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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참고말씀: 창3:19; 6:6,7; 17:1; 18:14; 민23:19; 삼상15:11,29; 욥42:1; 잠16:3,9; 전8:7; 딤전1:19; 히10:39; 약4:13,14
읽을말씀: 롬11:29; 창6:14~16
주제말씀: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
혹시 후회(後悔)를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 나중에서야 지난날들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 적은 없습니까? ‘그때 좀 더 잘할 걸, 그때 좀 더 노력할 걸, 그때 조금만 더 사랑하고 섬겨줄 걸, 그때 좀 더 확실하게 붙잡아둘 걸...’
사실 우리는 모두 사람인지라 살다보면 언제든지 후회를 하기 마련입니다. 가정의 일들로 후회하고, 자녀들의 일들로 후회하며, 직장의 일들로 종종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대(十代)일 때도 후회하고, 삼십대(三十代) 때일 때도 후회하며, 노년(老年)일 때도 마찬가지로 후회합니다. 또한 작년에 후회했다고 해서 올해에 또 그러한 일들이 없으리라는 법이 없으며, 내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우리는 모두 흙으로 빚어진 유한(有限)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하) 또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완전(不完全)하고 유약한 존재들이기도 하구요.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전8:7)
그러나 우리의 창조주(創造主)는 어떠하십니까? 우리처럼, 유한하신 존재입니까? 사람처럼, 불완전하신 존재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와는 달리 모든 일에 무한(無限)하시며 완전(完全)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하) /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18:14 상)
또한 어떠하십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처럼) 후회하실까요? 사람처럼, 나중에서야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어째서입니까? 사도 바울이 증언하고 있고, 또한 모든 성경이 한 결 같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바와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 /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삼상15:29)
물론 혹자는 성경의 몇 구절을 들먹이면서 하나님도 후회하신다고 말할지도 모르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타락상에 대해 하나님이 가지는 감정을 인간들이 이해하도록 의인화된 표현일 뿐, 절대로 후회하시거나 그 뜻을 변경하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6,7) /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삼상15:11 상)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까? 우리와는 달리, 하나님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고 있느냔 말입니다.
*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6:14~16)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한 가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왜 후회하지 않으시냐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왜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어떻게 단 한 번도 후회 같은 것을 모르고 사실 수가 있느냔 말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실수(失手)를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실수를 하지 않으시는데, 어찌 후회하실 일이 있으시겠느냐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와는 달리, 전지(全知)하시며 또한 전능(全能)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것을 미리 알고 계시며 능치 못한 일들이 없으시는 것입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42:1)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깨닫고 있습니까? 또한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곧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의미한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 중 몇몇 분들은 여전히 ‘하나님께서도 종종 실수하신다’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말입니까? 당면한 현실이 우리의 기대와 상충(相沖)되어 보일 때, 돌아가는 상황이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正反對)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 등입니다.
노아의 방주(方舟)를 하나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엇을 지으라고 명령(命令)하셨습니까? 방주(方舟), 곧 네모난 모양의 배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창6:14 상)
어떤 재료들로 만들라고 하셨습니까? 고페르 나무와 역청입니다. 몇 층으로 만들고 또한 무엇과 무엇을 내라고 하셨습니까? 삼층(三層)으로 만들고 창(窓)과 문(門)을 각각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치수까지 정확히 일러주시면서 말입니다.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6:14~16)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여기에는 하나 빠진 게 있습니다. 이는 무엇입니까? 방향(方向)을 조절(調節)할 수 있는 방향타(方向舵)입니다. 자고로 배가 그 기능을 하려면 최소한 방향타 정도는 있어야 장애물(障碍物)들을 피해서 목적한 곳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방향타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된 영문입니까? 하나님이 실수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치명적(致命的) 실수라도 되는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실수가 아닙니다! 허면 무엇입니까? 일부러 그리 하신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이 친히 그 배의 방향타가 되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방주를 인도해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대신 방주는 무엇만 하면 됩니까? 물 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방향타를 만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명백한 실수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선장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방향타가 되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그런데도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방향타를 찾느라 동분서주(東奔西走)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우리의 뜻대로 인생의 항해(航海)를 헤쳐 나가기 위함입니다.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약4:13,14)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인생의 방향에 관한 문제는 하나님께 모두 맡겨버리고, 오직 우리는 (물 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상 속으로 가라앉거나 또한 침륜(沈淪)에 빠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히10:39 상) /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 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이 실수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곧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에 대하여 종종 실수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느냔 말입니다. 그렇다면 명심하십시오. 비록 우리의 눈에는 그리 비춰질지 몰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오늘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직진 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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