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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안개 속에서☆]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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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이향아 시집 / 시문학시인선 556 / 시문학사(2017.10.30)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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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이향아
바람이 불자
안개가 실크스카프처럼 밀린다
밀리고 흘러서 걷힐지라도
도시의 뒷골목 넘치는 하수구와
한 길 사람 속과
오래 가지 못할 거짓말과
무던한 안개가 품고 있던 것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안개와 친해져서
사거리 터진 마당의 애매한 취기
불확실한 경계
용서할 수 있는 미결의
꿈속 같은 그늘이 불편하지 않다
안개 걷혀도 미지수의 괄호들은 남을 것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차라리 자욱할 때 평안들 하신지
어슴푸레 열릴 듯한 은은한 천지.
그 나무
이향아
태산목 그 나무는 아직 거기 있을까
태풍 견디고 큰비 맞으며
지금도 두 팔을 치켜들고 있을까
내 대신 벌을 서며
눈으로 약속한 오랜 시간을 참고 있을까
꽃 진 자리마다 잎을 밀어 올리며
타는 가슴 적시러 강으로 가고
더러는 비장이다 발목이 삐었는데
하지 지난 후로는
서둘러 한 치씩 해도 일찍 기우는데
태산목, 태산목은 무사하실까
소식도 모르면서 지레 앓는다
구멍 하나
이향아
어쨌든 구멍 하나는 뚫어놔야 한다
찢어지지 않으려면 바람구멍 하나는
시나브로 들고 날 휴게실 하나는
폭발하여 산산이 부서지기 전에
내가 먼저 부서져도 좋을
쉼표 하나는 그려놓아야 한다
구멍 속을 파고들면
사방으로 이어진 실핏줄이
꿈에도 못 잊을 강에 아르는
오래 묵어도 썩지는 않을
숨구멍 하나 터 줘야 한다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게
골목길 하나
등 뒤에 모르는 노잣돈 몇 푼은 남겨 두어야 한다
그러면 됐다
이향아
그는 아마 오늘도 받지 않을 것이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메시지를 남기라고 경우를 따라서는 비용이 들 거라고
모르는 여자가 나를 달래기도 한다
이제는 통화중인가 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전화를 받고 있다니 잘 됐다
그가 살아서 다른 사람의 전화를 받고 있으니 안심이다
그가 다른 사람과 열심히 통화를 하고 바쁘고 나 같은 것은 잊어버리더라도 정신없이 뛰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내가 무엇 때문에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다른 사람의 전화를 받고 있다
그는 살아있다
그리고 바쁘다 그러면 됐다
진분홍색
이향아
‘진분홍’이리고 말할 때 벌써 진분홍물이 들어 있다
진분홍처럼 입을 오므리고 진분홍 같은 소리를 낸다
배롱꽃이 진분홍으로 필 때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
머리 감아 빗고 정하게 손을 씻으면
편지지의 청남빛 잉크가
그믐밤 별빛 보다 차고 맑아
나는 홀연히 일어나서 서성대겠지
전할 사연이 생각나지 않는 듯이
생각난 말들이 사뭇 모자라는 듯이
나를 돌아다보는 어머니 말씀
“여기엔 연ㄷ저고리가 어울리겠지?”
옷고름은 길게, 끝동은 남색으로 달아주세요.
어머니는 말없이 인두질만 했다
나는 울지도 않는 동생을 업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발부리로 조심조심 흙을 디디며
편지를 부치러 갔다
그 여름
이향아
열한 살, 여름방학 하던 날
나는 집으로 못 가고 병원으로 업혀갔다
오래된 늑막염이라면서
이렇게 될 때까지 어린애가 어떻게 참았느냐고
의사는 혼자서 투덜거렸다
나는 그날 받은 통신표를 생각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선생님과 여러 동무들
이리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니
누워 있어도 나는 주인공이었다
창밖에는 해바라기가 몇 그루 서 있었다
매미가 그악스럽게 울었고
어머니는 돌아앉아 어깨를 들먹였다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외삼촌이 늑막염으로 죽었다더니
나도 혹시 그럴까 봐 그러는 것 같았다
어머니한테는 참는 법을 배우고
어머니한테서 이기는 법을 배웠지요
나 죽지 않아요,
기어드는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참새
이향아
나뭇잎이 일제히 떨어지는가 했더니
참새들이었다
날마다 아침을 물고 와서 서두르는 새들
저들은 물결처럼 일순에 내려와 점호를 마친 후
구령에 맞추어 다시 나뭇가지에 앉는다
간밤의 뉴스를 읽고 오늘 날씨를 점검하는 것이다
쥐면 한 주먹 파닥거릴 몸뚱이
그 체온이 내 핏줄을 따라온다
바지런히 종종거려야 먹고 살 수 있는
하늘을 날지만 땅에 가까운 새
보호색으로 스미는 수수한 깃털
무슨 새를 좋아하세요, 누구든 지금 묻기만 해라
망설이지 않고 “참새!”라고 할 것이다
백조라느니, 공작이라느니 꾀꼬리라느니
바람난 목소리로 꾸미지 않을 것이다
겨우 참새냐고,
남들이 하찮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혹시 우러를지도 몰라
어떻게 감히 참새를 대느냐고
참새,
참말로 새,
진짜 새,
참새를
누른다는 것
이향아
요즘 어떤 출입문은 밀어도 당겨도 열리지 않고
명찰처럼 작은 판에 ‘누르세요’ 적은 후
혹시 모를까 봐 해석까지 달았다, ‘Push’!
Push 판 그까짓 것 누를 수야 있지만
누른다는 말이 찜찜하다
지구 표면을 누르는 대기압, 표면장력은 그렇다 치고
따르라 따라오라, 꼬여내는 술수를 넘어
짓밟아버려, 찍소리 못하게 눌러버려
이런 말이 버젓하게 나도는 세상에
나 하나 입장하면서 누구를 제압하라 하는가
왜 그래야 하는가
세상의 약한 것들은 눌리면서 일어나고
밟힐수록 숨을 골라 고개를 쳐드는데
기선을 잡고 초장에 누르라고
제대로 이겼는지,
이겼으면 이겼지 어쩌자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르라고 한다.
