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김의석님의 명복을 빌면서 유가족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
다. 아울러 한 젊은이의 죽음을 애석히 여겨 혹독한 비판을 해주신 그리고 우리병원을 아끼는 마음으로
격려와 충고를 해주신 많은 네티즌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과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터넷 각 사이트에 올려진 형 김의재님의「동생의 억울한 죽음」내용은 상당부분이 사실과
달랐으나 가족을 잃은 부모님과 형제의 참담한 심정을 고려하여 즉각 대응하지 않았으며 인
터넷에 올려진 이후 사회에 알려지게 되자 검찰은 부검을 실시하였고 많은 네티즌들이 병원
의 입장을 밝혀 달라고 계속해서 요청해왔지만 부검결과를 기다려 이제 부검한 결과가 나왔
기에 사실을 있는대로 밝히는게 병원의 도리라 생각되어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예수병원을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병원은 지금부터 102년전인 1898년 11월
3일 미국 볼티모어 의대를 수석 졸업한 마티 잉골드 여의사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병원입니다. 현재 185명의 의사를 포함하여 90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었고 600여명 환자가 입원중이며 1일 평균 1,500여명의 환자가 외래로 래원하고 있습
니다.
환자분이 병원에 도착하여 퇴원까지 일시별로 중요한 내용만 발췌하여 알려드립니다.
<진료과정>
2000년 2월 21일 오후 5시45분경 환자는 내원 수십 분전 갑자기 발생한 흉통 및 구역,구토
를 호소하며 응급실로 내원하였는데 당시 혈압은 130/90, 맥박 80/분, 호흡수는 24/분이었고,
진찰 소견상 3-4년전 비장파열로 00대학병원에서 비장절제술을 시행한후 생긴 수술 흉터가
복부에 있었을뿐 다른 이상 소견 없었습니다
먼저 응급실 당직 인턴선생님이 환자를 진찰한 뒤 내과와 일반외과 당직의사에게 보고되어
처음에 기흉, 심근경색등을 의심하고 흉부 방사선 촬영, 심전도,심근효소검사를 포함한 혈액
검사를 시행하였으나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흉통의 원인중 응급치료가 필요한 기흉이나 심
근경색은 아니라고 판단되었고 이와 같은 내용을 보호자(아버지, 형)에게 설명한 뒤 일단 환
자의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 진토제를 투여하였습니다
오후 6시 40분경 회진 중이었던 순환기 내과 수석전공의와 상의하여 흉통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다른 질환여부-대동맥 박리, 대동맥류 파열, 종격동종양-를 확인하고자 흉부 CT를 촬
영하였습니다. 특히 환자의 경우 신장이 194cm로, 결체조직의 선천적 결함이 있어 대동맥확
장과 대동맥 박리를 일으키는 말판 증후군과 유사한점이 있었으나 흉부CT상에도 대동맥확
장, 대동맥 박리, 대동맥류 파열, 종격동 종양 등의 소견은 보이지 않았고 다른 소견 역시
정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검사 결과를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일단 응급으로 치료
가 필요한 질환들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므로 환자의 증상(흉통, 구역, 구토)을 조절해가면서
경과를 지켜보아 다른 검사를 추가로 시행할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진통제와 진토제를 투여하면서 호전을 보이던 환자의 증상은 22일 0시 20분경 다시 시작되
었고 이에 다시 진통제와 진토제를 투여한 뒤 당일 당직이었던 수석 전공의와 상의한 바 검
사상 심혈관계통의 이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구역, 구토가 계속되므로 역류
성 식도염, 소화성 궤양등 위장관계통의 이상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위내시경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보호자에게 설명하였습니다.
