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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바리새인들...예루살렘에서 와서 - 본절은 시간. 장소의 배경 설명에 충실한 마가의 독특한 문장 기법과는 조금 예외적으로 전장과의 아무런 관련성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또 이야기의 배경인 장소에 대한 언급도 없다. 다만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온 중앙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중 몇 사람이 예수를 찾아옴으로써 본 사건이 시작되는 것으로 기록한다.
그런데 여기서 장소는 갈릴리의 가버나옴지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곳이 예수의 주(主)활동 무대였고 또 중앙에서 내려온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은 갈릴리 선교 기간 중에 발생한 것이라 단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중앙에서 지방까지 예수를 찾아왔는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1) 중앙에서 그들이 내려온 것은 지방의 율법학자들이 요청한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유는 예수의 열성적인 활동과 민중들 사이에 폭발적으로 높아가는 예수의 인기에 대한 불안 때문에 중앙의 권위 있는 학자들을 초청해 예수에 대한 열기를 식혀 보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의 활동은 사회 . 정치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굉장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고 특히 기적의 행위나 죄사함을 선언하는 행위는 종교적 전통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소문으로 전해오는 예수의 도전적 행위를 직접 살피고 확인하여 대책을 세우기 위하여 몇 사람의 대표를 파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앞에 언급한 두 가지의 가능성 모두 수용하는 것이다. 즉 갈릴리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수의 활동에 대한 파문이 그들의 전통과 종교적 질서까지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그 대책으로서 증앙의 권위 있는 학자를 파견하여 조사하고 예수와의 직접적인 논쟁을 통해 파문을 진정시키려 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들을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증앙에서 파견된 그들의 소임은 단순히 예수의 활동에 대한 피상적인 조사였다기 보다 오히려 예수의 권위와 인기를 일구에 무너뜨릴 수 있는 모함의 구실을 마련하는 것이었다고 보겠다. 사실 당시 전통적인 유대주의와 예수 사이에는 심각한 갈등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따라서 본문의 조사 단원들은 편견과 적의로 가득 찬 눈으로 예수와 그 일행의 일거수 일투족을 숨죽여 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와 비슷한 상황은 3:22에서 이미 한 번 발생한 적이 있다.
[막 7: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부정한 손...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 중앙에서 내려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에게 온 뒤 약간의 시간이 경과된 것 같다. 왜냐하면 앞 절에서 '모였다가'로 문장이 끝나 시간 차의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와 제자들의 활동을 관찰하다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이제 포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문제의 초점은 '부정한 손.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는 행위'였다. 여기서 '부정한 손' 과 '씻지 않은 손'이 동등한 의미로서 표현되고 있는데, 후자는 전자의 설명적 첨가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방인(로마)를 위해 복음서를 기록했던 마가의 독자들에 대한 친절한 배려 볼 수 있다.
여기서 '부정하다'라는 말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의식적부정을 말하는 것이고 '씻지 않은 손'은 그 부정한 이유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들 조상이 정한 결례 의식을 거치지 않아 성결에 이르지못한 '부정한' 일반 세상의 손을 가리킨다. 사실 중근동 지방의 식사 예법은 주로 손사용하며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식사 전에 손을씻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에서는 이 손 씻는 일이 단지 위생적 측면에서 보다 오히려 의식적 측면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한편 이스라엘에 있어서 위생적 부결이 종교적 부정으로 공식 율법화된 것은 출애굽 당시의 일이었다 '월경하는 여인'. 시체를 만지는 것',
이와 같은 구분은 사람, 짐숭, 물건, 일 등에있어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 종교 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본문에 언급된 떡을 먹을 때 손을 씻는 관습은 모세의 율법에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제사장의 제의적 관례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미쉬나의 한부분 전체가 바로 이 '정결'의 문제를 논하고 있음을 볼 때 유대인들의 의식적 정결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결례를 행하지 않고 식사를 한 것을 가만히 주시하면서 그들을 부정한 자로 단죄한 것이었다.
한편 혹자에 따르면 이때 제자들이 먹었던 음식은 지난 번 벱새다 율리아스에서 5병 2어의 기적후에 거둬들인 12광주리에 담겨 있었던 것이라는 재미있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막 7: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괄호안에 묶여 있는 3, 4절은 유대인들의 전통과 관례에 전혀 생소한 이방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가가 친절히 설명해 놓은 해설구이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 여기서 먼저 '모든 유대인들'이란 특정 계층의 종교 지도자들을 제외한 일반 유대 백성들을 가리킨다.