망설이고 있는 사이 내 가슴을 누르는
아, 누군가의 억센 검지 손가락
한산모시 한 벌
이향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녀는 감사의 표시라며 한산모시 한 필을 주었다 세상의 많고 많은 물건 중 한산모시 한 필
공경해야 할 어른을 맞듯이 두 손으로 받으면서, 정일품 정경부인 그 가풍과 예절, 혹은 품계와 칙령을 모시듯 허리를 굽혔다 “좋아하실는지 모르지만 오래 오래 생각하고 골랐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뺨은 발그스레했다
내가 모시옷 차림으로 처음 나선 것은 정년퇴임하는 날이었다 하얀 모시옷을 입고 살아온 얘기를 고백하고, 하얀 모시옷을 입고 내가 다시 걸어야 할 이정표를 가늠하였다 모시옷처럼 사각거리며 모시옷처럼 조심스럽게
그날 사람들의 눈빛은 한산모시를 사랑하듯 나를 감싸고 한산모시를 우러르듯 나를 믿었다
“그 옷 아무나 못 입어요. 어울려요.”
나는 기억의 곳간 깊이깊이 이 절정의 찬사를 저장해 두었다
옷고름이 긴 한산모시 치마저고리, 날개옷을 입은 듯 우아하게 정년퇴직을 하던 날
나 혼자는 어림없을 도저한 슬픔, 나 혼자 갈 수 없는 아스라한 그곳 한산모시 한 필, 황홀한 여운
그날 이후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였다
저녁 들판
이향아
정말 한 번 가볼까,
김제 들판 생판 낯선 마늘밭에나
먹고 살기가 예전 같지 않은지
올 겨울에는 새들도 부쩍
미루나무건 아파트 베란다건 전신주건
대체 그게 어딘 줄이나 알고 그ㅓ는 것인지
무겁게 늘어진 고압선까지
겁도 없이 몰려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가
김장거리도 뽑아 들인 저녁 들ㅊ판에는
말라비틀어진 시래기며 무 토막
바늘 침처럼 직선으로 꽂히는 적외선 아래
무엇을 갉아먹다 죽은 쥐도 있는데
내일부터는 눈이 온다고 한다
잘잘못을 흔적 없이 덮으려나 보다
김제 평야 마늘밭
캐다가 놓친 돈 부스러기도 없는데
파헤치기 어려운 밭이랑 위로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밭이랑 위로
하늘이 무겁게 깔리는 대낮
생일케익
이향아
케익을 자르면서 시루떡을 생각했다
사루 전에 붙은 밀가루 반죽에
뜨거운 김에 입을 다물 무렵
아궁이 생솔가지 연기도 향긋하였다
둘러서서 나팔 불듯 입김을 뿜으면서
멋들어진 내가 좀 부끄러웠다
벼슬도 아니고, 상 받을 일도 아닌데
겨우 이런 일로 주인공이하라니
어색하게 몸을 꼬고 김빠진 노래를 따라 불렀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일 년에 딱 한 번이야, 그냥 웃으면 돼
마음에 없어도 이럴 수가 있구나
엉겁결에 웃다가 시집도 가고
믿지, 믿어 지장 눌러 저지를 수 있겠구나
돌아오는 길 조용히 묻는 목소리
“미역국이나 재대로 끓여먹었니?”
이유
이향아
꿈의 높이가 맞지 않다고 하였다
그들이 서로 삿대질하며
멸시한 이유였다
타고난 색깔이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이를 둘씩 낳고도 등을 돌려
헤어진 이유였다
바라보는 그 나라와 타고난 천성
오로지 나 하나만 우주의 중심
중심 밖 변두리는 불법이요, 죄악
이념과 사상이 맞지 않다고 했다
손가락에 장을 지질까, 혈서를 쓸까
확실히 그게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눈 이유였다
물결처럼
이향아
하필 박토에 떨어진 씨앗이라고
나를 몰아세운 적 없다
어쩌다가 돋아난 한 포기 우연
조각난 거스름이라 생각한지적도 없다
보라색 휘장 속에 눈을 뜨는 아침
서 있는 여기는 땅의 중심
지금이 목숨의 복판이라고
남들이야 믿을까만 그렇게 말하련다
패인 상처마다 불 밝혀 놓고
이제는 허튼 꿈에 시달리지 않을 거다
저 팔달의 장바닥에 뽑혀가는 일 없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상관없는
숨겨둔 기폭은 흔들리지도 말아야지
감당할 수 있을까 몰라, 단 하나 저 끝
재촉하지 말고 바라다만 볼 것이다
순행하는 물결처럼 아주 천천히
지금 시작한다면
이향아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내가 지금 사랑을 시작한다면 영원을 맹세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그 무서운 말
나는 오늘 허락받은 하루치의 목숨
과분한 시간에 잠길 것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정상을 마음에 두듯, 나는 어느 목표를 향해 걷지 않을 것이다 가다가다 만나는 물소리와 나무 그늘, 스치는 바람과 들꽃의 향기, 바로 그것이 산이라는 걸 마음에 새길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란 말도 있는가, 거래를 하듯 주고받자는 게 아니라면 사랑을 왜 고백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일, 멀리서 바라보는 일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지금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는 그것으로 이미 천국에 가 있을 것이다.
고뿔
이향아
피 묻은 가래를 뱉어내면서도
고뿔이야, 별것 아냐, 우습게 여긴다
세상의 별것이란 무엇인가
학질인가? 홍역인가? 염병인가?
