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대한 존재의 사슬’두 발로 선 최초의 인류 아르디피테쿠스(가운데)는 그 후예들이 불과 도구를 사용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후예들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능력과 역할을 우주로 확장해가고 있다.
프랑스 사상가 B.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을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로 비유했다. 눈바람에 쉽게 휩쓸려 을씨년스럽게 보이지만 어지간해선 꺾이지 않는다. 그 모습은 애처롭지만 굳건하다. 인간은 갈대처럼 그렇게 스스로 서서 하늘을 향하면서도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유연함을 가진 존재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동물적인 본능을 스스로 억제하고 자신을 넘어선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인 사고를 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한 자화자찬은 대체로 필요하긴 하나 대부분의 경우 해가 되곤 한다.인류의 이런 자화자찬은 ‘위대한 존재의 사슬(Great Chain of Being)’이라는 철학적 개념에서 비롯됐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고전철학의 마지막 주자이자 완성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역사>라는 책에서 ‘스칼라 나투라이(scala naturae)’, 번역하자면 ‘자연의 사다리’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들은 그 중요성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정해진 위치가 있다는 이론이다. 그 정해진 위치를 사다리로 표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기원전 3세기 신플라톤주의 사상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신들은 인간의 상위에 존재하고 인간들은 다른 동물이나 무생물 위에서 군림한다는 게 골자다. 이 사상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심화되어 인간은 우주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위대한 존재의 사슬’은 르네상스시대 유럽인들의 사상을 지배했다. 당시 유럽사회의 봉건제도, 왕권신수설, 군주주권론 그리고 개인의 신분에 따라 노동을 구분하는 등 사회전반을 지배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만물은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계급과 위치가 존재한다. 이 구분은 구체적이어서 이를 테면 상수리나무와 장미는 식물 세계에서 최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사자와 독수리는 동물왕국의 우두머리다. 더욱이 왕과 왕비는 인간세계의 정점에서 신적인 권리를 부여받았다. 만일 이런 신적인 질서를 훼손하는 경우엔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했다. 만물이 각각에 알맞은 목적이나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등장하는 ‘텔로스’ 혹은 ‘궁극적인 이유’다. 만일 개체가 자신에게 부여된 고유한 의무를 망각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주는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며 신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의 최고의 피조물로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거나 거부할 경우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이다. ‘죄’라는 것은 신의 명령을 이탈하는 행위가 아니라 신의 질서에 대한 거부다.신과 피조물 사이에 선 인간의 고민 위대한 존재의 사슬(사진) 안에서 만물은 각자 정해진 역할과 계급이 있었다. 이 사상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중세 유럽의 지배계급의 명분으로 활용됐다.
#2. 알렉산더 포프의 <인간론>18세기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인간론 (An Essay on Man)>(1733∼1734)이란 시에서 이런 인간의 딜레마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어려서 척추결핵에 걸려 불구의 몸이 되었지만 독학으로 고전을 탐구해 영국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문인이 된 인물이다. 그는 이제 인간이, 신이 정한 ‘위대한 존재의 사슬’ 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은 이제 신의 간섭 없이 스스로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고 믿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세계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통해 합리적인 법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할 정도로 성숙했다. 이 생각을 이신론(理神論)이라고 부른다. 영국은 당시 시민계급의 등장과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에 대한 긍지가 고양되었고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교리들, 특히 삼위일체, 계시, 그리고 기적 등을 이성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성서를 축자적이 아니라 은유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신 스스로 구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 시는 아직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중요한 교리에 대한 도전이었다.<인간론>은 네 개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의 핵심은 두 번째 편지 첫 단락에 담겨 있다. ‘당신 자신을 헤아리십시오. 신을 자세히 살피겠다고 하면서 추정하지 마십시오. 인류에게 적당한 연구대상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어정쩡한 중간상태인 지협에 있습니다. 우울하게 지혜롭고 건방지게 위대한 존재입니다. 