 그 경위를 살펴보고 잃은 양을 찾으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그녀를 구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이 소감문의 주된 관점이다.
주인공의 성격과 문제점
◎장점 : 의지와 집념이 강해서 할 일을 미루거나 망설이지 않는 추진력 있는 사람이다. 여인으로서 낯선 지역에 홀로 이주하여 독립적으로 학원을 차리고 대지를 구하며 주택을 건축하려고 주선한다. 독신으로 외로워하지 않고 재혼에도 관심 없이 어린 아들 하나 기르면서 학원일로 자기생활을 감당한다. 신앙을 받아들인 후로는 일반 신도들 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을 따뜻하게 느끼면서 열심히 교회생활에 임한다.
◎단점(문제점) : 자기중심적이고 독단적이다. 또한 고지식한 편인데다 자만심이 높고 편견도 강하다. 그녀가 범죄자들에게 비춰지는 자기 자신의 생활에 관해서, 또는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성에 관해서,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신앙에 관해서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폭넓게 이해하며 생활했더라면 타락하는 불행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보고 알고 느끼는 상식과 감정만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것 같다. 그녀는 죽은 남편과 미숙하게 자라는 아들 하나에게 집착하여 입지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남편의 고향인 밀양 땅 낯선 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하려고 한다. 또한 자기에게 배려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성에 대하여도 관심하지 않으며 독신생활에 자신감을 갖는다.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로 자만심이 있는 것인지 이사한 초기부터 상대해 본 일이 없는 사람들과 부동산 구입을 의논하며 자기가 가진 재력을 조심 없이 노출시킨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다 된 신앙인처럼 자기의 원수를 용서하겠다느니, 그를 전도하겠다느니 하는 신앙의 자만심을 갖고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교도소를 찾아가 자기의 아들을 유괴하고 살해한 가해범을 대면한다. 그러나 신앙의 자부심을 갖고 원수를 용서하겠다던 그녀가 정작 만나본 가해범이 죄수모습이 아닌 성자모습으로 당당하고도 천연스럽게 그녀를 대하자 그만 실망하며 돌아선다. 찾아간 보람이 없었다고 느낀 그녀는 돌아온 이후 변심하여 순식간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교회의 심방이나 권의에 반박한다. 단 한번이라도 인생과 신앙에 관한 전문 지도자와 상담조차 해보지 않고 자기 혼자만의 감정과 생각의 판단으로 쉽게 하나님과 교회를 등져버린다.
타락한 원인
그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입었던 큰 피해와 상처를 극복하고 남다르게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음을 느끼며 행복해하였다. 그녀가 고백한 대로 연애할 때의 심정과 같았다. 그녀는 그 행복한 하나님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고, 특히 자기의 아들을 살해하고 불행하게 갇혀있는 가해범에게도 그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원수인 그 자를 용서하며 전도하려고 교도소를 방문하여 면회를 하였다. 그러나 그 가해범은 이미 주님을 영접하여 결신한 상태였고, 면회 온 그녀에게 자기도 하나님께로부터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사랑을 받고 있다며 죄책감 없이 밝고 환한 모습으로 대면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기뻐하기 보다는 질투심이 솟아낫는지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며 냉담하게 돌아섰다. 그녀는 자기야말로 피해자로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그 가해범이 똑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져 하나님의 처우에 불만을 품고 심히 섭섭한 감정으로 돌아선 것이다. 더구나 피해자인 자기가 그 가해자를 용서해 주기도 전해 하나님이 먼저 그 자를 용서하셨다는 것이 도의상 용인할 수 없는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되어 하나님께 심한 반감을 갖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녀의 중심은 용서하는 일보다는 원수를 용서하는 대견스런 신자라는 신앙영웅심에 편중되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정작 하나님의 용서가 이미 결신한 가해범에게 베풀어졌음을 알게 되자 자기의 신앙영웅심이 마음에서 빛을 잃게됨에 따라 그 대견스런 도취감에 가려져 있었던 원한이 다시 되살아 난 것이다. 인간의 본래의 원수인 마귀는 그녀의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과 가해범에 대한 원한을 이용하여 미숙하고 무분별한 그녀를 속이고 연약한 신앙심마저 빼앗으면서 그녀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타락의 결과
고지식하리만치 독신생활로 자기 정조를 지키며 순결하게 살던 그녀가, 타락 이후로 보통사람으로서는 하지 못할 교회의 야회집회를 방해하는 만행을 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기를 전도했던 약국 여인의 남편이자 교회의 장로직분을 갖고 있는 남자를 음란하게 유혹하여 신성한 교회의 위신을 추락시키려 하였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으려 도전하였다. 그녀가 신앙하기 전에 가졌던 순결함은 무기력하게 되고, 신앙타락 이후의 그녀의 상태가 이전보다 심각하게 추해지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 말씀대로 일곱 귀신이 들어와 역사한다는 그 정체가 확연히 들어 남을 볼 수 있다.