무서움에 길이 들어 무서운 게 없다
코에서 불이 나는 것이 고뿔이지만
불이 공연히 날까
태울 것 골라서 태울까
타이레놀 진통제를 세 알째 삼키고서
참고 견디는 힘이 타이레놀보다 독하다
아침은 밝을 것이고 의료보험증도 있고
내일 죽을 지라도
무거운 문을 밀고 가봐야겠다
큰 바다에 떠서
이향아
나는 지금 큰 바다에 떠 있습니다
뜨는 해 지는 해가 여기 있고
욕망과 포기, 간구와 원망도 함께 있습니다
나는 한 마리 물새
물살을 가르며 낮과 밤을 건넙니다
빛의 속도에 멀미하지 않고
나는 오로지 고귀한 승객
지구는 아담한 유람선이라는 것을
이리 늦게 알아가는 한낮입니다
큰 바다 호화로운 한낮입니다
가을 풀
이향아
흔들리면 흔들릴 뿐 꺾이지 않고
밟히면 밟힐수록 일어서는 풀
가당치 않은 이름을 꿈꾼 적 없습니다
바람이 피리를 불며
햇살과 햇살 사이를 빠져 나갑니다
가을 들판은 자욱한 이슬에 가라앉고
무거운 고개는 바닥으로 숙인 것들
자랑할 건 없어도
천지사방을 둘러보면 고마움뿐입니다
여름내 젖은 발 흙속에 묻고
이제는 손을 흔들어 작별할 시간
내년 봄 다시 풀로 피어날 것입니다
명절 후
이향아
자식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몰려갔다
안녕히 계세요, 허리를 굽히고
조심조심 가거라, 오래 손을 흔들어
골목을 휘어지는 자동차의 불빛
썰물이 지나간 갯바닥처럼
어지러운 집안을 치우면서도
고적에 길들어서 쓸쓸하지 않게
먹다 남긴 음식은 먹어서 치운다
어머니는 언제나 거기 있을 줄 알아
어린것들만 거두느라 정신없던 나날
늙어봐야 안다던 말씀
화살이 되어 꽂히는 저녁
풍경을 두고 오다
이향아
풍경은 거기 두고 혼자 온 줄 알았더니
어쩌자고 먼 길을 따라왔는가
나 그 때문에 꼼짝할 수 없어
묶인 듯 접신한 듯 중얼대며 걷는다
바로 이런 곳이라고
나 거기 갔었다고
이것 보라고
못 믿을 세상이라 사진을 찍어서
여기 있지 않느냐, 이게 바로 나라고
증명하였다. 의심하지 못하게
그래도 나는 역시 풍경을 두고 왔다
풍경만 남겨 두고 나 혼자서 왔다
따라온 것은 이름이요 허울,
그림자일 뿐
그리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풍경을 두고 혼자 오는 것이구나
혼자 와서 두고두고 앓는 가슴이구나
시간을 따라가면서
이향아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고
동쪽 벌에서 북쪽 산으로
피아노에서 포르테로
숲은 숲끼리 바라보면서
혹시 한 순간이라고 놓칠까 봐
놓치고 몽매한 어둠에 묻힐 까 봐
빠르게 뛰는 가슴을 누른다
간밤에 내린 비로
꽃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데
꽃 진 바리엔 벌써 의젓한 새 주인들
날이 공연히 밝지는 않는 구나
밟고 가는 자리마다 패이고 돋는구나
시계는 아침 열 시 외출을 서두르고
잔가지 잎사귀 사이 푸르른 하늘
뜨거운 눈물
떠나는 사람
이향아
나는 오늘도 떠난다
날마다 행장을 차리고
가야 할 곳과 가고 싶은 곳을 가늠하면서
몇 발자국 떼지 않아 날은 저물고 폭설이 그치지 않지만
허우적거리면서 파묻히면서, 길을 재촉한다
떠나지만 도착할 시간을 정하지는 않았다
도착하여 익숙한 옷을 입은 듯
평안을 회복할 때까지
지구는 속도를 늦추어 돌고
나 또한 그 소식을 들을 때까지
밤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허술하게 아침을 맞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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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같은 일을 백 번 할지라도 처음하는 처럼 하고 싶다.
오직 하나 남은 진실을 고백하듯이 하고 싶다.
2017년 늦여름
硯池堂에서
李鄕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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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이 詩集 [※안개 속에서※]
[ 이향아의 시세계 ] -
인간 실존의 비가
유한근 문학평론가
췌언이 허락된다면 토로컨대, 이향아 시인의 시집 『안개 속에서』를 일별하고 한참을 먹먹해 했다. 그 시 속에 깔려 있는 시인의 한평생 동안의 ‘그 무엇’속에서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다. 비평가라는 나의 존재를 잊고 그렇게 한참을 그 안개 속에서 헤매야 했다. 그러면서 ‘그 무엇’이 무엇인지 정서적으로 탐색하려 했다. 비애? 단독자로서의 고독? 세상과의 단절로 인해 소통에 대한 슬픔? 시적 트릭과도 같은 판타지? 때로는 지혜의 언어로 숙연해졌다. 그리고 ‘시인의 말’, “같은 일을 백 번 할지라도 처음하는 것처럼 하고 싶다/오직 하나 남은 진실을 고백하듯이 하고 싶다”를 되새겼다. ‘오직 하나 남은 진실’ 고백이 무엇일까를. 그것을 찾아 이향아 시를 탐색한다.
“이향아의 시는 인생에 대한 휴머니스트로서의 사랑과 기독교적 신앙체험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다. 시인의 내면이 현실적 요소들과 내재적으로 결합되어 드러남으로써 풍부한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상어를 시어로 변용함에 있어서 조사措辭의 탁월함이 특징적이다”라고『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서 검색 된다. 이러한 평가는 이향아 시인의 ‘진실 고백’을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인은 휴머니스트이어야 하며, 신앙고백적인 시를 쓰고, 깊은 내면을 일상적 시어와 탁월한 조사로 쓰고 있다는 평은 너무 일반적이고 상투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리뷰는 이런 맥락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려 한다.