회의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아는 것이 많고, 금욕주의적 자부심으로 보기엔 너무 약합니다. 인간은 그 중간에 매달려 있습니다.’인간은 과학을 이용해 자연을 관찰하면서 그 작동원리를 알기 시작했고, 조물주의 우주창조 원리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과학을 통해 인간은 자신들이 신의 능력을 전수받았으며 스스로 신의 흉내를 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인식에서 ‘어리석은 자’란 과학의 진보가 가져다준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는 자였다#3. 다윈의 <인간의 유래>한 영국 생물학자는 알렉산더 포프의 이상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과감히 도전했다.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이다. 역사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한다 하더라도 감히 시도할 엄두를 못내는 일에 과감히 뛰어든 사람이 만들어가는 법이다. 그는 낯선 경계에서 자신만의 해결점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신중하면서도 동시에 무모한 자, 찰스 다윈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1859년에 저술한 <종의 기원>을 통해 생물의 기원을 신화나 종교문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든 ‘과학’으로 설명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서양인들은 생명의 기원을 성서의 첫 책 <창세기>에서 찾았다. 그들은 창조의 기원을 인간 스스로 확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통’과 ‘신앙’이라 불리는 금과옥조와 같은 이념에서 그 해답을 쉽게 찾고 안심했다. 그들은 성서를 역사적이며 과학적인 ‘진리’라고 배웠고 그렇게 체념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세상의 모든 사람이 함께 수긍하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진리’라는 이데올로기를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새롭게 희구할 뿐이다. 시대에 따라서 진리는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연구한 집단이나 개인에 따라 다양하고 독특한 모습들로 등장할 뿐이다. 찰스 다윈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탐구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생명은 알 수 없는 어떤 존재인 ‘신’이 한순간에 창조한 무엇이 아니라, 그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조금씩 변화를 거쳐 점차로 형성되었다고 감히 주장했다.인간을 인간답게 할 ‘단절고리’는 존재하나 중세 유럽인들에게 왕은 신적인 능력과 권위를 부여받은 ‘인간 중의 인간’이었다. 왕의 통치권은 신이 부여한 신성한 권력이었고, 이에 대한 반역은 곧 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헝가리 왕국의 첫 번째 왕인 이스트반 1세(사진)는 기독교를 받아들여 정착시킨 공로로 후대에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됐다.
다윈이 1871년에 저술한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는 <종의 기원>만큼이나 중요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의 결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모든 숭고한 자질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양계의 운행과 구성을 탐구해 파악할 만큼 신과 같은 지적인 능력을 지녔습니다.” 다윈이 언급한 신적인 능력은 벌레나 물고기 혹은 파충류와는 다른 인간의 이족보행을 지칭한다. 이족보행은 다른 모든 인간의 특징보다도, 아니 다른 후대 인간만이 지닌 숭고한 특징을 배태하는 인간만의 특징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두 발로 걷게 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몇 개의 뼈와 치아들을 통해 과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추측할 뿐이다. 이족보행과 관련된 초기 화석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찰스 다윈은 아프리카가 인류 발생의 근원지라고 추정했지만 화석이 없다면 그 주장도 소용없다고 경고했다. 인류와 유인원들이 유전적으로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했다면 이들의 특징을 모두 포함하는 공통조상의 신체적이며 유전적인 특징을 지닌 ‘단절고리(missing link)’가 필요하다. ‘단절고리’란 생물학에서 모든 생물의 계통적인 관계를 설명할 때, 진화론적으로나 분류학적으로 상위에 위치한 화석을 의미한다. 우리는 쉽게 침팬지나 혹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원숭이들의 공통조상이 그 단절고리라고 착각하기 쉽다. 오늘날 우리가 동물원이나 아프리카에서 보는 유인원들은 마지막 공통 조상으로부터 그다지 많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통념 때문에 언젠가 생존하는 원숭이들과 인간의 중간 정도의 화석들이 발견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 발견에 의하면, 인간이 다른 유인원들과 공유하는 공동의 조상이 될 만한 화석은 없다.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은 ‘이족보행’을 다른 생물과 다른 인간의 신적인 능력이라고 보았다.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급격한 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윈은 인간의 진화를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 이족보행, 뇌 크기 그리고 줄어든 송곳니로부터 설명한다. 그는 당시 이미 발견된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해 다른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1890년대에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1920년대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발견됐다. 