타락한 주인공의 구출방안
그녀가 이전에 신앙생활하던 심령밭은 개간이 안 된 돌짝밭이었다. 하나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하나님 사랑도 느껴보았지만, 그녀의 내면에 깔려있던 각종 돌맹이들(원한, 미움, 시기, 분노 등등)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행복했던 신앙이 자랄 수가 없었으며, 그마져 마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은 타락으로 인해 마음문 까지 굳게 닫혀 진 상태이다. 이제는 그녀의 상태를 의식하면서 잘잘못을 상관하거나 설득, 교정, 교훈하려는 시도는 삼가해야 한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금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깨닫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의 굳게 닫힌 마음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첫째, 그녀의 모든 것을 주님의 무조건적 사랑으로 감싸고 끌어안아 주어야 한다. 그녀의 빗나간 태도나 행위들까지 액면 그대로 받아주고, 그녀의 불행을 공감하면서 비어있는 마음의 공간을 발견하여 주님 사랑으로 채워주어야 한다(교회의 여성지도팀의 역할을 통하여). ◎둘째, 그녀 속에 집짓고 자리 잡은 어두움을 다스릴만한 강력한 중보기도가 있어야 한다. 인위적인 방법을 금하고 심령을 사로잡는 기도영력과 찬양과 섬김으로 영적전쟁을 하면서 승리해야 한다. 표면에와닿는 햇볕은 따가워 피하려 할 수도 있지만 내면에 와닿는 훈훈한 사랑에는 얼마든지 감돌아 설수 있는 것이 사람의 성정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밀양(비밀의 햇볕)이라는 영화의 주제에 맞는 해답이 될 것 같다.
교회와 목회자의 초신자 지도방안
체계 있는 신앙교육과 지도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까지 도와야 한다. 기독교의 교리적 지식과 영성적 지식을 함께 터득하도록 돕는다. 주인공의 문제에 해당하는 기초적 교리로서는
① 하나님께는 사랑과 공의와 자유의 속성이 있으며, 사람에게 허락된 자유의지는 그 선택과 행위에 따라 책임이 수반된다는 것을 이해케 한다( 인간의 범죄와 불행의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겨서는 안된다).
②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 이해시킨다. 하나님 사랑은 온 우주와 전 인류에게 미치며, 우리와 원수관계인 사람이나 집단에도 공평하게 미친다. 그 사랑은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는 없다. 그 사랑은 신앙과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크게 받을 수도 있고 작게 받을 수도 있으며, 그 형태도 다양할 수 있다.
③ 하나님의 용서(속죄)에 대하여 이해시킨다. 인류의 죄(원죄와 자범죄)에 대한 대사면은 이미 이천년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 베풀어졌다. 다만 개개인에게 미치는 속죄효력은 각자의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이뤄진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은 사람에게 용서받지 못한 죄인에게도 그의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효력이 미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자신이 주께 용서받았기 때문이고 또한 용서받아야 하는 같은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④ 그리스도인의 용서나, 봉사나, 전도 등의 선행은 전문 목회자의 지도를 받고 신앙정도에 맞게 감당하도록 한다. 그리고 받는 대상자의 죄와 행위, 행불행, 의, 불의, 도덕성 등을 주목하지 말고 그것들과 상관없이 다만 영혼과 생명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행해야 한다.
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과 의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있음을 이해시킨다. 다만 세상역사의 시간 안에서 그것이 시행될 수도 있고, 그 이후 최후 심판 때에 시행될 수 있다.
⑥ 신앙인의 고난과 시험에 관한 이해를 심도 있게 깨우쳐 탄력성 있는 신앙생활을 감당하도록 한다.
⑦ 신앙인의 가정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 또는 경제생활 분야 등 전반적인 이해를 도와 구체적으로 지도하여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한다.