1. 비가悲歌와 자연친화 상상 미학
나의 먹먹함은 사전적 의미인 “갑자기 귀가 막힌 듯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해서도 아니다. 전율이다. 아리스트텔레스가 말한 인간을 전율하게 하는 ‘연민’같은 정서 때문이다. 연민이라기보다는 ‘아스라한 슬픔’ 같은 것 때문이다. 비가悲歌적 정서 때문이다. 릴케의『말케의 수기』와『두이노의 비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요하고 외진 방에서의 나날들과 바닷가에서 맞은 아침, 그리고 (…) 하나하나가 각각 달랐던 사랑의 밤들에 대한 기억과 산고産苦의 외침 그리고 산후에 다시 몸을 닫고 가벼워져서 하얗게 잠든 산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 보아야 한다. 창문이 열려 있어 이따금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는 방에서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있어 보아야 한다”(『말테의 수기』에서)는 구절과 “그리고 저들, 아름다운 이들/아, 누가 그들을 잡아둘 수 있을까? 끊임없이 그들의 얼굴에는/표정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우리의 것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뜨거운 음식에서/온기가 사라져 가듯이, 오, 미소여, 어디로 사라지는가?”(『두이노의 비가』의「제2비가」에서) 무상한 존재와 슬픔과 죽음에 대한 초월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자
안개가 실크스카프처럼 밀린다
밀리고 흘러서 걷힐지라도
도시의 뒷골목 넘치는 하수구와
한 길 사람 속과
오래 가지 못할 거짓말과
무던한 안개가 품고 있던 것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있을 것이다
- 시「안개 속에서」첫연
실크스카프처럼 바람에 밀리는 안개. 그 안개가 걷혀도 넘치는 하수구와 거짓말. 그것들은 안개가 품고 있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 정체를 2연에서 밝혀준다. ‘불편하지 않은 그늘’때문이라는 것. 그 그늘을 시인은 “이미 안개와 친해져서/사거리 터진 마당의 애매한 취기”이며, “불확실한 경계/용서할 수 있는 미결”때문이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안개가 걷혀도 남는 것은 “미지수의 괄호들”이며,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차라리 자욱할 때” 그 정취는 “어슴푸레 열릴 듯한 은은한 천지”이기 때문에 오히려 “평안”할 것이라 인식한다. 이렇게 안개를 시인은 은은한 천지, 불확실한 경계, 용서할 수 있는 미결, 미지수의 괄호로 인식하며 평안해 한다.
이런 디테일한 시인의 인식은 시「겨울나무 껍질 속에는」에서 보여준 ‘울음소리’에서도 탐색된다. “겨울나무의 울음소리는/꽃피던 젊은 날의 참회처럼/울어서 풀어내는 그리움처럼/더는 참지 못해 안간힘 하는 소리/그러나 어찌 겨울 뿐이랴/나무는 사철 울면서 큰다”(시「겨울나무 껍질 속에는」끝연)에서의 ‘울음’을 젊은 날의 참회로, 풀어낼 수 없는 것을 “울어서 풀어내는 그리움”으로 인식한다. 겨울에만 울음소리가 아닌 사철 내내 우는 참회 혹은 그리움으로 인식한다.
“마지막 피를 짜서/‘꽃’이라고 씁니다”라 시작되는 시「봄밤입니다」는 봄을 꽃과 분홍 이미지로 인식하고, 그 원형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서럽게 노래한다.
마지막 피를 짜서
‘꽃’이라고 씁니다
세상에 남기고 갈 말씀 한 마디
화선지 수맥으로 번지는 분홍
깊은 수맥 눈물 받아
피어나고 있습니다
서걱대는 언 땅에 입김을 불어
나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요
눈을 씻고 들여다보는 붓끝 같은 움
목숨이 서러워서 울먹이는 밤입니다
못 미더워 흐느끼는 봄밤입니다
- 시「봄밤입니다」전문
‘봄밤’을 이 시처럼 인식한 다른 시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피를 짜서” 쓴 “꽃”이라는 말은 누군가 “세상에 남기고 갈 말씀 한 마디”인데, 그 꽃은 “깊은 수맥 눈물 받아” 분홍으로 화선지 수맥에 번지며 피어난다고 인식한다. 이런 인식은 “서걱대는 언 땅에”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목숨이 서러워서 울먹이는 밤”, “못미더워 흐느끼는 봄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봄은 죽음의 계절이 아닌 소생의 계절이다. 그러한 봄, 그 밤에 죽음을 선험하는 것은 죽음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시「진분홍색」의 “‘진분홍’이라고 말할 때 나는 벌써 진분홍물이 들어 있다/진분홍처럼 입을 오므리고 진분홍같은 소리를 낸대//배롱꽃이 진분홍으로 필 때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에서의 시적 대상인 어머니 말씀 때문일까? 유년시절의 사연들 때문일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다른 시가「시간을 따라가면서」이다.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고/동쪽 벌에서 북쪽 산으로/피아노에서 포르테로/숲은 숲끼리 바라보면서/혹시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 봐/놓치고 몽매한 어둠에 묻힐까 봐/빠르게 뛰는 가슴을 누른다//간밤에 내린 비로/꽃들이 와르를 무너지고 있는데/꽃진 자리엔 벌써 의젓한 새 주인들/날이 공연히 밝지는 않는구나/밟고 가는 자리마다 패이고 돋는구나/시계는 아침 열 시 외출을 서두르고/잔가지 잎사귀 사이 푸르른 하늘/뜨거운 눈물”(시「시간을 따라가면서」전문)에서 “간밤에 내린 비로/꽃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데/꽃 진 자리엔 벌써 의젓한 새 주인들”이 올라오지만 “날이 공연히 밝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잔가지 잎사귀 사이 푸르른 하늘”을 “뜨거운 눈물”로 느낀 것은 소생에 대한, 혹은 꽃 진 자리에 눈부신 잎사귀들이 피어나는 봄의 속성을 인식하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은 환희와 죽음에 대한 선험적 비애라는 중의적 의미를 함유한다.