당시 학자들은 이 두 화석이 호미니드(Hominid)와 연관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현생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화석은 무엇인가?#4.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그 단절고리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약칭: 아르디, Ardi)다. 미국 버클리대학의 고인류학자 화이트가 이끄는 고고학 팀이 에티오피아 중부 아와쉬(Middle Awash)에서 유인원의 뼈들을 1992년과 1994년에 발견했다. 중부 아와쉬는 16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뼈에서 인류 최초의 커피 잔재가 유전자분석을 통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화이트와 동료들은 아르디와 유사한, 적어도 36구의 화석화한 유인원 유골에서 110개의 화석을 발견했다. 이 화석들을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언어에서 ‘뿌리; 근원’을 의미하는 ‘라미두스(ramidus)’와 ‘땅바닥’을 의미하는 ‘아르디’, 그리고 ‘유인원’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피테쿠스’를 합성하여 ‘아르디피테쿠스라미두스’라고 이름 지었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를 굳이 번역하자면 ‘인류의 뿌리(라미두스)가 되는 땅에서 거주하는(아르디) 유인원(피테쿠스)’ 정도가 될 것이다. 화이트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속(屬)과 구별하기 위해 별도의 아르디피테쿠스라는 새로운 속의 명칭을 만들었다.아르디는 키가 120㎝, 몸무게는 50㎏ 정도로 탄소연대측정에 의해 44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인류의 특징을 유추할 수 있는 유인원이다. 아르디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발굴한 유인원의 뼈들 중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단절고리’이기 때문이다. 아르디는 침팬지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아르디는 새로운 속이 등장하기 위한 경계에 걸쳐 있는 현묘(玄妙)한 화석이다. 새로운 개체는 느닷없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별과 사고를 넘어선 어떤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만일 화이트가 아르디를 기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안으로 편입시키려 했다면, 인류의 시원에 대한 무지는 계속됐을 것이다.고인류학자들은 유전자감식과 탄소연대측정법을 동원해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이 살았던 시기를 500만 년에서 1천만 년 사이라고 추정한다. 아르디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종(種)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屬)에 속하는, 역시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320만 년 전 원숭이―인간 유인원인 유명한 ‘루시(Lucy)’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할 것이다. 아르디는 여성으로 판명되었으며, 그의 두개골, 치아, 팔, 손, 골반, 다리, 그리고 발을 재구성할 수 있다. 화이트에 따르면 아르디는 나무 위에서도 거주하고 땅에서도 거주하며 잡식성이었다. 침팬지처럼 작은 두개골과 긴 팔, 짧은 다리를 가졌다. 또한 단순한 도구를 이용할 줄 알았지만 석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석기는 260만 년 전의 것이다.그렇다면 아르디와 침팬지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아르디는 다음 두 가지 특징으로 변화된 자연환경에 효율적으로 적응하고 생존했다. 아르디는 긴 손가락과 커다란 발가락을 이용해 나무를 잡고 올라갈 수 있었지만 동시에 나무에서 내려와 두 다리로 걸을 수도 있었다. 또한 나무에서 내려와 근채류를 찾고 동물의 사체를 먹으면서 송곳니의 크기가 현격하게 줄기 시작했다.양손의 자유 얻으며 뇌 발달 가속화 1.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은 인간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다. 원숭이나 침팬지도 도구를 이용한다. 돌을 이용해 씨앗 껍데기를 깨뜨리는 보노보. / 2. 인간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두 발로 걷게 된다. 이족보행은 두뇌의 발달보다 500만 년 앞선 인간의 특징이다
#5. 두 발로 서기영장류 중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유인원들과 침팬지나 보노보로 진화한 동물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뇌 크기에서 차이를 찾는다. 인간의 뇌가 점점 커지면서 언어, 이성, 그리고 자기성찰과 같은 정신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류의 조상을 ‘호모사피엔스’ 즉 ‘지적인 활동을 할 줄 아는 유인원’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커다란 뇌는 인간 진화의 모든 변화와 혁신들의 바탕이다. 그러나 최근의 이론은 이와 다르다. 인간이 두 발로 항상 걷게 된 신체적인 이유가 다른 변화를 이끈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부모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아이가 스스로 일어서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볼 때가 아닐까? 어린아이가 처음엔 두 발과 두 무릎으로 기어 다니다가 어느 순간에 손에 잡히는 의자나 식탁, 식구나 강아지에 의지해 일어서려고 노력한다. 10개월이 지나면 아이는 서서히 부모의 손을 떠나 두 손을 들어 올려 두 다리로만 걷기를 시도한다. 거의 모든 인간은 특별한 노력 없이 두 발로 걸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잘 모른다. 우리는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능력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걷기까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인간을 소위 만물의 영장으로 등극하게 한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의 커다란 뇌에서 나오는 지적인 능력이나 정교한 말, 혹은 손가락으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우리를 다른 동물들, 특히 유인원들과 구분하는 판단기준인가? 