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엔 느즈막하게 도착했다. 서울서 오후 3시 좀 넘어 차를 탔는데, 안동에 도착하니 6시를 좀 넘겼다. 터미널에서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학봉종택'으로 가자고 했더니, 운전기사가 잘 못알아 듣는다. 다시 한번 '학봉종택'이라고 했더니, "아, 그 의성김씨 학봉종택 말이죠"한다. 의성김씨를 앞에 붙여야 알아 듣겠다는 눈치다.
전날 집사에게 전화를 하긴 했지만, 내려오면서는 연락을 하지 않아 내심 좀 불안하다. 기사 준비를 위해 왔는데, 혹시라도 못 만나면 어떻게 되나. 만날 분은 학봉종택 종손이다. 종택은 한적했다. 솟을 대문으로 들여다 뵈는 정원은 기품있고 정갈하게 가꿔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도 사람이 없다. 종손은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 가셨을 것이다. 그러니 안 계신다고 봐야하고, 저녁 늦게라도 만나뵈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당 한 가운데 쯤으로 들어서니 잔디밭에 한 아주머니가 앉아 계신다. 용건을 얘기했더니, 종손이 계신다고 한다. 안 계실 줄 알았다고 하니, 손님 때문에 일찍 들어오셨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러면서 나를 안채에 계시는 종손께 안내한다. 400년이 넘은 안채 마루로 신발을 벗고 올라서니 뭔가 훈풍 같은 게 느껴진다. 오래 된 집 특유의 느낌이다. 안 채 세 개의 방 가운데, 어느 곳에 학봉선생이 머물렀으리라.
제일 안쪽 방에 종손이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용건을 말씀 드렸지만, 잘 못알아 듣는 것 같다. 일단 큰 절로 인사를 하니 맞절로 받는다. 인사를 하고 다시 한번 차분하게 용건을 말씀 드렸더니, 먼 길을 오셨습니다며 차분하게 응대를 한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소반에 마실 것을 들고와 내 놓는다. 이야기가 시작됐다. 학봉종택의 역사와 종손으로서의 위치와 역할 등에 대해 정성스럽게 말씀을 들려준다. 종손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삼보컴퓨터와 나래이동통신, 두루넷 등 첨단 IT회사에서 CEO를 했다. 사회적으로도 성공하신 분인데, 어떻게 활동과 생활이 제한적인 종손직을 맡게된 것이 궁금하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로 간명했다. '숙명적'이라는 것이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싦다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도덕적으로도 그렇지만, 후손으로서 그 일이 주어지면 당연히 맡아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수차 강조한다. '숙명적'인 것이라고.
한 시간 가량 얘기를 나누고 일어설 채비를 했다. 내려 올 적에는 어떻게 하룻밤을 고택에서 묵을까도 생각했는데, 글 쓸 만큼의 얘기는 들었으니, 빨리 올라가는 게 좋을 듯 했다. 종손은 대문 밖으로 같이 나오더니, 집 곁에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학봉선생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운장각'이다. 얼마 안 되는 전시유뮬이지만, 그 느낌이 참 의미있게 다가왔다. 학봉선생이 쓰시던 안경과 신발에서는 그 분의 체취가 느껴진다. 학봉선생이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별세하기 4개월 전에 아내에게 보내준 한글 편지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운장각'을 나오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종손이 잠시 멈칫거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데, 밥 한끼 대접을 안 하고 보낼 수 있습니까" 한다. 차시간을 들어 사양했다. 그러나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 기어코 이끌려 따라 간 곳은 종택 건너편에 있는 조그만 식당이다. 국수라도 한 그릇하고 가시라는 것이다. 한적한 식당에 둘이 않았다. 소주를 한 병 시켜준다. 국수가 나오자 잔을 계속 권한다. 집안의 형님같은 따스한 정이 느껴진다. 한 30여분을 그렇게 잔을 주고 받고 얘기를 나누웠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니까, 굳이 차로 터미널까지 태워 주겠다고 한다. 이슥한 밤, 검재마을 길에는 차도 잘 다니지 않는다.
차 안에서 "그 큰 집에 종부하고 둘이서만 계시기엔 좀 적적하시겠다"고 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렇지요. 좀 적적합니다"고 한다. 격식으로 따진다면야 종손이 오죽한 자리인가. 문중으로부터 대접받는 위치에 있지만, 인간적인 외로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도 다 참고 견뎌야하는 인내심과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게 종가의 종손이다. 김종길 종손은 문중 안팍의 존경을 받고있는 분이다. 그리고 종손으로서의 자부심도 튼실하다. 그래도 곁에 같이 앉아 있으면 집안의 형님같다. 어린냥을 부려보고 싶은 형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