이렇듯 이향아 시인의 자연친화상상력은 계절의 소생과 소멸을 통해 인간의 시간에의 만남과 헤어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이별하기 좋은 때」도 이런 시각에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떠나고 싶으신가 떠나도 좋다
잊어버리고 싶으신가 잊어버려도 좋다
남아 있는 우리들의 내일은
침묵 속에서도 혼자 밝을 것이니
지나간 시간에 대하여
그 속에 매몰된 어지러운 기억과
진부한 사랑과 부질없는 희망에 대해서도
나, 너무 일찍 포기하지는 말 것
오로지 한 가지로 기다릴 것
우리들의 죽지에는 새 움이 돋고
강물도 요령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슬러
여름 내내 기울어진 은하수의 언덕에서
천둥번개에 소스라치지 않을 것
성내거나 노여워하지 않을 것
그냥 기다릴 것
그대는 떠나고 싶으신가
떠나라, 걱정 말고 가볍게
지금은 차라리 이별하기 좋은 때
우리는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있다
- 시「이별하기 좋은 때」전문
제목만 볼 때, 그리고 1연과 2연만을 볼 때 이 시는 이별의 노래로 보인다. 1연의 “떠나고 싶으신가 떠나도 좋다/잊어버리고 싶으신가 잊어버려도 좋다”는 하심下心의 미학과 “남이 있는 우리들의 내일은/침묵 속에서도 혼자 밝을 것”이라는 관조적 체험의 미학을 보면 그러하다. 또 한 2연의 “그 속에 매몰된 어지러운 기억과/진부한 사랑과 부질없는 희망에 대해서도/나, 너무 일찍 포기하지는 말 것/오로지 한 가지로 기다릴 것”이라는 이별에 대한 아포리즘적 발화를 보아도 그러하다. 그러나 3연에 이르러 “우리들의 죽지에는 새 움이 돋고”에서는 시적 화자를 포함한 인간을 나무의 소생으로, 그리고 “강물도 요령소리를 내며 발밑으로 흘러”에서는 강물의 요령소리, 즉 상엿소리로 인간의 죽음을 표상한다. 그리고 “여름 내내 기울어진 은하수의 언덕에서/천둥번개에 소스라치지 않을 것/성내거나 노여워하지 않을 것/그냥 기다릴 것”이라는 잠언적인 시어로, 무상한 인간 삶에 있어서 지혜롭게 사는 삶의 방편을 제시해준다. 그래서 마지막 연에 “그대는 떠나고 싶으신가/떠나라, 걱정 말고 가볍게/지금은 차라리 이별하기 좋은 때/우리는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절창으로 노래한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고, 소생도 소멸도 하나라는,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 것이라는 환희와 같은 희망을 노래한다.
2. 이야기 시 혹은 영상시
이미지image은 오감각기관의 표현구조를 통해 마음속에 재생된 심상을 말한다. 그러나 이미지는 보통 정체된 마음속의 그림이기 때문에 역동성이 약하다. 하지만 그 이미지를 움직이는 이미지로 역동적으로 표현할 때 그것을 우리는 영상映像이라 부른다. 그렇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적 이미지에 움직이는 스토리를 가미할 때, 문자매체우ㅏ 이미지는 영상매체의 이미지로 변용된다. 이런 개념에서 영상시는 출발해야 하는데 기존의 영상시는 인터넷 모니터 상에 시와 사진이나 그림을 삽입하거나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것을 영상시라 부른다. 이를 불식하는 이향아 시인의 영상시를 보자.
부슬비가 추적거리는 초저녁 거리
회색 코트에 회색 중절모를 쓴 남자가
러시아워의 비좁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좋아, 회색이라면 괜찮은 사람일 거야
검거나 희거나 둘 중 하나를 강요할 때
나는 내 우유부단이 부끄러웠고
내 심약함이 성가시었다
그러나 아냐, 회색이면 됐어
오후로 기울면서 날은 바삐 저물고
나도 서둘러 의지할 곳을 찾느다
회색 코트의 그 남자가 걸어가는 길
누군지 모르지만 다만 회색이라는 것이
창호지보다 빠르게 나를 물들이고
어두워지는 골목에는 하나 둘 등불이 켜져
품이 넓은 회색이 세상을 껴안는 중
이젠 아무 걱정 없다
화려한 세상
- 시「회색에 대한 명상」전문
위의「회색에 대한 명상」은 초저녁, 러시아워에 비좁은 거리를 걸어가는 회색 중절모를 쓴 남자의 영상을 하나의 신scence이나 시퀸스sequence처럼 표현한 시이다. 초저녁 거리는 부슬비가 내리고 어둔 골목에는 등불이 하나 둘 커져 있는 도심의 비좁은 거리를 “의지할 곳을” 찾아 걷는 회색의 중절모 쓴 남자. 그 남자의 영상에 대하여 시인은 명상한다. 그 명상은 “좋아, 회색이라면 괜찮은 사람일 거야//검거나 희거나 둘 중 하나를 강요할 때/나는 내 우유부단이 부끄러웠고/내 심약함이 성가시였다”“그러나 아냐. 회색이면 됐어/…/누군지 모르지만 다만 회색이라는 것이/창호지보다 빠르게 나를 물들이고/어두워지는 골목에는 하나 둘 등불이 켜져/품이 넓은 회색이 세상을 껴안는 중/이젠 아무 걱정 없다//화려한 세상”이라는 인식이다. 단순하게 이미지로 그려 놓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자신의 상념을 시적 표현 구조로 역동적으로 말한다. 회색은 괜찮은 사람을 표상하는 색인데, 그 이유는 흑백의 경계를 강요받을 때 그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유부단이 부끄러웠고, 그것을 선택하는 자체가 괴롭다는 토로, 회색은 나를 쉽게 물들이고, 넓게 감싸주고 있어 오히려 그 회색 공간은 화려한 세상의 공간이라는 토로가 시인의 상념이다. 이것이 영상․ 영화에서 해낼 수 없는 문학의 힘이다.