인간의 뇌와 다른 유인원의 뇌를 비교하면 인간의 언어능력과 관련된 뇌는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인간의 뇌는 다른 온혈 포유류의 뇌를 늘려놓았을 뿐이다. 원숭이들도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초보적인 도구를 만들고, 자기들 나름대로 동작과 음성을 통해 초보적인 수준에서 소통한다.아르디의 습관적인 이족보행은 걷거나 달리는 행위를 두 다리로 하는 행위다.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은 거의 없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유인원들이 나무 높이 달린 과실을 따먹기 위해 종종 두 발로 일어나 허리를 펴고 두 발(손)을 뻗으면서 이족보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침팬지나 고릴라는 나무에 있는 열매를 따기 위해 두 뒷다리로 일어서는 경우처럼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때만 두 발로 일어선다. 8개의 다리를 가진 문어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자신을 위장할 경우 두 발로 걷기도 한다. 문어는 다리 여섯 개를 들어 머리 위에 올려놓고 나머지 두 다리로 자신이 식물인 척하며 슬며시 도망간다. 사슴도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뒷다리는 서서 지탱하고 앞 다리로 먹을 것을 끌어당긴다. 침팬지도 손으로 물건을 들고 오기 위해 두 다리로 걷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습관적인 이족보행은 오늘날 포유류 중에 인간과 캥거루가 유일하다. 아르디는 다른 유인원들처럼 나무 위에 살면서도 이족보행을 했다.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두 발로 걷는 행위는 인간이 불을 발견해 사냥한 동물을 불에 구워먹으면서 뇌의 용량이 커지기 시작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두 발로 걷는 행위가 후에 등장하는 불의 발견이나 언어의 습득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습성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발판인 것이다. 실제로 인류의 조상이 되는 유인원이 두 발로 서서 걷기 시작한 시기는 600만 년 전으로 불을 발견한 시기인 100만 년 전보다 500만 년이나 앞선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족보행은 개나 말과 같이 사족보행을 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숨을 고르기가 쉽다. 이족보행을 했던 유인원들의 폐가 에너지를 절약하고 숨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되자 그들은 입을 통해 말을 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습관적 이족보행이 뇌 발달보다 500만 년 앞서 이족보행은 인간의 두 손에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자유롭게 된 두 손은 온갖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두뇌의 발달로 이어졌다. 급기야 인간은 자신을 닮은 피조물 (이족보행로봇)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6. 왜 이족보행을 하게 되었는가?두 발로 걷는 현상 자체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이 우리의 조상들로 하여금 두 발로 서게 만들었을까? 네 발로 기어 다니던 유인원들이 어떻게 걷고, 오래 달리는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가 되었을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600만 년 전 지구는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북극과 남극에서는 빙하가 불어나고 지중해 해수면이 낮아져 근접 대륙인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남부유럽에 물 부족사태가 일어났다. 유인원들이 거주하던 밀림지역은 점점 피폐해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거지인 나무 위에서 내려와 사바나 지역으로 이동했다. 사바나는 비가 올 때는 초목이 무성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계절에는 나무와 풀이 말라 건조 기후를 이겨내는 관목들이 주로 자라는 황원(荒原)이 되길 반복한다.나무에서 내려와 황원에 정착한 유인원들은 이 족보행을 하면서 딜레마에 봉착했다. 몇몇 이족보행 유인원은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채소나 뿌리뿐만 아니라 다른 맹수들이 먹다 남긴 동물들의 사체와 물고기 등을 발견하게 되었다. 육식은 큰 뇌로 진화하기 위한 단백질, 지방, 그리고 칼로리와 같은 두뇌에 꼭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해 지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육식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우리의 조상들은 지구를 정복하기 위한 인간으로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 당시 유인원들에게 이족보행이 뇌 크기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인간의 뇌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100만 년 전이다. 당시 유인원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즉 직립원인(直立猿人)이 불을 발견하고 사냥한 동물을 불에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뇌 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충분한 단백질이 공급되었다. 이족보행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가는 길목에 가장 혁신적인 사건이었다.걸은 만큼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 진화한다 걷기는 인류의 창조적 진화를 이끌어온 가장 혁명적인 매개체다. 걷기를 통해 인간의 사고는 더욱 깊어진다. 끝없이 진화하는 인류의 여정은 마치 정처 없이 길을 걷는 순례자를 닮았다.