2월 22일 오전 회진전까지 환자는 맥박이 약간 빠를 뿐 다른 특이 소견은 보이지 않았고 흉
통도 많이 호전된 상태였습니다. 오전 회진중에 순환기내과 및 소화기내과 수석전공의와 각
각 상의가 되어 역류성 식도염, 소화성 궤양 등의 소화기 질환을 배제하기 위해 오전 9시
30분경 위내시경을 시행하였는데 장시간의 금식에도 불구하고 음식물이 위에 저류되어 있는
소견이 보여 위내시경후 환자는 내과로 입원하기로 하였고 그후 응급실에서 다시 시행한 심
전도 및 심근효소검사도 정상이었으며, 환자는 입원실로 올라갈 때까지 비교적 안정된 상태
로 보호자와 웃고 대화하면서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화장실을 오가는
등 활동을 하였습니다
낮 12시경 환자가 입원되었고 내과의사 2명이 가서 환자를 진찰하였는데 당시 환자는 흉통
이 처음보다는 호전된 상태로 침대에 앉아 보호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진찰소견상
특이 소견은 보이지 않았고, 당시까지의 검사결과에서 심혈관 계통과 소화기 계통의 이상소
견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계속적으로 미약하나마 흉통이 지속되고 있어 보다 정밀한 검사위
해 심장초음파를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 환자를 담당하였던 내과의사중 한명은 전북대병원에서 흉부외과 수련을 거친 흉부외과 전
문의로 전문의 자격 취득후에도 전북대병원 및 서울 삼성병원에서 흉부외과 전임의로 근무
한 뒤 본원에서 다시 내과 수련중으로 흉부 질환에 대해서는 충분한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있는 분입니다)
당일 심장초음파검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사전에 예약된 환자가 많고 다른 환자들의 심초음
파 검사가 늦어지면서 당일 심장초음파를 하는 것이 어려워져, 이 환자의 경우에 응급으로
심장초음파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 담당의사가 순환기내과 과장님과 상의하였으나 그때까
지 검사한 심전도, 흉부방사선사진, 심근효소검사, 흉부CT등에서 이상소견이 없어 중요한
응급질환은 배제된 상태였으므로 응급으로 시행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되어 다음날 오전에
검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날 오후 4시 30분경 보호자(아버지)가 심초음파실을 방문하여 환
자의 심장초음파 검사시기에 대해 문의하였고 이때 당일에 시행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음을
설명하였으며 보호자는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후6시경 담당내과의사 3명이 회진하면서 환자 상태를 다시 살폈으나 환자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지는 않았었으며, 보호자(어머니) 및 환자에게 다시 현재까지의 검사결과에서 응급질
환이라 생각될 만한 소견이 보이지 않는 것과 심장초음파 검사가 연기된 이유를 설명하고
다음날 심장초음파검사를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환자의 어머니가 병원에 온지 만 24
시간이 지났는데도 확실한 진단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였으나 병에 따라
서는 진찰소견과 간단한 검사만으로도 쉽게 진단이 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진단하는데
복잡한 검사가 필요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2월 22일 회진후에도 협심증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혈관확장제를 투약하였으나 별다른 변화
없었고 오후 9시 30분경 새로운 이상여부가 나타나는지 여부를 보기 위해 심전도 및 심근효
소검사를 다시 시행하였지만 이때에도 심근 경색을 시사할만한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았습
니다
2월 23일 새벽 1시 40분경, 환자가 다시 흉통을 호소하여 의사가 방문하여 진찰하였으나 진
찰소견에는 그전과 다른 변화는 없었고 병실밖에서 보호자(형)에게 지금까지의 진료 과정
및 진단의 어려움, 가능성 있는 질환에 대해 다시 설명하는 중에 환자가 걸어서 병실밖으로
나와서, 안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후 병실로 들어가게 한 뒤 침대에 눕게 하였으나 환자는
흉통이 나아졌다고 하였고, 따라서 특별히 진통제를 투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전 5시경 환자가 미열이 있다고 간호사로부터 보고를 받고 의사가 와서 진찰하였으나 환
자는 별다른 오한이나 열감을 호소하지 않아 지켜보기로 하였으며 6시경 다시 와서 환자 상
태를 살폈고 6시 30분경 수석전공의와 함께 회진한 후 7시 30분경 과장님이 회진을 하였습
니다. 회진 당시 환자는 침대에 앉아 있었으며 발열 원인에 대해 심막염, 심내막염, 및 소화
기계통의 염증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호자(아버지)에게 설명하였고 오전으로 예정되어 있는
심장초음파의 결과를 보아 심장에 이상이 있을 경우 타 병원으로의
전원까지도 고려하였었습니다
오전 8시 15분에 갑작스럽게 심장마비가 발생하여 즉시 기관 삽관술 및 심폐소생술 시행했
으나 반응이 없어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계속하여 심폐소생술 시행하였습니다
3시간 이상 여러명의 내과의사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였지만 반응이 없어 오전 11시 38분
심장 맛사지를 중단하고 Ambu-bag을 이용한 인공호흡만 시행하였습니다 이때 사실상 환자
는 사망한 상태였고 보호자가 이를 수용하지 못하여 영안실로 옮기는 것을 거부하여 잠깐
인공호흡기를 달았다가 계속적으로 Ambu-bag을 이용한 인공호흡만 시행하였습니다
<사망후 유족과 대화 과정>
오후 1시 : 유족측 3인(작은아버지, 삼촌, 관계미상-본인이 신분 밝히기를 꺼려함, 추후 확인
된 바로는 D병원 사무장이며 부친과 잘 아는 사이라 함)이 먼저 병원 행정부장을 찾아와서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장례비와 합당한 보상금을 지급해 달라고 요
청하였으며 병원측에서는 아직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 상태이므로 내부의견을 정리하여
알려주겠다고 했음.