시「저 새들 좀 봐」의 영상은 금강 하구 개펄, 노을 깔린 하늘에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와 가창오리 떼를 그린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시인은 명상한다. “저 새들 좀 봐/흐르다가 잠기다가 일시에 사무치는 것 좀 봐/깃털에서 깃털로 빛보다 빠른 선회/죽지를 틀어/오던 길을 버리고 되돌아갈 때도/누구 하나 슬프거나 섭섭하지 않게/세상 어느 귀퉁이도 구겨지지 않는다/천둥과 벼락이/오늘 밤 둥지를 덮칠지라도/새들은 길을 알아 두렵지 않다”(시「저 새들 좀 봐」에서)고.
정말 한 번 가 볼까/김제 들판 생판 낯선 마늘밭에나/먹고 살기가 예전 같지 않은지/올 겨울에는 새들도 부쩍/미루나무건 아파트 베란다건 전신주건/대체 그게 어딘 줄이나 알고 그러는 것인지/무겁게 늘어진 고압선까지/겁도 없이 몰려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가/김장거리도 뽑아 들인 저녁 들판에는/말라비틀어진 시래기며 무우 토막/바늘침처럼 직선으로 꽂히는 적외선 아래/무엇을 갉아먹다 죽은 쥐도 있는데/내일부터는 눈이 온다고 한다/잘잘못을 흔적 없이 덮으려나 보다/김제 평야 마늘밭/캐다가 놓친 돈부스러기도 없는데/파헤치기 어려운 밭이랑 위로/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밭이랑 위로/하늘이 무겁게 깔리는 대낮
- 시「저녁 들판」전문
시「저녁 들판」의 시적 대상은 “김제 들판 생판 낯선 마늘밭”이다. 그 곳으로 시적화자는 “정말 한 번 가”본다. 겨울새들이 “미루나무건 아파트 베란다건 전신주건/…/무겁게 늘어진 고압선까지/겁도 없이 몰려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몰려와 먹이를 찾는다. “김장거리도 뽑아 들인 저녁 들판에는/말라비틀어진 시래기며 무 토막/바늘 침처럼 직선으로 꽂히는 적외선 아래” 널려 있고, “무엇을 갉아먹다 죽은 쥐도” 있다. 그런 밭에서 시적화자는 “먹고 살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일부터는 눈이 온다고”하니, “잘잘못을 흔적 없이 덮으려나보다/김제 평야 마늘밭/캐다가 놓친 돈 부스러기도 없는데/파헤치기 어려운 밭이랑 위로/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밭이랑 위로/하늘이 무겁게 깔리는 대낮”을 느끼게 된다. 이 시 속에는 요즘 농촌의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적 화자의 유년의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바람이 묵어가는 후박나무 한 그루
익어 터질 듯한 산수유 열매도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지빠귀들은 숲에서 숲으로 우짖고
나는 엊그제 태어난 사람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문 앞에 섰습니다
염치없이 돌아왔습니다
처음인 듯이 어쩌면 마지막인 듯이
당신 없는 그 뜰로 돌아와 섰습니다
- 시「당신의 뜰」전문
위의 시「당신의 뜰」은 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유년의 고향의 집 뜰일 것이다. 그곳은 후박나무 한 그루, 산수유 열매, 숲 속의 지빠귀는 여전한데, “나는 엊그제 태어난 사람처럼/아무것도 모르는 척 문 앞에” 선다. “염치없이 돌아왔습니다/처음인 듯이 어쩌면 마지막인 듯이/당신 없는 그 뜰로 돌아와 섰습니다”고 ‘당신’에게 고한다. 여기에서의 ‘염치없이’ “처음인 듯이 어쩌면 마지막인 듯”이라는 시어와 시구가 가슴 아프게 슬프레 한다. 그리고 짧은 시의 행간에서, 짧은 영화의 신scence같은 시 행간에서 많은 이야기를 주을 수 있다. 특히 시골에 고향을 두고 오래 가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시「왜 이렇게 얼었어」도 고향을 모티프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이 시의 발상은 “왜 이렇게 손이 얼었어. 그가 물었을 때”이다. 그는 그 누구이어도 무방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그’는 손을 잡아주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면 족하다.
왜 이렇게 손이 얼었어. 그가 물었을 때
대답 대신 눈물이 쏟아졌다
얼마만인가, 아 따뜻하고 간간한 액체
왜 얼었을까? 나는
왜 얼어서 늦가을 억새처럼 서걱거릴까
깨어진 사금파리처럼 혼자 뒹굴까
시끄러운 세상, 궂은 날씨
촉새 참새 알을 까는 잔근심 때문인가
얼어 있는 것은 손만이 아니다
사는 일 갈수록 주눅이 들어
터진 입 열린 귀도 봉해 버리고
통째로 돌아앉아 짓눌리는 일
돌아앉아 벼랑 깊이 빠져드는 일
그래도 가끔가끔 물어주면 좋겠다
왜 이렇게 손이 얼었어
대답 대신 한바탕 짭짤하게 울고 싶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오래오래 울고 싶다
- 시「왜 이렇게 얼었어」전문
“왜 이렇게 얼었어, 그가 물었을 때” 흘리는 눈물을 시적화자는 “얼어서 늦가을 억새처럼 서걱거” 리는 눈물로, “깨어진 사금파리”로 비유한다. 그것을 또 “시끄러운 세상, 궂은 날씨/촉새 참새 알을 까는 잔근심 때문”이라고도 인식한다. 그리고 2연에서는 “얼어 있는 것은 손만이 아니다”고 인식하는 데, 그런 것들은 “사는 일 갈수록 주눅이 들어/터진 입 열린 귀도 봉해 버리고/통째로 돌아앉아 짓눌리는 일/돌아앉아 벼랑 깊이 빠져드는 일”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적화자는 누군가가 왜 이렇게 손이 얼었냐고 “가끔가끔 물어주면 좋겠다”고 한다. “대답 대신 한바탕 짭짤하게 울고 싶“어서,”이 핑계 저 핑계로 오래오래 울고 싶“어서 진정성 있는 따뜻한 말로 물어 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서적 소통은 아는 사람들 간의 소통뿐이 아니라, 사회의 소통으로 확대해 나갔으면 하는 시적 화자의 바람이 이 시의 행간 속에 숨겨져 있다.
