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부부는 영원한 임차인 온 국토가 한밑천
대상으로 추락한 시대
차라리 유년기 땅따먹기
놀이는 정의로웠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4월 12일
ⓒ e-전라매일
동시다발로 벚꽃 터지듯, LH(한국토지주택공사)발 부동산 투기사태로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이 부서지고 있다.
온 국토가 한밑천 대상으로 추락한 시대, 차라리 유년기 땅따먹기 놀이는 정의로웠다. 왜냐하면 누구나 돌아가면서 한 번씩 공평한 기회를 준 세상이었으니.
그러나 2021 새봄은 유독 부동산 멀미가 심하다. 소수가 개발정보를 끼리끼리 속삭거리며 불로소득을 나눠먹는 사이, 못난 다수에겐 기회는 오지 않고 박탈감만 물풍선처럼 불어나버렸다. 어찌 이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 있으랴? 어찌할까? 특히 청춘 그 자체가 아픈 것인데, 누가 이 절망의 청춘에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집이란 무엇일까?
이 서글픈 봄, 땅을 딛고 사는 나는, 새들이 부러워졌다. 새해부턴가 출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만나야 할 전원부부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며 가르친다. 검은 머리에 흰 뺨을 가진 무채색의 소유자. 자세히 보면 그 등줄기는 물오른 버들잎처럼 연둣빛이 서린다. 그 주인공이 박새부부다. 키는 참새만하지만 날씬하며 깜찍한 텃새다.
‘찌비 찌비’ 생강나무 가지 위에 앉아 오늘도 청아한 노래로 반긴다. 필자가 근무하는 아파트에는 한 쌍의 박새부부가 산다. 조심스레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새로운 감흥에 젖곤 한다. 최근에서야 그들이 부부이며 또한 보금자리를 우연히 발견하는 희열에 잠겼다.
“하얀 뺨에 / 검푸른 넥타이 맨 / 앙증맞은 박새야 / 후르르 후르르 / 가지에 앉지 마라 / 입 맞추다 / 생강꽃 떨구이면 / 오라비 가슴에 / 알싸한 꽃비 / 산산이 뿌린다”
-「생강나무」 부분
박새부부는 다정히 늘 붙어 다닌다. 가히 육지의 원앙새다. 그러나 큰 직박구리들은 뭉쳐 다니며 소란을 피운다. 조용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탄도처럼 공격성이 강하고 때론 민폐를 끼친다. 참새 떼야 순하지만 그렇게 늘 떼로 다니는 무리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 연애하고 언제 고요한 시간을 갖는가? 그런 해괴망측한 염려까지 하게 된 것은 숫제 박새부부 탓이다. 둘은 데이트하며 화평의 극치를 누린다. 그들은 주로 금목서, 은목서, 주목나무 등 상록수 아래를 종종거리며 먹잇감을 줍는다. 서로의 그림자를 밞으며 소소한 행복을 쪼아 먹고 산다.
그 순간 평생 붙어사시던 어른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늦가을 석양이면 감나무 위아래 나란히 올라 홍시를 따고 받던 부모님과, 장날마다 함께 돌면서 국밥이나 짜장면을 잡수고 오셨다는 장인 장모님. 생각해보니 박새부부 같은 소박한 풍경임을 이제야 배운다.
그렇게 박새부부의 전원생활에 빠져든 어느 날. 내 앞을 가로지르며 괴상한 비행물체가 아파트 외벽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헛것을 보았나? 유심히 바라보니, 알전구만한 구멍 하나가 보였다. 아마도 한 세대에서 에어컨 실외기 호스용으로 뚫어 놓고 사용치 않는 공간일 성싶었다. 나는 계속 빈 구멍을 응시하였다. 한참 후 박새가 쭈빗쭈빗 머리를 내민다. 버려진 구멍이 보금자리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왜 나는 경악했을까? 가장 약한 존재지만 그들의 검박한 슬기가 나를 사로잡은 것이다. 하찮게 보이는 틈을 행복의 집으로 반전시킨 경이로움. 그들은 집착과 번뇌를 초월한 무소유의 수행자 같았다.
박새부부는 임차인이다. 둘이 만나 연애하고 돌 틈 같은 자연의 공간에 잠시 머무는 것이다. 알콩달콩 사랑을 교감하며 새끼를 낳고 양육할 것이다. 그리고 새끼들에겐 이소의 운명이 조만간 기다릴 것이다. 인간과 달리 새들의 세계에는 캥거루족이 없다. 모두가 훨훨 부모 곁을 떠나 토지대장이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 이럴진대, 과연 인간이 저들을 향해 새대가리라 할 자격이 있는가? 참으로 낯부끄러운 봄날이다.
국가는 부동산의 독점과 거품과 반칙과 불로소득을 막을 순 없는가? 구성원인 우리도 또한 맨몸으로 왔으니 발목 잡힐 일 없이 사는 게 삶의 도리임을 깨닫자.
충만의 자유를 가진 박새부부를 보라. 땅의 노예로부터 해방된…. 그들의 보금자리가 등기부등본에는 없지만 축하의 입주자카드를 선물하고 싶다. 집이란 소유가 아닌 정주의 공간임을 가르치는 박새부부. 나는 어서 소망한다. 박새부부의 집이 탐욕의 인간에게 삶의 본질을 보여주는 모델하우스가 되는 날을.
왕태삼
전북시인협회 이사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1년 04월 12일
- Copyrights ⓒe-전라매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