오후 3시 30분 : 모친을 비롯한 유족들과 환자의 대학 동아리 친구들의 거친 저항으로 사체
를 영안실로 옮기지 못하고 있던 중에, 유족들이 사체를 병원장실로 옮겼으며 비서실과 2층
복도를 점거한 뒤 비서실 전화를 이용하여 유족중 한사람이 전주MBC, KBS 등 언론사에
전화를 하여 병원장실에 사체를 놓고 농성중임을 알렸고, 병원에서는 관내 파출소에 신고를
하였음.
오후 4시 : 유족측 대표3인과 행정부장을 위시한 병원측 대표3인이 회의실(사체가 있는 병
원장실 옆)에서 대화에 임하였으며 유족측에서는 장례비와 위로금 5억원을 요구하였고, 병
원측에서는 먼저 유족들을 진정시키며 사체를 병원장실에서 영안실로 옮겨 줄 것을 요구하
였음.
오후 4시 30분 : 유족대표와 대화도중에 다른 유족들이 회의실에 들어와 진료과정에 대해
묻자 부원장과 내과주임과장이 설명하였지만 담당의사와 병원장을 불러오라고 소란을 피워
중단되었음.(담당 의사는 중환자실에서 유족으로부터 물리적인 심한 추궁을 당하다가 경비
실 직원의 저지로 겨우 모면한 후 잠시 몸을 피함)
오후 5시 : 회의실 밖에서는 유족들이 환자를 살려내라고 욕설과 고함을 하였고 친구들은
비서실과 복도에서 줄지어 앉아 소란한 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유족들은, 중환자실에서 환
자의 키(194cm)가 커서 사체가 굳어지면 다리가 펴지지 않는다는 옆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침대를 교체해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담당간호사가 교체할 침대가 없다며 불친절하게 대했
다면서 그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여 간호부장, 수간호사, 담당간호사가 와서 해명함.
(보통 침대보다 환자의 키가 매우 커서 길이가 같은 침대의 아래쪽 난간을 떼어 내고 환자
를 옮김)
설명 도중에 환자의 모친이 흥분하여 담당간호사의 입을 때리는 등 회의실은 잘못을 시인하
라는 고성과 위협적인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고 이러한 가운데 유족들 30여명이 병원장과 내
과과장을 둘러싸고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작성해온, 오진을 인정하라는 내용의 시인서에 서
명할 것을 요구하여 어쩔 수 없이 서명함
오후 7시경: 유족들의 고성과 위협적인 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회의실 밖 2층 복도에서
환자진료에 참여했던 다른 내과의사에게 유족중 한명이 목에 칼을 들이대며 협박하는등 위
협적인 상황이 밤 12시까지 계속되었으며, 30여명의 유족전체가 모두 나서서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대화가 되질 않자 유족의 외삼촌이 나서서 앞으로는 모든 대화는 자신과 모친만으로
제한한다고 하고 병원측 방안이 정리되는대로 아침에 만나자고 선언하여 대화가 종결됨.(유
족들과 학생들은 회의실과 비서실, 복도에서 밤을 새웠고 병원장실내에서는 유족들의 요청
에 따라 내과의사들이 교대로 사체 옆에서 밤새 Ambu-bag으로 인공호흡을 계속했음)
2월 24일
오전 7시 30분 : 사망환자를 계속 인공호흡함으로 부패가 심화되고, 이를 계속하는 것은 주
검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는 판단을 내려 이러한 상황을 유족에게 설명후 기관내 삽입된 관
(tube)을 제거하려하자 유족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했으며, 이때 작은아버지가 학생들을 시
켜 청와대 등 각 인터넷사이트에 띄우라고 큰소리침.