한편 종교걱 특권을 누리며 남다른 우월 의식을 지니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일반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 규범준수와 각종 규제 조항들을 가르치며, 지키게 하는등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었다. 장로들의 유전 - 마가는 제자들이 손을 씻지않고 식사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그것이 유대적 전통 속에서 전승되어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장로' 혤라어로 '프레스뷔테로스'인데, '나이 많은 사람' 또는 '조상' 등의 의미와 함께 당시 유대인들의 지도자인 지방의회 의원이나 '산헤드린'이라고 불리우는 '예루살렘' 최고회의 회원을 지칭하는 뚱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권위 있는 율법교사와 종교 지도자를 지칭하기도 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공동번역 성서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조상'으로 번역하여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적절하다고 본다.
그리고 '유전'(텐 파라도)이란 말은 '...로부터 손으로 건네주다'는 뜻의 '파라디도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는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문 율법(토라)뿐 아니라 구전 율법을 함께 전해 주셨는데, 그 구전 율법이 하나님에게서 모세, 그리고 아론, 기타 자손들에게 순서대로 전해졌다고 믿는 유대인들의 신앙을 반영한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유전'은 유대인들의 조상 때부터 구두로 전승되어온 행위법 내지는 각종 판례법을 가리킨다고 보겠다. 사실 유대인들의 관습은 이러한 구전율법과 긴밀한 관계 속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 조상의 전통에 관한 깊은 관심과 구체적인 체계화 작업은 바벧론 포로 시대를 거치면서 산헤드린의 모체였던 대 회당과 더불어 점차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전통들은 후대에 서기관들에 의해서 법적인 권위로 높여졌고 '구전 율법'이라는 말처럼 성문화된 율법의 권위와 맞먹을 정도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강조되었다. 이것은 A.D. 200년 경에 일차 집대성 작업이 이뤄졌으며 그러한 작업은 A.D. 800년까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작업은 B.C. 300-A.D. 800년 사이의 긴 기간이 소요됨
따라서 예수 당시에는 이러한 유전들이 대개 구전의 형태로 존속되어오고 있었다. 이 유전의 목적은 인간 생활의 유익에 관심두기보다는 인간을 규제, 억압하는데 더 큰 관심을 두었다. 실로 성문 율법은 원칙론적 입장에 서서 특수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듯하지만 유전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들에게까지 분명한 지침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랍비들이 만들어 반포했던 수많은 유전들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면서 더 큰 권위와 함께 좀더 강력한 구속력을 지니게 되었고 심지어는 성경의 권위를 능가하기도 하였다.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 여기서 '부지런히'라는 말은 휄라어 '퓌그메'의 번역인데 해석하기 매우 어려워 어떤 영역본에서는 번역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번역으로서 '꼭 쥔주먹'. '팔뚝까지의 손으로', '펼쳤다 접었다 하는 손', '물을 손으로 잔뜩 움켜쥔 상태'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읽기를 아예 '퓌크나' 또는 '퓌크노스' 둥으로 변경하며 '가끔', '더 자주'란 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사실 라틴 벌게잇 역에서 이러한 변형을 따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과 같이 '부지런히'로 해석한 데도 있다. 어째든 이러한 여러 견해들을 통해 추론해 볼 때 유대인들의 결례로서 행하는 손씻음은 양손을 주먹으로 꽉 뀌었다 폈다 하면서 팔꿈치까지를 물로 씻어내거나 양손을 부지런히 잽싼 동작으로 부벼대어 씻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특히 주먹을 꽉 쥐는 행위는 어떤 굳은 의지와 힘과 활발함올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실로 그들에게는 식사 때마다 꼬박꼬박 부지런히 씻되 매우 깨끗하게 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음을 볼 수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먹지 아니하며'라는 말로 보아 그들이 얼마나 그 관습을 철저하게 지켰는지 알 수 있다.
[막 7:4]
또 시장에서 돌아 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 여기서는 그들의 생활 습관 속에 있는 정결에 관한 의식 보여 주고 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시장'은 부정한 곳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시장이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고 혼잡한 곳에서 부정한 여러 사람들과 접촉 가능한 대중적 장소이기 때문에 불결해지기 쉽다는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유대인들 시장에서 이방인들이나 심지어는 율법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유대인들과 흑시 접촉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 정결에 힘썼던 것이다. 물을 뿌리지 않으면 - 이 말은 '배티손타이'라는 훼라어의 번역인데, '씻다', '적시다'라는 뜻인 '배티조'의 복수 3인칭 중간태로서 번역하면 '그들 자신을 씻다'가 된다.
