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교계가 상징(象徵)을 너무 좋아하는것 같다.
666표도 상징이요
적그리스도도 상징이요
천년 왕국도 상징이라하니
나중에는 우리가 갈 천국도 상징이요
예수님 재림도 상징이라 말 할까 심히 염려가 된다.
상징(象徵)이 무엇인가? 상징이란 말은 본래 나쁜것이 아니다.
상징이란 단어는 타동사로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추상적인 사물·개념 따위를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것이니 우리의 언어 사용에 도움을 주는 좋은 단어이다.
이를테면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
국기는 국가의 상징이다.
여드름은 청춘의 상징이다(?)
교회 종탑의 십자가는 예수 복음과 구원의 상징이며
유대인의 성전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보여주는 모형이었다.
또 성경에는 많은 비유와 상징이 나와 있고
요한 계시록에도 수많은 상징이 나와 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법(法)있게 쓰지 못하고 적소(適所)에 쓰지 못한다면
독(毒)이 되고 말 것이다.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서울 방배동 소재 한xx교회에 시무하는
이x순목사님을 내가 시무하던 교회의 부흥강사로 초빙하여 한 주간 집회를
하는중에 낮시간 성경공부 시간에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을 말하면서
이 짐승에게 경배하면 않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요사이 짐승에게 절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 당시에 86아시안게임 마스코트와 88년 올림픽 마스코트가 호돌이 였는데
사람들은 호돌이 마스코트를 비롯한 동물 모양의 벳지를 앞 가슴에 악세사리로
많이 달고 다녔는데 서로 인사를 하다가 보면 결국 짐승에게 절하는 꼴이 되므로
가슴에 달고 다니는 짐승의 상징인 벳지를 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엉터리 상징을 너무 좋아하는 목사님이군!" 생각하고 다음시간부터 계시록 강해를
중단시킨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상징은 좋은 단어이지만 그것을 666 짐승표에다가 쓰면 독이 되고 만다.
(666짐승표를 상징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많은 학자들이 그동안 이 짐승의 수 '666'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어떤 이들은 '666'이 어떤 사람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표기하고 각각의 문자가
나타내는 숫자들을 합한 것으로 네로 황제 혹은 마호메트, 마틴 루터, 나폴레옹
혹은 히틀러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이들은 컴퓨터화 한 신용 거래 카드 번호를 이 짐승의 수로 이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의 많은 학자들은 '666'을 이름의 암호로 보기보다는 부정한 악의 실체
또는 반역적인 모방을 의미하는 상징적 숫자로 보고 있다.
혹자는 이 '짐승의 표'를 계14:1에 나오는 '하나님의 표'와 대비시켜 '하나님의 표'가
믿음으로 받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쳐진 구원을 상징하듯이, '짐승의 표, 666'도
마찬가지로 불신, 즉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거절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본다.
혹자는 이 '666'이 상징하는 것은 거짓 종교이며, 이'666'이 완전수 '777'에 가깝기는
하지만 결코 그것에 도달하지는 못함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즉 '6'이라는 숫자는 모든 거짓 종교, 즉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이 짐승의 수는 단순한 '6'도 '66'도 아닌 완전히 채워진
'666'이다. 이는 완전수인 7에서 1이 모자란 불완전한 수 6을 3개 포개놓은 것으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완전에 대한 마귀적인 모방, 현혹성, 환난, 저주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결국 '666'은 하나님의 완전함을 상징하는 '777'에 반대되는 숫자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하나님의 의에 미달하는 상태로 하나님 주권에 도전하는
모든 악한 마귀 불의의 세력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참으로 그럴듯한 논리에 다수의 한국교회가 동조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666 짐승표는 현실로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상징이라는 말로서
가르치는 설교는 한 마디로 독이요 쑥물이라 하겠다.
한마디로 666이라는 음식에는 실제라는 양념을 집어넣어야지 상징이라는
조미료를 집어넣으면 모든이가 먹고 죽는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기독교2000년 역사에서 666표에 대하여 실제(Reality)와 상징(Symbol) 이라는
양론으로 대립되어 왔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666표를 암시적으로
'Mark of the Big Brother(짐승의 표)'로 표현 할지라도, 한국 사람들 처럼 실제를
상징으로 표현하는 나라는 지구촌 어디로 가도 없다.
미국의 Applied Digital Solutions(ADS) 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사람의 몸에 넣어 신분확인하는 신분증인 Verichip(베리칩)을 개발하는
회사이다. 이 칩은 쌀알만한 크기로 주사기를 이용해서 사람의 몸에 넣게 되어 있다.
이 칩은 인공위성 추적장치가 있어서 인공위성으로 사람의 위치,이름,혈당 등 다
추적된다. 이 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666짐승의 표 라고 보는 이가 많다.
이렇게 666이라는 것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도 상징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 답답하다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왜, 상징이라는 말을 분별없이 사용하길 좋아 하는가?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해서 천년왕국을 상징으로 보고 무천년설을 주장하며
적그리스도 곧 일명 짐승과 그의 표인 666을 많은 이가 상징으로 보고 있지만
이런 시각을 가진 한국교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의 문제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지 않는 마음에 있다고 나는 본다.
성경에 언제나 첫것은 두번째것의 모형이고 그림자였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성전의 모든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그림자였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그의 다시오시는 재림의 그림자이다.
동방의 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들었을때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은 했지만,
한 사람도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적그리스도의 표상인 헤롯만 아기를 죽이려고
살인극을 벌리어 소동을 했을 뿐이다.
초림 당시에 안나와 시므온 등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메시아가 온다는
성경말씀을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백성들이 다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었고, 들에서 양치는 목자들 몇 명이
천사의 소리를 듣고 찾아가 경배를 했을 뿐이다.
지금 나타나는 현실을 놓고 보아도, 낮이나 밤이나 눈물 머금고 다시오신다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갈망하는 교회나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중에서 666 짐승의
표가 상징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며 천년왕국을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상징을 말하는 목사님들과 교회를 보면
그 지향하는바 포커스가 재림에 맞추어 있지를 않고 땅에 복 번영에 맞추어 있다.
간혹 주님의 다시 오시는 재림 설교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설교의 구색을 맟추는
정도에 불과하고 정말로 주의 재림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초림때도 많은 지도급 인사들이나 일반 백성들도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이 극히 적었다는 것처럼
앞으로 재림도 마찬가지로 재림에 대한 설교도 소망하는 마음도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징을 아무데다가 붙여대길 좋아하는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무관심하거나 기다리지도 않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머금고 내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때 다시오마 하신 예수님 내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이런 복음성가 내용처럼 눈물을 머금어가며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와 성도들과 목사들은 상징이란 말들을 별로 쓰지 않는다.
물론 적소(適所)에는 쓰지만 말이다.
한국교회가 다시오시는 주님을 고대하는 마음의 열정이 식어진 이유는
너무 배불러서일까? 너무 편안해서일까?
너무 부요해서일까? 땅에서 더 오래 살고 싶어서일까?
이것들이 한국교회를 미지근하게 만들고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인가!
그래서 상징이라는 양념을 666 짐승표에 넣어서 독을 마시게 하는가!
너무 우려스러운일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믿음생활의 모든 초점을 다시 오시는 주님에게 맞추고
각자의 생활의 현장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부흥 진형곤목사
첫댓글 1988년....이X순 목사님/ 이 부분에 쓰여진 분, 혹시 이정순 목사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