3. 언어트릭과 잠언 사이
시인은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서와 의식 혹은 무의식과 소통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소통을 꿈꾼다. 위에서 살핀 시들은 진정성으로 내부와의 소통을 꿈꾼 시들이다. 그러나 외부와의 소통을, 시의 경우에는 여러 형태의 것이 있으나, 순수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의 경우에는 아리러니라는 표현구조나 언어 트릭을 주로 차용하게 된다.
요즘 어떤 출입문은 밀어도 당겨도 열리지 않고
명찰처럼 작은 판에 ‘누르세요’ 적은 후
혹시 몰르까 봐 해석까지 달았다.‘Push’!
Push 판 그까짓 것 누를 수야 있지만
누른다는 말이 찜찜하다
지구 표면을 누르는 대기압, 표면장력은 그렇다 치고
따르라 따라오라, 꼬여내는 술수를 넘어
짓밟아버려, 찍소리 못하게 눌러버려
이런 말이 버젓하게 나도는 세상에
나 하나 입장하면서 누구를 제압하라 하는가
왜 그래야 하는가
세상의 약한 것들은 눌리면서 일어나고
밟힐수록 숨을 골라 고개를 쳐드는데
기선을 잡고 초장에 누르라고
제대로 이겼는지
이겼으면 이겼지 어쩌자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르라고 한다
망설이고 있는 사이 내 가슴을 누르는
아, 누군가의 억센 손가락
- 시「누른다는 것」전문
위의 시는 제목 ‘누른다는 것’에 대한 펀pun이라는 아이러니 표현구조로, 그 인식과정을 쓴 시이다. 밀어도 당겨도 열리지 않는 자동문 버튼에 붙어 있는 ‘누르세요’라는 명찰만한 표식이 모티브이다. 이 시는 “‘Push’!/Push판 그까짓 것 누를 수야 있지만/누른다는 말이 찜찜하다”로 시작해서, “지구 표면을 누르는 대기압 표면장력” “제압하라” “기선을 잡고 초장에 누르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르라고 한다”고 아이러니 표현구조로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세상의 약한 것들은 눌리면서 일어나고/밟힐수록 숨을 골라 고개를 쳐드는데” “이겼으면 이겼지 어쩌자는 것인지/아무것도 모르면서 누르라고 한다”가 그것이다. 이렇게 약자를 이기기 위해 눌러야 한다는 메시지가 옳은지 그른지 “망설이고 있는 사이 내 가슴을 누르는/아, 누군가의 억센 손가락”. 그 정체는 이 세상일 수도 있고, 인간의 지나친 욕망일 수도 있고, “따르라 따라오라, 꼬여내는 술수”일 수도 있다.
‘누른다는 것’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나가기 위한 소통의 문을 여닫이하는, 열기 위한 행위이다. 세상과의 소통은 자기 의지로 인한 소통일 수도 있지만 외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 할 때, 위의 시는 “누군가의 억센 손가락”은 외압적인 소통의 표상일 수 있다.
날이 저물기에 커튼을 쳤다
저물고 있는 창밖에 맞불을 놓듯
피장파장이지
나도 따라서 그렇게 했다
찬바람을 맞자는 것도 비밀을 지키자는 것도 아닌데
지는 해를 따라 나도 외면하고 싶었다
꼬리를 문 자동차들이 불빛을 끌고 가서
어느 종착역 약속된 시간을 나누는 동안
너는 너, 나는 나 지키며 살기로
나와 상관없는 일엔 입을 다물기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기로
무거운 커튼을 쳤다
낮은 자꾸 졸아들고 밤만 길어지는데
나와 무관한 것이 무엇인가
그런 것이 세상에 있기는 한 것인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커튼을 다시 젖혀야 할까
밖이 자꾸 궁금하다
- 시「커튼을 쳤다」전문
위의 시「커튼을 쳤다」에서의 ‘커튼’은 창밖과 창안을 나누는 경계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저물고 있는 창밖에 맞불을 놓듯” 커튼을 친 것은 “찬바람을 막자는 것도 비밀을 지키자는 거도 아닌데/지는 해를 따라 나도 외면하고 싶”어서라고 토로한다. 그리고 “너는 너, 나는 나 지키며 살기로/나와 상관없는 일엔 입을 다물기로/아무 대답도 하지 않기”위해 “무거운 커튼을 쳤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시인은 낮은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는 계절이 “무관한 것”인지, “그런 것이 세상에 있기는 한 것인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커튼을 다시 젖”히고 싶어한다. 소통을 원한다. “밖이 자꾸 궁금”해진다. 이는 단순한 소통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인이 잊지 말아야 할 시인의 소명이다. 이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토로한 “같은 일을 백번 할지라도 처음 하는 것처럼 하고 싶다”에서의 초심, 시인의 소명인 세상에 대한 관심, 그것이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한 첨예한 시인에게 있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적 관심이다. 그 세상이 불편해도.
시「불편한 세상」은 “수상하다”로 시작된다.