때문에 '물을 뿌린다'는 것을 목욕을 하거나 물에 몸을 잠그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즉 '배티조'는 물에 담그고 적신다는 뜻과 씻는다는 뜻을 갖고 있으므로 오히려 목욕하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물론 이것을 세례와 침례의 차이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삼아 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혹자는 본문의 점층법적 표현을 강조하면서 '유대인은 먹기 전에 항상 손을 씻었다. 그리고 그들은 시장에서 돌아와서 먹기 전에는 항상 몸을 씻었다'고 그 의미를 명확히 표현했다. 물론 이 모든 행위늘 그들이 종교적 부정을 탈피하기위한 의식적 행동이었다. 실로 그들은 전인격적인 거듭남이나 내면적 자기 성찰보다 이러한 겉으로 드러난 의식적 정결에 더 큰 종교적 가치를 두었던 것이다.
잔과 주발과 놋그룻을 씻음이러라 - 마가는 음식먹을 때 사용하는 식기들까지 씻는 철거한 관습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정결 관습에 대한 철저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서 '잔'은 음료를 마시는 그릇을, '주발'이란 로마인들의 액체를 재는 도구 또는 작은 그릇, 항아리 등을 뜻하며,'놋그릇'(칼키온)은 구리로 제작된 각종 용기들로서 주로 취사 도구를 가리킨다.
그런데 탈무드에 따르면 이러한 도구들은 주로 이방인들에게 구입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결례가 요구된다고 한다. 한편 수리아사본 등에서는 위의 세 종류 이외에 '침상'이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첨가가 마가의 본 의도를 그르치기 않는다면 '씻는다'는 뜻의 훼라어 '배티스무스'의 활용도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된다.
즉 여기 '씻는다'는 말은 물에 완전히 잠그다는 뜻 외에 단순히 잠그지 않고 '씻어낸다', '닦는다'는 등의 의미로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정결례는 다양하게 이뤄졌음을 짐작해 볼수 있다.
[막 7: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 여기서는 그들의 생활 습관 속에 있는 정결에 관한 의식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시장'은 부정한 곳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시장이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고 혼잡한 곳에서 부정한 여러 사람들과 접촉 가능한 대중적 장소이기 때문에 불결해지기 쉽다는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유대인들 시장에서 이방인들이나 심지어는 율법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유대인들과 흑시 접촉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의식적 정결에 힘썼던 것이다. 물을 뿌리지 않으면 - 이 말은 '배티손타이'라는 훼라어의 번역인데, '씻다', '적시다'라는 뜻인 '배티조'의 복수 3인칭 중간태로서 번역하면 '그들 자신을 씻다'가 된다. 때문에 '물을 뿌린다'는 것을 목욕을 하거나 물에 몸을 잠그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즉 '배티조'는 물에 담그고 적신다는 뜻과 씻는다는 뜻을 갖고 있으므로 오히려 목욕하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물론 이것을 세례와 침례의 차이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혹자 본문의 점층법적 표현을 강조하면서 '유대인은 먹기 전에 항상 손을 씻었다. 그리고 그들은 시장에서 돌아와서 먹기 전에는 항상 몸을 씻었다'고 그 의미를 명확히 표현했다. 물론 이 모든 행위늘 그들이 종교적 부정을 탈피하기위한 의식적 행동이었다.
실로 그들은 전인격적인 거듭남이나 내면적 자기 성찰보다 이러한 겉으로 드러난 의식적 정결에 더 큰 종교적 가치를 두었던 것이다. 잔과 주발과 놋그룻을 씻음이러라 - 마가는 음식먹을 때 사용하는 식기들까지 씻는 철거한 관습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정결 관습에 대한 철저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서 '잔'온)은 음료를 마시는 그릇을, '주발'이란 로마인들의 액체를 재는 도구 또는 작은 그릇, 항아리 등을 뜻하며,'놋그릇'(칼키온)은 구리로 제작된 각종 용기들로서 주로 취사 도구를 가리킨다.
그런데 탈무드에 따르면 이러한 도구들은 주로 이방인들에게 구입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결례가 요구된다고 한다. 한편 수리아사본 등에서는 위의 세 종류 이외에 '침상'\이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첨가가 마가의 본 의도를 그르치기 않는다면 '씻는다'는 뜻의 훼라어 '배티스무스'의 활용도는 상당히 광범위하게 된다. 즉 여기 '씻는다'는 말은 물에 완전히 잠그다는 뜻 외에 단순히 잠그지 않고 '씻어낸다', '닦는다'는 등의 의미로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의 정결례는 다양하게 이뤄졌음을 짐작해 볼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