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교수의 글 “개혁주의 구원론이 전파되지 않는 개혁교회” 에 있는 모순
이지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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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교수가 쓰신 글 “개혁주의 구원론이 전파되지 않는 개혁교회”는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는 제가 동의하지 않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글에 있는 모순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충만에 대한 말씀입니다.
박영돈 교수는 자신의 글 “개혁주의 구원론이 전파되지 않는 개혁교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밑줄과 강조는 제가 한 것이고 긴 글이므로 여러 부분을 생략하였습니다.)
개혁주의 구원론이 전파되지 않는 개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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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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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취된 구속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 혜택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과거 예수께서 이루신 사역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효력이 있게 되는가?
칼빈의 대답은, 우리가 주님과 분리된 채 주님께서 우리 밖에 계시는 한, 주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아무 효력이 없는 것으로 남아있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1)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효력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 신비로운 연합이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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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인격적으로 내재하시고 성령과 함께 그의 지상사역의
열매를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하신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와 ‘성령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와 ‘성령이 우리 안에’라는 표현을 상호 교체적으로 사용하였다.
구원과 성화의 모든 과정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공재와 동역 속에서 진행된다.
그리하여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Christ in us) 계시는 신비가 실현되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Christ for us) 고난 받으심으로 얻게 되는 모든 효력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Christ in us) 계심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중생과 칭의, 그리고 양자됨과 성화와 성령 충만 등 구원의 모든 은혜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 에’(Christ in us) 계심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실현된다.
따라서 성령을 통하여 임하시는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이 구속의 은총을 누리는 길이다.
(박영돈)
이 부분에서 박영돈 교수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야만
중생하고 칭의를 받고 그리고 양자됨과 성화와 성령충만을 받는다고 말씀하였는데
이 중에서 성령충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세례로 인한 것입니다.(행 2:4절)
그리고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 영돈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므로 중생과 칭의를 얻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중 중생을 저는 성령의 내주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칭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 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박영돈 교수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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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근간으로 하여 구원론을 발전시키는데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기독교 강요』 3권에서 구원론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논함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는다면 속죄 사역의 혜택에 전혀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만 새 언약의 중보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새 언약의 모든 은혜가 흘러나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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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논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의문은
어떻게 거룩하고 완전한 하나님이 부패하고 유한한 인간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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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 근거와 자격을 우리 안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우리가 평생 성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불같은 고난을 통하여 정화될지라도 그런 자격을
조금이라도 갖출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이 흘리신 피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할 수 있는
정결한 신부의 자격을 갖추게 한다. 그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의롭다함을
얻게 하여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게 한다.
이 연합의 근거는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통하여 이루신 율법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법적으로
전가된 것이다. 그래서 개혁신학에서는 이 연합을 우선적으로 ‘법적 연합’(judicial union)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였다. (박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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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박영돈 교수는 칭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지에 대해
“이 연합의 근거는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통하여 이루신 율법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법적으로 전가된 것이다.”
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율법의 의로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는
(1)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2)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1)은 말씀(2)와 모순이 됩니다.
말씀(1)이 맞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2)가 옳지 않은 말씀입니다.
말씀(2)는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통하여 이루신 율법의 의로움이 전가된다는 말씀인데
이는 능동순종 주장입니다.
박영돈 교수께서는 대부분 맞는 말씀을 하신 것이지만
“능동순종 주장”의 영향을 받으신 것 같고
그로인해 모순된 말씀을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박 영돈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얻는 유익에 대해서는 잘 말씀하셨는데
정작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못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지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얻는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박영돈 교수께서 말씀하신 개혁주의 구원론이
실제 개혁주의 구원론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신 것이라면
제가 보기에 개혁주의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영돈 교수께서 말씀하신 개혁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얻을 수 있는
중생(성령의 내주하심), 칭의, 양자됨 그리고 성화 등을 얻게 하는 신학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제가 이 글을 몇개월 전에 썼는데
박영돈 교수님의 글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년 전이었습니다.
그 후에 칼빈이 세례에 대하여 두가지 이해(A, B)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의 연합은, 세례에 대한 칼빈의 이해(A)에 있고
세례에 대한 칼빈의 이해(B)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박영돈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개혁주의 신학은
세례에 대한 칼빈의 이해(B)를 따르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박영돈 교수님께 감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얻는 유익에 대한 말씀만이 아니라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없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없이 구원을 얻는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찾아 보니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얻는 유익에 대한 말을 하신 분들은 있지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 주신 분은
박영돈교수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영돈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에 대한 저의 생각이 바뀐 후
그러니까 세례에 대한 저의 생각이
세례에 대한 칼빈의 이해(B)에서 이해(A)와 같이 바뀐 후,
세례에 대해 저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두 분을 알게 되어 반가웠는데
그 중 한 분에 대한 글을 올려 드릴테니
박영돈 교수님의 글과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