수상하다. 내 몸 어딘가가 어긋났나 보다/엄지발가락 발톱 밑인지, 발바닥인지/나는 버릇처럼 타이르곤 했다/산다는 것은 그럭저럭 견디는 거야/어지간한 아픔은 참으며 사는 거야/세상 한구석이 맘에 들지 않아도/누구나 조금씩은 부대끼며 사는 거야/이제 와서 느닷없이 견딜 수 없는 것은/타락한 거지/나도 모르게 경망스러워진 거지/세상은 애초부터 편치 않은 곳이건만/호강에 초를 치고 잊어버린 것이지//그래도 날 밝으면 가봐야겠다/부끄러워 어쩔거나/겨우 발톱 같은 것이나 가지고/겨우 발바닥 같은 것이나 데리고
- 시「불편한 세상」전문
시인이 이 세상을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위의 예시例詩에서 보듯이 “세상 한구석이 맘에 들지 않아도/누구나 조금씩은 부대끼며 사는”것을 의미한다. 그 불편한 세상을 “이제 와서 느닷없이 견딜 수 없는 것은/타락한 거지/나도 모르게 경망스러워진”것이라 인식한다. 그런 세상에 사는 시적화자는 이 시의 서두에서 “수상하다”고 느낀다. “엄지발가락 발톱 밑인지, 발바닥인지”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이 밝으면 병원에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엄지발가락 발톱 밑인지, 발바닥인지”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끄러워 어쩔거나/겨우 발톱 같은 것이나 가지고/겨우 발바닥 같은 것이나 데리고” 간다는 것이.
그렇다면 이 시에서 시적화자가 정작 세상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뭘까? 왜 시적화자는 무엇 때문에 불편해 하는 것일까? 자신의 발이 수상해서 아니면 불편한 세상을 견디지 못하는 스스로가 타락한 것이고 경망스러운 것이라는 사실 때문인가? 그러나 이 시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시적 화자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의 문제일 것이다. 자신의 몸을 수상하게 하는 아픔, 발톱 밑인지 발바닥인지 구분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이 또한 시인의 소명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과 삶의 원초적인 본체를 드러내 주는 일이 시인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만큼 중요한 것은 시로써 삶의 지혜까지도 전언해 줘야 하는 소명이 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향아 시의 곳곳에는 이러한 잠언적 시 구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①
굶어야 비로소 맑아지나 보다
가난해야 눈이 밝아지나 보다
병원의 긴 복도에는
육신이 소중하여 사무치는 사람들
이만하기 다행이야 외면서 걸어간다
수수깡처럼 여윈 허리를 세우고
아직은 희망이 있어
긴 복도 끝까지 반듯하게 걸어간다
- 시「긴 복도 끝까지」에서
②
물이 끊기기 전 세상이 먼저 마를지도
우리는 바로 그 날 물에 잠길지도 모른다
- 시「물난리」에서
③
못 믿을 세상이라 사진을 찍어서
여기 있지 않느냐, 이게 바로 나라고
증명하였다, 의심하지 못하게
그래도 나는 역시 풍경을 두고 왔다
풍경만 남겨 두고 나 혼자서 왔다
따라온 것은 이름이요 허울
그림자 뿐
그리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풍경을 두고 혼자 오는 것이구나
혼자 와서 두고두고 앓는 가슴이구나
- 시「풍경을 두고 오다」에서
④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살아 있는 동안일까
가슴을 후비는 듯 쥐어짜는 듯
시름이 나를 지켜 살리고 있다
검은 늪에 횃불을 켜
목숨 하나 건져 올리고 있다
- 시「살아있는 동안」에서
위의 네 편의 시 구절은 무작위로 뽑은 시의 전문全文이 아닌 한 부분들이다.
①의 시는 병원에서의 진찰 혹은 건강검진을 위해 공복으로 간 병원행에서 느낀 그 체험을 모티프로 한 시이다. 여기에서는 “굶어야 비로소 맑아지나 보다/가난해야 눈이 밝아지나 보다”라는 잠언이 그것이다. ②는 수도의 단수를 모티프로 한 시로, “단수는 내일이라지만 세상이 그보다 먼저 마르고”라는 문명사회비판적인 잠언이다. ③은 그리움을 모티프로 하는 시로, “풍경만 남겨 두고 나 혼자서 왔다/따라온 것은 이름이요 허울/그림자일 뿐”에서 시어 ‘풍경’과 ‘그림자’가 의미하는 바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의 그리움이라는 것은 풍경일 뿐이며, 따라온 것은 그림자일 수 있다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④의 시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모티프인 ‘삶’을 테마로 한다. 살아 있는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시름’이라는 아이러니한 지혜 언어는 우리의 삶의 본질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조아하게나마 이향아 시인의 시를 일별했다. 이제 이쯤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오직 하나 남은 진실”에 대한 담론의 결정체를 내어놓아야 할 때이다. 인간에게 있어 오직 하나 남은 진실은 실존이다. 살아남는 것이다. 사는 것처럼 살아남아 지혜롭게 사는 일일 것이다. 그냥 살아지는 것이라 해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향아 시의 전편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슬픔이라는 정서이다. 그의 시가 아이러니라는 표현구조와 지혜의 언어로 우리를 위무해주고 있지만, 먹먹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마도 시인이 전언하려고 하는 진실이 ‘슬픈 인간 존재’ 때문은 아닐까? 그것도 서정시의 정수인 비가悲歌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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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이제 이쯤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오직 하나 남은 진실”에 대한 담론의 결정체를 내어놓아야 할 때이다. 인간에게 있어 오직 하나 남은 진실은 실존이다. 살아남는 것이다. 사는 것처럼 살아남아 지혜롭게 사는 일일 것이다. 그냥 살아지는 것이라 해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향아 시의 전편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슬픔이라는 정서이다. 그의 시가 아이러니라는 표현구조와 지혜의 언어로 우리를 위무해주고 있지만, 먹먹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마도 시인이 전언하려고 하는 진실이 ‘슬픈 인간 존재’ 때문은 아닐까? 그것도 서정시의 정수인 비가悲歌를 통해.
― 유한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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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아 시인∥
∙ 1966년『현대문학』추천을 받아 문단에 오른 후
∙『온유에게』『나무는 숲이 되고 싶다』등 21권의 시집과
∙『쓸쓸함을 위하여』『불씨』등 15권의 수필집,
∙『창작의 아름다움』『시의 이론과 실제』『삶의 깊이와 표현의 깊이』등 다수의 문학이론서와 평론집을 펴냈다.
∙ 제2회 시문학상, 제40회 한국문학상, 제10회 창조문예상, 제10회 아시아기독교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현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기픈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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