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지 못해도, 남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잔소리 한번 없던 아내가 어느날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한쪽 눈에선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데, 눈빛은 결코 슬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더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눈물처럼 보인다.이 작품의 제목은 '여자의 눈에서 눈물 흐르게하지 맙시다' 다.
개구리 한마리가 산 정상에서 다닥다닥 붙어있는 교회 십자가를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다. 개구리 옆에는 민들레가 홀씨를 뿌리고, 그 홀씨는 교회 십자가 위로 흩날린다. 개구리는 교회가 많다는 것을 풍자한 것일까? 열방에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걸까? ('우리동네 뒷산에서')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부터 사회에 대한 발언까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전시가 대전에서 열린다. 전시의 주인공은 판화가 이훈웅. 지난 2008년 전시이후 7년만에 선 굵은 목판화를 들고 나온 그가 오는 30일까지 대전예술가의 집에서 '이훈웅 판화전'을 연다. 나무판떼기에 세상의 소리를 담은 이번 전시회에는 '작두 살풀이','투혼' '장끼의 경계' ''중화요리 사장님들의 걱정' 등 5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먹고 사는 문제부터, 삶이 애환이 담긴 소재들이 판화 안에 모두 담겨있다.
이훈웅은 생계를 위해 그동안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단 한번도 조각칼을 놓지 않았다. 창작 활동에 대한 그의 열정은 급기야 집안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도마까지 도구('우리집 도마')로 쓸 정도다.
이훈웅은 대전·충남에서 유일무일하게 목판화를 옹골지게 고집하고 있다. 애칭판화(동판을 산으로 녹여서 제작한 판화), 나염 등 기법판화로 돌아선지 오래지만, 투박하고 고집 센 작가 성격답게 그는 목판화에 온 힘을 싣는다. 그렇게 30여년동안 쉼 없이 만들어 낸 판화는 거칠면서도 섬세한 칼날의 맛이 제대로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가는 "나무를 깎을때 느낌이 살아있고, 도장처럼 솔직한 맛과 멋이 있어 좋다"며 "작품이 강렬해야 가끔 생각이 나는 것처럼 상징성과 구호성을 표현하기엔 판화만큼 좋은게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굵고 강직한 힘을 지녔다. 밭 하나를 두고 한쪽에선 골프를, 다른 한쪽에선 곡갱이로 밭을 일구는 씁쓸한 풍경도 그가 붙인 '내 어머니 땅에서 후려치는 놈들'이란 제목 앞에 피식 웃음부터 나온다. 이것이 '이훈웅'식 세상을 향한 독설이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불만 많은 이 세상에 소리치는 '아우성'쯤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전시장 문을 나서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찌릿한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원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