아르디의 등장을 기후변화보다 사회적 변화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고고학자 오웬 러브조이(Owen Lovejoy)는 아르디 수컷이 점점 특정한 암컷과 일대일 관계를 맺으며 음식을 모으고 나르는 일을 하면서 이족보행이 서서히 가능해졌다고 설명한다. 수컷 아르디가 암컷에게 음식을 효과적으로 나르기 위해선 손이 자유로워야 하고 두 발로 걸어야 했다. 그런 음식을 제공받은 암컷은 새끼를 좀 더 집중해서 키울 수 있게 되고, 앞다리가 자유로워야 자식을 안고 황원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아르디의 또 다른 특징은 송곳니의 크기가 현저하게 줄어든 점이다. 송곳니는 동물들에게 ‘공격무기’다. 이 특징은 후에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인간의 중요한 문화의 발판이 됐다.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이지만 현생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로부터 진화했다는 증거는 없다. 아르디 화석의 발견으로 침팬지와 인류의 조상이 서로 다른 진화의 과정을 겪었으며, 현생인류는 시원을 알 수 없는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게 정설로 굳어졌다.#7. 산책인류는 자신의 위치를 ‘위대한 존재의 사슬’ 안에서 찾지 않고 우주 안에서 찾기 시작했고, 다윈이 말한 단절고리를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를 통해 확인했다. 화이트도 아르디를 발견한 후 기존의 계통분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인류의 조상을 찾으려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아르디피테쿠스라는 애매하지만 중요한 속(屬)을 만들어내 인류의 시원을 새롭게 밝혔다. 화이트는 현생인류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고리를 ‘습관적 이족보행’으로 본 것이다.19세기 미국의 자연주의자이자 철학자이며, <월든 호수>와 ‘시민불복종’ 같은 글을 써 20세기 미국의 정신적인 기틀을 마련한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일생을 ‘전문적’으로 걸었던 사람이다. 동시대 미국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소로는 걸은 만큼 글을 썼다. 집안에만 있었다면, 글을 전혀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로가 1862년 결핵으로 사망한 후, 미국 월간지 <아틀란틱>은 당시까지 아직 발표되지 않은 글 <걷기>를 소로를 추념하며 1862년 6월 호에 실었다.이 글에서 소로는 자신의 삶에서 걷기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걷는 행위’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사운터(saunter), 번역하자면 ‘산보(散步)’다. ‘사운터’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소로는 이 단어의 어원을 ‘라 사인테 테레(la sainte Terrer)’, 즉 ‘거룩한 땅인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순례자’, 혹은 프랑스어 표현 ‘상 테레(Sans Terre)’, 즉 ‘집이 없이 (떠도는 사람)’에서 찾았다. 산속에 있는 물줄기가 바다로 가는 최소의 거리를 찾아 헤매듯이, 산책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거침없이 찾아 헤매는 사람이다. 우리가 두 발로 걷는 이 행위가 순례자의 발걸음처럼 거룩하지 않은가?배철현 -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원전 6세기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비시툰비문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가르치고 있다. 창의 인재 혁신 프로그램인 ‘건명원’을 기획하고, KBS ‘궁금한 일요일 장영실쇼’ 진행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