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도 처서도 지났다.
뜰의 귀뚜라미 소리조차 줄어들고,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하며
성큼 들어선 가을의 문턱에서 성급하게 돌아 올 겨울을 생각하게 만든다.
공기 중의 오물들을 다 씻어 낸 듯 구김살 하나 없는 맑은 날씨가 마치 풀을 잘 먹여 손질 해 놓은 옥양목 같다.
이렇게 맑은 날을 그냥 보내기엔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여름동안 덮었던 이불들을 꺼내어 빨기 시작했다.
농 안에서 꼭꼭 쌓여 숨죽이고 있던 솜이불들을 내다 널었다.
우리 식구들은 화학 솜 보다는 목화솜이불을 좋아한다.
햇빛을 쪼여 주면 숨죽었던 솜이 다시 부푼다.
푹신하고 따사로움은 목화솜이 가진 제일 좋은 장점이다.
겨울엔 몸에 착 안겨 바람을 막아 주는 느낌이
포근한 어머니 품 같은 목화솜의 진가를 요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딸을 시집을 보내기 위해 이불솜으로,
겨울에는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위해 무명옷에 솜을 놓기 위하여 심었던
목화를 대체섬유의 발달로 인해 재배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맑은 날씨는 나를 할머니 품으로 착각을 하게 만든다.
할머니께서는 명절이 돌아오면 늘 덮던 이불을 깨끗하게 빨고 손질을 해 놓으셨다.
고향을 찾아오는 자손들에게 깔끔하게 손질 해 덮게 해 주시는 할머니 정성이다.
호청을 푹 삶아 하얗게 햇빛에 바래고 빳빳하게 풀을 먹여
약간의 물기가 있을 때 양 쪽에서 끝을 잡고 잡아당기며 아귀를 맞추어 잘 갠다.
너무 말랐다 싶을 때면 물 한 모금 입에 물어 푸푸 풍기며 꼭꼭 밟아서는 다듬이질을 한다.
또드락또드락 마주앉아 장단을 맞추며 정갈하게 쪽진 할머니 앞에
손녀는 힘에 부치는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 맞추어 보려 애를 써 보지만 역부족이다.
다림질 해 놓은 것 보다 더 반질반질한 호청을 넓은 대청에 펴 놓고 앉아 시침질을 한다.
한 뜸 한 뜸 이불을 꽤 매어 가고 계시는 할머니 앞에 손녀는 이불 위를 동구르르 구르며 신바람이 난다.
귀찮다 하시면서도 귀엽게 바라보시는 할머니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외아들을 두시고 내외분만 사시는 게 안쓰러운 부모님은,
막 말을 배우는 어린 딸을 말벗으로 남겨 두시고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나가신 것이다.
할머니 앞에서 조잘대는 손녀는 할머니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외로움을 달래 드리기 충분했다.
호청을 다 시친 이불이 한 옆에 차곡차곡 띔 틀처럼 쌓여 있는 이불 위가 왜 그리도 좋던지
올라갔다 내려 왔다 미끄럼을 타며 흩어놓기 일수였다. 호청을 시칠 때면 어릴 적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불 문화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우리의 전통 온돌 보다는 가스보일러가 놓여지고, 심야전기가 들어왔다.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그러다 보니 한실 이불 보다는 흔히 침대이불을 사용하게 된다.
혹여 한실 이불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풀을 먹이지 않아도 되고, 다듬질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 태반이다.
호청을 시치는 일이 아니라 뒤집어 씌워 쟉크를 닫으면 끝이 난다.
옛날의 옥양목, 광목 호청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하니 요즈음 젊은이들이 광목이 뭔지 옥양목이 뭔지 알겠는가.
한겨울 솜이불의 묵직함이 가족의 끈끈한 정과 사랑을 보듬고 있는 것 같아 훈훈하다.
이제 와서 산뜻하고 상큼했던 맛이 그립기만 한 것을 보면 지난 시간들을 아쉬워 할 만큼 나이를 먹은 게다.
예전의 솜이불을 선호 하는 건 나만의 고집인지도 모른다.
첫댓글 요즘 이불은 가볍고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만 그래도 어머님 풀매기시며 다듬이질 하시고
어머님 품안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솜이불 그야말로 된장국 같은 맛이지요...
풀매기시며 다듬이 방망이 장단 소리가 그리워지네요.
솜이불 이야기를 읽다보니 옛생각이 떠오르네요! 어머니를 도와드린다며 씨아로 목하씨를 빼던일.솜틀집에 갔던일.
물래질을 하고. 그리고 밤늦게 까지 베틀을 짜시던 어머니모습 등등. 그래도 그때가 그리워지는건 왜일까요?
솜처럼 포근한 엄마의품? 아니면 엄마의 그 체취가 그리워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