⑧ 하나님의 인간역사 개입방법과 계시방법, 일반은혜와 특별은혜에 대하여 이해시킨다.
범죄자의 태도에 관하여
가해자는 자신이 회개하고 결신을 했더라도 죄과의 책임은 통감해야 한다. 특히 피해자에게 통회하는 심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하며, 피해자의 관용에 대하여 감사하되 그에게 자기의 속죄나 자기의 평안같은 경솔한 표현은 삼가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자 임직에 관하여
신앙이 돈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지식과 교회생활과 가정생활, 사회생활에 있어서 식견이 있고 모범된 사람이어야 하며, 도덕적 인격성이 성숙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하나님의 일에 충성스러운 사람이어야 하는 만큼 심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남성에 관하여
그의 인내성 있고 관대한 모범적 사랑이, 한 개인이나 여성을 향한 에로스가 아니라, 모든 대상들을 향한 아가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한 남성이라면 주인공도 더욱 신뢰하고 그로부터 자기를 다스리는데 큰 도움을 얻었을 것이다.
타락한 주인공에 대한 교회의 대처모습
주님의 따스한 사랑을 맛보고 가까스로 크나큰 상처를 극복하면서 이제 막 꽃믿음을 피워보려는 초신자에 대한 교회의 신앙보호관리가 너무나 미흡하고 소극적인 듯하다. 주인공이 원수였던 가해범을 만나려고 교도소를 방문하려 할 때 그 대면을 그녀가 감당할 만한지 신앙정도를 분가름 하여 만류하거나 유보시켰어야 한다. 그리고 굳이 방문할 시에는 최소한 견식있는 심방전도사 이상의 지도하에서 가해범에게 도의에 맞는 사죄를 구하게 하고 피해자인 그녀로 하여금 큰마음의 용서를 베풀 수 있도록 주선했어야 한다. 또한 비록 그녀가 그 일을 감당 못하여 실망한 경우라도 재빠르게 가까이서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감정을 다스릴만한 판단력과 위안을 갖도록 도왔어야 한다. 그녀는 방안에서 상한 벌레 하나만 보고도 소스라쳐 절규할 만큼 아들이 처참히 죽은 한을 풀지 못해 방황하다가 정신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우연히 미용실에서 미용조사로 있던 원수의 딸을 보고도 내차게 돌아서며 왜 만나게 하느냐고 하늘을 노려본다. 또한 짤라져 나간 자기 머리카락위에 햇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도 억울한 아들의 죽음을 관망했을 하늘을 생각하면서 한을 풀지 못한 체 영화는 막을 내린다. 교회는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는 후속조치가 필요했으나 겨우 처음 심방에서 그녀로부터 쓴맛을 맛본 후로는 수수방관했을 뿐이다.
다짐 : 우리는 우리가 사는 어둡고 그늘진 어딘가에서 혹은 나타나 보이는 주변에서 주인공같이 길 잃고 헤매는 인생들이 가상 아닌 사실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해자의 참회가 없기에 받은 상처를 일생동안 가슴에 품고 살다가 무덤까지 가는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하불명”이라고 교회안에서 조차 응어리진 상처로 상호간 암투를 하다가 파문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인관계로 해결 못한 것을 이삭처럼 하나님 관계에서 보상받을 수 있으며,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공로를 입는 은총가운데 살고 있지 않은가? 최대로(하나님께) 탕감 받고도 최소의 (이웃이 진) 빚 때문에 응지에서 불행해 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랑의 햇빛 예수님은 그렇게 어두워 방황하는 죄인들을 부르시고 그들의 짐을 지셨으며 오늘의 우리들을 제자로 삼으셔서 그들을 주님앞 양달로 인도해야 할 사명을 주셨다. 주님은 일군들은 많아도 추수할 일군이 적다고 말씀하신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가진자(물질만이 아닌)와 강자의 논리에 편승하여 그들에게 손을 들어주는 세태와 흡사하게 현대교회 역시 부익부만을 추구하며 강도만난 이웃으로 소외되어 가는 자들을 외면한다면, 주님께서 모르신다고 선언하시는 추수군 아닌 무익한 무리의 공동체로 전락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결코 이 시대 우리의 주변 응달에서 주인공과 같은 이웃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소자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민감히 듣고 밀양(密陽)의 사신처럼 겸허히 사랑하고 섬기려는 자세로 잃은 양을 찾아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