오전 9시 : 부원장이 다시 한번 큰아버지와 형에게 사체가 부패하여 훼손이 염려되므로 인
공호흡을 중단해야 한다는 설명을 드리고 동의를 구하여 인공호흡을 위해 기관내 삽입된관
을 제거하고 인공호흡을 중단시켰으며, 이후 모친이 나타나 거칠게 항의하였음.
오후 2시 : 유족측 대표 3인과 병원측 대표가 대화를 했는데 병원측은 우선 시신을 장례식
장에 안치후 대화를, 유족측은 선 대화후 시신을 장례식장에 옮기겠다고 주장하여 결렬됨.
오후 4시 : 병원에서 백원이든 만원이든 위로금액이 정해졌다는 말만 전해주면,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기겠고, 옮긴 후 금액을 알려주면 이후 자기들의 의사대로 행동에 옮기겠다
함.
오후 6시 : 유족측에게 병원측 방안이 결정되었음을 알려주자 26시간만에 시신을 원장실로
부터 병원장례식장으로 옮김.
오후 6시 30분 : 병원측에서 장례비용을 포함한 약간의 위로금액을 제시하자 유족측 대표들
은 너무 적다고 화를 내며 다시 2억 5천만원을 요구함. 병원측에서는 다른 병원의 예와 고
문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다시 조정할 것이므로 대화 통로는 계속 유지하여 달라고 하니 자
기들도 병원측 제시금액이 너무 적어 부모에게 말하지 않겠다며 내일 오전중에 다시 만나기
로 약속함.
2월 25일
오전 9시 30분 : 부원장, 내과과장, 행정부장 등 병원직원 6명이 빈소를 찾아 병원장의 조화
를 전달하고 조문함.
오전 10시 : 환자의 대학 총학생회가 개입하여 농성을 준비한다는 소리를 들음.
오전 10시 50분 : 총학생회장과 면담하여 유족측과 대화중임을 설명하고 환자진료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며 법 테두리안에서 애도를 표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전함.
오전 11시 : 담당 내과과장이 환자를 진료중 유족대표 3명이 와서 오후부터는 환자진료를
할 수 없다고 협박을 함.
오전 11시 45분 : 총무과장이 큰아버지에게 대화재개를 요청하면서 어제와 같은 장소인 총
무과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전달함.
오전 11시 50분 : 총무과장, 경리과장이 다시 장례식장을 찾아가니 유족대표는 보이지 않고
병원측에서 11시에 대화를 약속해 놓고 나타나지 않았다고 억지를 부림.
유족들에게 대표와 오전중으로 만나기로 했지 정확한 시간약속은 없었다는 설명과 총학생회
장과 면담이 있어서 조금 늦어진 것이지 약속한 오전(12시)을 넘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하였으나 막무가내로 대화는 필요 없다고 소리를 지름. 이때에 유족대표가 나타났고 D병원
사무장이라는 사람이 술을 마시며 분위기를 어렵게 끌고 갔으나 나머지 유족대표 두사람을
설득하여 총무과에서 대화를 재개함.
오전 12시 : 대화를 재개한 직후 1층 현관과 원무과 앞에서 유족과 학생들이 농성을 하여
환자진료에 지장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유족측 대표들에게 1층 현관에서 농성을 중단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하여 대화가 중단됨.
오전 11시 55분 : 유족들과 총학생회측 학생 70여명이 모조지 전지크기의 대자보 20여개를
정문 유리문과 응급센터 유리문, 원무과 벽 등에 부착시킨 뒤 1층 로비에서 학생들은 수십
개의 피켓을 들고 정문에서 원무과 창구앞까지 도열하였고 유족들은 외래환자들을 붙잡고
억울한 죽음이며, 이 병원은 사람을 죽이는 병원이라고 소리를 질러 1층 로비가 대 혼란을
겪음. 또한 학생들은 유인물 수 백장을 병실에 돌아다니며 입원환자들에게 나누어 줌. 유족
들은 1시간 정도 후에 철수했지만 학생들은 오후 5시경까지 연좌 침묵 농성했음.
(그 날 저녁 총학생회측 학생들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철수한다는 사유를 밝히지 않고
스스로 병원을 떠나 동아리 친구들만 남게 되었고 유족들도 그 뒤로는 병원 내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음)
오후 5시 30분 : 전주중부경찰서에서 유족 측에게 검찰의 부검결정을 통보함.
