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낚다
이병연
낚싯대 하나 들고
제주 바다를 여러 날 거닐었다
수시로 입질이 왔다
질펀히 내려앉은 바위
이름 없이 산 것들 줄지어 낚는다
널뛰는 파도를 품었다 놓느라 울퉁불퉁한데
움푹 팬 가슴엔
햇살과 바람과 눈물이 머물러 있다
허공에 힘껏 줄을 던져
깎아지른 절벽을 낚는다
정을 쪼듯 내리치는 물살에 새겨진 문신
상처가 깊을수록
지느러미의 골이 빛난다
덜컥 입질이 왔다 이번엔 정말 크고 센 놈이다
머리를 하늘로 치켜올리고 기둥처럼 떼로 서 있는 놈
하늘이 같이 끌려 온다
낚싯대가 휘청인다
함께 쉽게 사는 법은 없어서
세로로 그어놓은 금이 햇살에 도드라진다
몸에 새겨진 저마다의 사연
바다에서 낚은 것을 바다로 돌려보내고
당신의 마음이 닿지 못하는 날
바위 낚시를 떠나야겠다
----이병연 시집, {바위를 낚다}에서
꿈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낙천주의자는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염세주의자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꿈은 형체가 없고, 꿈이 이루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꿈은 순식간에 달아나고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는 순간, 내가 사랑하던 그 사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게 된다. 남녀는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자기 자신의 이상만을 사랑한 것이지, 실제의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병연 시인의 [바위를 낚다]는 꿈을 낚는 것이며, 그 방법이 신기神技에 가깝고, ‘도의 경지’에 올라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낚싯대 하나 들고/ 제주 바다를 여러 날 거닐었”고, 그때마다 “수시로 입질”을 받았다. “질펀히 내려앉은 바위”에서 “이름 없이 산 것들을 줄지어 낚”아 보았지만, 그러나 그의 낚시는 몰고기를 잡는 것이 그 목표는 아니었던 것이다. “널뛰는 파도를 품었다 놓느라 울퉁불퉁한데/ 움푹 팬 가슴엔/ 햇살과 바람과 눈물이 머물러 있다”라는 시구에서처럼, 그는 바위와 하나가 되어 “허공에 힘껏 줄을 던져/ 깎아지른 절벽을 낚”았던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은 절벽이고, “정을 쪼듯 내리치는 물살에 새겨진 문신”과도 같으며, 궁극적으로는 “상처가 깊을수록/ 지느러미의 골이 빛”나는 그런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덜컥 입질이 왔”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크고 센 놈”을 잡았지만, 그러나 그는 그 물고기를 그 즉시, 바다로 돌려 보낸다. 머리를 하늘로 치켜올리고 기둥처럼 떼로 서 있는 물고기, 낚싯대를 휘청이게 하며 하늘과 같이 끌려나오는 물고기, 그러나 그 물고기는 하나의 환영이며,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당신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물고기와 나는 일란성 쌍생아와도 같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살고 있는 나와 당신의 관계와도 같다. 널뛰는 파도를 품었다 놓느라고 움푹 패인 가슴도 똑같고, 정을 쪼듯 내리치는 물살에 새겨진 문신도 똑같고, 함께 사는 법이 없어 몸에 새겨진 저마다의 사연이 많은 것도 똑같다.
하지만,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지, 그 물고기가 아니다. 또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것은 그 물고기 같은 당신이지, 진정한 당신이 아니다. 이 꿈과 현실, 이 이상과 현실의 모순 속에서 나의 고민은 깊어지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나의 바위 낚시는 계속 된다. “당신의 마음이 닿지 못하는 날/ 바위 낚시를 떠나야겠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이병연 시인의 바위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낚는 것이 그 목표라고 할 수가 있다. 당신은 바위이고, 바위는 알 수 없는 당신이고, 따라서 바위 낚시는 반드시 실패를 할 수밖에 없다.
이병연 시인의 [바위를 낚다]는 바위와 파도와 절벽을 인간화시키고, 그 삶의 고통과 비애를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심리학적으로 잘 묘사한 데 그 장점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그의 ‘낚시의 철학’은 과거의 체험을 잘 기억하고, 고귀하고 위대한 미래의 꿈을 향하여 그 어떤 모험과 전투마저도 마다하지 않는 천하무적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꿈은 그를 고독하고 외롭게 만들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믿음 하나로 깎아지른 절벽같은 당신의 마음을 낚고 있는 것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그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바보의 짓이 당신의 마음을 낚은 ‘낚시의 철학’, 즉, 이병연 시인의 [바위를 낚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실체가 없고 나와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영원한 타인이고, 따라서 나는 이 영원한 타인과 싸우며, 나의 이상적이 존재로서 ‘당신’을 찾아 바위를 낚고 있는 것이다.
바위는 가까이 있고, 당신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당신은 나와 함께 살고 있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바위를 낚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수없이 거친 물살에 새겨진 문신과 그 세월의 고비 고비마다 새겨진 사연을 듣고 있으면 “덜컥 입질이 온다.”
꿈은 우리 인간들의 존재의 유한성과 그 불가능성을 잠재우며, 비록, 잠시 잠깐동안이지만, 무한한 가능성과 충만함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준다. 이것이 [바위를 낚다]의 근본철학이며, 그 전언이라고 할 수가 있다. 도는 가까운 데 있고, 우리는 그 가까운 도를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꿈은 이루어지고, 우리들의 사랑은 영원불멸을 노래한다.
이병연시집 바위를 낚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