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복을 받기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우선입니다.』
창세기 28:18-19 336·338장
18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루스더라
누구나 한 번쯤은 광야와 같은 시간을 만납니다. 아니 인생은 어쩌면 광야와 같습니다. 고독하고 힘들고 주저앉고 싶은 상황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광야의 특징은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광야의 시간이 그저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순간은 바로 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는 이제 아무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장막, 어머니의 보호, 밉지만 형의 도움, 홀로 하란까지 가야 하는 야곱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야곱을 찾아오신 주님은 먼저 야곱에게 자신을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임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말씀처럼 야곱에게도 어디로 가든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 동과 서, 남과 북을 돌아보게 하시며 이 모든 땅을 야곱과 그의 후손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버지에게 듣던 할아버지 이야기, 아버지가 하나님을 만나 복을 받은 이야기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지금 자신을 찾아온 것입니다. 야곱이 만약 그저 아버지의 장막에 있었다면 편안하고 안락했다면 하나님에게 간절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지금 하나님을 만난 이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는 이 장면이 야곱에게는 축복인 줄 믿습니다.
동이 틀 무렵 야곱은 자신이 베고 자던 돌베게를 세워 제단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할아버지처럼,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합니다. ‘벧’은 집이라는 뜻이고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라 할지라도 우리가 제단을 쌓는 그곳이 하나님의 집인 줄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그곳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신기한 것은 창세기 12장 8절 이하 말씀을 보면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곳이 바로 이곳 ‘벧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알고 그곳에서 유숙했을까요? 아브라함은 훗날 자신의 손자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곳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고 자신처럼 고백할 것을 알았을까요?
이 모든 것은 시와 공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주셨듯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만나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곳 남문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 자녀들도 이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예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삶의 적용: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니까?
마무리기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