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난다는 것은 항상
뭔가 기대감을 갖게 해서 참 좋다.
더군다나 그 기대감이 두루두루 만족지수를 높여갈 때면
어렵게 나선 걸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예전에, 오래 전에 자주 찾던
서해안 바닷가....특히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를 찾을 때면
고즈녘하고 한적하고 호젓한 그 바닷가가
나만의 것인양 뿌듯하고 행복으로 충만될 때가 있었다.
그 덕분에 바움 출판사에서 "바다의 선물"이라는 책도 낼 수 있었고
그 시절의 기억과 향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환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엊그제 찾았던 만리포 해변으로 말하자면 아주 옛날
무설재 쥔장이 어린 시절에 찾았던 - 아마도 그 시절에는 바다라고는 만리포와
연포가 최고인줄 알았던, 동해안이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
가는 길도 지독하게 멀어서 서울에서 한참이나 걸려 달려갔던 곳이기도 하다.
구불구불 휘어진 길에 엉망이기도 하고 시설 하나 변변하지 않았던 곳이나
그 즈음에 산다고 하는 가정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튜브 들고 찾아들던 곳이기도 하니
그 어릴적 기억이 새삼스러워서 천리포 가는 길에 들렸던 만리포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만
역시 세월을 훌쩍 건너 뛴 기간 만큼이나 만리포 가던 길에 있던 염전은 강점기 때 염전밭 모양새도 아니고
주변의 풍광 역시 바닷가에 가면 다들 똑같은 행태로 이루어진 그렇고 그런 장소로 변모하였음이니
지나간 과거는 언제나 아름답고, 지나쳐야 할 현재는 뭔가 2프로 부족하기만 하다.
어쨋거나
작은 인연 하나로 알게 된 지인 한 분이 만리포에서 피노키오 펜션-041 672 3824-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포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혹여 올 여름날의 흔적을 쫒기 위해 서해안으로 발길을 내딜 분들은
참조사항으로 기억하시면 좋겠다....
요즘은
길이 엄청 좋아져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린 만리포 바닷가
그 바닷가 중심지에 피노키오 펜션과
커피하우스가 있다.
쥔장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의 맛과 향이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고
쥔장 박노권-63세의 낡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아내는
부지런함과 바지런으로 펜션지기로서 커피하우스의 쥔장으로서의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씨를 닮은
피노키오의 형상이 시선을 끈다.
일찌감치 노후를 준비하고 하나하나 준비하다 보니 15년 전에 이미
펜션에 대한 막연한 꿈을 지니게 되었다는 쥔장의 말씀.
어쨋거나 한 다리 건너 인연이 되어
무설재 마당쇠의 솟대가 피노키오 펜션 뜨락을 장식하게 되었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 투성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사실 지금이야 이름도 근사한 피노키오 펜션이지만
육이오 전쟁 동란시에 한국에 지원병으로 찾았던 킹 장군의 혜안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전쟁이 끝나고도 귀국하지 않았던 킹 장군이 군용 천막과
군용 침대를 이용해 처음으로 킹 호텔-0961년11월 7일-을 만들었던 일화가
지금의 피노키오가 되었음이니 암튼
육이오 전쟁이 비극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혜안을 지닌
두명의 미국인이 존재하니 킹장군과 밀러 통역관-천리포 수목원을 설립한 민병갈-이다.
이유야 어떻든 아름다운 만리포, 천리포 바닷가에 반해 한국을 사랑하게 된 그들의 저력이 있어
서해안 바닷가를 꾸미는 요령도 능력도 부여받은 우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서해안은 동해안에 비해 여전히 순수와 자연의 거침이 공존하는 그런 곳이긴 하다.
그 옛날의 흔적으로 자리한 굴뚝을 그대로 살려 지은 센스와
환상의 나래를 펼칠 것 같은 꿈길의 다락방과
하늘창을 겸비하여 자연 채광으로 건강을 누리고 벗삼아
아늑한 꿈결을 안내한다는 데 반할 즈음이면
한때
제국의 왕으로 칭송받던
박정희 대통령 일가가 묵었다는 전망좋은 방도 만날 수 있다.
어쨋거나
손길, 발길 품새가 많이 드는 펜션을 운영하다 보면
고생문은 훤하고 제 명대로 살 수 있을까 염려스럽도록 일거리는 산더미이지만
그것조차 즐거운 일이라며 노년의 부부가 자청한 삶인지라
그 큰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응원을 하면서
나름 대 기업의 대표이사 경력이 언제였더냐 싶게
스스럼 없이 일꾼을 자처하며 열심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아내는
아름다운 부부의 전형을 본듯하여
찾아든 발길이 괜시리 즐거웠으며 만나보길 잘했다는 자평이다.
내려오는 길에
피노키오 펜션의 주변을 장식할 황금 달맞이와 해당화와 눈맞춤하며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을 흥얼거리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언젠가는 모래밭에서만 자란다는 해당화를 무설재로 옮겨와야겠다는 어리석은 생각도 잠시 한 몫.
돌아나오는 길에 쥔장이 추천해준 천리포 횟집에서
때늦은 간재미-갱개미, 한겨울 별미에서 5월 초까지가 그나마 막물이다- 찜 한 접시를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고 다음 일정을 위해 바람같은 속도로 떠났다는 소문을 뒤로 하고....간만에 찾은 서해안 바다.
아직은
사람냄새가 나지만 한 여름의 상술에 맞물리면 어떨지...장담하긴 어. 렵. 다.
그래도 갯내음이 폴폴나는
여전히 우리 자생 소나무가 자리한 서해안은 10점 만점에 9점은 주고 싶은데
세계에서 단 두곳이라는 리아스식 해안선을 자랑한다는 서해안 중에서도
아쉽게도 전 세계에 몇 안되는 사구-모래언덕- 신두리 해변은
이미 물 건너간 풍광이 되었다.
한때
무설재 쥔장의 카메라에 담긴 촬영 컷이 그 마지막이 되어버릴 듯 하게도...
아쉬운 거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풍광 유지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천혜의 자연 경관의 훼손과 경제 논리에 밀리는 현실 사이에
어느 것이 정답인지 알 수 없으나 아쉬움의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음이요
그나저나
하루 외출치고는 아깝지 않은 시간의 일탈이었다는 후문을 남기면서
올 여름
그대들의 행보는 어디?
첫댓글 만리포-천리포... 제 고향 서산...그리고 선산이 천리포 옆(모항)에 있어 자주 가는 곳이네요.
아직도 90세가 넘으신 큰아버님이 만리포 근처 면소재지에서 약방을 하고 계십니다.
선산에 내려 갈때마다 저희 가족들만 다니는 작은 바닷가가 따로 있답니다. 십리포.....
맞아요...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말이죠. 그 십리포와 약방을 언제 한번 가볼까요? 어제, 축구 신나셨죠?
가 보지는 못해도 사진만으로도 보기엔 참 예쁘기만 한 풍광입니다. 올해는 바닷가에 가 볼수 있으려나
시간을 허락하시어 바다와도 놀아주소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다양함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바닷가를 둘러싸는 주변의 풍광은 세월과 함께 변화하는 것이지만, 바다가 주는 선물은 그 사람들의 안목만큼 다양하다고 본다. 그것으로 족하다.
그렇죠? 어쨋거나 바다에서 위로받고 즐거운 사람은 그만의 시선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을 터...각자의 나름대로 산과 들과 바다를 즐기는 노하우는 공유하시구요. 잘 계신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