오후 6시 : 유족측 대표인 D병원사무장이 총무과에 들려 부검 통지를 받았으니 대화는 진
행할 수 없으며, 검사를 만나 부검여부에 관한 의견을 나눈 후 대화를 계속할지 여부를 결
정해주겠다고 말함. (이후 양측의 공식적인 대화는 없었음)
2월 28일
오전 7시 30분 : 부검을 위해 장성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출발.
2월 29일
오전 10시 30분 : 발인 후 영구차 나감.
<인터넷에 올린 유족측 주장에 대한 해명>
1. 병원에서 환자에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환자가 응급센터에 도착하여 심장마비가 발생할 때까지 39시간이 채 안되었지만 환자가 응
급실 도착하자마자 진단을 위해 흉부방사선사진, 심전도, 기본혈액검사, 심근효소검사 등을
시행하였고 이러한 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나타나지 않아 바로 흉부CT 촬영을 시행하였습니
다. 이러한 검사를 진행하면서 진단을 흐리지 않게 하는 범위 내에서 환자의 증상을 호전시
켜주기 위해 진토제, 진통제 등을 투여하였고, 응급실에 있을 때부터 여러 내과 및 외과의사
들이 환자 상태를 진찰하고 보호자에게 계속적으로 검사결과에 대한 설명을 하였고 입원후
에도 갑작스런 심장마비가 일어날 때까지 19시간동안 8차례에 걸쳐 여러 내과의사들이 병실
을 방문하여 환자를 진찰하였으며 증상에 따라 대증치료를 시행하였고 그 중에는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전북대학교병원과 서울삼성병원 등에서 전임의를 거쳐 다시 우리
병원 내과에서 수련중인 선생님도 포함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심장마비가 발생한 직후에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여러 명의 내과의사들이 3시간이상을 심폐소생술을 계속하였습니다.
@환자가 계속적으로 심하게 통증을 호소하였으나 병원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였으나 환자의 증상은 점차적으로 호전되는 중이었고 입원 후
에는 보호자와 웃으며 이야기도 하는 등, 어느 누구도 갑작스럽게 사망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하지 않았고 이러한 사실은 심장초음파를 다음날 시행하기로 하였
다는 말에 아버지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거나, 사망한 당일 아침에 환자의 어머니가 출
근하였다가 회사에 도착하기전에 환자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연락을 받고 되돌아 왔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2. 의사가 3시에 퇴근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 담당의사가 오후 회진시 보호자에게 오늘은 사전에 예약된 환자가 많아서 심장초음파검
사를 할 수 없어 내일 검사를 해야겠다고 설명을 하는 가운데 어떤 날에는 환자가 많이 대
기할 경우에 정상진료시간인 오후 5시 이후에도 검사를 시행해 주는 경우가 있지만 오늘은
순환기내과 과장이 몸이 불편하여 정상진료 시간까지만 심초음파검사를 할 수밖에 없어 내
일 오전에 검사를 하게되었다고 설명하였을 뿐 3시에 퇴근하였다고 말 한 적은 없으며 담당
의사가 환자의 심장초음파 시행에 대해 순환기 내과 과장님과 직접 만나 상의한 시간이 오
후 4시 40분 경이었습니다.
-순환기 내과과장은 그 날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40분까지 심장초음파검사를 8건 시행하
고 귀가했음.(이러한 사실에 대한 객관적 증거는 심장초음파 녹화테이프 및 환자명단기록부
에 있음)
3. 유족 측은 사과만 요구했다는데
환자가 사망후 중환자실에 있을 때 유족 측 대표(작은아버지, 삼촌, D병원사무장)는 병원 행
장부장을 찾아와 장례비와 합당한 보상금을 요구했고 이에 병원 측에서는 갑작스런 일로 병
원측 입장 전달이 지연되자 유족 측은 시신을 병원장실로 옮긴 후 회의실에서 다시 장례비
와 보상금으로 5억원을 요구했습니다.
4. 언론사와 경찰에 로비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유족 측이 병원장실에 시신을 옮겨 놓고 그 자리에서 각 언론사에 전화를 했지만 일부 신문
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언론사들이 보도를 하지 않자 병원측에서 언론사에 로비를 하여 보도
를 막았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병원은 언론사·기관 등에 결단코 로비를 하지 않았으며 23일
병원장실과 2층 복도가 점거된 상태에서 관할파출소에 처음 신고를 하였고, 24일 아침에도
기관내 삽입된 관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유족 측과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파출소에 연락하
여 2명의 경찰관이 나왔으며 당일 유족과 학생 등 70여명에 의해 현관과 1층 로비가 점거된
상태여서 이러한 상황을 관할파출소에 신고를 했을 뿐이며 다른 기관에 연락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5. 당시 병원장님을 보호자들이 찾을 때 비서실 직원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당시 병원장님은 진찰실에서 진료 중이었으며 시신을 병원장실에 옮겨둔 채 병원장실을 점
거하고 병원장을 찾아내라고 소리치는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비서실여직원이 순간적으로 일
치되지 않은 대답을 한 것은 인정하나 이것은 부하직원으로서 개인적으로 병원장님을 위하
는 마음으로 한 행동일 뿐 병원차원에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말판 증후군 및 대동맥박리에 대하여>
1. 말판증후군
1)원인
; 피브릴린(fibrillin)이라고 하는 결합조직을 만드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질
환으로 유전되나 25%에서는 정상인 부모에서도 나타나므로 새로운 돌연 변이에 의해서도
발생한다고 보여진다
2)임상적 특징
: 심한 말판증후군 경우에는 다음의 3가지 특징을 가진다
a.골격계; 비균형적으로 큰 키와 길고 가는 사지 및 손발가락
기타 관절의 구축 또는 이완 등의 골격계 이상
b.안구계; 수정체 탈구로 인한 시력 감소 및 근시, 사시
c.심혈관계; 대동맥 기시부에서 시작하는 대동맥박리, 승모판 탈출
*이와 같은 심혈관계 이상은 이환율과 사망률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3)예후
-말판증후군 환자의 평균 수명: 35세
-사인의 87%: 심혈관계이상과 관련
-사인의 61%: 대동맥박리 또는 파열, 갑작스런 심정지의 결과임
(J Am Coll Cardiol-미국 심장학회지 1989 Aug;14(2): 422-8에서 인용함)
2. 대동맥 박리증의 예후
-치료하지 않는 경우 대동맥박리 환자는 3개월이내에 90%이상이 사망하는 것으로 되 어 있
으며 이중 20%가 첫째날 사망하고 60%가 2주 이내에 사망한다
-특히 상행대동맥에 박리가 생긴 경우에는 응급으로 수술을 해야하는데 대동맥판과 대 동
맥궁을 다른 혈관으로 대치해야하는 어려운 수술이므로 진단이 빨리 되더라도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중의 사망률이 23%이고 수술 자체의 사망률이 20%이상이며 수술전후
의 사망률이 39%에 이른다
(Ugeskr Laeger 1994 Sep 12;156(37):5289-94에서 인용)
- 상행대동맥에 박리가 생긴 경우 수술후 5년생존률이 50%미만이다
(Sabiston :외과 교과서 1654p 그림에서 인용)
@말판 증후군에 의한 대동맥 박리증시 예후가 나쁜 이유
1) 수술 전부터 환자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응급수술을 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 으
로 수술전 사망률이 23%에 달함
2) 수술을 하는 경우에도 대동맥박리가 광범위하게 침범하여 수술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에
전체적인 수술이 어렵고 따라서 생명을 건지기 위해 혈관을 바꿔 넣는 부 분적 수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에도 수술전후 사망률이 39%이상이 다
3) 수술에 성공한다 해도 이병은 유전적 질환이어서 병리조직학적으로 대동맥 중막의 변성
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대동맥박리증이 진행되거나 또는 재발하는 경우도 많고 수술후 합
병증 발생률이 높아서 5년이내 재수술을 해야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앞으로 계획>
유가족에게는 처음부터 책임질 부분은 책임진다고 분명히 밝혔고 부검결과에 따라 과실이
있다면 병원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병원의 과실부분에 대해서 적절한 책임을 질 것입니
다.
네티즌 여러분
그동안 의료분쟁은 수 없이 있었겠지만 인터넷에까지 올려져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드문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차후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있어서는 양쪽의 의견을 모두
충분히 듣고 아울러 부검결과 등 공인된 기관의 결정을 확인한 후 비판하는 성숙한 통신문
화가 정착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한번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네티즌 여러분께 감사드리오며, 여러분들의 뜻을
잘 헤아려 더욱 더 정성과 친절로 최선을 다하여 환자를 돌보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
니다. 항상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